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볼 진(診) 꽃 화(花) : 암살자들(3)
달이 밝은 밤.
월하루는 꽃 같은 기녀들이 있는 곳으로, 황도에서 제일 비싸고 인기 있는 주루였다.
물론 손님 또한 아무나 받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태복령 곽구윤은 그런 월하루의 단골손님으로, 보름에 한 번씩 측근들을 데리고 권세를 과시하러 들렀다.
오늘도 태복령과 그의 측근들이 월하루의 제일 꼭대기 층을 차지하고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술이 거하게 오르자.
“우하하하하! 마셔! 오늘은 걱정들 내려놓고 마셔라-!”
황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거부답게, 태복령이 커다란 주머니에서 은자를 꺼내 던졌다.
촤라라라— 챙그랑-!
“꺄-아! 나리! 은비가 와요! 은비예요!”
“으하하하! 춤 추거라! 비를 맞고 춤을 춰라!”
태복령이 은자를 던지는 사이, 기녀들은 물론 태복령의 측근들이 나와 그 속에서 춤을 췄다.
그렇게 흥청망청 먹고 마시다 한 사람씩 쓰러져 잠이 들면, 기녀와 월하루 직원들이 그들을 옆에 있는 방에 하나씩 옮겼다.
태복령 또한 직원들에 의해 술에 취해 늘어진 몸이 옮겨졌다.
“흐으. ……붉은 방…… 취선아, 나를 붉은 방으로…….”
취기와 함께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태복령이 늘 찾던 기녀와 방을 찾았다.
“흐흐흐, 내가 취선이구나, 내가……. 흐흐흐.”
공중에서 몸이 넘실거리는 듯한 느낌에, 태복령이 실실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오늘 그의 몸이 실린 곳은, 붉은 보료가 깔린 방이 아닌 바닥이 딱딱한 수레였다.
술에 취해 잠이 든 그는 스며드는 한기에 몸을 떨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태복령과 그 측근들을 실은 수레가 서늘한 새벽 저자를 뚫고 사라졌다.
그들이 놀던 월하루 최상층에서, 월하루의 주인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태복령의 장원에도 군사들이 들이닥쳤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끌려갔답니다.”
“흐음…….”
월하회주의 말에, 야희성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라 하면, 그 집에 있는 젊은 하인 부부의 갓난아이부터 죄 없는 식객들까지 포함하는 것이니.
주인의 죄에 이처럼 모든 사람들을, 그것도 금군이 잡아가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역모를 할 사람이 아닌데, 대체 무슨 일에 연루된 걸까요?”
월하회주 역시 금군에 협조하여 태복령과 측근들을 내주긴 했으나, 이유가 쉬이 짐작되지 않았다.
그때, 야희성녀가 나지막이 물었다.
“회주, 며칠 전, 태복령이 황도에 있는 모든 암살문에 내린 의뢰를 기억하나요?”
“아, 그 ‘남궁진화를 죽이는 곳에 천금을 주겠다.’ 한 것 말입니까? 그때, 남궁진화 그 친구가 오왕부에서 삼왕자의 팔을 부러뜨리고 왕비와 제갈지현을 망신시켰었지요. 그래서 자존심 강한 왕비가 태복령을 부추겨 의뢰를 한 것이라, 그렇게 결론내리지 않았습니까.”
당시에는 태복령과 남궁진화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하지만 남궁진화가 오왕부에 있고, 그들 사이에 왕비를 놓으니. 이야기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남궁진화의 성질머리는 진즉 알아보았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다시 묻다니.
“뭐, 걸리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월하회주가 의아한 듯 물었다.
야희성녀의 표정이 심각하여, 월하회주도 다시 한번 곰곰이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태복령이 오밤중에 황실로 불려 들어갔었지요! 혹, 그것과 연관하여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월하회주가 실수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우리가 남궁진화에 대한 의뢰에 주목하느라, 태복령이 따로 황제의 부름을 받은 일을 너무 가볍게 여겼나 봅니다. 황궁에 선을 놓아, 그때의 일을 알아보겠습니다.”
월하회주는 여전히 태복령과 남궁진화 사이에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
그는 그저 큰 불 구경하느라 작은 불을 놓친 것과 같은 실수를 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월하회주의 답은 정답이 되지 못했다.
야희성녀의 물음은 처음부터 ‘태복령의 의뢰’에 있었기 때문이다.
“회주, 태복령이 살인시문에도 의뢰를 넣었을까요?”
“살인시문 말입니까? 하나 그곳은…….”
야희성녀의 말에 월하회주가 인상을 흐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도 소리마제의 살인시문이 황도에 존재하는지는 알았으나,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그 이상 알아내기 위해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고, 그 이후로는 알아낼 생각조자 못 했다.
야희성녀가 직접 살인시문에 대해서는 손을 떼라 했으니, 그녀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묻는다 건……?
월하회주는 그제야 야희성녀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남궁세가에 소리마제나 살인시문이 나타난다면, 태복령이 그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겠지요?”
야희성녀의 물음에 월하회주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에 연통을 보내겠습니다. 남궁진화에 대한 암살 의뢰를 알려 주고, 혹 소리마제가 나타난다면 전갈을 달라 일러 놓겠습니다.”
“황실에도 경고를 해 주는 게 좋겠어요. 혹시 태복령이 소리마제에 대해 입을 열기도 전에 처리당할 가능성이 크니.”
“그리하겠습니다.”
사람을 읽는 통찰력 하나로, 월하회를 일으키고 십이좌회의 일인이 된 야희성녀였다.
월하회주는 여전히 야희성녀가 태복령의 의뢰에서 무얼 읽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성실하게 그녀의 명을 받들었다.
“살인시문이 의뢰를 받고 남궁진화의 앞에 나타난다면, 태복령이 이미 그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고. 태복령이 살인시문을 알았다면, 이번이 첫 의뢰는 아니라는 뜻이니…….”
태복령과 남궁진화, 황제…… 그리고 소리마제.
야희성녀의 머릿속에서 아주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올랐다.
“회주.”
“예, 성녀님.”
“황실에 전해요, 폐하께서 알고자 하시는 걸 알아내려면, 반드시 태복령을 지켜 그 입에서 소리마제와 살인시문에 대해 들어야 할 것이라고.”
“그리 전하겠습니다.”
월하회주가 깊게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 * *
오왕부에서 합비까지는 뱃길로 하루가 조금 넘게 걸렸다.
그리고 하얀 안개에 가린 거대한 바위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천주산 자락이 눈에 들어오기까지 반나절.
진화 일행의 눈에 잠삼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왔네! 저기, 세가가 보이네!”
남궁구가 멀리 보이는 남궁세가를 보며 반색했다.
“그렇게 좋은가?”
“왜, 너는 안 좋냐?”
“그럴 리가.”
남궁구의 반문에 남궁교명도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남궁도가 죽고 그 일당이 모두 잡히면서, 더 이상 숨을 이유가 없었던 남궁교명의 집안도 서평원의 본가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버지와 형은 청해상단의 일로 바빴지만, 본가에는 어머니와 다른 식구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가족이 기다리는 집.
드디어 반가운 ‘가족’과 그리운 ‘집’이 완벽해진 것이다.
하지만 집과 가족이 그리운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정이 길었군.”
“겨우 이틀이었기에 망정이지, 시체와 함께 시작하는 식사가 익숙해질 뻔했어.”
남궁교명이 아련한 눈으로 그들이 지나온 길을 보고, 남궁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멀리 남궁세가가 보이는 길목.
그들이 빠져나온 숲에서 진화가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진화는 저를 보고 있는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다. 이번 놈들이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눌 것도 없으니까.”
진화가 빈손을 보이며 말했다.
방금 숲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놈들까지 총 스물넷.
고작 이틀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진화를 노렸다가, 진화에게 죽은 숫자였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진화의 말간 눈과 진화에게서 풍기는 고기 냄새를 맡으며, 어서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때, 저 멀리서 사자후와 같은 고함이 들렸다.
“진—화야---! 내---- 아---들!”
남궁경의 목소리에, 진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버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진화를 보며, 남궁구와 남궁교명도 웃음을 지었다.
“그래, 고기 냄새가 어디냐.”
“피 칠갑은 안 해서 다행이다.”
유별난 부자 상봉을 보며,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세가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잠삼현.
가까이에 구강과 여강, 합비를 두고 있는 작은 현이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그 어떤 곳보다 유명한 곳이었다.
바로 남궁세가가 자리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청평원은 크게 동과 서로로 나뉘어 서평원과 동평원으로 불렸는데,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집은 주로 남궁의 방계들이 많은 서평원에 있었다.
물론 서평원 안에도 비슷한 부류끼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도 구분과 차별은 존재했다.
하지만 저자에 나와 장사를 하는 사람들, 가게에 들른 손님, 길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까지, 결국은 모두가 남궁세가의 사람들이었다.
남궁경과 함께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이 잠삼현에 들어서자, 길에 있던 사람들이 자진하여 몸을 숙이며 길을 비켜 주었다.
“소공자님, 오셨어요----!”
“우리 공자님, 헌헌한 장부가 되셨네!”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웃는 낯으로 박수를 치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내어 인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화의 어릴 적 그림을 든 사람들도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크아아아아아! 공자님!”
“으헉! 더 아름다워지셨……!”
“공자님, 소찬회가 왔습니다-!”
삼 년 만에 돌아온 진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너도나도 저자에 나와 진화를 환영했다.
남궁진휘와 진혜가 삼 년 만에 돌아왔던 그때 이후로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잠삼현의 가로지르는 길 끝.
거대한 의천문 앞으로, 다른 식구들이 보였다.
남궁가주와 가모인 하후민, 천화정의 식솔들. 그리고 벌써 눈물을 글썽거리는 팽연화의 모습.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단다.”
아버지 남궁경이 덩달아 눈물을 글썽거리며 진화의 등을 밀어 주었다.
진화는 곧장 어머니 팽연화에게 달려갔다.
서로 끌어안는 감동적인 모자상봉을 지켜보며,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서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별난 부자 상봉을 지켜보았을 때 했던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 * *
진화의 무사 귀환에, 남궁세가는 창천원에 큰 현판을 달고 연회를 열었다.
“아니, 연회까진 안 해 주셔도 되었는데…….”
귀 끝을 붉히며 말하는 진화의 모습에, 남궁가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녀석아, 널 기다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냐. 우리도 우리지만, 잠삼현 사람들도 모두 널 보고 싶어 했어. 소문으로 들려오는 네 소식에 모두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진화의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해하는 가운데, 가모 하후민이 그때를 생각하며 살짝 한숨을 쉬었다.
“소찬회에서 현판 달고 폭죽 터뜨리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궁금해하는 진화에게 가모 하후민이 고개를 저으며 말해 주었다.
지금은 쉽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갑자기 밤중에 폭죽 소리가 나는 통에 전쟁이 다시 터진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진화가 귀천성 마제들과 싸우고 창천화룡이라는 명성을 얻으면서, 저자의 상인회와 소찬회가 이를 축하한 것이라.
그날의 축하 행사는, 남궁세가 소공자를 향한 선망과 애정, 그리고 상인들의 상술이 더해지며 완벽한 축제가 되었었다.
남궁경과 팽연화는 남궁세가 사람들에게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진화를 흐뭇하게 볼 뿐이었다.
“저, 할아버님과 형님, 누님은…….”
식구들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진화는 자리에 없는 가족들이 더 생각났다.
그런데 갑자기 서늘해지는 분위기에,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가모 하후민을 향했다.
“호호호, 글쎄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우리 부군사님은 얼마나 바빠서 집엔 코빼기도 안 보이는지. 혹시 모르지, 문서에 파묻혀서 먹물에 코를 박고 뒈졌는지.”
“진혜는 조사가 끝나는 대로 온다는데…… 종남에서 무슨 일을 한 것인지 어음이 날아왔더구나. 거기 조사단으로 온 한림회 학사를 머리로 들이받았다는데……. 허허허, 대가리가 얼마나 강철 같으면 학사의 턱이 그렇게 으스러지는지, 합의금이 금 일 관이라는구나. 혼수라 생각하고 그놈에게 시집가 버리라고 했단다.”
“…….”
가모와 남궁가주의 말이 있고, 식사 자리가 한결 차분해졌다.
잠시 뒤,
진화는 지금까지의 일부터 오왕부에 있었던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남궁가주의 집무실을 찾았다.
“칠왕자 한문혜라…… 그건 그렇고 암살자가 들었다고?”
“왕비의 짓이지?”
“이곳으로 오면서도 널 노린 자들이 꽤 많았다고 들었다.”
“왕비 그년 맞지?”
남궁가주는 진화의 보고 외에도 벌써 알고 있는 것이 많았다.
누가 이렇게 소상하게 알렸는지는 능히 짐작이 갔지만, 작은 송골매가 그럴 틈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경아.”
“아, 왕비 그년이 맞다니까 그러네. 그년이 아니면, 우리 진화에게 이런 짓 할 인간이 누가 있소? 내가 지금이라도 왕비 년 대가리를 깨 놓을 거요!”
“망할! 그놈의 대가리! 네가 이러니까 진혜 그것이 자꾸 남의 대가리를 깨고 다니잖느냐!”
“아, 여기서 진혜 얘기는 왜 나와요! 자꾸 진혜가 사고 치면 내 탓이래. 진혜가 형님 딸이지, 내 딸이오?”
“내 딸이야! 그런데 왜 너만 닮았느냔 말이야! 아오!”
남궁가주가 속에서 누르고 있던 화를 터뜨리고, 남궁경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하지만 남궁진혜의 말이 나오면, 언제나 지는 쪽은 남궁경이었다.
잠시 후, 늘 그렇듯 남궁경이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에 앉고.
진화는 어른들이 진정된 것을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암살자는 귀천성 살인시문인 듯합니다.”
“살인시문이라고?”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눈이 커졌다.
“오왕부에서 저를 노린 암살자가, 목이 잘리고 혀가 없어진 채 죽었습니다. 사로잡힌 이를 그리 처리하는 것이 살인시문의 방식이라 들었습니다.”
“그렇지. 놈들의 방식이야. 어허! 이제 살인시문, 소리마제까지 나타났구나.”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때, 진화가 눈을 반짝였다.
“소리마제를 잡으면, 마제들의 제물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뭐?”
“칠왕자에게 거래권을 주고 얻은 정보입니다. 혼현마제가 제물에 대한 정보를 주면, 소리마제가 그들을 데려온다고 했습니다. 돈에 집착이 심해서 납치한 제물에 대해 장부에 꼼꼼하게 기록한다 하니. 장부를 찾으면 제물들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으로 놈들의 움직임을 쫓거나 유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화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진화의 말을 듣는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얼굴은 점점 더 심각하게 굳어 갔다.
“행여 너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오나…….”
“진화야!”
드물게도 남궁가주가 진화에게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팔자 눈썹을 하고 저를 보는 진화의 모습에, 이내 한숨을 쉬고 말았다.
“혹시, 암살왕 교혼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더냐?”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무림에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이전 생에 아버지 남궁경에게 죽임을 당한 자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보낸 포사라는 자와 청화상단이 암살왕 교혼의 손에 당했다. 아마도 안상범이 그자와 연결된 듯한데,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단다.”
“아……!”
남궁세가에서 벌써 안상범을 잡아들인 사실을 몰랐던 진화는 낮게 탄성을 내었다.
진화는 증인도 없이 안상범을 잡아들였을 거라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일 처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왕 교혼은 본래 남궁세가와 네 아버지에게 원한이 깊은 자다. 혹시 몰라 그놈을 찾는 중인데, 살인시문까지 너를 노린다니. 우리로서는 네가 걱정될 수밖에 없구나.”
남궁가주의 말에 진화가 이해한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른들의 걱정을 이해해다오. 당분간, 그놈을 잡기 전까지만,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호위를 늘였으면 한다.”
남궁가주의 말에, 진화는 그와 남궁경을 번갈아 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어른들의 눈을 보자니 스스로 미끼처럼 움직이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겠습니다.”
“오냐, 고맙다.”
진화가 남궁가주와 남궁경에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애틋하고 조용하게 밤이 지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월하회가 보낸 전서가 도착하고, 남궁가주의 집무실은 다시 고성이 울렸다.
탕-!
“이런 썩을 새끼가! 거봐요, 내 뭐랬소! 그 왕비 년 대가리를 깨 놨어야 했다니까! 그년 짓이 맞잖아요!”
태복령이 진화의 목에 천금을 걸었다는 것과 살인시문에 대해 묻는 전서를 보고, 남궁경이 당장 오왕부 왕비의 대가리를 깨 놓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엔 남궁가주도 남궁경을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뭔가 이상한지 월하회의 전서를 몇 번씩 다시 읽었다.
“소리마제가 나선 것을, 왜 궁금해하는 거지?”
귀천성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것인가?
남궁가주는 별 이상할 것 없는 말이 자꾸 거슬려서, 전서를 읽고 또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