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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85)화 (185/425)

남궁마제

진력할 진(進) 불 화(火) : 악마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2)

[“이쪽으로 들어가! 여기 들어가면 최소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거야.”

커다란 대문을 향해, 어머니는 형제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들어가!”

생전 처음 보는 슬픈 눈을 하고, 그렇게 소리쳤었다.

그때 이후 형제는 다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

겨우 며칠.

며칠이 지나 그녀를 찾았을 땐, 그들이 살던 작은 오두막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시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죽은 시체가 눈을 뜨고 그들을 보았다.]

팽가 형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 옆에선 남궁교명이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으드득. 남궁도!”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듯했다.

목만 내놓은 채 죽은 가족들, 피 흘리는 식솔들.

남궁도가 웃으면서 제 심장을 뽑고 있었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교명은 악몽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오롯이 견디고 있었다.

[“이제 가야 해요.”

여자가 파리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래. 문주께서 죽었다면.”

아버지는 문서에서 눈도 돌리지 않았다.

“말리지도 않는 건가요?”

“애초에 첩자와 혼인한 내 잘못이니까.”

“구아에겐…….”

그때서야, 아버진 손에서 붓을 놓았다.

“죽었다고 말할 거다.”

“당신!”

“아이의 엄마는 병으로 죽은 거다. 창서각주의 아들이자 남궁의 송골매에게, 친모가 첩자라는 건 치명적인 약점이 될 테니까.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모정이 남아 있다면, 조용히 떠나.”

아버지는 검고 찬 눈으로 여자에게 말했고, 여자는 그길로 집을 나갔다.

“보았느냐? 처음부터 떠나지 않는 선택지는 없었다. 앞으로 네 어미는 죽은 거다.”

아버지는 똑같이 검고 찬 눈으로, 저에게 그리 말했다.

그리고.

쉐에에엑----!

폭풍처럼 날아간 검풍이 여자를 집어삼켰다.

여자의 그림자가 폭풍 속에서 갈가리 찢어졌다.]

“흐윽!”

괴로운 듯 남궁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

파지지지지직----!

퍼-엉!

하얀 실타래처럼, 거미의 거미줄처럼 일행을 휘감고 있던 기운이 깨어졌다.

“허억!”

“헉!”

발밑이 무너지는 느낌과 함께, 팽가 형제와 남궁교명, 남궁구가 놀란 얼굴로 정신을 차렸다.

“꺄-악! 아, 하, 하하!”

당혜군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주변을 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건가?”

나하연이 걱정스럽게 물을 정도로, 당혜군의 반응은 이상했다.

“멍청한 당혜평이 당문을 차지하는 것보다 세상이 무너지는 게 백배, 천배 나아.”

당혜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독기를 뿜으며 말했다.

나하연은 평소 당혜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며 안심했다.

“다들 정신 차렸으면 검 들어. 산 채로 저기 매달리기 싫으면.”

뒤에서 들리는 차가운 진화의 목소리에, 일행이 놀란 눈으로 진화를 찾았다.

파지지지직----!

챙-! 챙!

푸른 번개를 번뜩이며 진화가 한 여인을 무지막지하게 공격하는 중이었다.

비표와 그 수하들이 필사적으로 진화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환마제의 악몽경이다.”

진화의 말에 일행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자신들이 본 것이 뭔지 깨달았다.

“그럼 저 여자가 환마제?”

실제로 심장이 뽑히는 고통을 느꼈던 남궁경이 놀란 눈으로 여자를 보았다.

눈이 마주친 여자가 그들을 향해 요요한 미소를 보였다.

“저 빌어먹을 년!”

“죽인다!”

당혜군과 팽가 형제가 드물게 마음이 맞아 여자에게 살기를 뿜었다.

그들의 악몽은 끝까지 전개되지 않았으나, 그게 더 좋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악몽의 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 다 잤으면 저자들을 다 죽여.”

“아, 예!”

진화의 말에 남궁구가 화들짝 놀랐다.

저도 모르게 존대를 하는 것이, 아직 완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창궁의 어린 송골매가 우습게 되었군.”

진화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궁구를 보며 혀를 찼다.

그러자 남궁구가 힘없이 웃었다.

“그냥 괜찮냐고 물어봐 주면 안 될까, 도련님?”

평소의 남궁구였다.

“현오를 찾아!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환마제의 기운에 뒤덮여서 정확하게 찾을 수가 없다.”

진화는 남궁구의 앓는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아니, 정말 들리지 않는 듯 눈앞의 흑의인을 베기 바빴다.

“에휴, 매정하긴.”

남궁구가 피식 웃으면서 싸움을 피해 벽 쪽으로 이동했다.

“현오, 우리 뚱뚱땡중, 뭐라도 속삭여 보라고. 이 형님이 금방 찾아 줄 테니.”

남궁구가 기감을 끌어 올리는 동시에 벽 쪽으로 귀를 가까이 대었다.

그 앞을 자연스럽게 진화가 막아섰다.

쉐에에엑---!

비표를 향해 검기를 날리며, 진화가 남궁구를 힐끗 보았다.

벽에 귀를 대고 집중해서 엿듣는 모습이, 이제 정말 괜찮은 듯했다.

다른 일행 또한 분노를 뿜으며 필사적으로 여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죽어라, 환마제!”

“다시 해보시지! 내가 당혜평을 갈가리 씹어 먹어 줄 테니까!”

분노와 원망, 악몽이 뒤섞인 난전이었다.

본래 환마제의 악몽경의 무서운 점이 그것이었다.

악몽에서 깨어나도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가장 끔찍한 비극은 언제나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지지지직----!

계단 위에서 계속해서 흑의인들이 내려왔다.

죽으면 보충하고, 죽으면 다시 보충하는…… 지루한 소모전.

‘마치 우릴 여기 붙잡아 두고 있는 것 같군. 저런 껍데기로!’

진화의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번뜩였다.

사혈도객 비표가 남궁교명과 함께 계단 쪽으로 떨어지고, 팽가 형제가 흑의인들을 밀어낸 찰나.

여인이 나하연의 용수권에 밀려나는 그 순간.

진화의 눈동자에 당혜군의 만천화우를 막는 데 집중하고 있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파파파파파팟----!

천뢰제왕검법 낙엽--!

순식간에 앞을 막는 흑의인들을 지나, 진화의 푸른 번개가 여인에게 꽂혔다.

“꺄아악-!”

퍼----억!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벽에 처박혔다.

놀란 비표의 앞을, 이를 악문 남궁교명과 팽가 형제가 막고, 당혜군과 나하연이 여인의 목숨을 끊으려 달려들었다.

그때.

“도련님, 저기!”

남궁구가 진화에게 소리쳤다.

진화의 검에 청광이 번뜩이는 번개가 솟아났다.

쉐에에에엑----!

하늘의 번개가 벽에 내리꽂힌 듯.

파파파팟---! 콰-앙!

번개 모양으로 갈라지던 벽면이 마침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 또 다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거대한 통로의 안에서, 코가 따가울 정도로 짙은 혈향과 퀴퀴한 냄새, 그리고 강한 환마제의 기운과 현오의 기운이 느껴졌다.

진화와 남궁구가 그 길로 뛰어들었다.

“안 돼!”

이번에는 정말로 당황했는지, 비표가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렸다.

하지만 엄청난 힘이 그의 발을 붙잡고 휘둘렀다.

“어딜-!”

사나운 얼굴을 한 팽수와 눈이 마주치는 것과 동시에.

사혈객 비표의 몸이 철창을 부수고 안으로 처박혔다.

퍼----억!

“크윽!”

등뼈를 부수는 충격과 함께 기혈이 뒤틀린 듯, 비표가 객혈을 했다.

그러나 그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쉐에에에엑----!

“헉!”

비표가 다급하게 몸을 굴렸다.

수-욱!

비표가 튀어나올 듯 커진 눈으로, 바로 얼굴 옆에서 난 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단단한 돌벽에, 감옥의 철창을 이루던 쇠 봉이 박혀 있었다.

‘쇠 봉이 박히는 소리라고?’

무슨 쇠 봉이 두부 뚫듯 돌벽을 뚫는단 말인가.

비표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쇠 봉을 보았다.

하지만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쉐에에엑--!

챙! 챙!

“큿!”

협곡을 꿰뚫는 돌개바람처럼, 남궁교명이 비표의 연검을 쳐 내며 뚫고 들어왔다.

푸-욱.

순식간이었다.

살가죽이 뚫리고 몸이 관통당하는 것은.

“커억! 큭.”

눈앞이 붉게 물들고, 숨을 뱉으려는 순간마다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이전 생과 달라진 점이었다.

남궁교명은 비약을 먹고 강해졌던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내공은 비슷하거나 모자랄지 모르지만, 그 운용과 검술의 능란함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정교했다.

남궁교명뿐 아니라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죽어라-!”

검게 빛나는 광채를 뿜으며, 나하연이 쓰러진 여인의 가슴뼈를 부수고 사천패룡권 흑룡패기를 박아 넣었다.

나하연의 권이 바닥까지 뚫고 들어갔다.

지금 정의무학관 아니, 정의맹의 황금 기수라 불리는 이들은, 이전과 달리 죽지 않았고, 눈부신 성과와 미래를 쟁취했다.

진화가 일행에게 환마제의 껍데기로 보이는 여인과 사혈도객 비표를 맡겨 놓고 망설임 없이 통로 안으로 뛰어들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물론, 그 이유엔 진화 자신도 포함되었다.

“어, 어떻게 알았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거대한 살덩어리.

지독한 혈향이 옆에 있는 피 웅덩이에서 나는 것이라면, 코를 찌르는 듯 역겨운 냄새는 그의 몸에서 나는 것이라.

평범한 성인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살집에 팔 하나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움직이는 것이라곤 겨우 작은 머리통 하나.

둥그런 박과 같은 것이 빼꼼 올라오더니 진화를 보았다.

검은 실선으로 보이는 그것이 눈인 듯, 두꺼운 눈꺼풀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를 살피고 있었다.

“단전이 없는 것이 기운을 뿜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짧게 대답한 진화가 옆을 보았다.

“현오! 땡중!”

남궁구가 구석에 처박혀 쇠사슬에 감겨 있는 현오를 풀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환마제를 힐끗 보고, 태연하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

진화의 말에 환마제가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아우,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조금 더 있다간, 관세음보살님 앞에 만두 빚고 있을 줄 알았다니까.”

놀란 눈을 뜬 남궁구에게 민망한 듯 웃으며, 현오가 태연하게 몸을 일으켰다.

“어, 어떻게! 어떻게!”

환마제가 격하게 턱살을 떨며 물었다.

놀란 것과 함께, 그는 제가 속았다는 것에 화가 난 듯했다.

그에 진화가 태연하게 물었다.

“지옥 속에 있었나?”

창백한 안색이 아니더라도, 기운의 조화가 흐려지고 맥이 약해진 것이 느껴졌다.

그 괴로움을 환마제 또한 고스란히 맛보고 있었기에, 지금 현오의 태연함을 믿을 수 없는 것이라.

다만, 진화만이 어찌 된 일인지 짐작할 뿐이었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지옥이었지.”

현오가 힘겹게 대답했다.

세상에 오직 진화만이 현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속에서 끊임없는 증오와 분노, 광기와 갈망이 충돌하는 혼돈지체를 견디고 있는 진화만이, 천살지체를 견디고 있는 현오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오가 남궁구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진화가 환마제에게 눈을 돌렸다.

“대전쟁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도 산 것은 아니었나 보군. 육체가 무너졌으니까.”

“허! 애송이. 히익히익, 너 따위 애송이가 감히 이 환마제님을 그런 눈으로 볼 주제나 된다고 생각하느냐?”

환마제는 저를 향해 혀를 차는 진화를 되레 비웃었다.

“제물 따위! ……히-익. 너희들은 역천제와 광마제의 그럴싸한 껍데기일 뿐이야! 히익히익-! 나 또한 곧 그럴싸한 껍데기를 가질 것이고!”

제대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해 가쁜 소리를 내면서도, 환마제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진화는 환마제의 불안전한 몸에서 이전의 여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전부 긴장해라!”

진화가 놀라서 소리쳤다.

“이히히히히히! 늦었어-! 너희는 내 부활의 축배 노릇이나 하려무나!”

거대한 살덩어리를 들썩이며 환마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새하얀 운무처럼 퍼진 환마제의 기운과 함께, 진화 일행이 내려왔던 계단으로 구름처럼 많은 흑의인들이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막아!”

“공자님-!”

당황한 팽가 형제와 당혜군, 나하연의 목소리와 함께, 남궁교명이 진화를 찾는 소리도 들렸다.

“이히히히! 히익. 히익. 이곳은 인림이다! 내가 만든 인간으로 된 감옥!”

검은 실눈에서 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남궁교명과 일행이 죽이고 또 죽이는데도 흑의인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진화가 살기를 품고 환마제를 노려보았다.

“지금 당장 널 죽여야 할 이유가 더해졌군.”

“으히히히히, 그래? 히익. 히익. 할 수 있겠어?”

진화의 말에, 환마제가 다 삭아 내린 이를 드러내며 진화를 비웃었다.

“내가 만든 인림이 이것으로 끝인 것 같으냐?”

“……무슨 뜻이지?”

“사람은 어디에나 있어! 악몽은 누구나 꾸지! 히익, 히익. 내 영원한 악몽에 갇힌 자들은, 내 죽음과 함께 잠들 것이다! 이히히히히히-!”

“……!”

환마제의 말에 남궁구와 현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게 왜?”

“헉!”

“뭐?”

태연한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현오가 턱을 빼고 진화를 보았다.

환마제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인가?

진화는 벌써 검을 번뜩이고 있었다.

“크아아악!”

“젠장--! 이게 다 뭐야!”

밖에서는 남궁교명과 당혜군의 비명 같은 고함이 울려 퍼졌다.

그들은 흑의인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동시에 점점 그들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죽어라.”

진화가 망설임 없이 검기를 날렸다.

새파란 섬광이 환마제를 향해 날아갔다.

쉐에에엑---!

퍼-엉!

새하얀 운무가 진화의 검기를 막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환마제의 검은 눈이 얄미울 정도로 완벽한 호선을 그리며 진화를 보았다.

“정말 괜찮느냐? 나와 함께 죽는 사람이, 장안 성안의 사람 절반이래도? 으히히히히히!”

“그, 그런……!”

환마제의 말과 남궁구와 현오가 경악했다.

다른 일행 또한 환마제의 말을 듣고 있었는지, 절망스러운 눈으로 흑의인들을 보았다.

그제야 환마제의 운무가 돌벽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것이 진화의 눈에 들어왔다.

진화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환마제의 기운이 멀리까지 뻗어 있었다.

푸른 번개로 번뜩이던 진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장안 사람 절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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