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72)화 (172/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따를 화(化) : 환마제 여시(1)

장안 본부

얼마 전, 종남파에서 일어난 배신 사건은 서북 무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종남파가 어떤 곳이던가.

서북 유일의 명문 대파로, 도문의 종주였으며, 서북 무림의 구심점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뒤로 소수민족과 중소 문파의 희생을 바치고 본인들의 안위만을 위해 적과 거래를 하다니!

서북에서 일어난 실종과 면족 부락의 괴멸 배경에 종남파 배신자들이 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들고일어났다.

하지만 들고일어나기도 전에, 배신자들은 이미 모두 죽어 있었다.

“이, 이게……!”

면족 부락 장로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직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생생한 모습의 시체를 보자니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문을 속이고, 정도 무림을 속인 기만자들은 모두 죽음으로 그 죄를 벌했으며, 죽어서도 그 시체가 도선계에 들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은 장문인인 저의 불찰이라. 깊이 사죄드립니다.”

징계나 감금 정도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종남파는 제자의 절반 가까이 되는 배신자들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그들의 시체를 내놓으며, 종남파 장문 산수일검 견원이 직접 나와 사죄했다.

“저, 저!”

“장문인이……!”

종남파 장문인은 천천히 허리를 숙이는가 싶더니, 모두가 경악하는 가운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 했다.

종남파의 다른 제자들도 모두, 장문인을 따라 오체투지 했다.

한때는, 아니 지금도 서북 무림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종남파였다.

그들의 오체투지를 보는 서북 무림인들의 심정이 복잡해졌다.

종남파의 도덕과 정의가 아직 살아 있음을 기뻐해야 할지.

기만자들로 인해 죽은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그에 대해 이 일의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남궁세가 공자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진화는 죽은 희생자들의 유가족에게 기만자들의 시체를 내주었다.

면족에게는 ‘대지에 피를 흘리지 않고 시신이 흙에 묻히지 않으면, 혼이 육체를 떠나지 못하고 영원히 죽음의 경계에서 떠돌게 된다.’는 전설이 있었으니.

어찌 보면 그들의 원수들은 이미 가장 처참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죽은 터였다.

면족은 기만자들의 시체를 흙에 묻지 않고 조각조각 나누어 들짐승들의 먹이로 던졌다.

그 속에서 서북의 가장 큰 세력이었던 장족 부락은 어떤 발언도 하지 못했다.

이후 서북 지역은 크게 달라졌다.

우선, 모두를 기만한 평화를 깨고 그들은 중원 최대의 격전지로 돌아갔다.

진화 일행과 현무단주, 종남파는 매일매일 성 밖으로 나가 귀천성 소속의 중소 문파를 토벌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수십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마을마다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곡선이라며?”

“또야? 죽겠군. 이게 진짜…… 종남파 배신자들이 죽고 뭐가 나아진 건지 모르겠네. 오히려 이전이 훨씬 살기 좋았던 것 같군!”

“어허, 그게 무슨 말인가!”

“그렇잖나! 매일 사람이 죽어 가고 있네. 이전에는 어쩌다 한 번이던 전투가 매일이라고! 이전엔 어쩌다 한 번 나오던 죽은 이들이, 이제는 매일 나오고 있네! 이게 과연 좋은 것인가?”

매일 벌어지는 전투.

희생자들이 속출하자, 하나둘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만큼, 비난의 목소리도 커진다는 것이었다.

탕-!

“그럼 이번에는 네놈들이 죽을래?”

“뭐?”

“어, 어허, 왜들 이러나?”

“내가 틀린 말 했나? 이전에 네놈들이 죽지 않은 건, 우리 면족의 목숨값이지 않나. 우리 면족은 이전에도 매일매일 죽었어. 네놈들 때문에! 그러니까 이번에는 모두의 평화를 위해 장족이 희생하지그래?”

“뭐, 뭐야?”

“이전이 더 좋다며! 더 죽일 면족도 안 남았는데, 네놈들 장족이 죽으면 되잖나? 남의 목숨은 안 아까운데, 제 목숨은 아까운가? 이 더러운 장족 놈들!”

“어허, 이 사람들, 왜 이러나?”

정답던 친구 간에 싸움이 일었다.

요 근래 이런 싸움이 잦아졌다.

없던 희생자가 생기기 시작하자 불만을 쏟는 장족.

그리고 그런 장족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면족.

서북에서 가장 큰 두 부락의 관계가 전에 없이 악화되었다.

제대로 돌아온 종남파를 중심으로 똘똘 뭉칠 줄 알았던 서북 무림이, 혈족 간의 다툼으로 사분오열될 실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중재해야 할 현무단과 종남파는 이 사태를 방관하며, 무인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전투를 벌이러 나가기 바빴다.

“그만하게!”

“아, 이자가 먼저 말을 이상하게 하지 않았나!”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그만 좀…… 헛! 저기!”

친구들의 다툼을 말리던 사내가, 놀란 눈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마침 장안 본부로, 이 모든 사태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장차 정의맹 간부가 될 것이 확실한 관도생들과 현무단주, 그리고 현청대주였다.

특히 창천화룡 남궁진화.

천하제일 세가라는 남궁세가의 직계로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미인이었으나, 저자의 손짓에 악 소리도 못하고 종남파 무인들 수십이 절명했다 했던가.

요즘 저자의 손에 귀천성 마두들의 비명과 살이 타는 냄새가 사방에서 울리다 하였다.

“어제 곡선부 적도사가 새까맣게 타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단다.”

“이야, 그 대단하던 곡선부도 곧 끝나겠는데.”

“무림 고수부터 동네 왈패까지. 귀천성 휘하에 있던 건, 개미 새끼 한 마리 살려 두지 않는다는군.”

방금까지 멱살을 잡고 싸우던 사내들이 어느새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다음엔 우리 정권방도 데려가시려나?”

“전투 참여의 기회는 공평하다고 했으니까. 이제 우리 차례겠지.”

방금 전까지 희생자가 늘었다며 싸우던 사내들이, 이제는 기대감 어린 눈을 하고 진화를 보았다.

눈부신 검기를 날리며, 악당들 수십수백을 물리치고 쟁취하는 승리.

무림에 적을 둔 자들이라면 어린 시절 한 번씩 꿈꿔 보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 장면이 매일 눈앞에서 일어난다니.

스스로 주인공은 되지 못할지언정, 그 일원이 되고 싶지 않은 무림인은 없을 것이었다.

서북 무림이 큰 전력 손실과 사분오열 나뉘는 입장 차이와 다툼 속에서도, 계속해서 귀천성과의 전투에서 승전보를 올리는 비결이었다.

따르고 싶은 등.

진화 일행과 현무단주, 종남파 장문은 서북의 화합을 위해 어떤 일을 더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매일 전투에 나서고, 모든 문파에 골고루 협조를 구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매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중소 문파들은 단 한 번도 협조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진화와 일행은 무림인들이 꿈꾸는 전투를 보여 주며, 서북 무림인들이 스스로 따르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곡선부를 덮칠 때는, 꼭 나설 것이네. 장족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우리 면족은 아픔에 굴하지 않는 민족이지. 우리도 전투에 빠지지 않을 거네!”

“허어, 참.”

언제 싸웠냐는 듯 진화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하는 친우들을 보며, 그들을 말리던 사내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었다.

* * *

챙--!

챙챙!

사방에서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현판에는 불이 붙었다.

“크아아아악!”

“아악!”

곡선부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도망에 나섰다.

정의맹 무사들이 그 뒤를 쫓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단연코 진화였다.

쉐에에에엑---!

“크아아아악!”

“부주님-!”

쉐에에엑--!

진화의 검이 푸르게 빛나고, 앞을 가로막는 적들 사이를 지났다.

한없이 가벼운 몸놀림에 마치 춤을 추는 듯 착각할 정도라.

다만, 진화가 지날 때마다 피가 비처럼 내리고, 비명이 울렸다.

“소용없는 짓이다.”

진화의 눈에 새파란 번개가 내리치고.

쉐에에엑---!

푸른 검기가 도망치는 적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훤하게 뚫린 앞으로 진화가 날듯이 뛰어올랐다.

“아, 안 돼!”

곡선부 부주 장길령은 코앞까지 다가온 검을 보며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하지만 진화는 무심한 눈으로 그의 어깨에 슬쩍 검을 찔렀다.

“어헉!”

단번에 죽이지 않는 것에 안심했을까.

곡선부주가 참았던 숨을 토하는 순간.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악!”

곡선부주가 세상에 없는 고통을 겪는 듯 비명을 질렀다.

진화의 검에서 번뜩이던 뇌기가 곡선부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허억!”

“장부, 검은 책자, 어디 있지?”

“그, 그딴 건…… 으아아아악--!”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면, 가차 없이 뇌기가 온몸에 작열했다.

한 번, 두 번.

그것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선이라.

곡선부주는 결국 품에 있던 장부를 내놓고 편안한 죽음을 택했다.

푸-욱!

진화가 검으로 곡선부주의 심장을 꿰뚫고, 그의 손에 들렸던 검을 책자를 받았다.

오늘 전투도 이제 거의 끝이 날 무렵이라.

쉐에에엑-!

“헉. 헉. 다 끝났나?”

마지막으로 덤벼들던 적을 죽인 현무단주가 주변을 둘러보며 진화를 찾았다.

그의 곁으로 막 적을 죽이고 숨을 돌리던 현청대주가 다가왔다.

“상황이 끝났군요. 아직 파악하기 전이지만, 우리 쪽 피해는 크지 않을 듯합니다.”

“허, 이게 진짜 되는군. 사흘에 한 문파. 한 달도 되기 전에 장안성 근교는 모두 정리했어, 정말로.”

현청대주의 보고에, 현무단주가 기가 막힌다는 듯 주변을 보며 말했다.

그에 현청대주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후우.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보여 주는 것이군요.”

“아, 아니. 그건 결단코 아니야.”

안일했던 우리란 종남파를 말함이라.

죄책감이 가득한 현청대주의 말에 현무단주가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살짝 질린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남궁 공자가 그동안 죽인 적들만 수백은 될 걸세. 과연 천하제일가라는 남궁의 직계라 할지, 그 남궁진혜의 동생이라 해야 할지…….”

“중원의 고수들은 다 그런가요? 아니면 정의무학관 관도생들이라?”

“그럴 리가! 현무단도 엄연히 정의무학관 출신들이 태반인데!”

현청대주는 경외감이 가득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서북 무림에 남궁진혜는 전설의 팔모사 같은 중원의 괴수라.

무당 출신으로 정의무학관을 졸업했던 현무단주가 학을 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저분들이 특별한 것이겠죠?”

“…….”

현청대주의 물음에 현무단주가 진화 일행을 찾았다.

맨주먹으로 곡선부 현판과 대문을 날려 버린 나하연 하며, 독연을 태워서 건물 안에 숨어 있던 곡선부주까지 모조리 튀어나오게 만든 당혜군.

심지어 현오는 이 지역의 장례 방식이 죽은 이의 피가 흙을 적셔야 저승길이 편안하다는 소리를 들은 후, 자비를 베푼다면서 적들의 온몸을 터뜨려 죽이고 있었다.

피에 흠뻑 젖은 저들을 보고 누가 명문 정파를 대표하는 후기지수라 할까.

“그냥…… 저들만 이상한 것으로 해 둠세.”

“아, 하하하하하! 그러는 게 좋겠군요.”

현무단주의 말에 현청대주가 웃음을 터뜨리며 동의했다.

“내일, 조사단이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로 조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성 근방의 귀천성은 모두 정리했네요.”

현청대주가 주변을 돌아보며 탄성을 내었다.

장안성 근방에서 가장 큰 귀천성 세력이었던 곡선부가 오늘부로 멸문했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사단으로 적호단이 온다고 하는데…….”

“적호단의 누가 올지는 모르고요?”

“누가 올지 모르지만…… 제발! 남궁 공자가 멀리 원정을 가자고 하기 전에,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군.”

현무단주가 얼굴에서 사라질 날이 없는 핏자국을 닦으며, 작은 바람을 빌어 보았다.

닦아도 닦아도 피 냄새가 가시지 않는 것이.

어쩐지 느낌이 불길했다.

* * *

쨍그랑---!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게야!”

날카로운 고성이 방 안에 울렸다.

차르르르르르---.

가는 손목에 걸린 보석 팔찌들이 요동을 쳤다.

손목뿐 아니라 목과 발목에도 옷보다 많은 장신구와 화려한 장식이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마에는 검은 물방울 모양의 흑요석이, 콧구멍엔 금색 호박이 반짝이고, 입술에는 홍주로 된 꽃잎 점이 있었다.

전신을 장식한 듯 화려한 여인이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일주일 전에 채워졌어야 했어! 그런데 아직 반도 못 채웠다는 게 말이 돼?”

하얀 얼굴에 가늘고 촉촉한 눈매, 요염한 입꼬리.

색기 가득한 얼굴이 다른 때와 달리 날카롭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전에 없이 사나운 눈빛으로 앞에 선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여인의 목을 한 손에 잡을 정도로 거대해 보였지만, 어쩐 일인지 여인의 질책에 고개를 숙이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마성, 네가 말해 봐라! 왜 내 우물이 차지 않은 거냐!”

여인이 거대한 사내의 뒤에 있던 노인을 가리켰다.

날카로운 목소리에 노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주인님,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에서 제물을 공급하던 수하들이 모조리 당했습니다. 저희들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이었습니다.”

“닥쳐!”

노인이 필사적으로 변명했으나, 여인이 냉정하게 잘라 버렸다.

애초에 변명을 듣자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여인이 노인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허업!”

노인이 목을 붙잡고 눈을 부릅떴다.

노인은 숨이 막힌 듯 목을 붙잡고 끅끅댔다.

노인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듯 몸이 말이 듣지 않았다.

터질 듯 붉어지던 얼굴이 창백하게 식을 때쯤, 거대한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주인님, 성안의 일을 알려면 마성이 필요합니다!”

“…….”

거대한 사내의 외침에, 여인의 눈이 사내를 향했다.

하얗게 빛나던 눈동자가 다시 까맣게 돌아왔다.

그리고 노인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털-썩!

“파하-! 하!”

주저앉은 노인은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사내와 쓰러질 듯한 노인의 위로, 여인의 차디찬 목소리가 떨어졌다.

“내 제물을 채워 놔! 일주일 내로!”

“존명.”

“조, 존명……!”

사내와 노인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여인의 명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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