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193)화 (193/425)

남궁마제

맛 좋은 음식 진(珍) 따를 화(化) :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3)

식인 늑대 포사.

하남 일대에서 유명한 사파 고수이자 악당.

아니, 악당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는 한날 상인으로 위장에 부잣집 일가를 독살하고 겨우 그 집 곳간만 털었으며, 재미로 작은 마을 하나를 태우고 안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베어 죽인 일도 있었다. 금품을 갈취해서 사람을 죽이는 건 예사고, 금품을 빌미로 고리대를 놓아 일가족을 말려 죽이는 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다.

상대를 짓밟고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는 건, 그가 일생 동안 추구해 온 쾌락이었다.

비록 강간하고 죽인 여자가 사패천의 높은 쓰레기의 첩이었던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지만.

포사는 그조차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남을 떠나서 날개를 달게 된.

그런 의미로 진가현은 그에게 완벽한 곳이었다.

사람 많고 물자가 넘치며, 정의맹과 사패천의 영향력이 약해서 그가 마음껏 활개를 쳐도 되는 곳이니 말이다.

“내 뒤에 있는 남궁세가는 그들의 돈줄이 다치는 걸 극도로 싫어해.”

포사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당혜군에게 말했다.

놀란 토끼 같은 눈을 하고 대꾸도 못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사천당문의 독심화도 별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등신 새끼가……!’

당혜군은 눈앞에서 남궁세가를 들먹이고 있는 포사를 보며 정신이 아연해졌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뒤에 있는 진화의 눈치를 보았다.

진화의 눈이 푸른 번개로 번뜩이고 있었다.

‘이런 씨, 눈이 돌아갔네. 이러다가 현이까지 다치면…….’

당혜군은 눈앞의 왈패들보다 더 사악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을 보며, 다급하게 전보현을 보았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곧 울음을 터뜨릴 듯 걱정을 가득 담은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뒤로 빠져.’

당혜군이 전보현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전보현이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역시 제 눈짓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당혜군의 눈짓을 잘못 이해한 사람은 또 있었다.

당혜군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눈동자를 굴리는 모습에, 포사는 당혜군이 완전히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흐흐흐, 역시 당문도 별거 없군. 남궁세가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벌벌 떨어? 이 기회에 당문 계집의 눈물이나 뽑아 볼까? 가만 보니, 좀 사납긴 해도 미색도 상당한데.’

포사의 눈이 당혜군을 거쳐 전보현을 향했다.

포사의 눈이 야비하게 빛났다.

“생각 잘하라고. 사천당문도 옛날 말이지. 사천에 있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잖아. 남궁세가의 눈 밖에 나면, 네년의 집안에서 널 버릴지도 모른다고. 집도 버렸는데, 계집이라고 못 버릴까.”

“뭐야?”

포사의 선을 넘는 도발에, 당혜군은 돌로 머리를 맞은 듯 순간 멍해졌다.

당문의 세가 약해진 적도 없지만, 설사 가문의 세가 약해졌던들 사파 나부랭이에게 조롱당할 수준일까.

생각도 못 한 때에 전보현을 보고 마음이 흔들린 탓이다.

그러니 이런 쓰레기가 감히 제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아니겠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분노에, 당혜군의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네놈은 절대 곱게 죽지 못하겠구나.”

분노로 이성을 잃기 직전이라, 말을 하는 동안에도 치가 떨렸다.

당혜군의 살기와 함께, 짙은 녹색 기운이 평온을 잃고 날뛰었다.

갑작스러운 당혜군의 변화에 포사가 흠칫했다.

하지만 곧 당혜군을 향해 비릿하게 웃었다.

“네가 어쩔 건데? 싸우려고? 오, 드디어 당문 독심화의 앙칼진 손맛을 보는 건가? 물론 그사이에 전보현은 내 수하들에게 아까운 목숨을 잃겠지만. 흐흐흐!”

포사가 사람을 잘 괴롭힐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상대의 약점을 잘 알아보기 때문이었다.

포사는 당혜군이 전보현을 위험하게 두고 어떤 것도 못할 것이란 걸 알았다.

그때였다.

사아아악----!

온몸에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 든 것은.

휙!

포사가 순식간에 뒤로 물러서며, 제 뒤를 보았다.

그 순간.

파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악--!”

“아아악!”

마른 하늘도 아닌, 건물 안에 치는 날벼락은 대체 뭐란 말인가.

수하들의 비명을 들으며, 포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튀어나올 듯 커진 포사의 눈에, 수하들을 가뿐히 지르밟으며 한 사람이 걸어왔다.

남자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얼굴에 홀린 듯 눈을 뗄 수 없는 동시에, 저도 모르게 자꾸 뒷걸음질 치고 싶어졌다.

본능이 제게 ‘도망가라’ 경고하고 있었다.

“본 공자를 제외하고, 그대의 뒤에 있다는 남궁세가에 대해 말해 보겠나?”

부드러운 음성이 포사의 목을 죄는 듯 다가왔다.

걸음걸이, 표정, 눈빛까지, 남자에게선 날 때부터 존재했을 법한 위엄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본 공자를 제외하고?’

포사는 겨우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남자의 말을 되새김질 했다.

‘본인을 제외한 남궁세가라니. 그럼 저자는……!’

포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지는 것을 보며, 남자가 천상의 선녀처럼 웃었다.

“이 진가현에 남궁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을 제외하고 어떤 남궁이 있다는 거지?”

“나, 남궁진화!”

모르는 이름이 아니었다.

제왕무적검의 아들이자, 남궁세가에 떠오르는 두 신룡 중 하나라.

‘천상화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외모에 제왕의 번개를 다룬다는?’

온 몸으로 소문이 거짓이 아님을 보여 주는 듯한 남자였다.

포사는 상상치도 못했던 진화의 등장에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이내 벽에 닿은 듯 무언가에 부딪혔다.

“헉! 뭐, 뭐야?”

포사가 놀라 뒤로 보았다.

그곳엔 남궁구가 비릿하게 웃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히 어떤 쓰레기가 남궁 행세를 하고 있는 거지?”

“거짓말이면 그 혓바닥부터 찢어 주마!”

남궁교명이 사납게 포사를 위협했다.

어느 쪽이 왈패인지 모를 만큼, 자연스러운 협박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포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꿈인가 싶었지만, 바닥에는 여전히 수십 명의 수하들이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위기였다.

본능이 인생 최대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듯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 일단 도망을……!’

아무리 눈을 굴려 보아도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포사가 눈을 굴리자, 눈앞에 있던 진화가 해사하게 웃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털을 세울 때, 그 앞의 고양이가 어떻게 웃었을지 알 것 같은 미소였다.

파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악!”

앞에서 번개가 번쩍이는 동시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고통이 그를 덮쳤다.

아니, 포사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구, 교명, 이 쓰레기의 뒤에 어떤 남궁세가가 있는 건지 알아 와라.”

“충.”

진화가 쓰러진 포사를 비웃으며 명을 내리고,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신이 난 얼굴로 쓰러진 포사를 주워 들었다.

남궁세가의 이름이 높으니 이런 일까지 생기는 것인가.

뭔가 기분이 나쁘면서도 뿌듯한 일이었다.

당혜군은 그때까지도 쓰러진 포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걱정 마,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거니까.”

진화가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굳이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잔챙이였지만, 저런 사파도 되지 못한 쓰레기가 남궁의 이름을 더럽힌 것을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 * *

“아, 누추하지만 이곳이 전가장입니다.”

전보현이 일행을 제 집으로 안내했다.

언제까지 만두가게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을 수 없었기에, 전보현이 일행을 제 집으로 안내했다.

“이놈들을 넣어 둘 곳은?”

“아, 저, 저기 광에 넣으면 됩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서…….”

전보현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하지만 현오와 팽가 형제에게 중요한 건, 한시라도 빨리 짐짝들을 내려놓을 곳이라.

“으읏차-!”

퍽퍽-철퍽-!

퍼-억! 퍽!

현오가 수레를 들자, 그곳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다.

다 떨어지지 못한 이들은 팽가 형제가 손수 들어서 던졌다.

“상전 났네. 인질 팔자가 상전 팔자로군! 만두도 못 먹고 이게 뭔가!”

현오가 혀를 차며 불만을 토했다.

만두가게에서 여기까지 실어 온 왈패를 두고 하는 말 같았지만, 사실은 진화에게 하는 말이었다.

놀랍게도 왈패들은 진화가 보낸 기운에 눌려 정신만 잃었던 것이라.

쓰러뜨려 놓고 신경도 쓰지 않는 진화를 대신해서 현오와 팽가 형제가 챙겨 온 것이었다.

“여기는 제 어머니 되시고, 여긴 제 동생들입니다.”

“아이고,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다.”

“혜군 누나-!”

“언니이---!”

전보현의 아픈 어머니가 일행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동생들은 당혜군을 알아보고 그녀를 반갑게 끌어안았다.

당혜군과 키가 비슷한 아이부터 반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까지.

“하나, 둘, 셋, 넷…… 줄줄이 어린 동생이 넷이네.”

“거기에 운신이 힘든 어머니에 전가장을 이 꼴로 만든 도박에 미친 숙부, 정신 못 차리고 사업을 벌여 빚을 늘이는 형님까지 있지.”

안타까운 눈으로 전보현의 동생들을 보던 현오와 팽가 형제는, 나하연의 설명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을 짐이라 말하긴 그렇지만.

집안이 빚더미인 상황에서 전보현 외에는 생계를 꾸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

“데릴사위를 갈 처지가 아니구먼.”

“저 정도면 데릴사위를 청한 당혜군이 양심이 없는 거지.”

현오와 팽가 형제가 당혜군을 향해 혀를 찼다.

집안의 유일한 가장을 빼내 가는 악당을 보는 듯한 시선에, 당혜군이 발끈했다.

“그래서 차였잖아, 이 망할 자식들아!”

당혜군의 솔직한 말에, 오히려 전보현이 더 미안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정작 당혜군은 당당한 얼굴로 전보현을 보았다.

“상황이 그때보다 더 안 좋은 거야? 네가 버는 수입이 상당할 텐데?”

당혜군이 물음에는 안타까움과 걱정, 약간의 분노를 담겨 있었다.

적지 않게 벌었을 텐데, 왜 아직 이 꼴이냐는 책망이었다.

그에 전보현이 한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그게…… 부끄럽지만 의약방까지 빼앗긴 터라, 수입을 만들기가 쉽지 않게 되어서요. 왕진 의원 일과 필사를 하면서 겨우 현상 유지만 하고 있습니다.”

궁색하고 구질구질한 가난에 대한 이야기.

미련이 철철 넘치는 전 연인에게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전보현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바닥까지 내보이고 난 후련함이 반, 당혜군이 미련 없이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말을 하고 난 전보현은 이전보다 밝은 얼굴로 당혜군에게 웃어 보였다.

“그때, 그 인간 망종들만이라도 죽였어야…….”

당혜군은 작금의 사태를 만든 전가장의 두 인간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한편.

모두가 안타까운 얼굴로 헤어진 연인과 전가장의 사정을 듣고 있는 동안, 진화는 전가장을 둘러보았다.

구구절절한 연인의 사연보다 훨씬 눈길을 끄는 장원이었다.

현에 있기에도 제법 커다란 장원.

일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곳곳에 해지고 부서진 곳이 보이지만, 정원과 건물의 배치가 여느 명가 못지않았다.

‘위치도 진가현의 중심부지. 꽤 값이 나가는 장원이겠어.’

진화는 포사와 그 왈패들이 왜 전보현을 그렇게 괴롭히고 모욕을 주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직 빼앗을 것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깟 왈패들이 먹기에는 너무 크군. 정말로 그 포사 놈의 뒤에 누군가 있는 것인가?’

진화는 화초가 있어야 할 정원에 파가 심어져 있는 것을 모르는 척하며 장원 곳곳에 눈을 돌렸다.

그때,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들어왔다.

심각하게 굳은 표정에 분위기마저 심상치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문제가 이상해졌어, 도련님.”

“이들의 자금 출처가 본가 청화상단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포사의 입에서, 본가 장로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말에 진화의 눈이 커졌다.

“남궁의 장로라고?”

설마 남궁을 사칭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남궁세가가 배후에 있었을 줄이야.

“……으드득!”

저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제왕검을 비롯한 가족들이 목숨 바쳐 지킨 명예와 신념 뒤에 숨어, 누가 감히 검은 이익을 탐했단 말인가!

“획기적인 자살 방법이군.”

진화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고운 얼굴에 단단하게 꼬인 심사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그 장로의 이름은 뭐라는데?”

“육장로 안상범이라는군.”

“안상범?”

진화도 처음 듣는 이름에 눈썹이 들썩였다.

이번 생은 물론이고, 이전 생에서도 들어 본 적 없던 이름이었다.

“이번에 남궁도와 함께 남궁문, 남궁백의 빈자리에 새로 들어온 장로 중 하나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전 생에 집안을 망친 이들을 대신해서 들어온 자가 다시 남궁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니.

“쓰레기 보존 원칙이라도 있는 건가?”

얄궂은 운명 같은 연결 고리에, 진화가 코웃음을 쳤다.

“일단은 청화상단부터 가지.”

진화의 결정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앞을 열었다.

“어쩔 셈이야, 도련님?”

“가법에 따라…… 전부 날려 버릴 거다.”

언제부터 그런 가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군소리 없이 진화의 뒤를 따랐다.

“어어, 같이 가지!”

“남궁의 일이다. 마음은 고맙지만 소림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현오가 뒤를 따르려 하자, 남궁교명이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하지만 현오도 순순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전혀 끼어들 생각 없네. 하늘에 맹세코, 부처님의 이름으로 절대 구경만 하겠다고 약속하지.”

“뭐, 이런…… 꺼져, 이 미친 땡중아!”

중간에 생략된 수많은 나쁜 말들이, 남궁교명의 눈을 통해 전해진 듯했다.

“이대로 물러나라고? 나는 눈 뜨고 만두도 뺏겼단 말이네! 부처님의 이름으로 절대 물러서지 않겠네!”

“부처의 이름을 그런 데 쓰지 말라고, 이 미친 땡중아!”

남궁교명이 버럭 하는 가운데 현오, 그리고 슬며시 나하연과 팽가 형제까지 따라붙었다.

“구경하러 가는 거 아니야. 전가장을 괴롭힌 놈들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뿐이야!”

당혜군이 당당하게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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