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80)화 (180/425)

남궁마제

구휼할 진(賑) 불행 화(禍) : 악몽에서 깨어나는 법(3)

전혀 생각지도 못한 함정.

처음부터 정의맹 일행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내준 것부터, 진화가 뿜는 한기를 견디고 진화를 조롱했던 것까지.

모두 지금의 상황을 노린 것이었다.

진화가 깜박 속아 휘둘렸을 정도로, 마상 노인의 계책과 인내심이 놀라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곳은 사람을 사고파는 인림(人林)이었다.

가장 흔한 것도 사람이요, 가장 가치가 없는 것도 사람이라.

가장 위험한 것도 사람이었다.

마상 노인은 이 인림을 지배하는 이들 중 하나인 만큼, 진화 일행을 죽이기 위해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겹겹이 무사들을 동원했다.

하지만 마상 노인의 바람처럼 그들을 보고 겁을 먹었는가 하면…… 글쎄다.

경지를 넘어선 진화 앞에, 진골장의 무사들은 덩치 큰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그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마상 노인이 얼마나 진화 일행을 경계하는지 알려 줄 뿐이었다.

진화의 말처럼, 겁을 먹은 것은 마상 노인이었다.

“쏴라-!”

마상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살 비가 쏟아졌다.

휭-휭-휭!

화살 비는 바람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진화와 일행은 옆에 있는 무사들을 방패삼아 당장의 화살을 피했다.

그리고 곧장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뛰어올랐다.

쉐에에엑---!

“으아아악-!”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검기가 사납게 난간을 부수고, 화살을 쏘던 병사들을 베었다.

쏴아아아악---!

타다다닥- 탁-!

당혜군의 은화대침이 하늘에 만천화우를 뿌렸다.

날카롭게 내리는 은하대침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차디찬 꽃이라.

당혜군은 강철 비를 궁수들의 눈에 박아 넣었다.

“아아악! 내 눈--!”

“크아아악!”

초반부터 생각과 다른 전개에, 마상 노인이 급해졌다.

“막아라! 더 쏴라! 저들을 반드시 여기서 죽여야 한다!”

마상 노인이 다급하게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타아아아아--!”

쩌어어어억-!

팽가 형제가 나무를 뽑았다.

“저, 저!”

마상 노인이 경악하며 손가락질했다.

팽가 형제는 불그스름한 기사를 피워 올리며, 뿌리째 뽑은 나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퍼-억!

“크---악!”

“아악!”

진골장의 무사들이 검을 휘둘러 보기 전에 나무에 얻어맞곤 가슴이 으스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챙! 챙! 채--앵!

나하연의 주먹이 저를 향해 휘두르는 검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이무기가 승천을 시작하듯, 나하연의 움직임이 점점 빨라졌다.

“타아앗--!”

사천패룡권(四天覇龍拳) 화룡결기(火龍決起).

나하연의 움직임이 끓는 용암처럼 무사들이 쓸었다.

조용하고 묵직하게. 

그리고 무도(無道)하게.

퍼-억!

펑! 펑!

간결하고 치명적인 권기가 무사들의 피육을 뜯고, 뼈를 부러뜨렸다.

“이, 이게 대체……!”

마상 노인이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그의 치밀한 계획에 단 하나, 치밀하지 못했던 것.

그건 마상 노인이 진화 일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화 일행을 ‘좋은 배경에 명성만 높은 애송이들’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배경만 좋은 것이 아니라, 누대로 중원의 기득권을 차지한 명문의 정수를 이은 것이었다.

명성만 높은 것이 아니라, 명문에서 애쓰고 정성을 들여 키워 낸 미래 중 손에 꼽히는 강자들이다.

정의맹이 귀천성과의 전쟁을 위해 닦고 벼른 칼이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창천화룡 남궁진화에 대한 소문을 믿지 않고 묵살했다는 것이었다.

약관도 되지 않아 경지를 넘어선 무인.

광룡귀면대 수백과 대주 흑면마룡 무맥을 죽인 신룡.

‘소문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단 말인가!’

마상 노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꿈처럼 새파란 뇌전이 마상 노인의 눈앞에서 번뜩였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아악-!”

“아아악!”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기세 좋게 덤벼들던 진골장 무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처럼 숫자가 많을 때에는 상대의 목숨을 끊는 것보다,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쉐에에엑---!

경지를 넘어선 인지 사이로, 진골장 무인들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아아악!”

“크-악!”

진화의 움직임은 길을 잃은 춤꾼처럼 불규칙하게 나풀거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진화의 검이 적의 어깨관절을 베고, 무릎을 부수고, 인대와 신경을 끊고, 큰 근육을 깊게 잘라 피를 흩뿌렸다.

진화는 아주 빠른 움직임으로, 부위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베어 적을 넘어뜨렸다. 

무수히 많은 인해전술로 하여금 진화 일행을 지치게 한다는 계획조차, 진화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진화의 눈이 마상 노인을 찾았다.

마상 노인은 건장한 이국의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상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생각한 순간, 진화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사람들 속에 숨어서 떨고 있는 꼴이 퍽 애처롭구나.”

진화는 마상 노인을 겁박하듯, 여유로운 태도로 걸어 나갔다.

쉐에에엑--!

진화의 검이 피를 뿌리고.

파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악!”

피에 실린 뇌격이 적의 살을 태웠다.

진화는 제 앞을 가로막는 무사들을 하나하나 뚫으며, 마상 노인을 보았다.

차분하게 가라앉다 못해 얼음처럼 시린 눈.

진화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상 노인이 말을 짓씹듯 뱉어 냈다.

“지독한 놈!”

일부러 저러는 것이다.

분명했다.

‘눈치챈 것인가?’

마상 노인이 전장을 둘러보자, 역시나 다른 관도생들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아직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얼굴이었다.

오직 진화만이 마상 노인의 앞에서 잔인하게 무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놈이 눈치채고, 일부러 다른 일행을 혼전으로 보냈구나!’

마상 노인이 동원한 무사들 중엔 돈을 주고 산 이들도 있었지만, 아닌 이들이 더 많았다.

특히 그의 주변을 에워싼 무사들은 환마제의 환몽 세례를 받은 이들이었다.

저들에겐 환마제와 그 주변을 지키는 것이 천명이었고, 마상 노인의 명을 하늘의 의무처럼 받아들이도록 세뇌되었다.

그래서 진화의 뇌전에 완전히 공포에 질렸음에도, 도망치지 못하고 진화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마상 노인의 계략 중 하나였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정도 무림 애송이들이 그것까지 알아차리고 나면, 그들은 차마 무고한 사람들에게 살검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라.

최소한 죄책감을 느끼며 주춤거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어떻게 눈치챈 것인지, 오직 진화만이 마상 노인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눈앞의 무사들을 죽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진화의 손 속에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시간을 끌어 될 것이 아니구나. 놈을 죽여라.”

마상 노인의 명이 떨어지자, 그의 곁을 지키던 거대한 체격의 무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 * *

무고한 사람들?

검을 든 사람들 중에 무고한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환술이든, 세뇌든, 뭐든.

저들이 환마제를 따르며 어떤 악행을 저질렀든.

진화는 상관없었다.

제 앞에 검을 들고 막아선 이들은 모두 적이라.

눈먼 정의가 아니라 남궁세가를 택한 그 순간부터, 진화는 적들에게 줄 연민이나 동정을 모조리 버렸다.

쉐에에엑----!

진화가 망설임 없이 눈앞에 선 자들의 사지를 베어 나갔다.

도망치고 싶은 순간에도 가장 앞서 있는 것이 검을 든 손과 걸음을 옮기는 발이라.

쉐에엑--!

“크아아악!”

푸른 검기가 눈에 보이는 사지를 닥치는 대로 잘라 냈다.

사방으로 뿜어지는 피가 앞을 가렸다.

그때.

챙--! 챙챙---!

어느새 달려온 거대한 사내들이 진화를 향해 월도를 휘둘렀다.

진화의 검과 몇 번의 부딪힘에 불꽃이 튀었다.

“오호.”

진화가 저도 모르게 작게 감탄했다.

내력이 실린 검과 팽팽하게 맞설 정도의 힘.

‘그럼 이건 어떤가.’

진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쉐에에엑----!

눈 깜짝할 사이에 검풍이 일며, 진화의 검이 사내들의 다리를 노렸다.

타앗!

휙휙-!

거대한 사내들이 순식간에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회전했다.

그리고 곧장 진화에게 월도를 찔러 들어왔다.

휘-익!

월도 하나가 진화의 코끝을 스칠 듯 지나고, 이어서 머리 위에서 강한 바람이 느껴졌다.

채-앵!

이번에는 진화가 피하지 않고 월도를 받아 냈다.

한 사내가 튕겨 나가듯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내 다른 사내들이 사방에서 진화를 향해 월도를 찔러 왔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합격이 소림 백팔나한들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체격이나 힘, 날렵함은 그들보다 한 수 위일 정도였다.

게다가 처음 보는 이국적인 외모.

‘어디서 이런 작자들을 구했을까.’

단순한 호기심일 뿐.

중요한 건, 이 사내들에게선 세뇌나 의지를 제약당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였다.

그건 곧, 마상 노인이 환마제의 환술과 별개로 움직였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선이 마상 노인을 찾았다.

그는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사내들과 진화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예 상인이 환마제를 따를 이유는 많지. 사람을 부리기에 환술만 한 것도 없을 테니. 세뇌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환마제를 따르는 거라면, 스스로의 의지로 환마제를 배반하기도 쉽겠구나!’

진화가 마상 노인을 향해 사르르 웃어 보였다.

크고 검은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번뜩이는 동시에, 진화의 검이 새파란 뇌전에 휩싸였다.

콰과광---쾅!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진골장 무사들이 놀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건 진화의 검이 이국 무사들의 월도를 부수는 소리라.

마상 노인의 귀에는 ‘살필 만큼 살폈으니, 이제 슬슬 끝을 내겠다.’ 하는 선언처럼 들렸다.

쉐에에에엑---!

방금 전과 완전히 다른 속도와 차원이 다른 힘.

순식간에 이국 무사들의 몸에 혈선을 남기며 거리를 벌린 진화가, 공기를 찢고 푸른 뇌전을 쏘아 보냈다.

퍼---엉!

“크아아악--!”

머리카락을 태우며 짜릿한 열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순간, 이국 무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벌겋게 달군 창날에 산 채로 꿰뚫린 듯한 고통은, 몸뿐 아니라 정신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거대한 사내들이 바닥에 쓰러져 거품을 물고 온몸을 떨어 댔다.

그 광경에, 환마제의 세뇌에도 불구하고 진화의 앞을 막고 있던 무사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마상 노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번 일은 실패로구나!’

애써 준비한 무사들이 모두 쓰러지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 힘들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마상 노인은 제가 정의맹 무인들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고, 더 늦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스윽. 스윽. 스윽.

갑자기 앞의 무인들이 뭉치기 시작하자, 의아함을 느낀 진화가 마상 노인을 찾았다.

진화는 무인들이 친 인의 장벽 너머로, 마상 노인이 도망치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놔둘 수야 없지.”

현오가 언제까지 인내하고 버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제 발로 나타난 환마제의 수하라니.

진화는 마상 노인을 놓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진화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아, 그의 앞을 가로막은 무사들을 보았다.

바닥에는 축축하게 피가 젖어 있었다.

천뢰제왕검법 현천섬뢰.

번------쩍!

순식간에 눈앞을 가린 섬광(閃光).

너무 밝아서 차라리 아득해질 정도의 강렬한 빛이 번뜩인 후.

비명도 없이 진화의 앞을 막던 무사들이 쓰러졌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더 섬뜩한 광경에, 싸우고 있던 이들이 손을 멈추고 진화를 보았다.

진화의 신형이 이미 죽은 이들을 뛰어넘어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정적에 이상함을 느낀 마상 노인이 뒤를 돌아본 순간.

퍼-억!

“컥!”

무언가가 마상 노인의 목을 밟아 쓰러뜨렸다.

바닥에 코와 입을 부딪치며 피가 터졌다.

갑작스러운 충격과 비릿한 혈향에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마상 노인의 위에서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리석은 함정이었어.”

마상 노인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진화는 마상 노인의 목을 밟은 다리에 힘을 빼 주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저를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저를 내려다보던 처음과 달리, 피투성이로 겨우 눈만 치켜뜬 마상 노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맹수에게 사냥당하는 건, 어리고 성급한 짐승이 아니라 늙고 약한 짐승이다.”

진화는 처음 당했던 조롱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사르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상 노인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진화야----!”

남궁진혜와 함께, 뒤를 이어 적호단원들이 뛰어 들어왔다.

적호단주가 상황을 보며 소리쳤다.

“모두 검을 버려라! 죽기 싫으면 검 버리고, 꿇어-!”

맹수의 포효처럼 사납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외침에, 진골장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뭐 하느냐! 상황 정리해라!”

“충-!”

적호단주의 명에 적호단원들이 나서 진골장 무사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호단주는 남궁세가 남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벌써 진화에게 달려간 남궁진혜가 호들갑을 떨며 진화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물론 그동안에도, 진화의 발밑에는 마상 노인의 목이 밟혀 있었다.

“후우, 후박나무 쌍가래 같은 새끼들! 몇 대 쥐어박을 수 있으면 속이라도 편하겠구먼.”

적호단주가 구시렁거리며 남궁세가 남매에게 다가갔다.

“단주님, 이자를 심문해서 현오가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합니다.”

“단주, 이 새끼 사지를 분지른 다음에 대가리를 칩시다!”

남매가 동시에 하는 말에, 적호단주는 골머리를 짚었다.

곧 아플 것 같았다.

* * *

“하아. 하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숨이 가빠 오는 것은, 온몸이 끓는 듯 달아올랐기 때문이었다.

현오는 주체할 수 없는 열기를 견딜 수 없어서 슬슬 승복 앞섶을 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기가 아니었다.

똑-. 똑-.

코가 아릴 듯 비릿한 혈향이 계속해서 현오의 심장을 두드렸다.

똑-. 똑-.

붉은색이 식욕을 요동시키고.

똑-. 똑-.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빨갛게 떨어져 내는 핏방울 소리라.

귀를 막아도 들리는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이제, 이제 더는 안 되겠어.”

저거라도 마셔 버려야지.

뭐라도 먹어서 속을 채워야지!

현오는 더 이상 속에서 끓는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철창으로 다가갔다.

이미 공포에 질려 희망을 잃어버린 노예들은, 죽은 듯 누워서 현오가 뭘 하는지 관심도 두지 않았다.

달칵. 달칵달칵.

현오가 철창을 쥐고 흔들었다.

“거기, 뭐야?”

밖에서 감옥을 지키던 흑의 무사들이 신경질적으로 현오를 노려보았다.

감옥을 지키고 선 두 사람.

물론 그들이 하는 말 따위가 현오의 귀에 들릴 리 없었다.

저 욕조의 피를 전부 마셔 버려야지!

저거라도 마셔야지!

마음을 먹고 나자, 안에 있던 욕구가 폭발하고 말았다.

쾅! 쾅쾅쾅쾅--!

현오가 금빛 내공을 일으켜 수갑과 사슬을 내리치고, 철창을 내리쳤다.

“뭐, 뭐야! 저 미친놈! 그만하지 못해?”

흑의 무사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간혹 노예 중에 미쳐 날뛰는 놈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번엔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카앙! 캉--앙!

현오가 제 손목에 감긴 사슬을 끊어 내고, 감옥의 철창마저 끊어 버렸다.

“멈춰라-!”

흑의 무사 중 하나가 철창으로 달려왔다.

철장을 끊은 노예는 이제껏 없었던 터라, 흑의 무사는 단번에 다가가지 않고 검을 겨눴다.

하지만 이틀 뒤 욕조를 채워야 할 노예라 쉽게 죽일 수 없었다.

“멈추지 않으면 죽이겠다!”

흑의 무사가 현오를 위협했다.

하지만 현오는 고개를 숙인 채 몸을 움츠리고 있을 뿐이었다.

“…….”

“뭐라는 거야? 멈추라잖아!”

“비……켜.”

“뭐?”

흑의 무사가 잘 들리지 않는 말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며 한 걸음 다가왔다.

그때.

우두둑-!

흑의 무사의 목이 돌아가며 그대로 쓰러졌다.

“이봐, 무슨 일이야?”

다른 흑의 무사가 놀라 다가오기 전에, 그 또한 섬뜩한 소리를 들었다.

푸-욱.

“컥! 무, 무슨……?”

동료에게 가려던 흑의 무사는 제 내장이 다른 사람의 손에 짓이겨지는 것을 보며, 그대로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그러니까…… 빨리 비키라고 했잖아.”

현오가 제 발밑에 쓰러진 흑의 무사를 보며 무표정하게 말했다.

현오의 두 눈이 새빨간 내장 조각을 쥔 손처럼 붉었다.

쉐에에에엑--!

정면에서 날아드는 검기를 피해 현오가 급히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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