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89)화 (189/425)

남궁마제

진력할 진(進) 불 화(火) : 악마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6)

쉐에에에엑-----!

“크아아악!”

마지막 비명을 끝으로 정적이 흘렀다.

주변으로 조각조각 널브러진 사람의 시체.

짙은 혈향과 고약한 주검의 냄새가 숲 가득 흘렀다.

“하아. 하아…….”

어린 소년이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밤이 깊었으니, 곧 피 냄새를 맡은 짐승들이 고깃덩어리를 뜯으러 올 것이었다.

‘뒤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참 다행이네.’

소년은 흩어진 시체 조각을 보며 조금 느긋한 생각을 했다.

그때, 마차 안에 있던 중년인이 걸어 나왔다.

“스승님.”

소년, 수오가 놀란 듯 혼현마제를 보았다.

“오, 깔끔하게 처리했구나.”

혼현마제는 고깃덩어리가 널브러진 광경을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홍사를 쓰는 것이 뇌평만큼 능숙하진 않았지만,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은 일 처리가 마음에 든 듯했다.

“어찌 나오셨습니까?”

수오는 습격을 처리하고 나면 곧바로 길을 재촉하던 스승이 마차를 나온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혼현마제는 수오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흐름이 바뀌었구나.”

“예?”

“하늘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아 서두를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천기가 달라졌다. 환마제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어.”

혼현마제의 말에 수오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한낱 인간이 하늘의 흐름을 다 살펴볼 순 없겠지만, 가끔 제 스승은 커다란 변화를 읽을 줄 알았다.

스승이 환마제의 죽음을 읽었다면, 필시 환마제가 죽음에 이를 만큼 이번 일이 위험하다는 의미라.

수오는 한 치의 의심 없이 긴장한 얼굴로 혼현마제를 보았다.

“일이 잘못된다면, 역천대법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

혼현마제가 냉정하게 말했다.

일이 잘못된다는 건, 역시 환마제의 죽음밖에 없었지만, 혼현마제에게는 환마제의 죽음보다 귀천성의 부활이 중요했다. 

혼현마제의 시선이 잠깐 마차에 닿았다가, 다시 수오를 향했다.

“너는 일이 잘못될 시, 역천대법의 흔적을 무너뜨릴 준비를 하거라. 명심해라. 설사 환마제가 빠져나오지 못하더라도, 너는 그것을 완전히 파괴하는 데만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예, 스승님.”

수오가 공손하게 스승의 명을 받들었다.

* * *

갑자기 무너진 천장.

“스승님---!”

천장, 아니 지하로 뚫린 구멍을 통해 수오가 현홍사가 담기 타래를 혼현마제에게 던졌다.

쉐에에에엑--!

파팟!

진화가 그것을 향해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혼현마제가 몸을 날리며 검기를 쳐 내고 타래를 잡았다.

그리고 붉게 변한 눈으로 진화를 노려보았다.

“누구도 이곳에서 살아 나가지 못한다!”

터질 듯 툭 불거진 혈관과 붉은 눈.

그리고 제갈무진의 인자한 얼굴 위로 사납게 일그러진 노괴의 얼굴이 겹쳐졌다.

진화의 눈동자가 커졌다.

‘과연, 저것이 혼현마제 본래의 얼굴인 것인가!’

놀랐다.

하지만 진화가 관심 있는 건, 혼현마제의 추악한 본모습이 아니라, 저 노괴가 어떻게 제갈무진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썼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환마제가 죽었으니, 여기서 이자만 죽인다면 전쟁의 판도가 바뀐다!’

진화의 눈이 번뜩였다.

진화가 땅을 박차고 혼현마제에게 달려들었다.

“안 된다-!”

진화의 뒤쪽에서 야희성녀가 찢어질 듯 고함을 질렀다.

콰광----!

지하가 흔들릴 정도로 굉음이 울렸다.

“진화야!”

“도련님!”

야희성녀의 고함에 계단을 오르던 관도생들도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안 돼! 어서 나가거라!”

“하지만……!”

“너희가 어찌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어서 나가!”

야희성녀가 망설이는 남궁구와 일행을 윽박지르듯 밀었다.

“어서-!”

콰광! 쾅!

야희성녀의 뒤로 벽이 무너져 내렸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예들을 부축한 이들은 다급한 얼굴로 계단을 올랐고, 남궁교명과 남궁구도 입술을 깨물고 밖을 향해 달렸다.

콰광쾅----쾅-----!

“……!”

뒤가, 지하가 완전히 무너졌다.

“도련님-----!”

“구! 교명!”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는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팽가 형제와 현오가 급하게 붙잡았다.

콰광! 쾅!

그들이 있던 바닥도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걱정하지 말게! 그 시주는 나찰도 뱉어 낼 자가 아닌가. 곧 화룡(花龍)처럼 승천할 걸세!”

현오가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 상황에 농담이 나오나 싶었지만, 현오의 얼굴은 진심 그 자체였다.

어차피 그들이 있던 곳마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던 자리는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이제는 현오의 말에 희망을 걸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죽인다.’

퍼-----엉!

달려드는 진화를 보고, 수오가 급하게 현홍사를 뻗어 진화의 검을 막았다.

진화는 가소롭다는 듯 수오의 현홍사를 가닥가닥 태워 버렸다.

“아아아악-!”

현홍사를 타고 올라간 뇌전에 수오가 비명을 지르며 구멍에서 튕겨 났다.

하지만 그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현음지뢰파(顯蔭地雷波)--!”

혼현마제가 현홍사를 끌어당겼다.

쩌어어억. 

펑! 퍼버버벙-펑!

붉은 기운에 휩싸인 현홍사가 벽을 터뜨리며 퍼져 나갔다.

진화가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아해야, 안 된다!”

진화가 걱정되어 나가지 못한 야희성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푸른 번개는 뿌연 먼지와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모조리 태우며, 혼현마제에게 내리꽂혔다.

콰광광----광!

지하가 크게 흔들리며, 천장과 벽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진화를 향해 다가갈 수 없었던 야희성녀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

무너지는 벽 사이로 거미줄처럼 얽혀 붉게 빛나고 있는 현홍사가 보였다.

그걸 끊어 내려 월연비장을 뻗었지만, 닿기도 전에 야희성녀의 기운이 터져 나갔다.

퍼—엉!

“니미! 더럽게 질기잖아!”

야희성녀가 이제까지와 달리 저자의 걸패처럼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성질을 부리듯 월연비장을 계속해서 날렸다.

펑! 펑! 펑! 퍼-엉!

현홍사를 조밀하게 엮어 만들어진 옥혼진(獄魂陣)은, 일전에 숭산 자락에 설치했던 때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혼현마제는 귀천성의 머리인 동시에 환술에 능한 고수이자, 무림 최고의 진법가라 할 수 있었으니.

과거에도 그는 영혼마저 가둔다는 옥혼진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환술로 곤학진인의 몸을 찢어 놓았고, 천수현인 제갈길현을 환각으로 속여 만독에 중독시켰으며, 그 자리에 있던 야희성녀를 땅에 파묻으려 했던 전적이 있었다.

지금의 위력은 그가 이전의 힘을 회복하고 있는 과정이라 봐도 무방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를 죽일 절호의 기회일 수도…….

콰광----쾅! 쾅!

앞에서 다시 굉음이 울리고, 야희성녀의 발밑이 흔들렸다.

‘안 돼! 괜한 기대와 욕심으로 저 아이를 잃어서는 안 된다!’

야희성녀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모아, 가장 중요한 통로를 죄어 오고 있는 현홍사를 향해 월연비장을 날렸다.

퍼------엉!

태-앵!

현홍사 한 줄이 끊겨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야희성녀가 다시 힘을 내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잔해를 일일이 막아 낼 겨를이 없어 그녀의 몸에는 하나둘 상처가 늘어났지만, 야희성녀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 *

쉐에에에엑---!

콰---광!

진화의 검이 붉은 현홍사에 둘러싸인 혼현마제를 내리쳤다.

사방으로 번개가 튀며 돌이 더 크게 무너졌지만, 진화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벽이 무너지면서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게 나았다.

이만하면 야희성녀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잘되었다.

보는 눈이 줄었으니, 마음껏 날뛰어도 좋으리라!

진화의 입가에 들뜬 미소가 맺혔다.

쉐에에에엑---!

진화의 뇌전이 피가 섞인 듯한 자색에서 더 진하게 물들었다.

그리고 혼현마제의 기운을 뚫고 그를 감싼 현홍사를 베었다.

마침내 그를 보호하던 진법의 테두리를 깨부순 것이라.

타-앙!

“노-옴!”

혼현마제가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치며, 살기를 끌어 올렸다.

떨어져 나간 현홍사가 붉은 뱀처럼 진화에게 달려들었다.

카-아!

섬뜩하게 울어 대는 강철 뱀을 보며, 진화의 번개가 넘실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혼현마제의 공격을 비웃는 듯했다.

시끄럽게 울어 봤자 땅을 기어 다니는 미물일 뿐. 겁낼 것이 무에 있겠는가.

쉐에에에엑---!

진화의 검에 실린 뇌전이 가소롭다는 듯 붉은 뱀을 태워 버렸다.

그것도 순식간에.

닿는 순간 검은 재가 되어 날리는 현홍사를 보며, 혼현마제의 눈이 커졌다.

이제 보니, 남궁진화의 검강에서 뿜어진 기운이 전과 달리 검게 빛나고 있었다.

진화의 눈이 혼현마제를 향했다.

쉐에에에엑---!

천뢰제왕검법 낙엽.

까아아아아악----!

공기마저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하며, 진화의 뇌전에 갈라졌다.

탕! 탕! 타---앙!

사방으로 내리치는 번개에 혼현마제를 감싼 현홍사가 모조리 깨어졌다.

“이런……!”

당황한 혼현마제가 급히 몸을 피했다.

콰광광----쾅!

그 자리로 천장의 돌덩어리가 떨어졌다.

“허!”

혼현마제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터뜨렸다.

다행이라 해야 할까.

파스스스슷----!

커다란 돌덩어리가 소리도 없이 검은 재가 되어 흩어지는 것을 보며, 혼현마제는 오랜만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지금도 뿌연 먼지 속에서 검은 눈이 번뜩이며 저를 노리고 있었다.

‘남궁진화!’

대체 이 무슨 무위란 말인가.

겪어 보기 전에는 믿지 못했을 것이었다.

‘광마! 대체 어떤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인가!’

혼현마제는 괜히 자리에 없는 광마제를 탓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허어, 이 혼현이 쥐 새끼처럼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되다니. ……내 힘을 완전히 회복하고 움직였어야 했는데! 내가 놈을 과소평가한 것이야! 이곳을 나간다면, 광마제가 무엇을 노리고 저런 놈을 만들었는지 알아봐야겠구나! 으드득!’

옥혼진이 깨어지긴 했지만, 이제 이곳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목적을 달성했으니,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제 여기서 살아 나가야 할 것이었다.

‘저 괴물이 놓아 준다면 말이지.’

혼현마제가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재가 흩어지는 것과 함께 순식간에 제 기척을 없애는 진을 짰다.

하지만 급하게 짠 진이 언제까지 저 괴물의 이목을 가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위로!’

혼현마제가 천장을 보았다.

이곳을 무너뜨릴 계획을 하며 봐 둔 탈출로였다.

몸을 날린다면 놈이 눈치채겠지만…….

‘그래, 날 따라온다면, 그땐 이곳의 돌덩어리와 함께 파묻어 주마!’

도망칠 궁리를 하던 혼현마제가 순간,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입가에 요요한 미소를 흘리며 때를 보았다.

파스스스슷----!

진화와 혼현마제의 위에 있던 천장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듯 흔들리고, 혼현마제의 눈빛이 번뜩였다.

‘지금이다!’

혼현마제가 순식간에 진을 거두고 위로 뛰어올랐다.

그때.

“어딜 가려고!”

검은 번개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무, 무슨…… 크아아아악!”

어설프게 만든 진으로는, 완전히 기운을 풀어 낸 진화를 속일 수 없었다.

다만 진 속에 있는 혼현마제를 한 번에 죽일 수 없으니.

진화는 사냥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리고 혼현마제가 튀어 오르는 순간을 노려, 단숨에 그의 목을 꿰뚫었다.

“죽인다!”

쿠---웅!

이전보다 강해졌다.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한순간도 달달한 현실에 취해 비참했던 이전 생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했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복수심을 누르면서도, 때때로 온몸의 혼돈을 풀어 놓고 그때의 고통을 곱씹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네놈이다. 네놈이 역천마제의 부활뿐 아니라 귀천성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네놈마저 죽인다면, 남궁의 악몽은 그만큼 멀어질 것이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네놈들보다 더한 악마가 되는 일일지라도!

“타아아아아--!”

진화가 땅으로 떨어진 혼현마제를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끼아아아아아----!

주변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공기가 울었다.

검은 번개가 마치 추락하는 용처럼 거침없이 떨어졌다.

천뢰제왕검법 현천섬뢰-!

번-----쩍

눈앞을 가리는 섬광 속으로 혼현마제가 사라졌다.

펄---럭!

“아해야, 더는 안 된다--!”

야희성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진화를 부르며 달려왔다.

그녀는 진화의 허리를 잡아채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그들이 있던 바닥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까만 밤하늘로 올라섰을 때. 

진화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전부 내려앉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인림(人林)이라 불리던 노예시장 전부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 * *

펄—럭.

야희성녀가 진화를 안고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한쪽에서 다급하게 진화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공자님!”

“진화-!”

남궁구와 남궁교명, 현오를 선두로 관도생들이 진화를 향해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죽는 줄 알았잖습니까!”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이고, 살았네! 거 보게, 내가 이 작자는 부처님도 뱉어 내신다 하지 않았나!”

“헉! ……아아, 그 꽃 같은 얼굴에 상처라니!”

다른 이들이 진화의 무사함을 기뻐하는 동안, 나하연은 진화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몸을 휘청거렸다.

진화는 제 몸을 마음껏 주물럭대는 관도생들을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몸을 맡기고 있었다.

‘뇌전으로 쳐 내야 하나.’

이제는 다리와 엉덩이까지 주물럭대는 남궁구를 보며 진화가 심각하게 눈매를 좁혔다.

그때, 멀리서 사자후가 터졌다.

“야-----아! 이 쌍노무 자식들이 누구를 만지는 거냐!”

남궁진혜가 악귀 같은 얼굴로 달려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진화야, 안 돼요! 싫어요! 하면 죽인다---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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