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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81)화 (181/425)

남궁마제

구휼할 진(賑) 불행 화(禍) : 악몽에서 깨어나는 법(4)

진골장을 접수한 적호단과 현무단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저자가 환마제를 따른 것이 명명백백하니, 더 알아낼 것도 없지 않습니까?”

현무단주가 한쪽에 잡아 둔 마상 노인을 보며 말했다.

마상 노인은 아직 코와 입에서 흐른 피를 닦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괜히 저자의 입을 열려고 시간 낭비를 하느니, 저자의 사업장을 모조리 뒤지는 게 빠를 수 있어.”

적호단주가 현무단주의 의견에 동의했다.

마상 노인이 환마제를 위해 진화 일행을 함정으로 끌어들인 것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였으니, 명분은 이쪽에 있는 셈이었다.

명분을 얻은 정의맹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게 귀천성과 관련한 것이면 더욱더.

“그럼 저자는 이제 어찌할까요?”

현무단주의 물음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귀천성도, 특히 팔마제를 따르는 수하들에 한해 정의맹이 정한 원칙은 사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제압된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점이 아무래도 걸리는 듯했다.

“정의맹에 보고하고 결정을 따르는 것으로 하지.”

적호단주는 어려운 결정을 정의맹에 떠넘겼다.

그때.

“늦었습니다.”

진화가 단주들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어디 갔다 왔어?”

“이걸 좀 가지러 갔다 왔습니다.”

툭. 촤르르르.

진화가 흰 천에 싸인 무언가를 탁자 위에 내려놓자, 천이 벌어지며 안에 있던 것들이 펼쳐졌다.

“…….”

“……그게 뭐냐?”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믿기지 않아서 확인차 묻는 것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화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냥 바늘로 하면 좀 덜 아플 거 같아서요. 대장간에 가서 좀 갈아 달라고 했습니다.”

씨익 웃는 모습이, 끝이 거칠게 갈린 바늘이 퍽 마음에 든 듯 했다.

“혹시 몰라 묻는 건데…… 고문할 거냐, 직접?”

적호단주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진화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현오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야죠.”

뭐라 해야 할까…….

저걸 저렇게 해맑게 웃으면서 할 이야기인가?

아니, 친구를 구하게 되면 기분 좋을 수도 있지.

아니, 그렇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늙은이를 고문하겠다고 바늘까지 갈아 와?

진화를 보는 적호단주의 눈이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두 사람 사이로 현무단주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런데 남궁 공자, 저자는 현오가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어찌 알아내겠다는 건가?”

“…….”

현무단주의 말에, 적호단주와 진화가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걸 지금 얘가 상관할 것 같냐?’

술에 찌든 탁한 눈이 현무단주에게 물었다.

동시에.

‘알든 모르든, 끝까지 할 겁니다.’

흑요석처럼 맑고 검은 눈이 의욕적으로 반짝거렸다.

“……무량수불.”

세상에 대체 도와 덕은 어디 있는 건지.

혹시 옛 조사들도 찾지 못해서 계속 수행을 하신 걸까?

현무단주는 ‘염세’와 ‘긍정’의 눈빛을 한 번에 받으며 낮게 도호를 외웠다.

그때.

“큭. 크크크크크! 커헉! 컥!”

마침 정신을 차린 마상 노인이 웃음을 터뜨리다 사래에 걸렸다.

진화와 적호단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적호단주가 얌전히 포박된 그를 죽이기 찜찜해한 것은 사실이나,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는 순간엔 가차 없이 심장을 터뜨릴 참이었다.

“큭큭큭. 흠. 흠. 허허!”

기침을 그친 마상 노인이 다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진화와 적호단주, 현무단주를 보았다.

피와 흙이 말라붙은 얼굴에, 여전히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우리가 현오를 모르고 있을 거라고? 천만에!”

마상 노인이 진화와 적호단주, 현무단주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적호단주와 현무단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알고 있었다고?’

‘현오!’

적호단주와 현무단주의 머릿속에 피투성이가 된 현오가 떠올랐다.

아주 잠깐 사이.

현무단주가 아직도 경악하고 있는 사이, 적호단주는 방법을 찾았다.

‘워, 월하회!’

현오가 누군지, 또 그가 천살지체라는 걸 안다면, 귀천성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한 일이었다.

적호단주가 다급하게 월하회를 찾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 못한 비명이 집무실 가득 울렸다.

“끄아아아악-!”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마상 노인의 비명이었다.

놀란 적호단주와 현무단주가, 진화를 발견하고 할 말을 잃었다.

마상 노인이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는 가운에, 진화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음 바늘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바늘을 갈아 오길 잘했습니다. 이걸 이렇게 잘 써먹게 되네요.”

진화가 입꼬리를 말고, 다시 바늘 하나를 들어 마상 노인의 손톱 밑에 밀어 넣었다.

“아아아아악---!”

진화는 마상 노인의 말에 전혀 놀라지 않는 듯했다.

적호단주와 현무단주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진화야말로 가장 빠른 해결책을 찾은 것이라.

“아흐흑. 으으으으……!”

마상 노인이 고통스러운 듯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사뭇 친절한 말투로 마상 노인에게 말했다.

“걱정 마. 현오가 어디 있는지 알려 줄 때까지 죽이지 않을 거니까.”

사르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진화가 마상 노인의 손톱 밑에 박힌 바늘을 잡았다.

바늘을 잡은 진화의 손엔 뇌전이 번뜩이고 있었다.

잠시 후, 마상 노인은 진화의 말이 얼마나 끔찍한 말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 * *

쉐에에엑---!

철창을 나오자마자 느껴진 위협.

뒤로 물러선 현오가 곧장 주먹을 뻗었다.

콰광--!

와르르르르쿵!

계단이 있는 곳이 부서지면서, 계단을 막던 석벽도 부서졌다.

쉐에엑-!

그사이, 현오의 옆으로 날카로운 검이 스쳐 갔다.

팟-!

퍼억-!

현오의 팔에 얇은 혈선이 그려졌다.

대신, 상대 또한 왼쪽 팔꿈치를 잡고 물러섰다.

“크으…….”

짐승처럼 으르렁거린 현오가 그제야 상대를 확인했다.

환마제 여시인 듯한 여자와 함께 내려왔던 그 사내였다.

현오와는 정반대로, 거대한 체격을 근육으로만 채운 듯한 사내는 각진 턱에 힘을 주며 현오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사내의 말에 현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단지 사내가 검을 쥐고 있는 손을 잘 보기 위해서였다.

“흐으. 흐으…….”

잠시 숨고르기를 하듯, 현오의 눈이 사내를 살폈다.

단단한 체격, 특히 하체의 근육이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컸다.

자세히 보니, 사내가 든 칼은 검이 아니라 도였다.

도신이 얇긴 했지만, 여느 도처럼 날이 한쪽에만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현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팟-! 팟-! 팟!

지방 속에 감춰진 다리근육이 승복을 터트릴 듯 부풀어 올랐고, 현오가 발을 휘두르고 바닥을 디딜 때마다 땅이 움푹움푹 꺼졌다.

팟-! 타악! 탁!

현오의 발이 사내의 진로를 위협하는 중에도, 현오의 주먹은 사내의 도신을 때렸다.

그리고 마침내.

휙! 휙!

둔중한 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이 있는 반대쪽을 돌아 들어갔다.

그리고 금빛 기운이 사내의 옆구리 때렸다.

퍼---억!

소림의 오합권은 직선적이고 소박하지만, 그만큼 빠르고 강했다.

현오의 주먹을 피할 수 없었던 사내가 왼팔로 그것을 막았다.

옆구리가 터져 나가는 대신 왼팔을 희생한 것이다.

“큿!”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신음을 뱉었다.

뼈가 완전히 박살이 난 듯 왼팔이 축 늘어졌다.

휘이이익--!

다시 현오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원을 그리듯 몸을 회전하며 사내의 도를 피하고, 도 날의 반대편을 노렸다.

왼팔이 다치는 바람에, 사내는 이전보다 현오의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크흐!”

현오가 그것을 알아챈 듯, 웃듯이 으르렁거렸다.

이성을 잃은 상태였지만, 붉은 눈의 맹수는 본능적으로 사내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퍼-억!

챙! 챙! 챙!

현오의 금빛 기운이 사내의 검은 도기와 부딪히며, 감옥 안에 날카로운 쇠 성이 울렸다.

기운의 여파로 욕조에 있던 핏물이 출렁거렸다.

현오가 사내를 노려보며 욕조를 빙글빙글 돌다, 공중에 매달린 시체의 목을 킁킁거렸다.

그리고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아악---!”

현오의 눈이 이제 검은자와 흰자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시체의 머리를 뽑아내듯 뜯어내, 사내를 향해 던졌다.

휘익-!

사내가 시체의 머리를 피하는 순간, 현오가 사내의 귀 옆으로 다가왔다.

“크으.”

퍼---억!

욕조에서 피가 튀며, 현오의 금강붕산권마저 붉게 물든 듯했다.

콰-앙!

“컥!”

사내가 도신을 들어 현오의 권을 막았지만, 결국 사내의 몸이 감옥 철장까지 내동댕이쳐졌다.

“크아아아아악!”

쓰러진 사내의 위로 현오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런데 그때.

쉐에에에엑----! 쉭! 쉭----!

시체를 매단 쇠사슬들이 움직이며 공중에서 현오를 붙잡았다.

“으아아악!”

현오가 당황한 듯, 아니면 성질이 난 듯 발버둥 쳤다.

그 순간.

휘이이이익!

현오의 몸이 순식간에 감옥 한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출렁, 출렁, 출렁.

현오가 끌려간 뒤, 감옥은 빈 사슬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리며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 *

퍼억-!

“크아아아악!”

현오가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피를 흘릴 것 같은 붉은 눈으로 눈앞에 있는 것을 노려보았다.

옥구슬을 꿴 주렴이 앞을 막은 너머로, 검고 거대한 형체가 보였다.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것에, 현오가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죽이고 그것을 살폈다.

꿀렁꿀렁.

뭔가를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리고, 검은 형제가 요동쳤다.

그리고 곧, 그릇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챙-그랑!

“꺼억.”

시원한 트림 소리.

동시에 지독한 혈향이 현오를 자극했다.

놀랍게도 검은 형체에서 난 소리였다.

“주렴을 걷어 봐라. 얼굴 좀 보게.”

안에서 들린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움직였다.

촤르르르르---!

일전에 보았던, 옷보다 장신구가 더 많은 여자였다.

그녀가 주렴을 걷으며, 현오를 향해 요사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현오는 여자가 아니라 안에 있는 거대한 형체의 주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숨소리마저 작게 줄였다.

“히, 이, 히, 이…….”

가쁜 숨소리는 현오가 아닌 거대한 형체의 주인에게서 나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거대한 형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살덩어리가, 간신히 팔과 다리로 보이는 것을 까딱이고 있었다.

살이 부푼 얼굴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거의 파묻힐 것 같은 눈과 콧구멍 두 개, 그리고 거대한 입이었다.

그의 턱에 흘러내린 피를 정성스럽게 닦은 여인이, 밑에서 무언가를 끌어당겼다.

휙!

현오가 경계의 빛을 띠고 여인을 보았다.

또르르르르르!

핏물이 담긴 거대한 욕조.

그 위에 설치된 우물 장치.

여인이 쇠사슬을 당겨 커다란 통 가득 핏물을 퍼 올린 후, 그것을 그릇에 담아 거대한 형체의 손에 얹어 주었다.

촤아-!

거대한 형체의 손이 겨우 그것을 움직여, 입에 쏟듯이 부었다.

그러면 다시 여인이 그릇에 핏물을 채우고, 거대한 형체는 그걸 입에 붓고.

그렇게 몇 번을 한 후에야, 거대한 형체가 몸을 일으켰다.

살에 파묻힐 것 같은 눈 안에는 검은자가 점처럼 작게 보일 뿐이었다.

“크르르르르르---!”

현오가 몸을 바짝 낮추며 거대한 형체를 경계했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형체의 눈동자에 겁을 먹은 듯, 본능적으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크흐흐흐, 천살지체가 맞구나! 제대로 찾아왔어!”

거대한 형체는 이가 하나도 없는 잇몸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옆에서 여인도 기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비표.”

“예.”

거대한 형체의 부름에, 방금까지 현오와 싸우던 사내가 들어와 공손하게 읍했다.

“혼현마제의 궁둥짝을 두드려야겠다. 놈에게 내가 뭘 가졌는지 알리고, 얼른 오지 않으면 이놈을 내가 먹을 거라 전해라!”

“존명.”

사내가 거대한 형체의 명에 진실로 부복했다.

그야말로 사내의 진짜 주인, 환마제 여시였기 때문이다.

“흐흐흐흐! 이제 끝이야. 이 지긋지긋한 몸뚱이도! 흐흐흐흐. 흐으. 흐으……. 큭큭!”

환마제 여시가 곧 숨이 넘어갈 듯 가쁜 호흡을 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가늘게 호선을 그린 채, 눈빛을 반짝이며 현오를 보았다.

“그동안 심심하니, 역천제 님의 제물은 뭐가 특별한지 천살지체의 악몽이나 감상할까?”

쉐에에에에에엑----!

환마제 여시가 손가락을 뻗자, 새하얀 기운이 현오의 몸으로 침투했다.

환마제의 검은 눈동자가 희뿌연 연기를 뿜었다.

동시에.

“크아아아악!”

현오의 비명이 환마제의 방에 울려 퍼지고.

환마제가 그것을 음악 삼아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속으로 피를 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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