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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196)화 (196/425)

남궁마제

맛 좋은 음식 진(珍) 따를 화(化) :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6)

딴따단. 딴딴. 따라라라.

풍악이 올리고, 금가루가 흩날렸다.

오왕부 궁성인 금호성이 이름처럼 온통 금과 붉은 띠 장식으로 가득했다.

왕비 소생의 왕자가 결혼하는 날이라서인지, 오왕부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심지어 진화 일행이 오왕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랬다.

“와아아아아아----!”

“신랑, 신부다!”

“이왕자님--! 왕자님---!”

왕비궁에 대한 인심이 나쁘진 않은 듯, 수많은 백성들이 거리에 나와 이왕자와 제갈지현을 반갑게 맞았다.

제갈지현도 이번만큼은 신부가 맞냐고 의심을 살 일이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면사로 가리고 이왕자와 같은 화려한 황금 관을 쓰고 있어서, 척 봐도 신부라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와……!”

“무슨…… 헉!”

물론 진화가 지나가는 순간 맴도는 기묘한 침묵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오왕부 행차와 동시에 곧바로 화려한 혼례식이 진행되고, 진화 일행은 호위자에서 정식 손님으로 오왕부에 초대되었다.

“남궁세가 제왕검의 세 번째 손자이자 제왕무적단주의 아들, 남궁진화라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그렇군! 남궁제일검의 외아들이 누군가 했더니, 자네였군. 만나서 반갑네. 하하하하!”

오왕 한유비가 호탕하게 웃었다.

오왕은 전체적으로 살집이 있는 둥글둥글한 얼굴에 가늘고 긴 눈, 봉긋 솟은 볼과 복스러운 코가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인상적인 중년인이었다.

-이왕자는 왕비가 혼자 낳았나 보군.

남궁구의 전음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지만 진화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이왕자 한문태와 전혀 닮지 않은 것만은 아닌 듯했다.

오왕과 진화의 만남을 두고 양쪽에 쭉 늘어선 신료들의 눈초리가 범상치 않았다.

일단, 진화가 무릎을 꿇고 부복하지 않은 점, ‘천세’를 외치지 않은 점을 두고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는 쪽이 반.

나머지의 반은 진화에게 호기심을 드러내며 연신 그를 살피기 바빴다.

자세히 살펴보면, 원로대신을 제외하면 세 부류 정도로 나뉘었다.

“저, 저, 너무 무례하지 않소?”

“조용히! 전하께서 아직 황제 폐하의 첩지를 받지 못했으니, 남궁세가에서 그 점을 들고 나온 것이라면 곤란하오. 괜한 분란 만들지 말고 조용히 넘어갑니다.”

“그렇소. 남궁세가가 양주 목사의 손을 들어 준다면, 우리 오왕부의 입지가 이전보다 더 줄어든다는 것을 모르시오?”

“허! ……약아빠진 무부들 주제에, 어쩌다 저런 놈들 눈치까지 봐야 하는지……. 쯧쯧.”

늙은 노신들의 말은 그나마 충성스러웠다.

오히려 문제는 진화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자들이랄까.

“음, 별것 없어 보이는데?”

“생긴 것은 반반하니 봐 줄 만하군.”

“에끼! 저게 어디 그냥 봐 줄 만한 수준인가? 그 집 딸보다 훨씬 예쁘구먼.”

“뭐야?”

“쉬-잇! 그래 봐야 사내 아닌가. 다들, 여식들은 불러 놓았겠지?”

“암, 이왕자도 제갈세가 여식과 혼인을 하는 판국에, 남궁세가 직계라면 차고도 넘치지 않나? 흐흐, 일이 잘되면 거래권도 얻고 남궁세가와 끈끈한 연줄이 생기는 것이니, 아침 일찍 여식을 불러 일러두었네.”

신료들의 말이 갈수록 가관이었다.

진화의 외모를 두고 희롱 섞인 짙은 농을 주고받는가 하면, 여식의 옷 색을 청색으로 했다는 것부터 남궁세가 소공자가 앞으로 가지게 될 부귀영화를 두고 킬킬대는 것까지.

그들은 굶주린 이리처럼 진화와 남궁세가를 향해 침을 흘려 댔다.

“……왕비께서도 나서셨다지?”

“음, 왕비야말로 이왕자를 제갈세가 여식과 혼인시킨 장본인이지 않나.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계신 거지.”

“그럼 혹 왕비님이 공주님을…….”

“에끼! 그런 소리 말게! 전하께서 일왕자님의 혼사는 중앙 대신들 중 찾고 있다 하지 않나. 왕비 마마에겐 태복령이 계시니, 지금 당장 무력이 필요해서 며느리는 조금 못한 집안에서 찾으신 게지.”

같은 정비 소생이나, 일왕자는 정확하게 죽은 전 왕비의 소생이라.

오왕은 장자인 일왕자를, 왕비는 자신의 아들인 이왕자를 왕세자로 은근히 밀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아끼는 이가 있다면, 바로 장녀이자 유일한 공주인 화숙 공주였다.

“하긴 금지옥엽 화숙 공주에게 무림 세가라니, 가당치도 않지. 무조건 중앙으로 보내지 않겠나.”

“그런데 그런 것치곤…… 연회에 공주도 참석을 시킨다던데?”

“오라비 혼인 연회이니 참석하는 거겠지! 천한 무부 주제에 가당키나 하나! 세상이 혼란하니, 저런 무부들이 기세를 펴는 게지. 나라 꼴이 어찌 되려는지!”

“어-허! 자네도 입조심하게. 어쨌든 왕비께서 저자를 잡아 이왕자님의 공으로 돌릴 거라 하니, 괜한 불화를 일으키지 않게 조심하게.”

“흥! 일 없네. 관심도 없으니!”

왕비의 세력으로 보이는 신료들 사이에서는 여러 말들이 나왔다.

그들은 남궁세가는 물론 무림을 무시하는 경향이 뚜렷했지만, 결국은 왕비궁의 심사를 살피겠다는 말뿐이라.

어느 쪽에 있는 자들이 더 한심한지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오히려 진화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진화를 관찰하고 있는 부류랄까.

“허허허! 남궁세가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모두 나가서 연회를 즐기도록 하지.”

“황공하옵니다, 전하!”

오왕은 친히 걸음 하여 진화를 밖으로 안내했다.

* * *

퉁퉁한 풍채만큼 크고 톡톡한 손이 진화의 손을 잡았다.

‘음?’

놀란 진화가 눈썹을 까딱이긴 했으나, 오왕의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제법 따뜻한 손은 친근하게 진화를 밖으로 끌었다.

웃고 있는 눈에도 어떤 교묘한 술책이나 속내가 보이지 않았다.

‘선량하고 자비로우며 욕심 없는 호인이라 했던가.’

진화는 남궁구에게 들었던 오왕에 대한 평가를 상기했다.

“허허! 저기로 앉지.”

사람 좋아 보이던 오왕은 끝까지 자상하게 진화의 자리까지 안내해 주었다.

대전 앞에는 어느새 거대한 야외 연회장이 마련되었는데, 정면 단상에는 왕실 식구와 원로의 자리가, 그 아래로는 무대를 가운데 두고 대소 신료들과 그들의 가족, 귀빈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오왕과 대소 신료들의 자리를 제외하고 모든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사람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허허허허! 오늘은 짐의 둘째 아들이 혼사를 치른 기쁜 날이니, 모두 이 기쁨을 함께합시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인사를 끝으로, 무대에 악사들과 무희들이 들어왔다.

오왕의 오른쪽,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은 왕실 식구들이 앉는 정면 단상의 자리에 앉았다.

오왕의 왼쪽에는 왕실 인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련님, 저기…….

남궁구가 전음과 함께 한쪽을 눈짓했다.

그곳에 이전보다 훨씬 마른 모습을 한, 칠왕자 한문혜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일왕자와 삼왕자의 다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일을 겪고도 제법 자리를 잘 지킨 모양이었다.

정확하게 진화가 바라던 대로였다.

-오랜만이군.

진화의 전음에 한문혜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나중에 한번 보겠나?

진화가 차를 마시며 슬쩍 권유하자, 한문혜 또한 찻잔을 들었다.

조용히 입꼬리를 마는 한문혜의 눈빛이 이전보다 독기로 가득 찬 것이, 진화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제갈지현을 끌어내리기 딱 좋겠군.’

제갈세가는 이전처럼 남궁세가를 견제하기 힘들어졌다.

제갈후현이 부지런히 무위를 회복하며 애를 쓰고 있었지만, 더럽혀진 명예는 그렇게 한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제갈가주는 이미 제갈후현의 후사에게로 기대를 옮겼고, 제갈지현은 제갈세가가 아닌 오왕부로 눈을 돌렸다.

이왕자 또한 왕비의 소생.

게다가 조종하기 딱 좋을 만큼 멍청하기까지 하니.

일왕자가 있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일왕자만 없다면 왕세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속셈이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렇게 둘 순 없지.’

이전 생에 제갈지현은 남궁세가에 희생을 강요하며 군사적 입지를 키웠다.

이번 생엔 양주로 와서 남궁세가의 협력자이자 경쟁자의 위치에 섰으니.

‘이전 생은 사라졌지만 당신은 여전히 위험하군. 오히려 잘되었어. 거리낌 없이 치워 버릴 수 있으니까.’

진화는 지금도 사방에서 제게 꽂히고 있는 시선과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입꼬리를 말았다.

어디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까.

“꺄-아!”

눈웃음 한 번에 터지는 비명과 소란스러운 대화.

진화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문제는 오왕부의 누구든 안전하지 않다는 거랄까.

지금은 거래를 위해 서로 손을 잡는 관계였지만, 언제든 양주의 패권을 두고 경쟁할 수 있는 상대를 진정한 협력자라 여길 순 없었다.

그런 생각을 진화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남궁제일검의 독자라 했던가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말투.

느긋하게 말을 걸어온 여인은 목소리만으로도 조용히 진화를 옭아매는 듯했다.

홍신왕비 곽경란.

태복령의 장녀로, 오왕부의 실세 중의 실세.

어찌나 기세가 높은지.

호인호색으로 유명한 오왕조차, 왕비에게서 왕자를 보기 전까지 후궁전에 들지 못했을 정도였다.

황도의 명문 세도가의 여식답게 온화한 말투와 표정, 교활하기 짝이 없는 권모술수를 가졌다는 왕비가 처음으로 진화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궁진화라 합니다.”

진화가 독사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게 저를 감아 오는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마찬가지로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지금은 서로에게 독니를 보이지 않아도 되는 관계였다.

“그래요.”

왕비가 고개를 돌렸다.

* * *

첫날 연회는 조용히 끝이 났다.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은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았지만, 생각보다 접근하는 사람은 적었다.

“내일부터는 다를 거야. 오늘은 오왕도 참석하고 조용히 착석해서 즐기는 연회였지만, 내일부터는 여기저기 판을 열고 돌아다니면서 즐기도록 되었으니까. 오늘 간을 본 자들이 내일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들겠지.”

남궁구가 익숙하게 설명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예전에 한 번, 양주목사의 생일 연회에 아버지랑 간 적이 있어. 벌 떼처럼 달려들더라고. 이번에는 뜯어먹을 게 있으니까 이전보다 더하겠지.”

남궁교명의 물음에 남궁구가 슬쩍 진화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들이받을 거면 우리한테 알려 주고 해. 미리 튈 준비 하게.”

남궁구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인 듯했다.

“날 뭐로 보는 거야?”

진화가 조금 억울한 표정으로 남궁구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궁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들 하는 말 들었잖아. 내일은 먹는 것도 조심하고, 술은 절대 입에도 대지 마. 사방에서 늑대, 여우가 달려들 건데, 성질난다고 들이받으면…… 그래도 넌 괜찮겠지, 너는.”

오왕부에서 소란을 피우고 거래가 파토 나면, 남궁세가의 입장도 난처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작금의 남궁세가를 생각하면, 누가 진화를 혼내겠는가.

아마도 저만 아버지에게 죽도록 혼이 날 것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 억울해야 할 사람이 누군데…….”

“걱정하지 마. 최대한 조심하고, 잘 참도록 해 볼 테니까.”

진화의 대답에 남궁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진화에게 두 번, 세 번 확인을 했다.

“성질내도 돼. 미리미리 알려 주기만 하라고.”

“안 그런다니까.”

다음 날 연회에서, 진화는 자신의 말처럼 정말 잘 참았다.

하지만 남궁구는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위험인물은 하나가 아닌 둘이라.

남궁세가에 대한 자부심과 요즘은 이상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놈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놈은 절대 참지 않는다는 걸 잠시 잊은 남궁구의 실수였다.

* * *

밤이 깊은 자소궁.

“하아…….”

무거운 장식물을 떼어 내고, 두꺼운 화장도 닦아 내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얼굴에 바르는 장미수의 향기가 기분까지 나른하게 하는 듯, 왕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잠들기 직전.

비로소 민낯을 드러내고, 진짜 곽경란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 아이, 내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가?”

“……남궁세가 공자 말씀입니까?”

“그래.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소문보다 인물이 훨씬 괜찮았던 모양인지 신료들까지 술렁이더군.”

“사내라기엔, 보기 드문 미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왕비를 오래 모셔 왔던 상궁이 눈치 좋게 대답했다.

상궁의 부드러운 손길이 하루 동안 무거웠던 왕비의 어깨를 부드럽게 풀었다.

“으음. 옆모습만 슬쩍 봤는데, 이상하게 눈에 익은 얼굴이었어. 조 상궁의 눈엔 어땠어?”

시집오기 전부터 곽경란을 모셔 온 조 상궁이라면, 그녀와 기억도 비슷할 터였다.

하지만 조 상궁은 오늘 진화를 보지 못했다.

“글쎄요. 송구하오나 소인은 신방을 꾸미느라 손님들은 잘 보지 못했습니다. 내일 다시 본다면,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긴, 내일은 자세히 살펴야지.”

조 상궁의 말에 왕비도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눈썰미 하나만큼은 정평이 난 그녀였다.

오늘은 눈길도 돌리지 않고 짧게 대화만 나눈 것뿐이지만, 만약 이전에 본 적이 있다면 얼굴을 마주하는 즉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었다.

“전하는, 오늘도 소용의 처소에 들었나?”

“오늘은 취기가 많이 올라, 홀로 침수에 드셨다고 합니다.”

“그래?”

조 상궁의 답이 마음에 드는 듯, 왕비가 슬쩍 입꼬리를 말았다.

피곤하긴 하지만 기분 좋은 밤이었다.

무림 세가의 여식이라는 신부는 생각보다 훨씬 단아하고 고분고분했고, 총기가 있는 것이 이왕자를 유하게 누를 줄 알았다.

속내를 잘 숨기는 것이 궁궐의 여인으로 알맞다 싶었다.

혼례와 연회는 성대하고 아름다웠으며, 왕은 오늘 어떤 여인도 찾지 않았으니.

오늘은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날이었다.

‘하긴 내가 무림 세가의 자식을 어디서 본 적이 있겠어. 잘못 본 거겠지. 어쨌든 무림 세가도 썩 나쁜 건 아니야. 나름 품위도 있고, 하물며 남궁이야…… 내일 그 공자를 부른 자리에, 화숙 공주도 불러 볼까?’

왕비는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내일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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