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200)화 (200/425)

남궁마제

생긴 그대로 진(眞) 근심 화(禍) : 과거를 쫓는 사람들(4)

챙--! 챙!

“막아라! 막아야 한다-!”

푸른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검을 들었다.

“으아아악---!”

사방을 향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는 자.

쉐에에엑!

“크억!”

“안 돼! ……헉!”

겁먹은 거북이처럼 움츠리고 있던 자.

놀란 토끼처럼 펄쩍 뛰다가 쓰러지는 자.

“정신 바짝 차려라! 죄인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목숨을 지켜라!”

주변을 노려보며 외치는 자.

그들의 푸른 무복의 왼쪽 가슴에는 다섯 개의 노란 꽃잎이 수놓아져 있었다.

남궁세가의 청화상단 소속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자, 그들의 자부심이었다.

극한의 긴장감에 휩싸였을 때.

청화상단 무사들 면면이 하는 행동과 표정은 달랐지만, 누구 하나 동료를 두고 도망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노란 꽃잎이 붉게 물들고 쓰러질 때까지, 자신들의 자부심은 지켜 낸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으니.

푸-욱!

“컥!”

어디서 날아오는 칼인지도 모르고 수십 명의 무사들이 죽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

청화상단의 진가현 지부, 지부장 주종도는 제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의 주인을 마주했다.

“크억! ……다, 당신은……!”

쉐에엑-!

“크아아악!”

주종도의 가슴을 뚫고 나온 검이 사정없이 뽑혀 나갔다.

검이 몸을 베는 고통보다 죽음의 공포가 주는 고통이 더 컸다.

눈앞에 새빨간 피가 튀어 오르고, 주종도는 간절하게 손을 뻗어 보았지만 결국 그의 세상은 불이 꺼졌다.

죄인을 싣고, 본가에 자신의 혐의를 벗으러 가던 주종도와 청화상단 무사들 모두 그렇게 죽고 말았다.

“히이익!”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던 포사가 사내와 눈이 마주치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이내 눈빛을 반짝였다.

압도적인 무위에 겁을 집어먹긴 했지만, 어쨌든 저를 끌고 가던 남궁세가 무사들을 모두 죽인 사람이 아닌가.

“가, 각주님이 보낸 사람입니까?”

포사가 기대를 담고 물었다.

푸-욱!

“아니야.”

사내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포사는 그것을 듣지 못했다.

사내의 검이 포사의 왼쪽 귀를 뚫고 오른쪽 귀로 나왔기 때문이다.

포사는 아마도 순식간에 모든 감각을 잃으며, 죽음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아, 끝이네.”

사내가 포사의 머리에서 검을 뽑아 가볍게 털었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좋아. 확인 끝.”

주변에 살아 있는 생명이라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내는 시체 위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리고 일상적인 일과인 듯,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허연 지방을 헝겊에 묻혀 검에 묻은 피를 닦았다.

검에 반질반질 윤이 나자, 사내가 제 얼굴을 비춰 보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살에 흑색 무복과 같은 까만 칠을 해서, 검에 비친 얼굴에 눈의 흰자가 유독 튀었다.

사내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하얀 이가 도드라지게 씨익- 웃었다.

“이제 다음 목적지로 가 볼까? 참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 그래도 오왕부면 뭐, 짭짤한 손님이지. 흐흐흐흐!”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고여 질퍽해진 땅을 피해서, 사내가 느긋하게 숲속으로 사라졌다.

* * *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

어디서 날아드는지 모르는 칼날을 기다리며, 죽음을 예감한 청화상단 무사들이 필사적으로 싸웠던 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임무를 다하고 명예롭게 죽었다.

탕-!

“무슨 일입니까!”

“…….”

남궁가주는 가주전 문을 박차고 들어온 동생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곽 총관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남궁경은 처음부터 문을 닫을 생각은 없었던 듯했다.

“어휴.”

이제 와서 말해 무얼 하겠는가.

어머니도 아버지를 고치지 못했으니, 자신 또한 동생을 고치기 포기했다.

“진가현에서 살인늑대 포사와 함께 오던 청화상단 인원이 습격을 받았다. 지부 호위장이 가장 가까운 지부에 전서를 날린 모양인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전원 죽어 있었다더구나.”

남궁가주가 굳은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젠장! 범인은? 포사 그놈에게 그만한 패거리가 남아 있었던 거요?”

남궁경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급하고 힘든 상황일수록 형제의 대응 방법은 이다지도 차이가 났다.

남궁가주는 위험하고 위태로울수록 냉정해진다면, 남궁경은 분노를 양분 삼아서 기세를 끌어 올린달까.

“포사는 정면에서 정확하게, 검이 왼쪽 귀를 뚫고 들어가 뇌간을 끊고 오른쪽 귀로 나와서 죽었다는군.”

“……!”

“그래, 암살왕. 그 작자의 수법이다.”

남궁가주의 말에 남궁경의 눈이 찢어진 듯 커졌다.

“놈이 나타났다고? ……젠장!”

남궁경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화를 토했다.

이번에 뿜어낸 화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했다.

“네가 놈의 귀를 뚫고 통각을 끊어 놓은 게 꽤나 마음에 들었나 봐.”

“그때 검을 조금만 더 비틀어서 머리통을 박살 내 놨어야 했는데!”

남궁가주의 입가엔 싸늘한 비소가 매달렸고, 남궁경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손바닥을 때렸다.

암살왕(暗殺王) 교혼(郊魂).

전쟁이 한창일 때에 유명한 암살자였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형산파 전대 장문인 선명화를 죽인 것 때문이었다.

단신으로 들어가 형산파 제자 이백여 명을 죽이고 장문인까지 죽인 것은, 일개 암살자가 보일 수 있는 무위가 아니었으니까.

이백여 명의 제자와 장문인의 몸에 육각형의 특이한 검상이 남지 않았다면, 암살자 한 명의 짓이라 누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암살왕이라 불리게 된 것은 남궁경 때문이었다.

남궁가주를 죽이러 나타났다가 남궁경에게 머리를 뚫렸는데, 공교롭게도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리고 살아남았다.

이후 그는 스스로를 완벽한 어둠이 되었다고 말하며 보다 대담해졌고, 흔적을 남기고 싶은 암살에 꼭 자신이 당했던 것과 같은 흔적을 남겼다.

“안상범 때문에 포사를 데려오던 길이었소. 놈이 의뢰를 한 거요?”

“알 수 없지. 언제나 그렇듯 의뢰에 대해선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으니까.”

남궁가주의 말처럼, 암살왕은 암살 대상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여 없앴다.

진짜 죽이려 한 대상이 누군지 알 수 없도록 말이다.

“우리에게 보여 주듯 포사를 죽였어. 안상범과 한패가 아니라고 증명하려는 듯이. 하지만 그 또한 놈이 혼선을 바라고 한 짓일 수도 있지.”

“이제 어쩔 거요?”

남궁경이 또 복잡한 결정을 형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늘 그렇듯, 그의 형은 빠르고 현명하게 결정을 내렸다.

“상관없어. 연관이 있든 없든, 이제 때가 되었다. 안상범을 끌고 와라.”

남궁가주의 결정이 남궁경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충!”

남궁경이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밖으로 나갔다.

* * *

연회 마지막 날.

진화가 지나가자 시선이 따라붙었다.

다만 시선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졌다.

전에는 질투, 경탄, 부러움을 담은 시선이 오로지 외모를 향했다면, 지금은 전날 대전에서 있었던 일이 퍼지면서 무림인을 향한 호기심과 경외감이 실려 있었다.

물론 그들이 어떤 의미를 담았건, 진화에겐 관심 없는 일이었다.

“왜 저 새끼들은 우리만 보지?”

“만만해서.”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오왕부 무인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만 달라붙자, 불만스러운 듯 구시렁거렸다.

유화당(儒花堂).

오왕의 궁인 자원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서도, 오왕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가졌다는 곳.

오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숙빈과 그의 아들, 칠왕자 한문혜의 처소였다.

“남궁 공자, 어서 오십시오!”

진화 일행이 유화당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칠왕자가 버선발로 나온 듯 빠르게 달려 나와 그들을 반겼다.

손수 그를 납치하고 고문한 적 있던 진화와 남궁구는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도련님, 저놈이 번개 맞고 돌았나 본데? 한 번 더 때려 봐, 정상으로 돌아오게.

남궁구의 전음을 무시하며, 진화가 칠왕자의 눈을 살폈다.

저를 보는 눈에 욕망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며, 진화는 그가 칠왕자라는 걸 확인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호위무사들이 주변을 철통같이 지켰다.

물론 진화나 남궁구, 남궁교명이 보기엔 구멍이 줄줄 난 광주리 같았지만, 궁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은 검을 든 무인이 아니었다.

“저들은 고양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 곳곳에 누가 심어 놓았는지 모를 새 새끼, 쥐 새끼가 한가득이라서.”

버선발로 환대하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 낯빛이 돌변한 칠왕자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도 칠왕자에게 깍듯한 예를 바라지 않았다.

“자리에…… 앉았나?”

그들도 지킬 생각이 없었으니까.

진화가 앉은 자리 양옆으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헛짓거리 하면 즉시 죽일 거다.’라는 기세로 검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 왕자를 납치, 고문한 것도 모자라 첩자까지 시킨 놈들인데 뭘 바라겠나.”

칠왕자가 한숨 같은 헛웃음을 지르며 맞은편에 앉았다.

“이번에는 뭐 때문에 날 찾았지? 내가 아직 이용가치가 있는 거라면, 역시 귀천성의 일인가?”

다 포기한 듯, 칠왕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혼현마제의 옆에 있던 놈. 수오라던가? 그놈에 대해 말해 봐.”

“대가는?”

“네가 바라는 것.”

“…….”

칠왕자가 바라는 것은 많았다.

가장 바라는 건, 역시 왕위이려나.

그건 남궁진화가 마음대로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광오하게도 저런 대답이라니.

칠왕자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런 자를 양자라고 무시하던 이왕자는 대체 얼마나 겁을 상실한 건지.

남궁의 푸른 무복이 저 광오한 괴물을 붙잡아 둔 목줄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쨌든 내가 당장 바라는 걸 저 괴물이 쥐고 있으니까.’

칠왕자는 이번만큼은 저 계산을 모르는 괴물의 거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아. 수오라면 나와 뇌평과 함께 혼현마제의 제자로 있었지. 물론 나야, 놈이 오왕부에 바라는 것이 있어서 억지로 받아들인 면이 강하지만. 제자 중 뇌평이 가장 강했고 가장 빠르게 경지를 넘었지만, 그 영감이 늘 끼고도는 건 수오라는 놈이었어. 나이는 지금 열여섯 되었나? 말간 얼굴에 백면서생같이 글을 좋아하고, 행동도 얌전하고 조심스러웠지만…… 그놈만큼 기분 나쁜 놈이 없었지.”

마지막 말을 하면서 칠왕자가 입꼬리를 비틀었다.

“혼현마제가 가장 아끼는 놈이었어. 갓난아기 때부터 키워서 막내 자식같이 놈을 챙겼는데…… 등신같이 그걸 그대로 믿을 리 없지. 그건 자식이 아니라 나중에 먹으려고 몰래 꿍쳐 둔 당과를 보는 것 같은 눈이었거든.”

칠왕자의 말에 진화의 눈빛이 번뜩였다.

“놈의 생년월일을 아나?”

“생년월일? 글쎄, 그걸 알 턱이 있나…….”

진화의 눈빛을 살피며, 칠왕자가 말을 끌었다.

그에 진화가 피식 웃었다.

“거래권을 쥐여 주지.”

진화의 말에 칠왕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걸 알 만한 사람이 있지. 소리마제(素履魔帝) 악구. 혼현마제가 찾은 제물들을 데려오는 일을 하지. 돈을 꽤나 밝히는 인간이라, 항상 장부에 꼼꼼하게 기록해 놓는다고 하더라고.”

“……!”

장부!

진화는 물론 남궁구와 남궁교명 또한, 제물의 거래 내역이 쓰여 있던 검은 책자를 떠올렸다.

잠시 후,

칠왕자와 대화를 마친 진화 일행이 유화당을 나왔다.

“하하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 공자.”

“……별말씀을.”

서로 간에 만족스러운 대화였는지, 배웅을 하는 칠왕자나 유화당을 나서는 진화 일행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어쩌면 선녀가 사는 곳이 이러할까.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세상에 온갖 기화요초들이 정원에 가득하고, 한 마리도 보기 힘들다는 황금색 비단잉어들이 연못에 수십 마리나 놀고 있었다. 색색이 아름다운 꽃들 사이로 꽃만큼 아름다운 새와 나비가 날아들고, 젊고 고운 여인들이 웃음꽃마저 활짝 피우고 있는.

아름답게 가꾼 정원이 부귀한 사람들의 최고 사치이자, 여인에게 애정을 보여 주는 척도라면, 이곳의 주인은 아마도 차원이 다른 애정을 받고 있을 것이었다.

그 평화로운 광경을 뚫고, 가늘고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 폐하 납시오-!”

꿈에서 깨어난 듯.

놀란 궁녀들이 황급히 몸을 숙였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금빛 용포는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안으로 들어갔다.

밖의 정원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품위 있는 방.

방의 주인만큼 곱고 새하얀 휘장을 지나자, 황제의 눈에 침상에 앉아 있는 여인의 눈에 들어왔다.

“황상을 뵙습니다.”

“황후, 인사는 됐소. 오늘 몸은 어떠하오?”

“괜찮습니다.”

살포시.

꽃잎이 접힌 모습이 이러할까.

향기가 날 듯 아름답고 애처로운 모습에 황제의 가슴이 울렁거렸다.

천하를 발아래 두고 온갖 여인들이 황제의 품에 안겼지만, 지금까지도 황제의 마음을 울렁이는 것은 오직 이 여인밖에 없으리라.

경국지색, 온갖 미인을 위한 찬사는 여인을 위해 존재하는 듯 병약한 모습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인이었다.

“오늘은 안색이 좋소.”

“모두 폐하의 은혜이옵니다.”

“정화…….”

모처럼 밝게 웃어 주는 여인을 보며, 황제가 여인을 안았다.

필요한 일과가 아니라면 모든 시간을 여인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아주 작은 시간조차 버거울 정도로 천하에는 여전히 황제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물론, 황제는 잠깐의 틈이라도 흘려보내지 않고 매일 황후를 찾았다.

오늘도 아주 잠시,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진 후.

황제가 다시 황후궁을 나섰다.

여인을 바라보던 애틋한 눈은, 어느새 철혈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태복령이 왜 내 아들에 대해 캐는 건지 알아내라.”

황제의 말에, 궁의 그림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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