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맛 좋은 음식 진(珍) 따를 화(化) :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5)
이왕자 한문태와 제갈지현을 태운 혼례 행렬이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혼례 행렬이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크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황하 유통권을 쥔 오왕부의 부와 무림 오대세가라는 제갈세가의 결합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면서, 그들의 위세를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그들의 의도대로, 사람들의 혼례 행렬을 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와아아아! 가마가 진짜 커요!”
“저건 마차라고 해야 하나? 신부를 태웠으니 가마라고 해야 하나?”
“아무렴 어때? 오왕부 왕자님과 무림의 공주님이나 진배없는 제갈세가 영애의 혼례 행차라더니…… 정말 멋지네!”
사람들의 감탄 소리가 혼례 행렬은 물론 마차 안까지 들렸다.
“근데, 신부는 저-기 있는데요?”
“응?”
“어머나, 세상에! 정말 아름다운 분이네요.”
“그런데 왜 신부가 말을 타고 갈까요?”
밖에서 들리는 말에, 붉은 면사 속 제갈지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마차의 창문을 열고, ‘신부가 왜 밖에 있어! 신부는 안에 있다고!’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경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소리를 지를 순 없으니, 대신 말을 타고 있는 누군가를 욕할밖에.
‘망할 자식!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어! 약혼식에서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천풍무의를 입고 와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더니!’
사실, 그때 남궁세가의 직계들은 모두 천풍무의를 입고 참석했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인사들도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참석했었다.
다만, 유독 남궁진화의 미모가 제갈지현의 약혼식 복장의 화려함을 뛰어넘었을 뿐이었다.
그때의 굴욕을 잊지 못하고 있던 제갈지현은 속만 끓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녀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이 새로 생겼다.
“흠흠, 그러지 말고 이제라도 저자에게 다른 마차에 오르라고 권유해 보는 건 어떻겠소? 호위를 서는 놈이 신부 마차보다 눈에 띄어서야…… 쯧.”
눈치 없이 그녀의 복장을 뒤집는 한문태였다.
‘신경 쓰지 마라, 저들이 아직 신부의 얼굴을 못 봐서 그렇다.’라고 말할 줄 모르는 멍청이.
심지어, 이제 그녀의 부군이 된 이왕자 한문태는 정의무학관 입관 당시 남궁진화를 희롱하다가 팔이 부러진 이력이 있었다.
붉은 면사 속에서 제갈지현이 매서운 눈빛으로 한문태를 노려보았다.
“그러면 좋겠지만, 남궁 공자에게도 임무가 주어졌으니…… 양주에 도착한 뒤에 다시 권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뭐, 부인이 괜찮으면 그러든가.”
제갈지현의 말에 한문태가 심드렁하게 답했다.
제갈지현은 제 말의 행간은 읽을 생각도 없는 한문태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런 자이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조금만 더 명민했다면 좋겠지만, 제 손 안에 넣고 움직이기에는 이런 멍청함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
제갈지현은 작은 불편함은 접어 두고 그녀가 꿈꾸는 미래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밖에서 작은 소란이 들렸다.
“무슨 일이냐?”
이왕자 한문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밖에서 병사 하나가 다가와 창문을 열었다.
그는 오왕부에서 보낸 병사들을 통솔하는 군위로, 실질적으로 혼례 행렬을 호위하는 책임자였다.
“마마, 마적입니다! 잠시 소란이 있을 듯합니다!”
다급함이나 불안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그의 말에 이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제갈지현이 벌떡 일어섰다.
“남궁 공자를 지켜야 합니다! 그가 다쳐선 절대 안 됩니다!”
제갈지현이 다급하게 창가로 와서 군위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이왕자가 대번에 얼굴을 구겼다.
“아니, 그놈을 왜 지킨단 말이오?”
이제까지 참고 있던 짜증이 단번에 드러난 말투와 표정이었다.
제갈지현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이왕자의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의 군위에게 다시 당부했다.
“군위, 오왕부의 중요한 손님이니, 그를 지켜야 합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군위가 이왕자와 제갈지현의 눈치를 보다 물러나고.
탁!
제갈지현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창문을 닫았다.
그녀는 제게 제대로 된 호칭을 붙이지 않는 군위의 태도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이왕자였다.
“부인, 방금 본 왕자의 말을 무시한 것이오?”
눈치 없이 들려오는 불평에, 제갈지현이 붉은 면사를 걷고 이왕자를 노려보았다.
“전들 좋아서 그런 명을 내렸겠습니까! 저자가 정녕 누군지 모르십니까?”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
제갈지현이 작정하고 노려보자, 이왕자가 주춤거렸다.
“남궁진화! 남궁세가의 직계입니다. 오왕부의 표물이 황하를 지날 때 꼭 들러야 하는 포구 중, 가장 큰 곳이 남궁세가의 소유임을 잊으셨습니까?”
“하, 하지만 양자이지 않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답답한 소리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칠 순 없으니, 제갈지현은 조용히 이왕자를 노려보며 침묵을 활용했다.
“왕부에선 핏줄이 전부일지 모르지만, 무림 세가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남궁에서도 몇 없는 창천패를 가진 직계라는 겁니다. 남궁세가의 모든 이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 곱상한 놈이 그런 권한을 가졌다고?’
나지막한 제갈지현의 말에, 이왕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번 혼례로 왕자님께선 무림 세가의 힘을 얻으셨습니다. 그럼 다음 필요한 것이 뭐겠습니까? 공적(功績). 남궁세가와의 거래가 왕자님의 가장 큰 공적이 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 왜 저자를 지켜야 하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아, 알겠소!”
제갈지현의 말에 이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사태 파악이 된 듯한 이왕자를 보며, 제갈지현이 혀를 차며 다시 붉은 면사로 얼굴을 가렸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창천패라니. 대체 언제 쥐여 준 거지?’
제갈지현은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한 현실에 조용히 눈을 감고 속에 있는 화를 다스렸다.
* * *
진화가 창천패를 가진 건, 처음 정의무학관에 올 때부터였다.
창천패는 남궁세가의 직계를 상징하는 패였고, 진화에게는 귀한 신분패에 지나지 않았다.
진화는 그저 집을 떠나는 제게 그걸 쥐여 주는 어른들의 마음을 감사히 받았을 뿐이었다.
진화가 창천패가 가진 힘을 알게 된 것은, 이번 임무를 나오기 직전이었다.
사흘 전.
이번 임무로 불퉁하게 입이 나온 진화에게, 남궁진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창천패의 진짜 힘을 알려 주었다.
“네? 이게요?”
“하하, 그럼 이 창천패가 무엇인 줄 알았더냐? 태상가주님과 가주님을 제외한, 남궁세가의 모든 것이 그 패 앞에 부복할 거다. 포구 하나 열고 닫고는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지.”
남궁진휘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잠시 후, 남궁진휘는 진화가 제 말의 절반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혹시…… 포구…… 모르느냐?”
“포구가 왜요?”
말똥말똥하게 깜박이는 눈을 보자니, 남궁진휘는 얼굴이 뜨끈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진화 앞에서 혼자 악당처럼 웃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그라도 조금 부끄러워진 것이다.
“흠흠, 오왕부에서 황도로 표물을 옮기려면, 중간에 지나는 포구들이 있다. 그중에 가장 큰 포구가 우리 남궁세가의 소유고. 마침 새로 계약을 할 때가 되었으니, 오왕부에서는 그 포구의 사용권을 연장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고. 다만, 그 거래를 누구 손에 쥐여 줄지는 전적으로 네 마음에 달렸다.”
“네? 제게요?”
이번에는 정말로 진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화는 남궁진휘의 말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가문의 이권에 관심이 없었을 뿐,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 없단다. 오왕부의 분위기만 살펴도 좋다. 어느 쪽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우리에게 호의적인지. 꼭 거래를 확정 짓지 않아도 된단다.”
남궁진휘는 자상한 얼굴로 진화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다만, 제갈세가가 이 이상 힘을 갖는 건 좀 그렇지? 네가 원하는 쪽에 힘을 쥐여 주렴. 네 재량에 맡기마.”
그리고 남궁진휘는, 조금 심술궂은 얼굴로 웃었다.
마지막 남궁진휘의 표정을 떠올린 진화가, 지금의 상황을 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부잣집 혼례 행렬에 눈이 먼 마적 떼가 달려드는데, 오왕부의 군사들이 신랑신부의 마차는 물론 진화의 앞까지 막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날 싫어하는 걸 티내면서도, 어쨌든 거래를 해야겠다?’
진화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붉은 면사로 얼굴을 가렸는데도, 온몸으로 불쾌한 기색을 풀풀 풍기던 제갈지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남궁구가 수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또 불길하게 웃는 거야? 도련님만 뭐 재밌는 거 있어?”
“그냥, 지금쯤 제갈지현의 속이 얼마나 빨갛게 달아올랐을지, 그게 떠올라서.”
“아, 하긴.”
남궁구도 진화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교명은?”
“제갈 놈들에게 신세 지지 않는다면서 싸우고 있어.”
남궁구의 말에 앞을 본 진화는, 이내 마적들 사이를 휘젓고 있는 남궁교명을 발견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겐 티끌만큼도 빚지지 않으려는 것이, 딱 남궁교명다웠다.
남궁교명의 활약으로 마적 떼는 금방 정리되었다.
어쨌든 정의무학관의 이번 임무 책임자로서, 진화는 신랑신부의 안부를 묻기 위해 마차 옆으로 말을 몰랐다.
똑똑.
진화가 창문을 두드리자, 스르륵 창문이 열리다가…… 멈칫했다.
창문을 두드린 자가 진화인 것을 뒤늦게 발견한 듯했다.
진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안에는 무탈하십니까? 마적 떼는 남궁교명이 대부분 쫓아냈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앞으로는 마적 떼 정도는 병사들에게 맡기고, 그대들도 편히 가게.”
진화의 말에, 이왕자가 조금 멈칫하다 대답했다.
진화의 기감에 제갈지현이 이왕자에게 뭔가 전음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녀가 시키는 대로 말하는 것이리라.
‘벌써 공처가 다 됐네.’
진화가 이왕자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좀 쉬고 싶은 참이었거든요.”
“그, 그리하시게.”
“예,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탁.
진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창문이 매섭게 닫혔다.
진화는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안에서 제갈지현이 ‘그새를 못 참고 홀리셨습니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번 일이 꼭 재미없지만은 않겠군.’
오왕부의 교역에는 크게 관심 없는 진화였지만, 제갈지현이 부들거리는 건 썩 마음에 들었다.
* * *
남궁세가 본가
남궁가주는 작은 송골매와 남궁진휘가 보내온 보고를 읽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놈이 안상범의 이름을 말했다는군. 진화가 그걸 용케 알아차렸어.”
“놈의 꼬리가 이제야 잡히나 봅니다.”
남궁경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다만 그가 관심 있는 쪽은 안상범이 아니었다.
“우리 진화에 대해 다른 말은 없소?”
“허허, 별다른 말은 없구나.”
“에이, 그런데 왜 웃고 난리요? 뭐 기쁜 소식이라고…….”
남궁경이 남궁가주를 타박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남궁가주가 동생을 놀리려 한 것이라.
“하하하하하!”
남궁경이 속아 넘어가는 것을 본 남궁가주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야 남궁가주의 장난을 알아차린 남궁경이 옆에서 콧김을 뿜었다.
하지만 동생을 놀린 지 어언 사십 년.
폭발하기 전에 멈추는 것쯤은, 남궁가주에게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진화가 귀여워서 말이다.”
“우, 우리 진화요? 뭐 다른 소식 있습니까?”
“허허허, 고 녀석이 창천패가 뭔지 정확히 몰랐던 모양이야. 점원에게 신분패처럼 던졌다는구나.”
“그걸…… 던져요?”
남궁경조차 황당한 표정이었다.
“허허허허, 이번에 진휘가 설명을 해 준 모양이야. 눈이 휘둥그레져선 창천패를 품속에 깊이 넣더라는구나. 귀엽기도 하지.”
“으흐흐흐, 내 새끼, 놀랐나 보군요.”
늘 그렇듯, 진화의 전서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진화의 전서에는 항상 그가 좋았던 것만 쓰여 있는 터라, 그가 실수한 일이나 부끄러운 일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자식의 이야기에 한바탕 웃고 나자, 다시 걱정이 밀려들었다.
“그나저나 오왕부라니…….”
“진화가 잘하겠지.”
“흥, 그 지독한 여자가 내 새끼를 건드리면, 나는 뭐 가만있을 줄 알고요? 그 여자 머리털을 죄다 뽑아서 비구니 절로 넣어 버릴 겁니다.”
남궁가주는 이번 기회에 진화에게 직계 공자로서의 역할과 권한을 일깨워 주자고 했고, 남궁경도 동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비의 눈에 자식은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아서, 걱정을 숨길 수 없었다.
그 자식이 경지를 넘은 무인이라 해도 말이다.
* * *
오왕부 자소궁.
금각과 색색의 칠, 온갖 희귀한 장신구로 가득한 방이었다.
심지어 바닥조차 서역의 양탄자가 깔려서, 구름 위를 딛는 듯 가뿐했다.
황제의 방인가 싶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방에는, 방만큼이나 사치스러운 여인이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오왕부에서 가장 화려한 자소궁의 주인, 홍신왕비 곽경란이었다.
다섯 명의 시녀가 줄 지어 보석을 들고 있고, 상궁 하나가 왕비의 몸에 순서대로 장신구를 대어 주었다.
왕비는 첫 번째 비취 목걸이는 별로인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왕자마마의 혼례 행렬이 양주 땅을 밟았다 합니다. 이번 행렬에는 정보대로 남궁세가의 소공자가 합류해 있다 합니다.”
내관의 말에, 왕비의 얼굴이 굳었다.
“그놈이지? 우리 왕자의 팔을 부러뜨린 자가!”
“마마, 큰 경사를 두고 오래전 불미스러웠던 일은 잠시 제쳐 두시지요.”
“뭐?”
무표정하던 왕비가 갑자기 돌변하며, 비취 목걸이를 거울로 던졌다.
촤아아아악-!
“천한 무부의 자식이 왕자의 몸에 손을 댔다는데, 그걸 어찌 잊으란 말이냐!”
왕비가 매서운 눈으로 내관을 째려보았다.
그러나 서슬이 퍼런 왕비의 기세에도, 내관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첫째, 남궁은 천한 무부라 하기에 거대한 부과 권력, 무력을 쥔 곳이지요. 둘째, 남궁의 소공자가 창천패를 쥐었다 하니, 필시 이번 왕부와의 거래권을 가졌을 것입니다. 셋째, 그 거래권이 이왕자께서 가장 손쉽게 그리고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공로지요.”
내관이 고개를 들어 왕비를 보았다.
시집을 오기 전 그녀를 가르치던 스승이자 총관 출신으로, 자소궁에서 그녀의 기세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동시에 결코 그녀에게 그릇된 조언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흐음. ……마음에 들지 않아.”
내관과 눈빛을 마주하던 왕비가, 대번에 누그러진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옆에는, 상궁과 궁녀들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떨어진 비취 목걸이를 수습하고 다음 목걸이를 내밀고 있었다.
“거래는 마음이 아닌 돈이 오가면 그만이지요.”
“약관도 안 된 애송이라지?”
“소문에는 천하제일미라 부르기 손색이 없는 외모에 신룡이라 불릴 만한 무위를 가졌다 합니다.”
“흥, 그래 봐야 사내지. 그맘때의 사내는, 마음을 흔들 약점이 많은 법이야.”
홍신왕비가 마침내, 세 번째 진주 목걸이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려 명치까지 내려오는 목걸이를 다섯 겹이나 하고서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