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87)화 (187/425)

남궁마제

진력할 진(進) 불 화(火) : 악마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4)

야희성녀의 안색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녀는 진화와 일행을 보호하겠다는 듯 그들의 앞에 자리했다.

진화는 그녀의 뒤에서 통로 쪽을 보았다.

‘이 기운…….’

진화는 통로를 들어오는 사람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기감을 집중했다.

진화가 이전 생보다 조금 더 일찍 경지를 넘어선 후, 의천검주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골몰한 것이 만물의 조화였다.

만물이 소생하는 법칙처럼.

살아 있는 것들은 음과 양의 조화가 완벽하면서, 동시에 완벽하지 않았다.

사람도 마찬가지.

일견 음양의 조화가 균형 있게 있다가 그것이 흐트러지면 병이 생기고 몸이 무너지는가 싶지만, 그 균형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달랐다.

모든 사람의 외모가 다른 것처럼, 타고난 기질과 내공심법, 무공에 따라서 서로 조금씩 다른 균형(均衡)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기운을 숨긴 터라 확신할 순 없었지만, 진화는 지금 들어오는 이가 누구인지 얼추 알아차렸다.

그리고 곧바로 손을 움직였다.

파지직-!

파파파파파팟---!

“자, 잠깐……!”

퍼—엉!

“아아악!”

다급한 목소리가 진화를 막으려다, 곧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아악! 아-악!”

고통과 악에 받친 환마제의 비명에, 야희성녀는 물론 남궁구와 일행도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그때, 진화가 검을 들고 저를 공격하는 환마제의 기운을 베어 내며 말했다.

“저쪽은 성녀께 맡기지요.”

“아해야?”

야희성녀가 놀라서 진화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도 곧 진화처럼 급히 팔을 휘둘렀다.

섬뜩한 기운.

휘이이이익---!

야희성녀가 그녀와 뒤의 후기지수들에게 날아든 섬뜩한 예기를 잘라 냈다.

타---앙!

투둑. 툭. 툭.

뭔가가 야희성녀의 기운에 튕겨 나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뚫고, 혼현마제가 친근한 목소리로 야희성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허허허허! 이거,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 사람이군. 흥미로운 이들도 있고.”

혼현마제가 진화와 현오에게 눈길을 보내며 빙그레 웃었다.

순간, 정체를 드러낸 혼현마제의 기운이 지하 가득 뻗어 있던 환마제와 야희성녀의 기운을 조여들기 시작했다.

“큿!”

목을 죄어 오는 듯한 위압감에 당혜군이 신음을 내었다.

다른 이들 또한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힘을 내어 주먹과 무기를 들었다.

“오, 이런. 성녀, 혼자인가?”

마치 다른 관도생들은 보이지도 않는 사람처럼.

“허허, 천운이 내게 닿았군.”

혼현마제가 기쁜 듯이 웃었다.

야희성녀와 관도생들의 주변으로, 혼현마제의 현홍사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넘실거렸다.

그 와중에도 야희성녀는 혼현마제 제갈무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는 정말로 혼현마제인가?”

그녀도 들어 알고 있었다.

제갈무진이 혼현마제였다고.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분명 혼현마제는 그녀와 천수현인 제갈길현, 풍선 곤학진인이 목을 날려 죽였었다.

여기 환마제와 마찬가지로.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살아 있었다니.

놀랍고 참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참담한 것은,

“너…… 네가 어찌!”

야희성녀가 무너진 속내를 드러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야희성녀는 적어도, 그래, 정말 적어도.

육체가 붕괴된 환마제와 마찬가지로, 혼현마제 또한 제갈무진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불완전하게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제갈무진이 아닌가!

“어떻게 육신이 바뀌었지?”

경악을 금치 못한 야희성녀의 혼잣말이 진화의 귀에도 들어갔다.

‘육신을 바꿔? ……그러고 보니, 환마제도 새로운 껍데기라 말했지. 설마 광마제가 날 죽이려 한 것이,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가 아닐 수도 있는 건가?’

진화는 역천대법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의 일이 먼저였다.

“칫.”

진화가 혀를 찼다.

못마땅함은 혼현마제가 아니라 야희성녀를 향한 것이었다.

그녀는 무엇에 그리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도 경악을 금치 못하며 혼현마제를 보고만 있었다.

‘판단이 느려.’

대반격 때 외에는 전투에 참여한 적이 없다 했던가.

전투에서는 찰나의 판단이 생과 사를 나누는 법이었다.

야희성녀가 곧바로 혼현마제를 공격하고, 혼현마제가 잠깐 정신없는 틈에 환마제라도 죽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좋은 기습의 때를 놓쳤으니, 이제 양쪽이 제대로 부딪히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진화 쪽이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보라.

혼현마제가 뱀처럼 천천히 걸어 들어오고, 야희성녀는 둥지를 지키는 새처럼 조금씩 물러서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전투에선 별 쓸모가 없군.’

진화가 십이좌회의 일인인 야희성녀를 향해 가차 없는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환마제를 보았다.

-잠시 저 사람을 붙잡아 두십시오.

-뭐?

진화의 전음에 야희성녀가 놀란 듯 되물었다.

하지만 진화는 이미 땅을 박차고 환마제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쉐에에에엑---!

푸른 번개가 환마제의 기운을 뚫고 들어갔다.

“아아악! 아악! 젠장! 젠장! 젠장! 이 빌어먹을 애송이, 죽여 버릴 거다! 갈기갈기 뜯어서 한 줌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울 거다-!”

환마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혼현마제 또한 짜증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추태는…… 쯧.”

사아아아악----!

이번에는 야희성녀의 기운이 현홍사를 피해 혼현마제의 발밑으로 퍼져 갔다.

그에 혼현마제가 야희성녀를 보며 싱긋이 웃었다.

“회포는 차근차근 풀어야겠군.”

휘이이이이잉---!

혼현마제의 현홍사가 성난 회오리처럼 뭉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환마제의 기운을 누른 야희성녀의 기운을 찢어 버렸다.

* * *

“크아아아아----!”

환마제의 기운이 풀려나고, 다시 흑의인들이 계단 아래로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구! 현오!”

남궁교명이 눈을 크게 뜨고 남궁구와 현오를 불렀다.

“땡중, 움직일 수 있겠나?”

“미안하네, 며칠간 제대로 먹질 못했더니 온몸에 힘이 없군.”

현오가 사슬 자국이 시뻘겋게 남은 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음, 괜찮네.”

남궁교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현오가 바라는 의미의 ‘괜찮다’는 분명히 아니었다.

“저 흑의인들은 하던 대로 한 방에 대가리를 깨면 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저 인정머리 없는 놈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현오가 입술을 댓 발 내밀며 염불을 외었다.

그리고 남궁구와 남궁교명, 당혜군과 함께, 팽가 형제와 나하연의 뒤에 섰다.

쉐에에에엑---!

“놈-!”

야희성녀가 노성을 터뜨리며 팔을 휘둘렀다.

펑--!

펑펑펑-! 퍼--엉!

뱀처럼 입을 벌린 현홍사와 노란 나비가 뭉쳐 있는 듯 해사한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펑! 펑! 펑!

쿠르르르릉!

거대한 지하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야희성녀는 일행을 보호하며 싸우려니 힘이 부쳐 보였고, 그렇다고 일행이 나서서 그녀를 도울 수도 없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뒤를 보았다.

“으아아악! 죽어! 히-익! 히—익!”

퍽! 퍽! 퍽!

새하얀 기운이 물줄기처럼 솟아 나와 거미의 다리처럼 진화를 향해 찔러 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카-앙!

진화의 기운이 거미의 다리를 베어 내고 또 베어 내었다.

하얀 기운이 뒤의 일행을 노릴 수 없도록, 진화는 잘 보이지도 않는 모든 공격을 족족 잘라 냈다.

야희성녀도, 진화도, 감히 그들이 도울 수도, 끼어들 수도 없는 싸움이었다.

일행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로 눈을 돌렸다.

흑의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흣!”

쉐에에엑---!

야희성녀의 기운이 흑의인들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혼현마제의 현홍사를 막는 것만도 벅찰 지경이었다.

그때.

“지금이다-!”

남궁구의 외침과 함께, 팽가 형제와 나하연을 선두로 관도생들이 야희성녀의 뒤를 벗어났다.

그리고 통로 가득 들어오는 흑의인들을 쓰러뜨리며,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퍼---억!

퍼-엉!

“이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남궁교명이 야희성녀에게 통보하듯 말하고, 혼현마제가 그들을 향해 요사스러운 눈빛을 번뜩였다.

쉐에에에엑---!

야희성녀가 급하게 몸을 날려, 관도생들을 노리는 현홍사를 잘라 냈다.

통로를 기준으로, 관도생들과 야희성녀, 그리고 그 앞에 혼현마제와 진화, 환마제가 섰다.

야희성녀와 혼현마제의 위치가 바뀌며, 진화가 혼현마제와 환마제의 사이에 끼인 형국이 된 것이다.

‘이런 큰일이구나!’

야희성녀가 낭패한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휘이이이이이익---!

현홍사가 뱀처럼 진화를 향해 날아갔다.

“아해야!”

야희성녀가 급하게 월연비장(月演秘掌)을 쏘았지만, 그 또한 현홍사에 가로막혔다.

퍼---엉!

“읏!”

현홍사가 터져 나가며 야희성녀의 얼굴에 상처를 남겼다.

콰—앙! 

파파파파팟!

진화가 있는 곳에서도 불길한 소리가 울렸다.

푸른 불꽃이 뭔가 부딪히는 듯 계속해서 번뜩였다.

혼현마제가 야희성녀를 향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혼돈지체를 챙기고, 네년을 죽여 과거의 분풀이를 해 주마.”

혼현마제의 눈이 붉게 빛났다.

“안 돼!”

야희성녀가 다급한 얼굴로 앞을 뛰어들고, 그 모습을 보며 혼현마제가 양손을 펼쳤다.

“곤학처럼 죽여 주마!”

휘이이이이--!

붉은 기운이 뭉치며 현홍사가 만든 회오리가 덩치를 키웠다.

곤학진인은 저 현홍사에 온몸이 찢겨 나갔다.

그러나 그가 혼현마제의 목을 날렸었다.

야희성녀 또한 사나운 얼굴로 기운을 끌어 올렸다.

동귀어진을 각오한 듯, 살기 넘치는 눈이 수백 마리 뱀처럼 꿈틀거리는 현홍사를 뚫고 혼현마제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그들의 계산일 뿐이었다.

파파파파팟------!

“아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방 안 가득 울렸다.

환마제가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하는 가운데, 출렁거리는 그의 거대한 몸에 가닥가닥 바늘처럼 쪼개진 현홍사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환마제의 기운이 운무처럼 깔린 곳에서, 푸른 불꽃이 파바바박- 튀었다.

“아아악! 너! 너! 네 이놈--! 하악, 하악!”

하얀 기운이 환마제의 몸으로 되돌아가 푸른 불꽃이 튀는 현홍사를 뽑아냈다.

야희성녀는 물론, 혼현마제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내 현홍사를 움직여?’

혼현마제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아까의 굉음과 불꽃.

현홍사가 남궁진화의 기운과 계속해서 부딪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환마제의 몸에 박힌 저것은 뭐란 말인가.

그의 기운과 끊어진 현홍사가 제 스스로 환마제의 몸에 박혀들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궁진화가 자신의 현홍사를 움직인 것이다.

‘어떻게 한 것이지?’

혼현마제가 다시 진화에게 손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끄아아아악-!”

파팟---!

환마제가 비명을 지르며, 기어코 제 몸에 박힌 현홍사 조각을 모두 빼냈다.

그에 맞춰 진화의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번뜩였다.

그리고 진화가 왼손에 있던 푸른 뇌전을 휘두르자, 환마제의 몸에서 나온 현홍사 조각이 모조리 혼현마제를 향해 날아갔다.

“이런!”

쉐에에에에엑--!

파다다다닥!

혼현마제가 진화를 공격하려던 것 그대로, 날아드는 현홍사 조각을 막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야희성녀의 월연비장이 그의 기운을 뚫고 들어왔다.

파파파파팟---!

“감히……!”

또다시 제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월연비장을 보며, 혼현마제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쏴아아아아악---!

방금 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악하고 강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붉은 불을 뿜어 대는 검은 회오리가, 야희성녀의 기운을 집어삼키며 앞으로 나갔다.

“성녀님!”

사천패룡권 흑룡패기.

나하연이 검은 용과 함께 야희성녀를 돕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녀의 뒤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관도생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야희성녀를 보고 있었다.

‘왜 저들이 이곳으로 왔지?’

흑의인들을 통로 밖으로 몰아내며 함께 나갔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왜 저들이 이곳에 다시 왔단 말인가.

‘벌써 그들을 모두 죽인 것인가?’

아니.

흑의인들의 수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야희성녀가 저도 모르게, 진화가 있는 쪽을 보고 말았다.

야희성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음?”

야희성녀가 경악하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혼현마제가 야희성녀의 시선을 쫓아 뒤를 보았다.

새파란 뇌전이 혼현마제를 덮쳤다.

“어떻게! 주, 죽였다고?”

퍼-----엉!

팔을 들어 뇌전을 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현마제조차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새까맣게 타 버린 환마제의 시체를 밟고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궁진화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언제……!”

혼현마제가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그건 야희성녀와 관도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였어? ……기어이, 환마제를 죽였더냐!”

야희성녀가 창백하다 못해 퍼렇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질문이 아닌 추궁으로 들릴 정도로, 야희성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장안 사람의 절반!

관도생들의 머릿속에 환마제가 소리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장안의 살인자! 장안의 원수! 

진화가 소리 없이 밟고 선 검은 시체가, 마치 장안 사람 절반의 주검처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혼란과 당황스러움을 전혀 모르는 듯.

진화가 혼현마제를 향해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

“운이 좋네, 한 번에 둘이라니.”

순식간에 환마제의 형체를 하고 있던 까만 재가 흩어졌다.

흩어지는 재를 뚫고, 푸른 번개가 쏘아져 나왔다.

-아, 악몽경을 깰 방법을 알려 주마!

환마제의 목소리가 진화의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진화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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