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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15)화 (215/425)

남궁마제

벼슬할 진(進) 응할 화(和) : 횡보행호거경(4)

곧바로 전전으로 뛰어들려는 호양공주를 젊은 환관이 막아섰다.

“너!”

호양공주가 사납게 환관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환관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엄한 표정으로 정면만을 보았다.

그리고 안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폐하, 호양공주 드나이다.”

환관의 알림이 있고, 안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흥!”

호양공주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제 앞을 막았던 환관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황족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황제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별한 용건 없이 아랫사람이 황제를 찾아오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별한 용건’이란 황제의 기준에 부합해야 하니, 아랫사람은 황제가 부르기 전에는 오지 않는 것이 나았다.

비로소 황권의 위엄이 바로 선 당금 황제에 이르러, 황제의 전전을 마음대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단둘뿐이었다.

한 사람은 당연히 황후였고, 다른 한 사람은 호양공주였다.

호양공주의 권력은 바로 이런 황제의 특별 대접에서 나온 것이었다.

“폐하-!”

전전 안쪽 문이 열리자마자, 호양공주가 황제를 부르며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곳엔 황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자신의 궁을 나와 황제와 차를 나누고 있던 황후였다.

붉은 옷을 입고 모처럼 생기가 가득한 황후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같았으니.

“이런 공주, 황제께 먼저 예를 올려야 하지 않겠어요?”

황후는 이 황궁에서 호양공주의 무례함을 꼬집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송구합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호양공주가 입술을 씹으며 인사를 올렸다.

‘저년이 왜 갑자기 궁을 기어 나온 거야?’

호양공주는 황후의 앞에서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인지,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이 더 독해졌다.

“황후마마께서도 와 계시니. 마침 잘되었네요! 폐하, 제가 너무 황당한 일을 당하여 억울함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호양공주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그때.

평소라면 ‘허허허’ 웃으며 말해 보라고 했을 황제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마침 그 일로 너를 부르려고 했다. 네가 데려온 그 가신을 안으로 들이고, 다른 당사자들도 들이지.”

“네? 다른 당사자요?”

당황한 듯 되묻는 호양공주를 두고, 황제의 곁에 있던 늙은 환관이 밖으로 외쳤다.

“모두 들라 하라신다.”

늙은 환관의 말이 있고, 쪼르르 바쁘게 움직인 환관들이 전전의 문을 열었다.

환관들이 그녀가 데려온 가신을 부축해서 끌어다 놓았다.

그리고 호양공주가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문밖에서 젊은 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황자님과 남궁 소저 드나이다!”

호양공주 때보다 훨씬 우렁찬 목소리가 전전에 울렸다.

“황자라니, 허억!”

의아한 얼굴로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호양공주는, 체통도 잊고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저, 저……!”

진화는 남궁진혜와 함께 전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궁진혜가 구시렁댄 말처럼 목이 부러질 정도로 장신구를 많이 한 여자가 진화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도 보았다.

-분질러 줄까?

-……나중에요.

진화는 남궁진혜의 물음에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황제와 황후에게 인사를 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진화와 남궁진혜가 절도 있게 인사를 하고, 진화가 사르르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부황, 모후,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오오, 황자!”

“황자, 남궁 영애, 어서 와요!”

황후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은, 오로지 진화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정식 입조식이 지난 후에야 진화를 궁으로 데려올 수 있었기에, 황후는 그 전에 진화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완벽한 황실 예법을 보이는 진화의 모습에 황제와 황후에게서 훈풍이 부는 동안.

잠시 잊힌 호양공주는 진화와 황후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또, 똑같잖아!’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건만, 호양공주는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마 황후와 같은 얼굴이 또 있을 줄이야! 저래서야 확인이고 뭐고, 말을 꺼낼 수 있을 리 없잖아!’

진화의 출신 검증을 핑계로 이런저런 여론을 만들려 했던 호양공주는, 그 생각을 전전 한구석에 처박아 버려야 했다.

그때, 황제가 친히 진화의 손을 잡고 호양공주를 가리켰다.

“네 고모가 되는 호양공주다.”

“공……주요?”

진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는 무위종사정부인이라 하는 것이 옳겠으나…….”

“폐하!”

황제가 더 설명을 하려 했으나, 무례하게도 호양공주가 그 말을 막았다.

호양공주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황실의 필요에 따라 나이 많은 종사에게 시집을 간 것도 분한 마당에, 그 종사가 일찍 죽어 버리기까지 했으니. 대가 끊어진 무위종사의 집안에서 홀로 남겨진 과부가 호양공주의 처지인 것이다.

다만 그것에 대한 미안함과 남매지간의 정으로, 황제는 호양공주가 공주의 명칭을 쓰는 것과 거처를 대서전이라 부르는 것을 용인해 주고 있었다.

호양공주는 갑자기 나타난 황자를 망신 주기 전에 제가 먼저 약점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저를 빤히 보는 진화에게, 마지못해 먼저 입을 열었다.

“고모라 부르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진화를 보며, 호양공주가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일부러 늦게 대답한 것이야! 고모 소리는 하지도 않고 대답만! 괘씸한 놈!’

처음부터 좋지 않은 감정으로 출발한 관계였다.

호양공주는 진화의 모든 행동을 비꼬아 받아들였다.

물론 영 틀린 것도 아니었다.

“마침 황자와 저 계집까지 부르셨으니 잘되었군요. 저 황당무계한 계집이 제 가신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대체 얼마나 무도하고 안하무인 하면, 대서전에 물품을 사 오는 가신에게 주먹을 휘두른단 말입니까! 필시, 저를 무시한 것입니다! 황궁 밖에 홀로 외롭게 사는 여인이라 저를 무시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호양공주가 눈물을 쏟을 듯 울먹이며 말했다.

“아직 입조도 안 한 황자를 믿고 저 무림 계집이 방약하게 굴고 있으니, 앞으로는 얼마나 더 할지 염려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호양공주는 무릎까지 꿇어 가며 가련한 여인처럼 외쳤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는지, 황제의 눈빛은 무심하기만 했다.

오히려 진화가 어찌 나올지 궁금하다는 듯 곧바로 진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화는 무릎을 꿇고 있는 호양공주의 옆을 지나 황제에게 서신을 건넸다.

잠시 스치듯 호양공주를 보는 눈길이, 황제와 꼭 닮아 있었다.

“관직도 없고 직책도 없는 일개 하인이 대낮에 무도하게도 죄 없는 폐하의 백성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었으며, 이를 막는 적호단 부단주에게 ‘사형’을 운운하였으니. 그 횡포와 월권이 도를 넘었습니다.”

“그, 그 아이는 감히 대서전에 가는 물품을 훔쳤사옵니다!”

환관들에게 끌려 나왔던 대서전 가신이 억울한 듯 외쳤다.

하지만 이 또한 진화가 판 교활한 함정이었을 뿐이었다.

“방금 저자가 아이를 죽였다 실토하였나이다. 또한 적호단 부단주가 구한 것은 죽은 아이를 끌어안은 죄 없는 어미였습니다. 저자는 실수를 한 배고픈 아이를 법과 상관없이 함부로 죽인 것은 물론, 그 어미까지 죽이려 하였으니. 그 방자함이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그, 그건……!”

진화의 말에, 대서전 가신의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호양공주는 더 기함한 표정으로 진화를 보았다.

“서신은 정의맹의 공식 항의 서한입니다. 적호단 부단주가 오늘 폐하를 찾은 것도 이 서한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인의 도를 넘은 횡포와 월권은 개인의 일탈이라 할 수 있지만, 대낮에 군병들이 움직여 적호단 부단주를 공격했나이다!”

진화가 보란 듯이 허리를 숙였다.

“신, 무림에 몸을 담고 있으나 폐하의 아들이옵니다. 건국조 때부터 무림과 했던 약조를 저버린 무도한 이들의 행사에,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간청컨대 이 일에 대한 잘잘못을 명명백백 밝히시어, 황권을 바로 세우고 국법의 지엄함을 보여 주소서!”

“……허!”

태사인 조위례가 따로 적어 준 것이었을까.

노회한 조정 대신인 양 줄줄이 간하는 진화의 모습에, 황제와 황후의 얼굴에도 감탄이 서렸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 이는 남궁진혜 하나밖에 없었다.

호양공주는 정신줄을 놓은 듯, 진화를 향해 입만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황제의 시선이 호양공주를 향했다.

“관무불가침은 건국조께서 무림의 공을 인정하며 엄숙하게 했던 약조이다. 한데 군병이 움직이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호양, 답을 해 보거라!”

“폐, 폐하! 오라버니!”

갑자기 제게 화살이 돌아오자 당황한 호양공주가 황제를 불렀다.

하지만 황제의 반응은 이전과 달랐다.

“어허! 이곳은 전전이다! 출가까지 한 네 예법이 어찌 아직도 그 모양이더냐!”

“하, 하오나 저 무림 계집이…….”

탕-!

“호양!”

황제의 호통에, 호양공주가 몸을 떨며 바닥에 엎드렸다.

“폐, 폐하, 저는 그저 제 가신이 대낮에 공격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 신고를 한 것뿐이옵니다! 토,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아예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 듯.

호양공주가 그사이에 머리를 굴려 제 잘못을 쏙 빼냈다.

남에게 잘못을 덧씌우는 것이 본능인 양, 그녀는 순식간에 제 사람을 믿은 죄밖에 없는 순진한 여인이 되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이 몹시 불길했다.

“그러한 일이 있은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게다가 건국조의 약조라니, 제가 어찌 감히 그것을 어기려 했겠나이까.”

“방금 전에 네 입으로 ‘무림 계집’이라 하지 않았더냐?”

“그, 그건, 정의맹의 사람인 줄 몰랐다는…….”

탕-!

호양공주의 변명에 황제가 다시 탁자를 내리쳤다.

“호양, 너는 남궁세가 영애가 전전에 들었을 때 그녀를 알아보았다! 또한 추포에 나섰던 병사들 또한 ‘남궁진혜’라는 이름과 적호단을 알고 나섰다 했다! 그런데 네가 감히 내 앞에서 거짓을 말하려는 것이냐!”

“아아아! 폐하!”

황제의 노성에, 호양공주는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확실하게 느꼈다.

황제의 총애가 변한 것이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오라버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가신들이 나간 일이라 저는 몰랐사옵니다!”

호양공주가 진실로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동안에는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던 황제였다.

이렇게 따지고 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호양공주의 등줄기로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황제의 변심이 서러웠지만, 그보다는 두려웠다.

황제의 손에 죽어 간 형제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호양, 내 그동안 혼자 된 네 처지가 안타까워 여러 방자함을 알고도 모르는 척해 왔다. 그런 짐의 아량이, 감히 네 하인이 짐의 백성을 함부로 죽이는 무도함으로 이어졌음이니! 앞으로 호양공주에게 가는 황실 내탕금을 다른 공주와 형평을 맞추도록 하며, 호양공주는 일체 바깥출입을 금하고 무위종사부에 석 달간 근신토록 하라! 앞으로 허락받은 일이 아니라면 황궁의 출입도 삼가라!”

황제의 말에, 호양공주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황제가 친히 대서전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으로, 그마저도 허락을 거둔 것이다.

이는 곧 호양공주에게 주어진 모든 특권을 거두겠다는 말과 같았다.

“폐, 폐하, 제게 이러실 수 없습니다! 어찌 제게! 천하에 혈육이라곤 폐하밖에 없는데, 황궁 출입도 금하라니요!”

“닥쳐라-! 사사롭게 군병을 움직이는 것이, 자칫 역모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호양공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 역모라니요! 제게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을 폐하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것! 네게 뜻이 없다 하나, 네가 한 행위가 그러한 것이다!”

“폐하!”

“더 말하지 않겠다. 짐이 자비를 베풀 때 그만하라.”

얼음처럼 냉담한 눈빛.

황제와 눈이 마주친 호양공주는 제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차디찬 눈빛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향한 것을 보고, 호양공주는 제가 버림받았음을 깨달았다.

‘어째서…… 어째서…… 서, 설마, 태자?’

호양공주의 사치나 월권은 사소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황제가 호양공주를 버린 이유는 단 하나.

어머니가 없는 태자에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던 호양공주를 치워 버린 것이다.

‘폐하께서 설마 태자마저 버리시려는 건가?’

호양공주의 눈이 하염없이 떨렸다.

그때, 조용히 황제의 처결을 지켜보고 있던 진화가 나섰다.

“폐하, 저자의 처결은 정의맹에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저자를?”

“본래 무림의 생리라면, 자신을 모욕하고 검을 들이댄 이를 살려 두는 법이 없습니다. 적호단 부단주는 그 자리에서 저자는 물론 군병들까지 모조리 목숨을 거둘 수 있었으나, 황실의 권위를 생각하여 서신으로 허락을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부디 그 충심을 생각하여, 군병들은 두더라도 감히 부단주를 모욕한 저자는 내주시길 간청하옵니다.”

호양공주의 눈이 진화에게 돌아갔다.

감히 그녀의 앞에서 ‘가신의 목숨을 내 달라’ 하는 것은 호양공주의 권위에 직접 망신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호양공주는 서럽고 억울한 마음에 분노를 담고 진화를 노려보았다.

“흐음, 황자의 말이 옳다. 군병은 군율로 다스릴 것이나, 저자의 일탈은 무림에 맡기겠다.”

“폐하-!”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공주마마! 폐하!”

놀란 호양공주가 황제를 쳐다보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가 기겁하며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감히 황제에게 다가가려다가 환관들에게 몸이 눌린 것이다.

“폐하, 신첩이 잘못했나이다. 부디 모든 죄는 신첩에게만 물으시옵소서!”

호양공주가 소리 높여 애원했다.

그러나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호양공주가 사내를 아껴서 구명을 청하는 것도 아닌, 제 위신을 지키려 나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종의 잘못은 주인의 잘못이다. 하나, 주인이 벌을 받는데 죄를 지은 종이 벌을 받지 않는 법은 없다.”

호양공주의 콧대를 눌러 놓으려는 황제가 그녀의 청을 들어줄 리 없었다.

그때 진화가 환관들을 물리고 사내에게 다가갔다.

진화가 사내의 어깨를 토닥거릴 듯, 손을 얹었다.

그러자 사내가 진화의 얼굴을 보며 양손을 싹싹 빌었다.

“화, 황자님, 제발 소인을 살려 주십시오!”

“……누님을 때리려고 올린 손이, 이쪽 손이었나?”

“네?”

조용히 묻는 목소리에, 사내가 저도 모르게 멍청하게 되묻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

사내는 황자의 눈동자에 푸른 번개가 내리치는 것을 보았다.

“상관없지.”

파지지지직-----!

진화의 손에서 나온 새파란 번개가, 사내의 온몸을 관통했다.

“끄아아아악-!”

처음 들어 보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허연 해골이 비치도록 번개가 번쩍였다.

그리고.

쿵-!

창백하게 질린 피부에 새까만 거미줄을 새긴 사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런 사내를 두고, 진화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경악한 환관들.

놀란 눈으로 저를 보는 황제와 황후.

엄지를 치켜든 남궁진혜를 지나,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는 호양공주를 내려다보았다.

“황실의 어른으로서 앞으로는 모범을 보이시지요. 무림에선 작은 실수 하나로 목숨을 잃기도 한답니다, 고모님.”

“히이익!”

진화의 눈동자에서 내리치는 푸른 번개를 보고, 호양공주가 귀신을 본 듯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 * *

황제의 총애를 받던 호양공주의 근신이 알려지고.

경악과 혼란, 놀라움이 혼재된 가운데, 새로운 황자의 입조식 날이 되었다.

황제와 황후가 나란히 자리하고, 대소 신료들이 모두 전전에 자리한 가운데.

붉은 제식 복장을 한 진화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누구 하나 숨소리를 내는 자가 없었다.

“오래전 잃어버린 짐의 황자를 이제야 찾았으니. 이보다 기쁜 날이 어디 있겠는가. 짐은 이제야 찾은 적통 황자 한진화를 동해왕에 봉한다. 이를 종묘와 황실, 대소 신료에게 공포하니, 정식 제를 올리고 사흘간 연회를 베풀겠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동해왕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진화를 본 신료들은 누구도 황제의 결정에 반발하지 않았다.

“연회 전에, 감히 황자를 납치하는 데에 공조한 역당들을 벌하겠다! 전전의 앞에 죄인들을 대령하라---!”

다시 없을 것 같던 천세의 미인인 황후와 똑 닮은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천하를 호령하는 용의 분노에 몸을 조아렸다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추상같은 용의 분노가 울리는 가운데.

전전 앞에는 이미 태복령의 일가는 물론 오왕과 왕자들까지 모두 끌려 나와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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