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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86)화 (186/425)

남궁마제

진력할 진(進) 불 화(火) : 악마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3)

장안 사람 절반.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일행을 덮치는 흑의인들은 제대로 공격을 한다기보다 진화 일행의 앞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었다.

“크읏, 젠장!”

“죽여! 망설이지 말고 죽여!”

남궁교명의 외침이 필사적으로 들렸다.

남궁교명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환마제의 웃음소리도 높아졌다.

“이히히히히!”

고함은 지르다 만 비명이라.

적이지만 사람이었다.

남궁교명과 일행이 단호하게 대응하는 중이지만, 결국 변변찮은 저항도 없이 죽어 가는 이들을 보다 보면 죄책감을 느끼고 지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들을 멈추기 위해 환마제를 죽인다면?

그 또한 흑의인들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었다.

환마제의 말처럼, 저들은 환마제의 기운에 지배를 당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흑의인만이 아니란다.

“젠장!”

공격하는 이들을 죽일 수도, 그렇다고 환마제를 죽일 수도 없는 상황.

남궁구와 현오가 환마제를 노려보며 분노를 억눌렀다.

그때, 옆에서 피식- 웃음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진화가 즐거워하는 환마제를 보며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네가, 그래서 지금까지 제대로 공격을 못 하고 있었구나?”

진화가 먹잇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환하게 입을 벌렸다.

환마제의 작은 눈이 살집을 찢을 듯 커졌다.

“자, 잠깐!”

환마제의 목소리였을까, 아니면 진화 일행 중 누군가의 목소리였을까.

어찌 되었든 누구의 말이든 소용없었다.

진화의 번개가 육중한 환마제의 몸뚱어리 위로 사정없이 내리쳤기 때문이다.

콰광-!

펑! 펑! 펑!

하얀 운무가 열심히 진화의 번개를 막았지만, 수십, 수백 개의 뇌전을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크아아아악!”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의 육신.

악몽경을 유지하느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상태.

약해진 마제를 사냥하기에 지금보다 적기가 또 있을까.

진화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가득했다.

“자, 잠깐만, 도련님-!”

“진화, 장안 사람들을 다 죽일 셈인가!”

당황한 남궁구와 현오가 다급하게 진화를 불렀다.

그 순간, 향기로운 기운이 그들을 부드럽게 감싸듯 끼어들었다.

“아해야, 잠시 멈추거라.”

자애로운 목소리가 진화의 발걸음을 멈추었다.

* * *

장안성.

본래라면 장안 수비군과 몇 안 되는 장안 무림 사람들이 지키고 있어야 할 곳에, 마치 전쟁이라도 하듯 병사들과 무인들이 성벽 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성 밖을 보고 있었다.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오는 건 확실해?”

“그러니까, 언제까지 벌서듯 경계를 해야 하는지.”

몇 시진 동안 긴장하고 있던 이들 중에는, 벌써 기다림에 지친 이들이 나왔다.

해가 중천에 올랐다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바람이 바뀌고,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할 즈음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쳐 있었다.

“오늘은 아닌 거 아니야?”

“그러게. 굳이 이렇게 전부 나와 있을 이유 있어? 경계를 설 놈들 남기고 좀 쉬고 있어야 잘 싸우든지 하지. 하여튼 윗대가리들 일 처리는…… 쯧쯧.”

머리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질 때, 곳곳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오늘따라 안개가 심하네.”

“모래바람 아니야? 지금 시간에 무슨 안개가…… 컥! 무, 무슨……?”

동료의 말에 투덜거리던 병사는, 제 살을 뚫고 나온 창날을 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쉐에에엑---!

갑자기 나타난 검이 병사의 목을 내리쳤다.

“으아아아악--!”

동료의 죽음 본 병사가 소리를 지르고, 그의 뒤에서도 누군가 창으로 그의 몸을 쑤셨다.

쉐에에엑--!

챙! 챙!

“왜, 왜 그래?”

“으아악”

퍼----엉!

“소양문주, 이게 무슨 짓이오!”

“으아악!”

“배, 배신이다! 소양문이 배신했다!”

중소 문파의 문주들이 있던 곳에서도 칼부림이 일었다.

아니, 칼부림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단주님, 내분입니다!”

“뭐? 배, 배신인가?

“아닙니다!”

수하의 물음에 성벽으로 나간 적호단주와 현무단주는, 밖에 모이는 광경에 할 말을 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의맹 무인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난전이었다.

아수라장.

기습으로 시작된 효율적인 공격과 적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란은, 정의맹 무인들을 착실하게 죽음으로 이끌었다.

“단주님, 산임방 무사들이 현무단을 공격했습니다!”

“뭐?”

놀란 현무단주가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산임방이라니!

장안성에서 가장 큰 곡식 창고를 운영하는 곳이라, 현무단의 보호를 받는 곳이었다.

상단을 중심으로 표사들만 존재하는 곳에서 갑자기 현무단을 공격하다니.

배신이라고 하기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공격이 성벽은 물론 성안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성벽은 물론 성안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고함과 비명이 곳곳에서 터졌다.

적호단주조차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일련의 무리가 다급하게 적호단주를 찾아왔다.

“적호단주!”

“당신은……?”

적호단주에게 급히 달려온 이들은, 월하회주 장소팔과 월하회 무인들이었다.

“환마제의 술수요. 저들 모두, 환마제의 악몽경에 당한 것이오! 성녀께서 환마제에게 갔소. 성녀께서 악몽경을 풀 때까지 저들을 분리해야 하오!”

월하회주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월하회주는 적호단과 현무단이 즉시 그의 말에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적호단주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환마제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오?”

적호단주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월하회주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의맹과 월하회는 엄연히 다른 곳이었다.

십이좌회의 아래에 있는 것은 맞지만, 십이좌회는 결국 천하제일 고수들을 일컫는 말에 불과할 뿐 어떤 약속이나 협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월하회는 현오의 납치 장소를 알아내 준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진화가 마성 노인을 고문해서 정보를 알아낼 때까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저들이 한 일은, 현오의 뒤를 지키려는 진화 일행을 방해한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들을 분리한다니, 또 따로 계획이 있는 것인가?”

적호단주의 말투가 공격적이었다.

월하회주는 적호단주의 목소리에 깔린 불신을 읽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이 있으니, 그것을 탓할 수는 없었다.

월하회주는 한숨을 쉰 후, 월하회의 일을 설명했다.

“우리는 환마제의 최종 제물이 움직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것을 추적하고 있었소. 환마제의 위치뿐 아니라 환마제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소! 추적에 성공하면 현오를 구출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었고.”

“그런데 일이 실패했군.”

적호단주의 눈빛이 더 날카로워졌다.

월하회주는 적호단주의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했다.

“혼현마제가 직접 움직였소. 최종 제물을 추적, 탈취하기 위해 보낸 우리 쪽 무인들이 모두 죽었소.”

“혼현마제가?”

적호단주의 눈이 커졌다.

월하회를 비난하고 있기엔, 혼현마제라는 이름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성녀께서 악몽경을 풀러 가셨소.”

“악몽경이 풀 수는 있는 거요?”

“안 된다면, 환마제를 죽이시겠지.”

월하회주가 매서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혼현마제의 도착을 늦추기 위해 장안에 있는 월하회의 무인들이 모두 나갔소.”

“이곳의 일은 우리가 해결해야겠군.”

여러 상황이 겹치긴 했지만, 정의맹 본부를 뚫고 도망친 혼현마제였다.

월하회 무인들로는 혼현마제를 죽일 수 없을 것이었다.

결국 혼현마제의 발걸음을 늦추기 위해 월하회 무인들이 목숨을 걸고 나선 것이라.

월하회의 희생을 존중하며, 적호단주 또한 월하회주의 손을 잡았다.

“그나저나, 환마제는 어디 있었소?”

적호단주가 지나가듯 물었다.

“인림의 바로 아래에, 진골장과 이어진 지하 비밀 장소가 있었소.”

진골…… 뭐?

순간, 적호단주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런 씨발.”

적호단주가 사정없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 * *

자애로운 여인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진화는 검을 마저 휘둘렀다.

진화의 번개가 그를 잡는 유려한 기운마저 뿌리치고, 자욱하게 깔린 환마제의 기운을 뚫으며 사납게 번뜩였다.

펑! 퍼-엉!

“크아아아아악!”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와 함께, 환마제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육신이 꿀렁거렸다.

앞을 가릴 만큼 자욱했던 운해가 갈라지며, 환마제의 머리가 보였다.

진화가 눈을 번쩍였다.

그때.

“이런, 정말 인내심이 없는 아해로구나.”

휘이이익-!

팟! 팟!

“칫!”

진화는 자신을 앞을 막는 여인의 팔을 뿌리쳐 보았지만, 그녀는 부드러운 몸놀림으로 진화의 검로를 막았다.

결국 앞이 막힌 진화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가 남궁의 아해로구나. 어머나, 듣던 대로 정말 꽃같이 곱구나. 호호호!”

육칠십 대 평범한 노부인의 모습이었다.

희끗한 머리를 우아하게 단장한 노부인이 진화를 향해 유쾌하게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 외모 칭찬이라니.

언뜻 눈치 없고 웃음만 많은 노부인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상쾌한 꽃향기와 함께 뿜어져 나온 기운은 지금도 환마제의 운해를 짓누르고 있었다.

“성녀께선 마제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닙니까?”

진화가 불만스러운 듯 야희성녀를 노려보았다.

옆에서 현오와 남궁구가 기함하듯 진화를 보았다.

진화가 힐끗 뒤를 보았다.

야희성녀의 기운이 환마제의 기운을 누르며, 환마제의 방 밖에 있던 수많은 흑의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래도 십이좌회는 십이좌회라는 건가?’

진화가 야희성녀를 살폈다.

야희성녀가 십이좌회에 든 것은, 천하의 밤을 손안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무공으로 유명하거나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무색하도록, 실타래처럼 퍼진 환마제의 기운을 억누르는 야희성녀의 기운은 강하고 거대했다.

‘동시에 환마제의 기운을 다 누르진 못했지.’

진화가 야희성녀와 환마제의 기운을 보며, 그녀의 경지를 가늠했다.

야희성녀의 기운이 환마제의 기운을 누르긴 했으나, 환마제의 기운은 오히려 사방으로 날뛰며 돌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으히히히히! 야희성녀! 히익히익. 날 살리러 온 건가? 히히히히!”

야희성녀에 의해 기운이 눌렀음에도, 환마제는 얄밉게 웃어 댔다.

그에 야희성녀의 표정이 돌변하며,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환마제를 째려보았다.

“죽기 싫으면 악몽경을 푸는 게 좋은 거야, 이 징그러운 자식아.”

야희성녀의 말에, 환마제가 온몸을 출렁거리며 웃었다.

“으히히히히히히! 히익. 히익.”

웃음소리가 멈추고, 환마제가 무거운 고개를 들었다.

“네년이 온 것을 보니, 혼현마제가 왔구나. 그렇지?”

완벽한 호선을 그린 눈이 이번에는 야희성녀를 조롱했다.

‘혼현마제가 온다고?’

혼현마제라는 말에 진화가 눈을 크게 뜨고 야희성녀를 보았다.

야희성녀는 환마제의 조롱에 더욱 싸늘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그때 분명 네놈의 목을 쳤는데?”

야희성녀의 물음에 환마제가 답을 할 리 없었다.

그는 그저 야희성녀가 이곳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었다.

“으히히히히히! 날 죽인다고? 히익, 히익. 죽여 봐! 죽여 봐! 이히히히히! 히익. 히익.. ……넌 날 못 죽일걸. 악몽은 풀리지 않아. 날 죽이면 전부 같이 죽을 거다! 날 죽인다면 네년은 무림 영웅이 아니라 장안의 살인자가 되겠지! 이히히히히히!”

환마제가 야희성녀를 조롱하며 웃음소리를 높였다.

마치 약을 올리는 듯.

야희성녀가 누르고 있던 환마제의 기운이, 이전보다 거세가 돌벽 사이를 빠져나갔다.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군. 하지만 혼현마제가 온다는 걸 환마제가 저렇게 반기는 걸 보면…….’

진화는 이전 생을 떠올렸다.

역천대법에 대해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하지만, 역천대법을 실행하는 방식은 분명 알고 있었다.

저를 삼키던 만년독수와 주문을 외며 스스로의 피를 바치던 술법사들, 그리고 희열에 찬 광마제.

“새로운 껍데기로 갈아 치운다고 했으니, 혼현마제가 최종 제물을 가져오는 건가?”

진화의 말에, 야희성녀와 환마제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는 그들의 시선을 덤덤하게 마주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진화가 새파란 검강을 번뜩이며 환마제를 향해 뛰어올랐다.

“넌 지금 죽는다!”

진화는 영웅이 되는 데에 관심이 없었다.

물론 장안 모든 사람들의 살인자가 되는 것도, 상관없었다.

야희성녀가 환마제의 기운을 누르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자, 잠깐! 악몽은 풀리지 않는다고 했어! 전부 죽는다고!”

환마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진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에엑---!

퍼-----엉!

“차라리 잘됐네,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겠어.”

진화가 서늘하게 웃으며 푸른 섬광을 뿜었다.

쉐에에에엑!

진화의 기운과 환마제의 기운이 부딪히고, 진화는 방금 전과 같이 사정없이 환마제를 공격했다.

펑! 펑! 펑!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환마제가 거대한 기운을 모아 진화의 공격을 막았다.

“정말이다! 전부 죽을 거다! 네놈은 장안의 살인자가 될 것이다! 장안의 원수가 될 거라고!” 

환마제가 악에 받친 듯 소리를 질렀다.

환마제의 기운이 물줄기처럼 일어나 진화에게 쏘아지고, 진화는 그것을 베어 내며 환마제의 몸을 노렸다.

야희성녀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진화와 환마제의 충돌을 지켜보았다.

그 옆에는 남궁구와 현오, 어느새 합류한 남궁교명과 일행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쉐에에에엑--!

파팟!

핏줄기가 튀어 올랐다.

“크아아악! 너! 너! 너!”

환마제가 숨을 헐떡이며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을 보며 야희성녀가 기가 막힌 듯 숨을 뱉었다.

“허어! 보기와 달리 많이 과격한 아이구나.”

야희성녀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앞으로 무림을 밝힐 아이를, 환마제의 말처럼 장안의 살인자, 장안의 원수로 만들 수는 없었다.

악몽경을 풀 수 없다면 그 짐을 짊어지는 것.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결단을 내린 야희성녀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샤아아아아악----!

꽃향기가 모여들며 서서히 환마제의 기운을 조여들어 갔다.

그 순간.

파----앗!

야희성녀의 기운이 깨졌다.

누군가, 성녀의 기운을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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