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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03)화 (203/425)

남궁마제

볼 진(診) 꽃 화(花) : 암살자들(2)

어두운 방.

자욱한 연기가 방 안에 가득했다.

그 한가운데에 한 인영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빠져 있었다.

인영은 잿빛 머리에 목부터 손등과 허리까지 붕대를 감고, 피처럼 붉은 바지를 입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콧잔등을 가로지르는 검상이 움찔거렸다.

마침내 그가 눈을 뜨자, 날카롭게 올라간 눈매 끝이 칼날처럼 예리했다.

삼백안을 드러낸 눈동자는 그보다 훨씬 매서웠다.

소리마제(素履魔帝) 문악(問幄).

돈에 미친 살귀 혹은 악을 삼킨 입, 악구(惡口)라 불리는.

경박한 별호나 변덕스러운 행적과 달리, 그는 암살자 중에서 유일하게 제(帝)를 인정받는 무인이었다.

역천마제의 부상으로 귀천성 마제들이 모두 잠적에 들었을 때에도 그는 종횡무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으니, 다시 숨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귀천성이 잠잠한 지금도, 그의 살인시문은 현 무림에서 가장 많은 암살 의뢰를 받으며 공포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주군.”

인기척의 주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디에나 있는 가게 점원 같은, 평범한 인상의 사내였다.

사내는 소리마제의 매서운 눈빛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이냐?”

“척살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음?”

수하의 말에 소리마제 문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수하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태복령 늙은이가 의뢰를 바꿨습니다. 황자의 생존은 아무래도 좋으니, 남궁진화를 죽여 달라고 합니다.”

“허어!”

“우리 살인시문뿐 아니라 수도에 있는 모든 암살문에 황금을 걸었습니다. 남궁진화를 먼저 죽이는 곳에 금 일천 관을 주겠다고 합니다.”

“뭐라? 푸하하! 그 늙은 너구리가 어디서 크게 덴 모양이구나! 겁을 먹고 펄쩍펄쩍 뛰는 것을 보면 말이야. 하하하하!”

수하의 말에, 소리마제가 경박스럽게 웃어 댔다.

그리고 새로운 장난감을 쥔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그래서, 혈수문과 살각, 하오문에서는 의뢰를 받았다나?”

당금 천하에 암살자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은 어디일까.

답은 간단했다.

적을 죽이고 싶지만 세상에 들키고 싶지 않은 자들.

진짜 칼을 드는 것만 제외하고, 온갖 수단으로 적을 죽이려는 자들.

정쟁(政爭)이라는 이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황도의 권력자들이 있는 곳.

바로 황도였다.

황도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암살 문파가 모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살각, 하오문, 혈수문 그리고 살인시문이었다.

“그들도 고민 중인 듯합니다. 아무래도 남궁이니까요.”

“흐흐흐, 놈들에게 경고를 보내. 그 의뢰는 우리 살인시문의 것이라고.”

소리마제가 눈빛을 번들거리며 말했다.

“……혈수문엔 우리의 말이 먹히지 않을 겁니다.”

소리마제의 수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살각과 하오문은 사패천의 휘하 세력으로 정사 협정에 어긋나는 암살은 하지 않았으니, 남궁세가의 직계를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혈수문은 달랐다.

혈수문은 무림이 아니라 순수하게 황도에 근간을 둔 문파로, 어떤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오직 주어진 의뢰를 완수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살인시문과 경쟁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혈수문이라면…… 괜찮을 게다. 놈들은 황도를 벗어나지 않을 테니까.”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인지.

수하의 걱정에, 소리마제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때, 수하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감시를 보낸 반생급의 정보에 따르면, 거기에 이미 암살왕 교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암살왕 교혼이 벌써 움직였다고?”

소리마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암살왕이라니, 그건 조금 골치가 아파 왔다.

암살왕 교혼의 명성은 근래에 들어 무림 최고 살수라는 소리마제의 아성에 도전할 정도였다.

암살문에 규모만큼 중요한 것이 실적이라면.

암살왕 교혼의 실적은 능히 일인 문파라 할 만했다.

소리마제는 예상치 못한 암살왕의 등장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소리마제가 그동안 눈엣가시처럼 거슬리는 암살왕을 그냥 둔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살인은 하지 않는 것이 살인시문의 철칙이었기에.

소리마제는 이번에도 그 철칙은 지키기로 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암살왕을 내 사냥개로 삼아야겠구나.”

“암살왕을 말입니까?”

소리마제의 말에 수하가 놀라서 되물었다.

“암살왕이라면, 차라리 이리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요? 주군이 나서지 않는다면, 우린 그 이리에게 천금을 빼앗길 거고요!”

“흐흐흐, 이 수전노야! 설마 내가 그 돈을 떼일까 봐?”

그 주군에 그 수하라 할까.

소리마제는 물론이고 그의 수하까지.

그들은 천금이 이미 그들의 돈이 된 양 굴었다.

암살왕에게 천금을 빼앗길까 안절부절못하는 수하를 보며, 소리마제가 음흉하게 웃어 보였다.

“비록 암살은 실패로 끝났지만, 암살왕 그놈은 이전에도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남궁세가 본가에 들어가는 것까진 성공했었다. 이번에도 남궁세가에 들어가려 하겠지. 저번의 실패로, 남궁경에게 남다른 원한이 생겼으니까. 흐흐흐! 놈을 남궁세가에 들어가기 위한 길잡이로 쓸 것이다.”

 소리마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수하는 그런 소리마제가 의외인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살왕 교혼을 싫어하시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싫어하지.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둘 다 죽여 버리고 의뢰를 훔쳐 와야지. 결국 돈은 암살을 완성한 놈이 먹게 될 테니까. 안 그러냐?”

소리마제가 콧잔등의 상처를 실룩거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에 소리마제의 수하가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직접 가실 겁니까?”

“그래야지, 암살왕 그놈도 치워 버리려면.”

“오! 그렇다면 천금은 이제 우리 것이겠군요.”

소리마제가 직접 나선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의 수하는 안심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중요한 돈 이야기가 끝이 났으니, 남은 것은 그저 여담일 뿐이었다.

“태복령이 의뢰하기도 전에 암살왕이 움직인 것을 보면, 암살왕의 의뢰자는 오왕부의 왕비인 듯합니다.”

“계집의 눈썰미가 제법이야, 제가 던져 버린 황자를 알아본 것을 보면.”

“남궁에서도 눈치챌 겁니다.”

“그래 봐야 증거 없이는 꼼짝도 못할 놈들이다. 증거가 나올 리도 없고.”

수하의 말에 가볍게 답하며, 소리마제는 아주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불이 난 왕자궁.

제가 모든 궁녀를 죽여 버리자, 기다렸다는 듯 제 손에 왕자를 넘겨주던 어린 여자.

왕자를 넘기던 손은 덜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눈물 맺힌 눈에는 증오와 열망이 가득했었다.

“그 핏덩이를 제 손으로 넘기다 못해 이제는 죽이려고까지 하다니. 재미있는 인연이야. 흐흐흐.”

“과연,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죽이려고 하는 관계를 ‘인연’이라 할 수 있을까요?”

소리마제는 재밌다는 듯 킬킬거렸지만, 그의 수하는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주군, 가서 돈 벌어 오십시오. 안 그래도 혼현마제의 제자 놈이 몇 번이나 확인차 물어 왔습니다.”

“그 조그만 놈이 제법 귀찮게 하는군.”

“그러니까요. 주군이 의뢰 좀 해 주십시오, 제가 처리해 버리게.”

“싫다, 돈 아깝게.”

“이런. 역시 주군은 훌륭한 수전노이십니다.”

“이하동문이다. 흐흐흐흐!”

소리마제와 그의 수하가 즐겁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방을 나왔다.

마치 평온한 일상을 즐기듯, 그들은 이대로 나가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러 갈 것이었다.

* * *

흔히 무림은 약육강식의 세계라 말한다.

서로 죽고 죽이고, 강한 자가 살아남아 부와 명성, 권력 모든 것을 가진다.

어찌 보면 짐승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강한 맹수가 약한 짐승의 죽이고, 그 몸을 양분으로 삼는 것이.

학자들이 무림을 향해 천박하고 무모하다 비난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이들의 울림이야말로 얼마나 공허한 것이겠는가.

“으, 으어어어억!”

아침, 교대를 위해 옥사에 들른 병사가 비명을 지르고 달려 나왔다.

진화의 예상대로 오왕부는 암살자를 지켜 내지 못했다.

옥사에 있던 모든 병사와 죄인 들을 죽이고, 끝내 암살자까지 죽인 것이다.

옥사 밖에서 뒤처리를 하러 올 사람을 기다렸던 남궁구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

“놈들이 양주 밖으로 사라졌어. 양주 밖까지는 쫓아가지 못했고. 일단은 본가에 연락을 해 놓았는데…… 아마 늦었을 거야.”

남궁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남궁구가 꽤 많은 거리를 벌리고 쫓을 정도로 경공이 뛰어난 자들이니, 본가에서도 손쓸 방법이 없을 터였다.

“살수 단체가 분명합니다. 옥사에 있던 암살자의 목을 가르고 혀를 잘라 갔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말을 하지 않겠다는 건가? 의뢰인들이 좋아하겠군.”

남궁교명의 말에, 남궁구가 비꼬듯 말했다.

그러면서 얼굴에는 ‘중원 끝까지 쫓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진화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괜찮아. 오왕부에 빚을 하나 더 지워 놓는 거니까.”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얼굴이 구겨졌다.

“도련님은 지금 그게 문제야?”

“살수 단체가 공자님을 노리는 것도 문제지만, 놈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언제 또 암살자가 올지도 모르고…….”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태평한 얼굴로 짐을 싸고 있는 진화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못해 답답한 듯했다.

하지만 진화는 태평한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

진화가 쫓겨 본 것이 하루 이틀 일이겠는가.

이전 생을 통틀어 절반은 광마제에게, 나머지 절반은 다른 귀천성 마제들에게 쫓겼던 진화였다.

웬만한 암살자의 수법이라면, 진화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목을 가르고 혀를 잘라 갔다면, 살인시문 놈들이야.”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눈이 커졌다.

진화가 적의 정체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교성흑오대나 광룡귀면대처럼, 귀천성 소리마제의 독문 세력이지.”

진화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소리마제는 의뢰를 받고 돈을 받아야 살인을 하거든. 같은 귀천성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러니까 간단해. 귀천성의 누군가가 놈에게 나를 의뢰한 거겠지. ……혼현마제, 그놈이 살아 있어.”

단, 나를 직접 죽일 수는 없는 상태로.

진화가 눈빛을 번뜩였다.

종남에서 그렇게 사라진 혼현마제의 상황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학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수학은.

“칠왕자 한문혜가 준 정보에 따르면, 소리마제야말로 혼현마제가 찾은 제물을 직접 납치하고 모았다고 했어. 돈 귀신이라 장부를 가지고 있다고.”

진화의 말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눈이 커졌다.

그들은 묘하게 들떠 보이는 진화의 모습에 불안감마저 느꼈다.

“설마 소리마제를 기다릴 참입니까?”

“놈들을 막 유인하고 그럴 생각은 아니지, 도련님? 응?”

“당연히 본가에서는 안 되지! 당분간은 놈들이 다시 오기 힘들 테니, 그 전에 본가에 들렀다가 얼른 정의맹으로 복귀할 거다. 그때를 노려봐야지.”

진화가 싱긋 웃는 모습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남궁세가를 걱정할 때가 아닐 텐데? 뭘 노린다는 거야?’

‘아니, 애초에 살인시문을 유인하겠다는 게 더 문제 아닐까.’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진화는 깔끔하게 본가로 돌아갈 차비를 마쳤다.

“혼현마제가 아닐 수도 있어. 소문처럼 오왕부 내의 누군가일 수도 있지.”

툭 던지듯 말을 한 진화가 밖으로 나갔다.

뒤늦게 진화의 말뜻을 물으며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뛰어나왔지만, 밖에는 보는 눈이 많은 터라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갈 순 없었다.

* * *

자원궁 대전.

“시간이 빨리 흘렀군. 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네. 남궁세가와 본 왕부가 앞으로도 원활한 관계를 이어 가는 데에 의의를 두도록 하지.”

오왕의 말에, 진화의 뒤에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실소를 흘렸다.

비웃는 기색이 명백함에도, 누구 하나 나서서 화를 내지 못했다.

“암살자의 시신은 염을 하여 본가로 보내 주십시오.”

“그, 그건 내 약조하지.”

멀쩡하게 사로잡은 암살자를 죽게 내버려 뒀으니, 오왕부로서는 진화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신료들은 이 문제로 진화가 보상을 요구하거나 의뢰자를 찾겠다고 왕부를 들쑤시지 말고 얼른 떠나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복잡한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건, 오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오왕의 곁에 있던 왕비도 자연스럽게 진화를 배웅했다.

진화의 시선에 인형같이 굳어 있는 왕비의 얼굴이 들어왔다.

‘또 또 저런 눈이군. 벌써 죽은 사람을 보는 듯한 눈. 제갈지현도 아니고, 왜 당신이 내게 그런 눈을 할까?’

진화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환대 감사했습니다, 왕비마마. 건강하십시오.”

“그……대도, 무탈하길 바라겠어요.”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마침내 진화는 꿈에서도 그리던 남궁세가로 출발했다.

떠나는 진화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자소궁으로 돌아온 왕비가 한숨을 돌렸다.

그때, 왕비의 귓가에 어김없이 그녀를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킬킬킬,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었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라도 눈치를 챘겠어.”

“닥쳐라! 남궁진화가 떠났는데, 왜 네놈은 아직까지 이곳에 있지?”

왕비가 거울 속에 있는 암살왕에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암살왕은 당황한 기색조차 없이 거울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불안해 보이는군, 아주 많이. 왜일까?”

“닥쳐! 네놈 따위가 궁금해할 일이 아닐 텐데!”

왕비가 거울 속 암살왕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암살왕이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뭘 화를 내고 그러나. 재촉하지 않아도 천천히 따라갈 거다. 남궁세가에서, 남궁경이 보는 앞에서 죽일 거거든.”

“어떻게 죽이든 상관없어. 제대로 놈의 목을 떨어뜨려!”

왕비의 눈이 독기를 넘어 살기로 가득했다.

그 눈을 보며, 암살왕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흐흐흐흐, 만금이나 준비해 두라고.”

왕비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으나,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왕비에게 말했듯, 암살왕의 머릿속에는 온통 남궁세가와 남궁경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미 끊어져서 느껴질 리 없는 고통이 양쪽 귀에서 느껴지는 듯도 했다.

무려 수십 년을 기다린 복수였다.

“네 아들의 귀와 귀를 뚫어, 네 앞에 던져 주지.”

남궁세가를 향하는 암살왕의 표정이 진화만큼이나 들떠 보였다.

* * *

설레는 마음으로 남궁세가로 향하는 이는 또 있었다.

“처남, 그대가 가 보게. 마음 같아서는 당장 황궁에 불러들여 얼굴을 확인하고 싶지만, 황후가 알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이네. 그 아이를 잃은 후, 황후의 상심이 얼마나 컸는가. 만약 그 남궁진화라는 자가 황자가 아니라면, 황후는 다시 한번 무너질 거야. 어쩌면 이번엔…… 내 말뜻, 자네라면 이해하겠지?”

현 황제가 황후를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수많은 후궁과 궁녀 들이 손에 닿을 거리에 있었지만, 황제의 시선은 늘 황후에게만 향했다.

“그러니까 그대가 먼저 보고 오게. 내 따로 조사는 할 것이나, 황자의 얼굴을 아는 그대라면 능히 황자를 알아볼 수 있을 걸세. 그대야말로 황후와 황자의 혈육이 아닌가.”

황제는 황후의 유일한 핏줄인 오라비 조정호에게 사례 교위 자리를 주었다.

하남 조씨 일문은 전대 황제의 견제 속에 지금의 황제를 보호했고, 사실상 황제를 용상에 앉힌 일등 공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여동생이 황후의 자리에 오르고 관직에서 물러서려던 조정호에게 황제가 손수 황도의 군권을 쥐여 주었으니.

황제가 하남 조씨 일문과 조정호에게 보내는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만약 그 아이가 황자가 맞다면, 데려오게, 반드시! 황후를 위해, 나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 종묘사직을 위해 반드시 데려와야 할 것이네!”

황제의 말을 떠올리며, 조정호가 말의 고삐를 단단히 쥐었다.

군복이 아닌 무복을 입고 외행을 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지만, 조정호의 마음 한편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자리했다.

‘조카님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정말 남궁진화가 맞다면, 황후마마도 기력을 되찾으실 텐데…….’

황제는 조정호가 황자를 알아볼 것이라 확신했다.

그때 황자를 본 사람이라면, 그 ‘특별한 눈’을 쉬이 잊을 수 없을 테니까.

심지어 조정호는 단 한 번도 조카의 얼굴을 잊은 적이 없었다.

잊지 않기 위해 화공을 불러 그림을 그렸고, 나중에는 그림을 보지 않아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아들의 어린 시절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다.

‘황후마마를 닮은 눈. 조카님…… 부디 살아 있다면, 천하를 네 품에 안겨 주마.’

무거운 부담감을 뚫고 희망이 싹을 틔웠다.

죄인처럼 웅크리고 있던 조정호의 눈에도 희망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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