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진력할 진(進) 불 화(火) : 악마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7)
다행이라 해야 할까.
“허어어엉!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으흑흑흑흑!”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흘렀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삶의 의욕을 놓아 버린 사람들이, 습관처럼 흐느끼는 소리.
심지어 죽은 친인 중에는 자신들이 죽인 이들도 꽤 될 것이다.
어쩌면 죄책감에 크게 울지도 못하는 것일 수도.
장가 부락의 참상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벌어진 대량의 죽음 앞에, 장안의 사람들은 슬퍼하는 것조차 만성이 되어 버린 듯했다.
“온 사방이 시체로군요.”
“장례 형식을 다 갖추다간 전염병이 퍼져서 산 사람들도 다 죽이겠어.”
현무단주와 적호단주가 성 밖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로 현무단과 적호단의 희생은 크지 않았지만, 희생이 적다고 아픔마저 적은 것은 아니었다.
“월하회의 상단에 부탁해서 시신을 먼저 정의맹으로 보내기로 했네. 우리가 함께하면 좋겠지만, 일단 이곳의 뒤처리를 해야 하니까.”
적호단주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때마침, 죽은 현무단원과 적호단원의 시신이 실린 관이 수레에 옮겨지고 있었다.
“가는군요.”
현무단주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바보 같은 새끼들. 급하면 그냥 다 죽여 버릴 것이지.”
결국 적호단주도 욕지거리를 뱉으며 하늘을 보았다.
죽은 현무단원과 적호단원 대부분은 악몽경에 당한 자들을 격리할 때, 그들을 죽이지 않으려 손 속에 사정을 두다가 불시에 당한 이들이었다.
물론 이번에 죽은 이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다만 현무단주와 적호단주는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죽어 버린 수하들의 유언조차 전할 수 없다는 게 미안할 뿐이었다.
수하들의 관을 실은 수레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현무단주와 적호단주가 집무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종남파 장문인과 살아남은 장안 중소 문파의 장문인들 그리고 죽은 이들을 대신한 자들이 자리해 있었다.
“마음이 무거운 자리입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우리는 할 일을 해야지요.”
“흐음.”
적호단주가 가장 상석에 앉았다.
이제 적호단주가 회의를 주도하는 데에 불만을 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야희성녀 님과 창천화룡 남궁진화가 나서서 환마제를 죽였습니다.”
적호단주는 일부러 진화의 별호를 내세웠다.
별호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무림의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니, 관도생이라는 것을 이유로 진화의 공을 평가절하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음, 환마제가 죽어 악몽경이 무너진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본래 악몽경이라는 것이 환마제의 기운으로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었으니, 그가 죽지 않았다면 그 ‘참혹한 난리’도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한편으로, 적호단주는 환마제를 죽인 공로를 진화와 야희성녀, 두 사람에게 나누었다.
적호단주는 환마제를 죽인 것은 분명 큰 공로이지만, 싸움이 끝난 후 사람들에게 원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야희성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어쩌면 어릴 때 너무 큰 공을 세운 진화에게 시기나 질투가 몰려들 수도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신룡에 오른 무위, 남궁이라는 배경. 그리고 양자라는 출신.
진화는 지금도 손쉬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적호단주는 진화에게 공을 주는 동시에 사람들이 납득하기 쉬운 방법을 찾은 것이다.
“죽은 이들은 한데 모아서 화장하고, 위령제를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게 무슨! 집단 장례를 하자는 것이오?”
“이대로 있다간 온 장안에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할 겁니다. 지금도 부패가 진행되고 있고, 짐승이며 벌레가 꼬이고 있죠. 약해진 사람들이 병에 걸려 죽기 좋은 환경입니다.”
적호단주가 펄쩍 뛰는 한 장로를 향해 말했다.
“각 문파의 문주님이나 필요한 경우 따로 장례를 치르도록 하시죠. 냉정한 말이지만, 시체를 빨리 처리해야 남은 사람들이 살 가능성이 커집니다.”
적호단주의 말에 사람들은 납득을 하면서도 무거운 표정이었다.
그때, 현무단주가 나섰다.
“환마제가 죽고 그 세력이 사라졌으니, 한동안 이곳 장안에도 평화가 오겠지요.”
평화라는 말에, 하나둘 고개를 들어 현무단주를 보았다.
“악몽경에 당했지만, 함께 싸운 이들입니다. 정성을 기울여 합동 장례를 치르고, 무당과 종남에서 나서서 위령제를 지내고 위령비를 세우지요.”
위령제와 위령비.
모두 산 사람들의 위안이었으나, 현무단주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개의 단어로 사람들은 죄책감이 조금 덜어진 얼굴이었다.
“현무단주의 말대로 당분간 이곳에 전쟁 위협은 없을 것이오. 다만, 인림으로의 출입은 당분간 엄금해 주시오. 곧 정의맹과 월하회, 한림회에서 조사단을 보내올 것이오. 그들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요.”
적호단주의 말은 일방적이고 권위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적호단주가 혀를 찼다.
권위의 다른 말은 위계질서라.
전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그것이, 다 끝나고 나서야 잡히기 시작했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었다.
* * *
진화와 일행은 야희성녀의 배려로, 혼란이 수습될 때까지 월하루에서 치료를 받고 몸을 추스르기로 했다.
장안 성안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 머무는 것도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혼현마제의 도착을 늦추기 위해 월하회의 희생도 컸기에, 화려한 객잔이 우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심지어 월하회주를 겁박하며 진화가 날려 먹은 별채 기둥도 여전히 부러진 채였다.
“허허허, 몸은 이제 괜찮은가? 성녀께서 찾아 계시네. 내가 안내하지.”
월하회주가 소탈하게 웃었다.
희생은 컸지만, 그만한 성과를 얻어 냈으니.
월하회주는 과거 불미스러운 일은 잊고, 진화 일행을 극진하게 대접해 주었다.
“저기로 들어가 보게. 어딘지는 알지? 저 부러진 기둥 뒤편일세.”
“…….”
“오, 기둥은 걱정 말게. 남궁세가에 따로 변제를 요구해 놓았으니.”
물론 진화에게 이곳을 보여 주는 것을 보면, 진짜로 과거를 잊었는지는 의문이었다.
진화는 제 어깨를 두드리고 가는 월하회주의 모습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저 가벼운 발걸음을 보자면, 이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안내를 맡은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놀라시면 어쩌지?’
진화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이전 생처럼 자신의 사비로 변제하는 것이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때, 별채 안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호호, 월하회주가 짓궂은 농을 하는 것이다. 걱정 말고 들어오너라. 남궁세가만은 못해도 월하회가 그런 자잘한 것까지 변제를 요청할 정도로 금력이 없진 않으니.”
야희성녀의 말에 진화가 깜짝 놀란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기척은 안에서 느껴지는데, 제 얼굴을 앞에서 본 듯 속을 꿰뚫고 있는 것에 놀랐다.
별채의 안은, 예상 밖으로 화려했다.
색색의 원석을 엮은 주렴과 화려한 장식의 가구, 장식품 그리고 채색이 된 다기까지.
단아한 귀부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야희성녀의 행색과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호호호, 원래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것이 좋아진단다. 겉으로 보기엔 단아하지만, 하나하나 따져 보면 값이 어마어마한 것이 진짜 귀부인의 사치거든.”
야희성녀의 말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부터 속내가 다 읽히는 듯한 느낌이 가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야희성녀에게 들킨 듯.
야희성녀가 손자를 보는 듯 자애로운 표정으로 진화를 보았다.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정적이 흐르고.
야희성녀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환마제를 죽인 공로를 나와 나누게 되어 유감이구나.”
첫마디가 의외였으나, 공적은 진화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윗전의 염려를 알고 있고, 적호단주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덤덤한 진화의 말에 야희성녀의 눈가 주름이 짙어졌다.
적호단주의 판단을 신뢰한다는 말은, 아직 야희성녀를 신뢰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라.
“호호호, 요 새침한 녀석!”
“……그런 건 부디 속으로 생각해 주시겠습니까?”
“네 속만 들키는 게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듯해서 말이다. 내 속내도 솔직하게 드러내 주려고.”
“괜찮습니다.”
진화가 야희성녀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왜 약하고 싸움도 못 하는 내가 이 일을 맡은 것인지 궁금했지?”
“…….”
진화가 눈을 데구루루 굴려서 야희성녀의 시선을 피했다.
역시, 제 속만 읽히는 건 불공평한 듯했다.
“이제 곧 인림에 남아 있는 흔적을 뒤지러 정의맹과 한림회의 진법가와 풍술사, 학사 들이 올 거란다. 사실 내가 필요한 건, 그 때문이지.”
진화가 의아한 듯 야희성녀를 보자, 야희성녀는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명기는 모시는 영감의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술을 따를지 옷자락을 풀지 알 수 있는 법이다. 혼현마제 그 영악한 놈이 천하제일의 진법가라면, 나 야희는 천하제일의 독심술사지. 세상에 나만큼 눈치가 빠른 이가 또 있을까.”
야희성녀가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혼현마제가 작정하고 파괴한 곳이다. 진법가들이 건질 수 있는 건 얼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놈이 파괴한 흔적에서 놈의 속내를 샅샅이 훑어 낼 거란다.”
파괴된 모양에서, 숨기고자 하는 것을 찾는다니.
야희성녀의 말에 영 설득력이 없진 않았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 이야기를 왜 제게 하는 것일까.
진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런 진화를 향해 야희성녀가 야릇하게 웃어 보였다.
“아해야, 내가 널 부른 것은 그 때문이란다. 네가 아는 것을 알려 주렴. 너는, 그 역천대법을 알고 있지 않니?”
“……!”
야희성녀가 꿰뚫는 것은 속내만이 아닌 것인가.
진화가 놀란 눈을 뜨고 야희성녀를 보았다.
“환마제의 방에서 네가 뭔가를 찾는 것을 보았단다. 까만 구덩이와 피가 담긴 것을 보는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지. 가엽게도 너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구나. 그렇지?”
야희성녀의 말에 진화가 얼음처럼 표정을 굳혔다.
“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란다. 물론, 네가 원하지 않으면, 정보의 출처는 영원히 새어 나가지 않을 거란다.”
“……그렇게 하기엔, 우리 사이에 신뢰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성녀께선 저를 보호해 줄 이유가 없습니다.”
“글쎄…….”
진화의 도발적인 물음에도, 야희성녀는 미묘하게 웃을 뿐이었다.
“확실히. 약한 것이 죽는 이유가 되는 세상이라는 건…… 정도인이 입에 담기는 위험한 생각이지.”
야희성녀가 진지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너는 왜 정도의 정의를 추구하지 않니?”
겨우 다섯 살.
그 나이부터 쭉 남궁세가에서 교육을 받았으니, 마땅히 명문 정파가 가져야 할 사고방식을 가졌어도 무방했다.
그런데 진화는 그들과 사고의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부터 진화는 한 번도 그들에게 속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희성녀는 진화의 그런 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이제까지 계속해서 진화의 속내를 읽어서 그것을 알려 줬으니, 저를 속이지 말라는 경고는 충분히 한 것이라.
진화도 굳이 거짓을 둘러댈 생각이 없었다.
“남궁이 정의를 추구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왔지만, 진화가 다시 정파인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순 없었다.
하지만 진화가 남궁세가 사람이라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충분한 답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야희성녀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입니까?”
오히려 진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호호호, 충분하단다. 남궁은 계속해서 정의를 추구할 것이고, 너는 그런 남궁을 지키고자 할 터이니.”
눈부신 섬광이 환마제를 죽이고, 혼현마제를 삼키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인재.
야희성녀가 애틋한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십이좌회라는 천하제일의 고수와 은거기인 들이 모두 나섰지만, 끝내 귀천성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어쩌면 귀천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세상에 없었던 인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바로 진화처럼.
“네가 계속 남궁세가의 편에 있는 한, 내가 널 도울 이유는 충분하단다. 그러니 아해야, 일단 네가 아는 것부터 뱉어 내겠니?”
야희성녀의 호의는 여전히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의 박력에 밀린 진화는 결국 붓을 들었다.
그리고 제가 다섯 살에 기억하고 있는 역천대법의 모습을 알려 주었다.
글이 아니라 사람을 읽어 내는 야희성녀.
그녀라면 자신의 기억에서 다른 이들은 알아내지 못할 것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 * *
잠시 후.
진화는 제가 기억하는 역천대법을 모두 적어 주었다.
야희성녀는 진화가 적어 내린 것을 보고, 안쓰러운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유년의 기억을 아직 가지고 있다니.
무엇보다 아이의 아픔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야희성녀는 아프다는 말 대신 다른 것을 꺼냈다.
“이전에 보았던 환마제와 혼현마제의 모습이, 진짜 그들의 모습이라 생각해선 안 된단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건 누구보다 진화가 제일 잘 알았다.
정의맹을 몰아붙이던 귀천성의 모습.
그리고 뇌왕에 오른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사로잡은 광마제의 압도적인 무위.
“붕괴된 육체로 장안 사람들을 악몽경에 가두었고, 제대로 무공을 쓸 수 없는 몸으로 인림을 무너뜨렸어. 지금 숨어서 힘을 키우고 있는 마제들은, 그들처럼 약점을 드러내지 않을 거란다.”
야희성녀는 선배로서 진화에게 경고했다.
“다시 전쟁이 시작될 거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때까지 조금 더 안전한 곳에서 성장하거라.”
야희성녀가 진짜 진화에게 해 주고자 했던 말이었다.
그녀의 경고와 당부에서, 진화도 이제야 야희성녀가 그를 부른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세가 사람이 아닌 다른 이에게는 처음으로 느껴 보는 호의라.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머니를 만난 듯, 야희성녀를 보는 진화의 눈빛도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참, 그곳의 성장이 필요하면, 월하루를 찾고. 예쁜 아이들로 내주마.”
“…….”
여러모로 맞지 않는 할머니였다.
대번에 눈빛이 퉁명스러워진 진화의 모습에, 야희성녀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
“으음, 우리 아이들의 자존심을 위해 그건 하지 말까? 호호호, 농이다. 일전에 보니, 네 누이의 서슬이 퍼래서 우리 아이들 머리채가 남아나질 않겠더구나. 호호호!”
야희성녀의 농담에 진화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용무를 마친 진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그런 진화의 뒤로, 야희성녀가 물었다.
“천하에서 제일 나쁜 놈이 누구인지 아느냐?”
“나쁜 놈, 말입니까?”
“살면서 너처럼 세상을 부술 듯이 검을 휘두르는 이를 본 적이 있단다. 그중 한 사람은 영웅이 되었지. 너는 네 할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부디, 네 할아버지처럼 모두를 지켜 내렴.”
야희성녀의 말에 진화가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는 내내 ‘나쁜 놈’이라는 말이 찜찜하게 남았다.
야희성녀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진화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기억 속.
원독에 가득 차서 세상을 부술 듯이 검을 휘두르던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역천마제와 제왕검.
“두 사람 모두 잔인하고 무지막지했지. 하지만 한 사람은 세상을 삼키려 했고, 한 사람을 세상을 구원하려 했단다. 검을 어찌 휘두를지는 상관없단다. 부디 악마가 아니라 영웅이 되거라.”
야희성녀가 진화를 향해 작은 바람을 전했다.
* * *
종남파의 일이 끝났으니, 관도생로서 진화 일행의 임무도 끝이 났다.
진화 일행은 다음 일정을 지시받기 위해, 적호단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형식적으로 임무의 종결을 알리고, 복귀 일정을 알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적호단주가 꺼낸 말을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정의무학관을 갔다가, 곧바로 휴가를 얻지?”
“그렇습니다.”
“다들 집에 가는 일정인가?”
“그렇죠?”
생각과 다른 전개에, 눈치 빠른 남궁구가 의문문으로 답을 했다.
그에 적호단주가 꾹 눌러 참으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정의무학관으로 가면 새로운 임무를 받을 거다.”
“새로운 임무요?”
“아아, 별건 아니야.”
적호단주의 말에 진화 일행이 더 불길한 듯 그를 보았다.
적호단주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심술궂게 웃었다.
“양주로 혼인을 위해 떠나는 이왕자와 제갈지현을 호위하는 일이다. 남궁세가나 패황권가 모두 가는 길이잖아.”
“에엑?”
“음.”
“……거부할 수는 없는 일입니까?”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동안, 진화가 진지하게 물었다.
“어, 안 돼.”
적호단주가 몹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