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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13)화 (213/425)

남궁마제

벼슬할 진(進) 응할 화(和) : 횡보행호거경(2)

황제, 당시의 왕이었던 한유수가 잃어버린 왕자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한 것은 ‘등에 인주가 찍힌 아기’를 찾는 일이었다.

수많은 가짜들이 찾아왔고, 그 부모들을 모조리 죽였다.

왕자를 찾기 위해 무림의 일에 끼어들어 사병을 보내기도 했다.

그 당시 황제의 정적으로 낙인찍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기에, 그로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다.

그렇게 왕자를 찾아 헤매길 일 년, 오 년, 십 년.

인주는 그저 황실의 아기가 앞으로 오 년을 버티길 바라는 마음으로 찍는 것이라, 이제 그것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졌던 것은, 왕비를 닮은 체질이었다.

왕자 또한 왕비를 닮아 역천지체를 타고났고, 간혹 성질을 부릴 때에 왕비처럼 눈동자가 특별한 빛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확실한 증거라 믿었다.

사례교위 조정호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진화를 마주한 순간.

황제는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었나 싶었다.

“아아…….”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한눈에 보아도 황후와 똑 닮은 얼굴이었다.

사내답게 굵은 골격과 눈썹 외에는 닮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특히 백자같이 희고 맑은 피부, 앵화를 문 듯 붉고 도톰한 입술 그리고 흑수정처럼 반짝이고 있는 두 눈이 그러했다.

굵직한 골격과 산이 있는 눈썹조차 어디서 왔는지 뻔했다.

황후의 옆에서 남궁경만큼이나 큰 사내가 진화와 꼭 닮은 눈썹을 들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아가…… 아가!”

무수히 상상했던 만남.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웃는 얼굴로 맞이하리라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황후는 굵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진화를 끌어안았다.

“…….”

“아가! 아가!”

“정화! ……황자가 당황하지 않소.”

“가가, 아가예요. 우리 아가예요!”

“그렇소. 우리 아들이오. 내 아들! 아아, 내 아들!”

결국 참고 있던 황제마저 진화와 황후를 끌어안았다.

천하를 가졌다는 용의 아들마저, 자식의 앞에서 용루를 참지 못했다.

남궁경, 팽연화 부부도 눈물을 흘렸다.

구중궁궐, 늙은 환관의 안내에 따라 숨이 막힐 듯 거대한 담을 걸어 들어온 황궁이었다.

어스름한 불빛이 있는 복도에는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마침내 내전에 들어가자, ‘억’ 소리가 날 정도로 화려한 내부의 모습에 살짝 주눅이 들어 있었다.

황제와 황후가 달려 나오듯 진화를 맞이할 때까지 말이다.

진화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황제와 황후의 모습에, 남궁경과 팽연화는 그들 또한 자식을 기다리고 있던 부모였음을 깨달았다.

내심 서운하고 야속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남궁경과 팽연화는, 황제와 황후의 품에서 당황한 듯 자신들을 찾고 있는 진화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누가 보아도 똑 닮은 얼굴.

하지만 대화를 시작하고 난 뒤.

진화는 그들과 저가 닮은 것이 얼굴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저는 그저 남궁진화로 살고 싶습니다.”

진화의 말이 있고.

그들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황후는 물론 남궁경과 팽연화까지, 놀란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진화에게 결정을 맡겨 두긴 했지만, 거기에 황자가 되지 않겠다는 선택지는 없었던 탓이다.

눈물의 상봉만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궁세가와의 교류에 대해 논의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는데…….

당황한 황후는 애타게 황제를 찾았고, 남궁경과 팽연화는 기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황제와 황후의 눈치를 보았다.

황제는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그들 모두를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진화를 보며 말했다.

“폐서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냐?”

“폐하!”

황제의 질문에 황후가 경악했다.

“폐서인이 되면 그리할 수 있습니까?”

“지, 진화야!”

진화의 물음에 남궁경과 팽연화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하지만 정작 황제는 느긋하게 웃었다.

“적통 황자가 폐서인이 될 정도라면, 남궁세가는 역적으로 멸문지화 정도는 당해야겠지.”

“…….”

그 말을 끝으로, 황제와 진화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노려본다는 말이 옳을까.

대체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서 둘이 싸우고 있는 전개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황후는 당장 기절할 듯 위태로워 보였다.

팽연화가 얼른 황후를 부축하며, 남궁경에게 눈짓을 했다.

-어, 어떻게, 등짝이라도 때릴까?

-우리 진화를 때리겠다고요?

-황제 등짝을 칠 수는 없잖소!

궁에 들어오며 환관에게 내내 주의를 받은 것이 ‘황제 폐하가 묻거나, 허하기 전에 입을 열지 마라’는 것이니.

남궁경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때,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단둘이 시간을 가지지.”

“……예.”

황제를 따라 진화도 일어섰다.

그리고 쫓아오는 환관들도 물린 채, 후원으로 나갔다.

황후와 남궁경, 팽연화 부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저 녀석이, 아니 황자님이 효자라서 그런 것입니다.”

“진화가, 아니 황자님이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저러는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남궁경, 팽연화 부부가 남은 황후를 위로하듯 말했다.

그러자 그새 마음을 가라앉힌 황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후후. 이제 보니 어릴 적 보았던 성정이 잘못 본 것이 아니군요. 어릴 적과 꼭 같아요.”

“예에?”

제가 기억하던 모습 하나를 발견해서 그런가.

영문을 몰라 하는 남궁경, 팽연화 부부에게 황후가 설핏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제 성질을 다 가지고 큰 것도 이 부부의 덕택이리라.

“고마워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황공하옵니다.”

뜬금없는 황후의 감사 인사에 남궁경, 팽연화 부부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진화 때문에 민망해진 상황이라 더 그러했다.

하지만 황후는 처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폐하께서 이기셔야 할 텐데. 지금 보니 황자도 만만치 않으니 걱정입니다.”

황후가 애틋한 눈빛으로 후원 쪽을 보았다.

남궁세가의 멸문지화.

그 말을 입에서 내뱉었을 때 황제를 죽여야 옳았으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와 똑 닮은 눈썹과 눈빛 때문이었을까.

역적(逆賊)이라는 말 이전에 폐륜(廢倫)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자신 또한 황제와 황후가 친부모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자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분명 황제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닌 듯했다.

“진심은 아니다. 은인들을 죽일 만큼 박하지 않으니까. 다만, 짐은 그리할 수 있다는 걸 말한 것이다.”

황제가 힘 있는 눈빛으로 진화를 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미간을 좁혔다.

“뭔가, 저를 회유해야 하는 입장 아니십니까?”

“짐은 약자의 입장에 익숙하지 않다.”

“해서 하는 것이 협박입니까?”

“손쉽고 빠른 방법이지.”

진화는 황제와 제가 생각보다 많이 닮았다는 걸 깨달았다.

진화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너는 천자의 아들이다. 또한 황후에게서 난, 제국에 단둘뿐인 적통 황자다. 너를 찾기 위해 애를 썼고, 이렇게 너를 찾았으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니겠는가.”

하늘의 뜻.

진화가 황제의 말을 곱씹었다.

제가 시간을 거슬러 온 것도, 수많은 운명을 바꾼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을 거스른 것이 아니라면…….

참 다행이었다.

앞으로 귀천성을 멸하고, 남궁세가를 구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 닿은 것일 테니.

진화는 ‘남궁세가를 구할 수 있다면 나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다.

“이름은 그대로 ‘진화’로 할 것입니다.”

진화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 황제도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한진화로 하지.”

“……!”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도 모르게, 불충하게도.

진화가 놀란 눈으로 황제를 보자, 황제가 그제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허! 이제야 아들의 얼굴을 보는구나.”

“저, 정말, 그렇게 해도……?”

진화가 더듬더듬 묻자, 황제가 팔을 뻗어 진화의 손을 잡았다.

진화는 놀란 얼굴 그대로 제 손을 꽉 쥐는 황제의 손을 보았다가, 다시 황제의 얼굴을 보았다.

“네가, 내 아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안다. 아비가 지켜 주지 못하여, 몹시 미안하구나.”

황제의 붉어진 눈에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동시에 이글거리는 분노도 느껴졌다.

“너를 그리 만든 놈들이 아직도 무림에 있다지?”

“…….”

진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속에서는 천불이 끓고 있었다.

금영의 조사로 알게 된 진화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 역적 놈들을 모조리 불길 속에 던져 놓고 싶었다.

제 아들을 그리 만든 이들에게 복수도 하지 못한다면 천하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심정은 그러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황실이 무림의 일에 직접적으로 끼어들 수 없었다는 건국 때부터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제는 정당한 천자로서 중원의 주인을 자부하지만, 여전히 사방에는 반란군과 역적이 들끓고 있었다. 황제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린 신하들조차 그가 틈을 보인다면 사병을 일으킬 것이었다.

복수심에 이성을 잃고 병력을 움직였다간, 천하도, 가족도, 겨우 찾은 아들도, 아무도 지키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서였다.

아들을 잃었던 그때처럼 여전히 무력하고 위태로워서, 황제는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마음도 들었다.

“복수라면 아비가 십 년이 걸려도 해 줄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리할 것이다.”

“십 년은 너무 늦습니다. 그 전에, 한시라도 빨리 놈들을 죽일 것입니다.”

“……복수는 네 손으로 하고 싶다는 말이더냐?”

황제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진화에게 물었다.

진심을 확인하려는 듯, 야수 같은 눈빛이 진화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복수는 상관없습니다. 놈들을 죽여야, 저와 남궁세가가 안전해집니다.”

“……그렇구나.”

수백 번도 더했던 다짐, 한 번 더 말하는 것이 대수랴.

진화의 눈빛에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그 눈빛에서 뭔가 읽은 것인지, 그대로 진화를 품에 안았다.

툭. 툭.

황제가 진화를 안고, 토닥거리듯 등을 쓰다듬었다.

“내 아들 한진화. 한진화로 살되, 무림에선 남궁진화로 살아도 좋다.”

“……!”

진화의 몸이 떨렸으나, 황제는 아무렇지 않게 진화를 토닥였다.

“천자의 아들답게, 은혜도 잊지 말고 원수도 갚아 주거라. 아비가 무엇이든 해 줄 것이다!”

황제가 꽈악 힘을 주어 진화를 끌어안았다.

잠시 후.

진화의 손을 잡고 나타난 황제가 결정을 알렸다.

황자의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당분간 궁에 있다가 무림으로 돌아가 일을 마칠 것이라고.

황후는 아쉬워하였으나, 웃으며 그 결정을 반겼다.

오히려 남궁경, 팽연화 부부가 눈물을 터뜨렸다.

“아아……!”

무림에서 남궁진화로 사는 것 또한 허한다는 말에, 팽연화가 남궁경의 품에 무너졌다.

“황공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꼼짝없이 진화와의 이별을 예상하고 온 길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그들의 아들이어도 된다니.

남궁경과 팽연화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감사를 표했다.

황후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일으키고, 당황한 진화가 팽연화를 부축했다.

* * *

그날 밤.

스르륵.

처형을 앞둔 죄인의 옥사 앞에 귀한 발걸음이 멈추었다.

달빛도 허락되지 않은 깜깜한 옥사로, 환한 횃불이 죄인의 얼굴을 비추었다.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몰골을 한 오왕비, 곽경란이 눈꺼풀을 파닥이며 눈을 떴다.

“아!”

황후의 모습을 발견한 곽경란이 눈을 크게 떴다.

궁녀는 황후가 곽경란의 몰골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도록 횃불을 고루 비추었다.

고문이 있었던 것인지, 양손과 발에 멍과 핏자국이 선연했다.

그것을 다 확인한 황후가 천천히 입을 뗐다.

“네가 내 아들을 그렇게 했다지?”

“…….”

곽경란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황후의 시선에서 도망가고 싶은 듯, 고개를 돌리며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에 황후의 곁에 선 상궁이 엄한 얼굴로 나서려는데, 황후가 손을 들어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냉담한 얼굴로 곽경란을 내려다보았다.

“너 때문에, 오늘 내 아들을 나누어 가졌다. 내 아들은 나누어 가져도 될 만큼 큰 사람이 되었더구나. ……과연 네 아들들도 그러할까?”

덤덤한 말투.

하지만 자신의 아들들에 관한 말에, 곽경란이 화들짝 놀라 황후를 보았다.

그때, 흑요석 같은 황후의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너 때문에 내 아들을 나누었으니. 내 아들의 귀환을 환영하는 연회에서, 네 아들들을 찢어서 네 눈앞에 던져 주마! 내 그 말을 직접 해 주고 싶어서 들렀구나.”

“허억! 안 돼! 자, 잠깐만!”

겁에 질린 곽경란이 철창살에 다가왔다.

황후는 할 말이 끝났다는 듯 냉정하게 돌아섰다.

“안 돼-! 아아아악! 안 돼---!”

곽경란의 비명만이 어둠 속에서 맴돌았다.

다음 날.

실종되었던 적통 황자의 귀환 소식이 온 황도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진화의 정식 입조 날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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