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74)화 (174/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따를 화(化) : 환마제 여시(3)

장안 성문.

장안은 소국에 버금가는 큰 도시였고, 성은 외성과 내성이 따로 존재했다.

귀천성 고수들을 일반 관군들이 저지하기는 불가능한 바.

도시를 수비하는 외성은 황제의 군대가 지키고, 내성은 관과 무림이 협력하고 있었으니.

마침 성안의 무림인들이 관군과 함께 성문을 지키고 있던 차였다.

달그락, 달그락.

수레 소리가 들리자, 성문에 있던 무인들이 먼저 고개를 들었다.

“무슨 수레 소리가 이렇게 힘이 없지?”

“바퀴라도 빠진 거 아니야? 흐흐흐.”

성문을 지키던 무인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길 저편을 보자, 곧 일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듯 그들을 보고 있던 무임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다 찢어진 가죽옷에 산발한 머리, 험악한 인상과 무시무시한 무기들.

모든 특징을 종합해 본 바, 결론은 하나였다.

“저거……!”

“산적! 산적이다---!”

성문에 있던 무인들의 외침에, 성벽 쪽에서 쉬고 있던 관군들이 일어섰다.

안쪽에서 종남파 무인들이 몰려나왔다.

점점 산적들이 성문으로 다가오고.

종남파 무인들이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누구냐-!”

그런데 묻고 나니, 뭔가 이상했다.

산적들의 걸음이 어딘지 비틀거리는 것 같고, 자세히 보니 전부 밧줄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같이 상태들이 좋지 못해 보였다.

“누, 누구시오?”

“어, 나다-!”

답이 산적들의 뒤에서 들려왔다.

단골집을 찾은 듯한 아저씨 말투에 시원한 목소리.

험악한, 아니 험한 일을 당한 듯한 산적들의 뒤로, 햇빛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비단 옷의 붉은 윤곽이 보였다.

햇빛에 잘 익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여자치고 큰 키와 체격.

덩치가 커서 둔해 보이기보다, 육감적이고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날카로운 이목구비에 대비되게, 아이처럼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몹시 인상적인 미인이라.

여인은 비싼 비단 옷의 팔 부분이 찢겨 나간 것에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단단한 상지근을 드러내며 팔을 흔들고 있었다.

종남파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기만 할 뿐 말이 없자, 여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벌써 날 잊어버렸어?”

“그으…… 남궁진혜-!”

남궁진혜를 알아본 종남파 무인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곧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뭐야? 안 잊어먹었네. 어? 넌 종남파의…… 하여튼 종남파 맞지? 적호단은 본부에 있나?”

“그, 그렇습니다! 어, 어서 가십시오!”

남궁진혜가 자신을 알아보는 듯하자, 종남파 무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종남파 무인들은 남궁진혜가 단 한 걸음도 지체하지 않도록, 성문을 활짝 열고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오오, 고마워.”

신분패를 꺼낸다거나 귀찮은 확인 절차도 없이 통과되자, 남궁진혜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다 잠시, 남궁진혜가 뭔가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어서 가십시오.’ ……뭔가 이상한데?”

아니나 다를까.

“으악! 남궁진혜다-!”

앞에 ‘으악!’이 붙었다.

“비상-! 남궁진혜다! 어서 안에 알려! 어서!”

비명과 함께 종남파 무인들은 물론 남궁진혜를 알아본 관군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들의 목소리에 남궁진혜가 와락 얼굴을 구겼다.

“저 새끼들이…… 내가 지 친구야, 뭐야? 콱! 씨!”

남궁진혜가 돌아가서 한 대 쥐어박아 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때, 남궁진혜의 눈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누님--!”

“진화야-!”

환하게 빛나는 동생의 얼굴을 보자니, 그깟 놈들이 대수랴.

남궁진혜가 앞에 있는 산적들을 밟고 진화를 향해 나는 듯 뛰어갔다.

* * *

남궁진혜가 도착하기 전.

진화는 현무단주, 적호단주, 종남파 장문인과 함께 회동을 가졌다.

그간 보여 준 실력과 일행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은 출신 배경을 가진 절정 고수라는 점에서, 진화가 이 자리에 함께하는 데에 이상할 것은 없었다.

“노예시장을 뒤져 보자고?”

“어차피 환락가나 노예시장이나, 한곳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곡선부의 검은 책자를 보시면, 놈들이 진짜로 노예시장에서 사 온 이들도 있더라고요.”

진화의 말에 적호단주가 눈을 크게 떴다.

“노예를 사 온 돈까지 받아 낼 심산으로, 꼼꼼하게 비용 처리까지 해 두었더군요.”

“허어!”

진화가 가리킨 곳을 확인한 적호단주는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지었다.

현무단주와 종남파 장문인의 표정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노예시장을 뒤져 보면, 따로 순결한 젊은 노예만 사는 이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음…….”

진화의 말에 적호단주가 대번에 감탄을 한 것과 달리, 현무단주와 종남파 장문인의 반응은 그보다 더 신중했다.

“남궁 공자의 말이 틀리지 않으나, 한 가지 문제점이 있소.”

“무엇입니까?”

조심스럽게 말하는 종남파 장문인의 말에, 진화와 적호단주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적호단주와 남궁 공자는 그 노예시장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경산 쪽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본인도, 중원에서 몇 번 보았습니다.”

진화와 적호단주의 대답에, 종남파 장문인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두 분은 이곳 사정을 잘 모를 테니, 어쩔 수 없지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적호단주의 물음에, 현무단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먼저 입을 열었다.

“노예시장 하나가, 장안 외곽은 물론 경조와 백계를 걸치는, 어지간한 현보다 큰 규모입니다.”

“뭐?”

현무단주의 말에 적호단주는 물론, 진화도 눈을 크게 떴다.

이에 종남파 장문인이 고개를 저으면 말했다.

“귀천성이 발호하기 이전부터 역적들이 들끓던 곳이오. 이쪽으로는 황군의 위용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한 틈을 이용해 귀천성 무리가 차지했으니. 거대한 노예시장부터 환락가까지, 장안을 벗어나면 그야말로 무법천지나 다름이 없소.”

“그럼……?”

“노예시장을 전부 뒤질 수도 없고, 뒤지려 한다면 필시 귀천성 놈들의 귀에도 들어갈 것이란 게지.”

종남파 장문의 말에 진화와 적호단주의 얼굴이 무겁게 굳었다.

“차라리 일전을 벌이는 것이라면 모를까, 놈들이 숨으면 큰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노예시장이나 환락가나 거기서 거기인데. 그러다 환마제를 놓치면 더욱 큰일이지.”

“환마제라…….”

실로 두려우면서도 무거운 이름이었다.

종남파 장문인은 한창 싸울 때 여시를 본 적 있었기에, 더 그러했다.

종남파 장문인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환마제가 실제로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만으로 잡을 수 있겠소?”

“그 부분은 십이좌회에서 도움을 주신다 하였습니다.”

적호단주가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십이좌회?’

십이좌회라는 말에 진화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제왕검 남궁강 또한 십이좌회 중 한 사람이라.

이전 생에 진화가 뇌왕이라 불릴 때에도, 감히 그들의 명성에는 범접하지 못했던 살아 있는 전설들이었다.

살아 있는 십이좌회는 역천마제와의 혈전 이후 모두 칩거에 들었다 알려졌다.

그런 이들이 환마제를 잡기 위해 무림에 모습을 드러낸다니.

진화조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노예시장을 뒤지는 건, 손을 떼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진화의 물음에 적호단주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환마제가 그곳에 있다면, 사라지거나 팔려 간 동남동녀 또한 그놈이 제물로 쓰기 위해 모으는 것이라 보는 것이 합당하다. 게다가 지금 당장 환마제를 찾을 뾰족한 수도 없는 이상, 제물을 쫓아 환마제를 찾는 것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

적호단주의 말에, 현무단주와 종남파 장문도 동의했다.

“문제는 노예시장을 뒤질 방법인데…….”

“백매단처럼 이제 와서 첩자를 심을 수도 없고, 방법이 안 보이는군요.”

진화도 무슨 방법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라.

네 사람이 입을 꾹 다물고 고심했지만, 무거운 침묵만 길어질 뿐이었다.

그때, 밖에서 커다란 소란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장문인, 남궁진혜가 떴답니다!”

“단주, 남궁진혜가 왔답니다!”

종남파 무인과 현무단원이 동시에 문밖에서 외쳤다.

진화는 화색을 하며 뛰어나가고, 종남파 장문인과 현무단주가 배신감 섞인 눈으로 적호단주를 노려보았다.

“남궁진혜가 온다는 말씀은 없으셨지 않습니까!”

“아니, 적호단원이 적호단 임무에 오는 게 당연하지! 그놈이 멀미가 심해서 따로 걸어오느라 늦은 것뿐인데, 내가 그거까지 설명해야 하나?”

순하디순한 후배가 도끼눈을 하고 따지는 모습에, 적호단주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경공까지 발휘해서 달려 나온 진화가 반갑게 남궁진혜를 맞았다.

그러나 남매가 얼싸안고 생각하던 감동스러운 재회를 이어 가기엔…….

“누님, 저건…… 다 뭡니까?”

“응. 아, 저놈들? 수레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저놈들이 ‘나는 곰 뼈다!’ 하고 덤비지 뭐니. 나쁜 놈들 같아서 잡아 왔단다. 그건 그렇고, 우리 진화, 잘 있었니? 밥은 잘 챙겨 먹었고?”

남궁진혜가 대수롭지 않은 듯 산적들을 소개하고, 이어서 애틋한 손길로 진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다 커서 누님의 쓰다듬을 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나, 남궁진혜에게 차마 싫다 소리를 못 하는 진화였다.

게다가 지금 진화의 시선은 남궁진혜에게 밟혀 쓰러져 있는 산적들을 향해 있었으니.

저 정도면 전혀, 그건 그렇지가 않은 것 같은데…….

“허! 저놈들은, 웅골채 놈들 아니야?”

“맞네! 저놈들이 어떻게 저렇게 잡혀 왔지?”

“저기! 채주인 웅골기도(熊骨氣刀) 한석기도 있어!”

주변 종남파 무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화 또한 궁금하다는 듯 남궁진혜를 보았다.

“누님, 저건 어디서 잡으셨습니까?”

“음, 글쎄……. 왜 그러니?”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어쩌면 곰 뼈를 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에 남궁진혜가 그저 좋다는 듯 마주 웃었다.

“아구구, 내 동생, 곰 뼈가 필요했어? 이 누님이 싸그리 잡아서 고아다 주마!”

* * *

동남동녀 이천 명의 정기.

역천대법을 실행하는 데에 필요한 만년독수에 들어가는 제물이라.

환마제가 있는 곳에서 동남동녀를 모은다면, 결국 그들을 환마제의 제물로 쓰겠다는 말이 아닌가.

“노예로 잡혀 가면, 환마제 혹은 그놈의 소굴에는 들어갈 수 있겠지요.”

“마침, 의심을 사지 않고 노예시장에 노예를 팔아 줄 나쁜 놈도 생겼고 말이지?”

진화와 적호단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그곳엔 웅골채의 채주 웅골기도 한석기와 그 수하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런데 저놈들이 판다고 해도, 그 후가 문제입니다. 노예상들 대부분이 철저하고 의심 많은 놈들입니다. 그런 자들의 손에서 환마제의 소굴까지 들어가려면, 뭔가…… 누가 봐도 확실한, 절대 순결성을 의심받지 않을 만한 사람이 좋지 않겠습니까?”

현무단주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사실 동정이 아닐까 짐작되는 젊은 사람은 많았다.

여관도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남궁구나 남궁교명은 넘어가더라도…….

“어머, 뭘 봐요?”

당혜군의 성질머리에 누굴 사귀었다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었고.

경쟁적으로 호두 껍질을 부숴서 알맹이만 진화의 접시에 놓고 있는 남궁진혜와 나하연의 힘이라면, 다가오는 남자의 척추를 부수고도 남았을 것이라.

게다가 밤낮 할 것 없이 수련에 빠져 사는 팽가 형제는 물론.

“흠, 흠.”

“이 새끼들이 날 어떻게 보고. 눈깔 안 돌리냐? 내가 엄지에 침 발라서 손수 돌려 줘?”

현무단주와 적호단주도 짐작은 가나 함부로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확신이 들 정도로 순결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역시.

“다 뒈질래?”

진화에게 모여드는 시선에, 남궁진혜가 호두를 가루로 만들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옆으로 향했다.

“음? 소승 말입니까?”

볼이 터져라 만두를 밀어 넣고 있는 현오를 보며, 일행이 눈을 마주쳤다.

불문이 보증하는 순결체.

누가 봐도 무해(無害)한 지방체라.

“하지만 현오는…….”

진화가 현오의 천살지체를 떠올리며 반발하려 했지만, 적호단주와 모두가 이미 현오로 낙점했다.

“잠깐만 다녀오는 거다. 위치만 확인하고 바로 덮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적호단주가 현오의 등을 떠밀었다.

다음 날.

결국 현오는 수레에서 습격을 당했던 사람들과 함께 산적들의 손에 이끌려 노예시장으로 갔다.

상인들은 혹시나 한 사람뿐이면 의심을 살까 부탁한 이들로, 노예를 사는 척 인근 세가에서 빼내 올 작정이었다.

산적들의 주위로 적호단주와 현무단주가 무언가를 찾는 듯 무사들을 이끌고 기웃거리고, 진화와 일행은 손님인 척 사람들에 섞여서 주변으로 흩어졌다.

* * *

인림(人林).

사람으로 된 숲이라 불리는 거대한 마을.

거기엔 나무로 된 감옥부터 철로 된 사슬에 묶인 이들까지, 수십수백의 사람들이 노예상인들의 손에 붙잡혀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마을조차 거대한 노예시장을 이루는 무법지대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니.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 그리고 팽가 형제는 노예시장 주변의 환락가를 찾은 손님인 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몹시 자연스러운 것이, 누가 봐도 이곳의 화려함에 놀란 기색을 숨지지 못하는 외지인이었다.

“화려한 불빛에 꺼지지 않는 천박함이라니.”

“남의 피를 빨아서 이렇게 흥청망청하는 거지. 세상에 나쁜 놈들이 이렇게 많은 게 놀랍지도 않다.”

얼굴을 가린 진화의 곁으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보호하고 나선 가운데, 일행은 현오가 있는 곳이 훤히 보이는 한 주루로 들어갔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한 중년인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치들이 남궁세가와 팽가의 공자라고?”

“예. 안에 한 사람을 빼고는 이번에 적호단과 함께 합류했다고 합니다.”

“허허, 귀한 공자들이 험한 곳에 제 발로 찾아왔군.”

중년인이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이 층으로 올라오는 진화 일행을 향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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