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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84)화 (184/425)

남궁마제

진력할 진(進) 불 화(火) : 악마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1)

“이제 출발하지.”

정의무학관 관도생들이 묵는 별채로 온 진화가 일행에게 짧게 말했다.

안에서는 이미 준비를 마친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남궁구가 투덜거렸다.

이제 겨우 현오의 행방을 알 수 있게 된 터라 다들 마음이 급했다.

“여긴 본가와 다르더라고.”

“음.”

진화의 말에 남궁세가 출신인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화와 관도생 일행이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적호단 두 조가 합류했다.

“오랜만입니다, 공자.”

“이번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내를 시작으로 그 옆에서 호리호리한 사내가 인사를 해 왔다.

일전에 광마전을 치러 가면서 함께한 적이 있는 적호단 일 조장과 삼 조장이었다.

그들은 결국 남궁진혜가 부단주 자리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같은 조장으로 함께할 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적호단 일 조장 서장원입니다.”

“적호단 삼 조장 표공입니다.”

남궁진혜와 있을 때에는 떠들기 좋아하는 아저씨들 같았지만, 적호단의 조장이라면 무림에서도 인정하는 실력자라.

적호단에 들어서 수년간 경험을 쌓거나 공적을 세우지 않는 이상은, 남궁진혜처럼 정의무학관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자들만 도전할 수 있는 자리에 이미 올라 있는 선배들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적호단 조장들의 소개에 진화 일행도 공손하게 인사했다.

“우리 큰집의 마녀가 올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흐흐흐, 안 그래도 오겠다는 걸, 단주한테 부단주가 어딜 가냐고 혼나더라.”

남궁구는 일전에 안면이 있었다고 적호단원과 붙임성 좋게 대화를 나누었다.

진골장에 숨겨진 비밀 통로를 쫓아 현오를 구하러 가는 길.

분명 환마제나 그 수하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진화 일행과 적호단 일 조, 삼 조 대원들은 두렵거나 긴장한 기색 없이 웃으면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오히려 그들보다 장안 무림인들이 더 긴장한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기어코 가는군.”

“소림 중은 이미 죽은 거 아니야? 이런 때에 왜 굳이 구하러 간다는 건지.”

장안 무림인들 몇몇이 현오를 구하러 나서는 진화 일행과 적호단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 대부분은 진화 일행이 종남파와 성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터라. 얼마 전까지 진화 일행을 영웅시하며 경외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귀천성의 공격이 예견된 시점에서 진화 일행이 현오를 구출하러 간다고 하자, 그들은 진화 일행이 자신들을 지켜 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했다.

“종남파 무인들 반을 죽였잖아! 그러면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야!”

“그 소림 중은 자기들 일행이라 이거지!”

정의맹 장안 본부를 나서는 진화의 일행의 귀에도 당연히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화가 모른 척하자 그 뒤를 따르긴 했지만, 일행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뻔뻔한 인간들!”

“저런 정신머리로 어떻게 이제까지 전쟁을 치렀는지 모르겠네!”

나하연과 당혜군이 씩씩거렸다.

남궁구나 남궁교명, 팽가 형제 또한 입으로 내뱉지 못하는 심한 말을 속으로 곱씹고 있는 얼굴이었다.

다만 유일하게 진화 혼자만 편안한 얼굴이라.

“도련님, 너는 괜찮아?”

남궁구가 진화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하지만 진화는 정말 괜찮은 얼굴이었다.

상관없는 사람들의 수군거림 따위,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저런 사람들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하더라고.”

진화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언뜻 해탈한 듯도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하필 곧 귀천성과 대대적인 전투를 치를 예정이라. 

남궁구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진화의 곁에서 떨어졌다.

“와, 역시 우리 도련님이야.”

“악담은 속으로만 해라.”

남궁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남궁교명이 진화를 보며 남궁구에게 눈치를 줬다.

진화는 어쩐지 남궁교명의 말이 더 기분이 나빠졌다.

* * *

인림을 지나 무법지대 저자의 한복판.

진골장은 일전의 살육이 없었던 일처럼 깨끗했다.

사람들 또한 아무 일 없었던 듯 바쁘게 진골장을 스쳐 지났다.

진화 일행과 적호단이 진골장으로 다가가자, 그제야 진골장 주변으로 느껴지는 이질감이 드러났다.

시끄러운 주변과 달리 진골장에서만 풍기는 적막감.

주인 없는 진골장을 두고도, 마치 그곳이 보이지 않는 듯 무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누구 하나 진화 일행과 적호단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늘 위험 속에 사는 무법지대의 사람들이었지만, 진골장이 여전히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리라.

진화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진골장에 아직 무언가 숨겨져 있는 것을 확신했다.

“놈들이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진화의 말에 적호단 일조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것이, 경험 많은 적호단원들이 전장에 집중하는 비결이라.

함께 온 적호단원들 모두 기감을 날카롭게 세우며 사방을 경계하고, 진화 일행도 덩달아 긴장감을 높였다.

그때, 진화가 진골장 안채로 검을 휘둘렀다.

천뢰제왕검법 천뢰우전.

퍼------엉!

단순히 주의하라는 경고가 아니었던 듯.

진화의 온몸에서 푸른 기사가 번쩍거릴 만큼, 단숨에 최선을 다해 날린 강기였다.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진 듯, 새파란 섬광이 진골장 안채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콰광. 쾅! 콰-앙!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굉음과 함께 진골장 안채가 무너져 내렸다.

“무, 무슨……!”

놀란 적호단 일 조장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진화에게 입을 뻐끔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밑에서 준비하고 있는 놈들 다 깔려 죽으라고요.”

진화의 말에 일 조장은 그제야 진화와의 첫 만남이 정확하게 떠올랐다.

노을 진 강변에 마라탕처럼 떠 있던 시체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그때.

쿵! 쿵!

퍼---엉!

무너진 흙더미가 들썩이더니, 이내 터져 나갔다.

“적이다!”

일 조장의 외침과 함께 적호단원들이 검을 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진화 일행도 각자 대비를 하며 진화를 보았다.

“밖에서 지원 부탁드립니다. 저들이 나오는 대로 저희는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예!”

진화의 말에 적호단 삼 조장이 급히 대답했지만, 여전히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쉭! 쉬익-! 쉭!

터져 나간 구멍에서 진골장 혹은 귀천성 무인으로 보이는 흑의인들이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죽여라!”

적호단 일 조장의 외침이었다.

귀천성도를 본 적호단의 눈빛엔 어느새 살기가 가득했다.

흙더미 속 커다란 구멍이 난 속에서 순식간에 수십 명의 흑의인이 뛰어나오고, 진화 일행과 적호단이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우린 내려간다!”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시작으로, 중간에 당혜군과 나하연, 마지막으로 팽가 형제가 뒤를 따랐다.

구멍으로 보이던 곳에는 안쪽으로 멀쩡한 계단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은 단단하게 쌓은 돌벽이 끝도 없이 이어진 제대로 된 통로라, 곳곳엔 야명주까지 박혀 있어서 안전해 보이기까지 했다.

“빌어먹을 노예상!”

커다란 수레가 다닐 정도로 넓고 긴 통로와 전체에 박힌 야명주의 숫자를 보며, 당혜군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사이.

적호단은 빠르게 통로 입구를 차지하고 흑의인들을 막았다.

“전투 소리를 안 들리는군.”

진화 일행이 무사히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적호단 삼 조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약속대로 여기서 입구를 지키고 대기하는 게 좋겠어.”

“글쎄, 그건 진짜 불안해서…….”

적호단 삼 조장은 여전히 진화가 내놓은 작전이 불안한 듯했다.

하지만 일 조장의 생각은 달랐다.

“마상 노인이 뱉어 놓은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지만, 작전만 놓고 보면 간단하고 효율적이야.”

챙---! 챙--!

쉐에에엑--!

일 조장이 앞에 있던 흑의인의 가슴을 베며 말했다.

그는 방금까지 자질구레한 농담을 즐기던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냉정한 눈빛으로, 곧바로 다른 상대를 찾았다.

“이곳을 무너뜨린 것도, 당황스럽긴 하지만 맞는 방법이야. 밑에 깔린 놈들을 봐.”

일 조장의 말에 삼 조장이 힐끗 옆을 보았다.

굳이 찾지 않아도,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은 흑의인들의 시체들이 곳곳에 있었다.

대충 따져도 족히 수십은 될 정도라.

“이놈들 다 상대하려면 우리 애들이 다칠 수도 있었어. 어차피 놈들도 우리가 찾아간다는 걸 예상하고 있다면, 오히려 이쪽이 안 다치고 안전하지.”

현오를 죽이려고 했다면 벌써 죽였을 것이라, 안심하고 날린 공격이었다.

일 조장은 광마전 전투에서 보았던 진화의 뇌전을 떠올리며, 진화 일행에 대한 걱정은 잠시 묻어 두었다.

“우리는 탈출로를 지키고 대기한다.”

“충!”

일 조장의 명에 적호단원들이 매섭게 검을 휘두르며 흑의인들을 죽여 갔다.

* * *

“정보보다 통로가 더 긴 것 같지 않아?”

남궁구의 말에 다른 일행도 긴장한 듯 통로 끝을 살폈다.

‘교활한 늙은이가 그 와중에 거짓말을 한 건가?’

정보의 출처인 마상 노인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놈들의 공격과 현오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정보의 진위 또한 현오를 찾으면서 가려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방 날려 볼까?”

“안 돼요!”

진화의 말에 당혜군이 뾰족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 통로마저 무너진다면 땡중보다 자신들이 먼저 죽을 것이라.

당혜군이 도끼눈을 뜨고 진화를 노려보았다.

저 얼굴 곱상한 동의장이 이제까지 얼마나 손 속이 과격했던가.

주변에 저 인간을 막을 사람도 없었으니.

당혜군은 저라도 진화를 감시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 열렬한 눈으로 남궁 공자를 보다니, 내가 질투를 해야 하는 시점인가?”

“닥쳐, 미친년아.”

당혜군이 나하연의 헛소리를 칼같이 차단했다.

그때, 진화가 손을 들어 일행을 멈췄다.

‘저기.’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을 가리키는 진화의 모습에, 일행 모두 이제 통로의 끝에 다다랐음을 알았다.

“보이는 적은 모조리 섬멸한다.”

“충.”

진화의 명과 함께, 진화 일행이 곧장 앞으로 뛰어들었다.

쉐에에에엑---!

“크아아악!”

“놈들이다-! 막아!”

진화의 뿌린 검기에 비명이 터졌다.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 도망을 안 갔다고? 도망을 안 간 것인가, 못 간 것인가?’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그리고 앞에서 느껴지는 가장 강렬한 기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파파팟----!

퍼---엉!

굉음과 함께 진화일행이 적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멀끔한 건물의 내실과 같은 공터였다.

사방의 위, 아래로 계단이 있는 것을 빼면, 어딘가의 응접실이라 해도 믿을 만큼 깨끗한 내실이라.

“네가 남궁진화겠군.”

조용히 말을 거는 목소리.

진화는 천뢰우전을 맞고도 멀쩡하게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진화가 느꼈던 강렬한 기운의 소유자였다.

사내를 보자니, 진화는 그가 누군지 알 듯했다.

흑표범처럼 날카로운 이목구비에 근육질의 체구.

손에는 여인이나 들법한 가늘고 긴 도를 들고 있었으니.

사내가 바로, 환마제의 오른팔이라는 사혈도객(瀉血刀客) 비표일 것이다.

진화는 이전 생에 그와 직접 만난 적은 없었으나,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상대를 난도질하여 온몸의 피를 빼고 죽인다는 잔인한 손 속의 마두라고.

‘가늘고 긴 도신. 가늘고 긴 근육과 폭발력을 내는 대근육을 단련한 것을 보면, 도를 연검과 같이 쓰는 모양이군.’

진화가 저를 노려보는 비표를 찬찬히 살폈다.

이전 생의 수많은 경험은, 처음 보는 상대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게 도와주었다.

‘수하들을 방패막이로 썼나?’

진화는 비표의 주변에 널브러진 흑의인들을 보며, 그가 진화의 공격을 수하들로 하여금 막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위?”

진화의 말에 비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 아래로군.”

진화가 디딤발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갔다.

“어딜!”

쉐에에엑---!

비표의 도가 연검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유연한 도신이 바람을 뚫고 진화를 꿰뚫을 듯 쏘아졌다.

챙! 챙!

진화의 눈동자에 번개가 번뜩였다.

동시에 진화의 검이 물결처럼 흔들리는 도신의 옆면을 때려 기의 흐름을 끊고, 진화의 왼 주먹이 비표의 복부를 노렸다.

파지지직---!

“흣!”

놀란 비표가 고양이처럼 유연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진화의 폭뢰신권을 피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진화가 노린 것은 비표가 아니라,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었으니.

퍼----엉!

진화의 기운에 부딪힌 문이 그대로 뚫려 나갔다.

동시에 비표의 수하들을 상대하고 있던 남궁구와 일행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갔다.

“……허!”

“이런, 미친……!”

차마 욕지거리도 나오지 않는 듯, 남궁구와 당혜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남궁교명이나 나하연, 팽가 형제의 얼굴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수십 명의 사람들. 

아니, 시체들.

그들의 목에선 지금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 피는 열 명은 족히 들어갈 법한 거대한 욕조로 떨어졌다.

그리고 욕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흘린 것인지 모를 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독한 새끼들!”

남궁교명이 텅 빈 감옥에 몇 명 남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쉐에에엑---!

퍼-엉!

진화가 검을 휘둘러, 일행에게 날아든 하얀 기운을 베었다.

“정신 차려!”

진화의 음성이 일행을 깨웠다.

그렇다.

어떤 충격적인 광경이든, 이미 죽어 버린 사람들에 정신을 팔기에 그들은 지금 적진 속에 있었다.

진화와 일행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비표와 그 수하들을 경계하며, 하얀 기운이 날아든 쪽을 보았다.

촤르르르르---!

구슬이 구르는 영롱한 소리와 함께, 한 여인이 요염한 자태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호호호, 기대도 안 했는데, 현오만큼이나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왔네.”

온몸을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했지만, 요요하게 웃는 얼굴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는 여인이었다.

여인이 진화와 일행을 보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솨아아아아----!

여인의 눈에서 하얀 실타래 같은 기운이 흘러나오며 진화 일행을 향해 뻗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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