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73)화 (173/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따를 화(化) : 환마제 여시(2)

진화에게 중요한 것은, 이곳 서북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종남파의 기만자들을 정리하면서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화가 장안성 밖을 정리하고 검은 책자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종남파의 기만자들이 성문을 열었을 때, 장안성 안으로 쳐들어온 귀천성 세력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장안성 외부에 있던 작은 문파들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놈들은 산발적인 기습으로 작은 이득을 탐하는 것 외에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그릇들이 아니야. 그럼…… 이전 생에 현무단과 서북 무림을 전멸시킨 놈들은 누구지?’

진화의 시선이 책상 위를 향했다.

곡선부에서 얻은 검은 책자.

그곳엔 놈들이 지금까지 거래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 신원이 정확하지 않은 젊은 남녀였다.

그리고 그것이 노리는 바는 명확했다.

“이름 없는 남녀라니. 만년독수에 필요한 이천 명의 동남동녀를 모으는 중이군.”

진화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실망감이 실려 있었다.

사실 진화가 검은 책자에 적혀 있길 바란 것은 다른 마제의 제물에 대한 조건 혹은, 적이 노리는 제물의 구체적인 신상이었다.

하지만 백열문과 곡선부에서 얻은 두 장부는 제물의 조건만 적혀 있을 뿐, 그에 해당하는 목표는 있지 않았다.

그들의 장부는 대상의 나이가 젊다는 것 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노예 거래 장부와 같았다.

“어쩌면 아직 제물 후보의 소재를 다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어.”

그때, 앞에서 관심 없는 척 진화의 말을 듣고 있던 현오가 무심하게 물었다.

“그 성가포목의 둘째, 그 영애는 생년월일이 조건과 일치하지 않았나?”

“……!”

현오의 말에 진화의 눈이 커졌다.

“그랬어. 분명 현무단주가 따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건과 일치하는 실종자가 일곱이라고! 하지만 이 두 장부에는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군!”

진화의 말에 현오가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진화와 현오의 시선이, 백열문의 장부와 곡선부의 장부, 그리고 그다음 빈자리에 닿았다.

“또 다른 장부를 가진 놈이 있다는 소린가?”

“글쎄.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이 검은 책자를 돌리는 놈을 알아내는 건데…….”

진화의 시선이 다시 백열문과 곡선부의 장부로 향했다.

“장부에 적인 숫자는 이천이 안 된다.”

“동남동녀라지 않나. 어디 절간을 털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숫자지.”

현오가 진지한 얼굴로 주억거렸다.

“백열문과 곡선부도, 이걸 전부 납치해서 잡아 오진 않았겠지?”

“……노예시장을 뒤져 볼 셈인가?”

현오가 금세 진화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에 진화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산적, 수적, 마적, 온갖 잡놈들이 날뛰고 있다고 했어. 그놈들이 과연 뭐로 돈벌이를 할까?”

귀천성에 밀려난 것은 정도 무림만이 아니라.

관이 유명무실해지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서북 지역은 온갖 도적들이 날뛰고 있었다.

“노예 거래 장부 같다고 했지? 진짜 사 온 것도 있어. 세심하게 비용 처리를 해 놨더라고.”

곡선부 총관의 꼼꼼함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진화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자, 현오도 눈을 번뜩였다.

“노예시장이야말로, 사람을 조건에 맞춰 거래하는 곳이지. 서북의 노예시장이 중원에서 제일 크다 했던가?”

“뒤질 곳이 많겠군.”

“호오, 아미타불.”

진화와 현오가 눈빛을 마주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현무단주가 알았다면 기겁했을 광경이었다.

아니, 실제로 현무단주는 기겁했다.

“뒤질 곳이 아니라 뒈질 곳이겠지! 그곳의 규모는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인가?”

현무단주가 펄쩍 뛰었다.

“연일 계속된 전투로 무사들도 지친 상태네. 게다가 오늘은 당장 정의맹 조사단이 오지 않나!”

현무단주의 말처럼 이제 곧 배에서 내린 조사단이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참이었다.

진화도 지금 당장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밖에서 현무단원이 달려왔다.

“단주님, 지금 적호단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 * *

“와아아아--! 적호단이다---!”

정의맹 육 대 무단은 중원에서도 최정예라 불리는 무력 집단이라.

서북의 무림인들은 종남파의 전력이 약해진 것을 대신해서 적호단이 온 것을 무척이나 반겼다.

“와아. 저 덩치 봐. 저 사람이 적호단주님인가?”

“응? 에이, 덩치로 따지면 저 사람이 더 단주감이 아니겠나.”

“그 옆에 있는 자를 보게. 근육이…… 곰인가, 사람인가? 와아!”

적호단주 경격권 팽치는 얼굴을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한 번씩 들어 본 적은 있을 만큼 유명한 정의맹 고수라.

서북 무림인들이 적색 무복을 입은 세 사람을 두고, 누가 적호단주인지를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걸 듣고 있던 진화와 현오, 나하연, 당혜군도 그들을 찾았다.

“호오. 부처님의 가호가 근육으로만 갔나 보군.”

“다 큰 거라고 생각했는데, 더 클 여지가 있었다고? 저 괴물 같은 인간들!”

현오와 당혜군이 조금 질린 얼굴로 팽치의 뒤에 서 있는 두 사내를 보았다.

잠시 헤어진 동안 급격한 성장을 한 듯, 팽수와 팽신은 적호단주와 비교해 조금 더 큰 키와 체격을 하고 있었다.

“음, 체격이 저만큼 커졌다면, 언제 한번 다시 결전을 벌여도 재밌겠군.”

나하연이 팽수, 팽신 형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옆에서 진화는 제가 찾아야 할 사람들을 찾았다.

“구, 교명!”

진화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고개를 돌렸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짧은 환영식을 마치고, 남궁구와 남궁교명, 팽수, 팽신과 진화 일행이 재회했다.

“공자님!”

“우리 도련님은 여전히 반짝반짝하구나! 뚱뚱땡중, 바빴다고 들었는데, 왜 살이 더 찐 거야?”

“오랜만이다.”

“다시 보니 좋군.”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다.

진화 일행은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는데, 남궁구 일행은 신양에서 헤어졌을 때와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팽수와 팽신 형제의 성장이었다.

“대체 뭘 먹은 거죠?”

당혜군이 팽수, 팽신의 식단을 캐물었다.

당혜군은 일행 중 자신의 성장이 가장 더딘 걸 신경 쓰고 있던 터라, 형제를 구석으로 끌고 가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 갔다.

하지만 남궁구 일행 중 가장 달라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교명이었다.

살이 빠진 데다, 안색마저 눈에 띄게 창백했다.

진화마저 조심스럽게 물어볼 정도였다.

“……고생이 많았던 건가?”

“별……일은 없었습니다.”

진화의 물음에 말을 아끼는 남궁교명의 대답이 더 ‘별일’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뭐야? 자네, 왜 그렇게 마른 멸치가 된 것인가! 혹시…… 급하게 체한 것인가?”

현오가 걱정스럽게 남궁교명의 어깨를 두드렸다가 깜짝 놀랐다.

“오오오! 이 뼈는 다 뭔가!”

현오가 호들갑을 떨며 남궁교명에게서 떨어졌다.

그 모습에 남궁교명이 슬쩍 웃었는데, 그 모습마저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일 정도였다.

그에 함께 있던 남궁구가 입술을 삐죽였다.

“뭔 소리야? 고생이라면 우리가 했지. 이 자식이 유난을 떠는 바람에, 우리랑 선배들 살이 쏙 빠질 정도였다고!”

남궁구의 말에 남궁교명이 발끈했다.

“유난이라니! 최소한의 위생 개념도 없는 미개인처럼 굴지 말자는 게 유난인가? 이 더럽고 불결한 인간들!”

“더럽긴 뭐가 그렇게 더럽다고…….”

“뭐가 더러워? 사흘에 한 번 얼굴에 물 칠 하는 그것들도 인간이란 말인가! 그 손으로 밥이 넘어가?”

남궁교명의 비난에 남궁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하하하! 다들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보니 좋군.”

귀하게 자란 도련님이 사내들하고만 부대끼는 생활에서 가벼운 부침을 겪은 모양이라.

현오가 자애롭게 웃으며 동기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날카로운 삭풍이 불어 와 현오의 손을 스쳤다.

“땡중, 아까부터, 만두 먹고 손은 씻고 만지는 거냐?”

“…….”

“손목대기 날려 버리기 전에 손 떼라.”

남궁교명의 살벌한 경고에, 현오가 조용히 그의 등에서 손을 뗐다.

결론은, 평소에도 깔끔을 떨던 남궁교명이 적호단의 사내들 틈에서 생활하면서 결벽증에 걸려 돌아왔다는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잘 왔어. 마침 여긴 할 일도 많은데.”

진화가 남궁구 일행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남궁교명이 어찌 변하든, 마침 필요할 때에 잘 왔다 싶었던 것이다.

진화의 미소에 남궁구 일행이 조용히 한 걸음 물러섰다.

“참, 구, 누님은?”

“그 마녀는 조금 늦을 거야, 아마.”

진화의 물음에 남궁구가 고개를 저었다.

진화의 표정이 굳어지기 무섭게, 남궁구가 말을 이었다.

“멀미 때문에, 그게 아주 지독해서.”

어쩐지 아련하게 떨어지는 남궁구의 말에, 진화는 일전에 배에 오르며 ‘나를 기절시켜라!’고 외치던 남궁경을 떠올렸다.

* * *

진화 일행이 회포를 푸는 동안, 현무단주와 적호단주도 조용히 따로 자리를 가졌다.

“면목 없습니다.”

“아니야. 작정하고 속이는데 자네 같은 순진한 도사가 뭘 어쩌겠어. 종남 장문인까지 속았다며?”

“후우.”

적호단주의 위로에도 현무단주의 무거운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사로이는 마음 약한 정의무학관 후배라.

적호단주가 현무단주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한번 위로했다.

“이제 잘 처결하면 될 일이야. 그래서 놈들은 다 어떻게 됐지?”

“그게…….”

현무단주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던 현무단주가 내놓은 것은 아직 정의맹에 보내지 않은 보고서였다.

그것을 본 적호단주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전부 다 죽였다고?”

너무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커졌다.

“자네가? 아니면 장문인이?”

“…….”

현무단주의 대답이 없었다.

현무단과 종남파 무인들도 검은 휘둘렀으나, 상황을 그리 만든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차마 그를 이름으로 말하기 곤욕스러웠던 현무단주는, 적호단주에게 또 다른 보고서를 내밀었다.

그건 그동안 진화 일행과 현무단이 성 밖 귀천성의 문파들을 정리한 것에 대한 보고서라.

부상자로 몇 없는 완벽한 승리들이었다.

“여기도 전부 다 죽였어? 대체…… 남궁진화?”

적호단주의 입에서 기어코 그 이름이 나오자, 현무단주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종남파의 기만을 알아차린 것도 남궁 공자입니다. 이어서 장로들이나 백열문주, 곡선부주를 죽인 것도 남궁 공자이긴 한데…….”

현무단주가 진화의 공로에 대해 먼저 말을 하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손 속이 조금 과격한 듯합니다. 그런데 남궁 공자의 판단이 맞는 것은 아닌지 제가 자신이 없어서 말리지도 못했습니다. 이곳 무인들도 처음에는 조금 반발했지만, 연이은 승리에 사기가 고조되고 있었고요.”

현무단주가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결국 지은 죄가 있다 보니 네 녀석의 판단을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했다는 말이냐?”

“……예.”

적호단주의 직접적인 말에 현무단주가 고개를 숙였다.

“전멸이라니…… 확실히 손 속이 과하군. 하지만 다른 놈들도 아니고 귀천성이다. 놈들의 전멸, 그것이 정의맹의 방침이기도 하고.”

적호단주의 말에 현무단주가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적호단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약해 빠진 놈!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더냐. 네놈에게 전쟁터는 힘들다고 했지? 도문으로 돌아가라 하지 않았더냐!”

적호단주가 매섭게 현무단주를 다그쳤다.

그에 현무단주가 조금 힘이 빠진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곳에 편하게 있으면서, 마음까지 약해진 모양입니다.”

“정신 단단히 잡아라.”

“예. 그래야지요.”

적호단주의 말에 현무단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적호단주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현무단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곳에 마제가 있다는 정보가 있다. 적호단이 이곳까지 온 이유도 그 때문이고.”

“마, 마제요? 누구 말입니까?”

생각지도 않은 말에, 현무단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환마제 여시. 이곳 환락가에 숨어 있다는, 백매단 첩자를 통해 들어온 첩보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적호단주의 말에, 현무단주가 마른침을 삼켰다.

* * *

한편.

적호단과 떨어져 산을 넘게 된 남궁진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챙-! 챙챙챙---!

“으아아악!”

“습격이다! 습격이다-!”

“으하하하하! 우리는 이 산의 주인인 웅골채다! 가진 것 다 내놓아라! 네놈들의 목숨도-! 하하하하하!”

거대한 사내가 시원하게 대도를 휘두르고, 산을 넘어가는 상단 사람들이 혼비백산 수레로 숨었다.

상단을 호위하던 표사들이 산적들에 맞서 싸웠지만,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는 듯했다.

그게, 막 잠을 자던 남궁진혜가 잠에서 깨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어라……?”

“여자다!”

남궁진혜는 잠이 덜 깬 눈으로, 제게 다가오는 손을 붙잡고 꺾었다.

“으아아아악!” 

사내의 비명에 남궁진혜가 눈살을 찌푸렸다.

“닥쳐, 새끼야. 네놈 아가리에서 똥 냄새 나.”

퍼억--!

남궁진혜가 사내의 얼굴이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피가 좀 나는 듯했지만, 뭐 어떤가. 

남궁진혜는 이제 좀 정신이 깨는 듯했다.

그때, 대도를 휘두르던 산적 두목이 남궁진혜를 보았다.

“허! 부채주, 저 계집을 잡아서 내 앞에 끌고 와라!”

남궁진혜의 미모를 본 산적 두목이 감탄을 하며 소리쳤다.

두목의 외침에 서너 명의 산적이 남궁진혜에게 달려들었다.

제게 다가오는 산적들을 보며, 남궁진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

“부채주, 저년 웃는데요? 혹시, 미친 거 아닙니까?”

“미치면 좀 어때? 얼굴 보고 팔아먹으면 그만이지.”

“미친년, 좋단다. 자, 곱게, 오라버니 품으로 오련? 흐흐흐흐!”

저열한 대화를 나누며 저를 둘러싸는 산적들을 보며 남궁진혜가 씨익 웃자, 산적들도 마주 웃었다.

그러다 싸악-! 남궁진혜가 정색하고 산적들을 보았다.

“다 쪼겠냐?”

동시에 양팔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강냉이 보인 새끼들은 다 죽는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산적들이 멈칫하는 순간.

푸른 도깨비불 같은 것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가뜩이나 마차 멀미도 해서 죽겠는데, 오냐, 잘 걸렸다! 산, 적, 같은 새끼들아--!”

퍼—억!

쾅! 쾅!

“으아아아악-!”

“거기 강냉이, 새끼야-!”

남궁진혜가 이참에 화를 풀겠다는 듯, 날뛰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