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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16)화 (216/425)

남궁마제

벼슬할 진(進) 응할 화(和) : 횡보행호거경(5)

황족의 끄트머리는 비참한 자리였다.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황족이니 황실에서 내려오는 내탕금도 없었고, 황족의 체신 때문에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지독한 가난의 굴레 속에서, 때때로 관리들과 호족들이 쌀 몇 자루 던지며 모욕을 주러 나타난다. 귀한 핏줄에 침을 뱉으며 한바탕 웃는 값으로 내주는 곡식이었다.

한유수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어느 날 나타난 자비로운 호족에게 기대어 글을 배울 수 있었고, 운 좋게 군을 일으킨 황족을 만나 공을 세울 기회를 얻었다.

비록 황족의 핏줄을 노린 호족과 강제로 혼인을 당하고, 군을 일으킨 육촌 형님에겐 대신 죽어 줄 그림자가 되길 강요받았지만 말이다.

그조차도 못하고 굶어 죽거나 조리돌림당하다 죽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차라리 전쟁터에서 명예롭게 죽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진창에서 굴렀지만 형제들을 지킬 수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고 전쟁터에서 세운 공으로 제후까지 되었으니, 이만하면 운이 좋았다 생각했다.

황제가 친형제를 죽이고 수많은 사촌을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 하기 전까지는.

한유수는 복수를 위해 검을 들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싸웠던 적이 없었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모두를 살리고자 했기에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래서 한유수는 황제가 되었다.

전전의 앞.

전전 앞 공터에는 이미 죄인들이 끌려 나와 있었다.

신료들이 먼저 나와 자리를 잡았다.

밖에는 이미 다른 황족들과 초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허!”

“저, 저기!”

대소 신료들 중 몇몇이 무릎 꿇려 있는 죄인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랐다.

집안의 위세를 믿고 주흥과 연회를 즐기던 태복령의 아들들을 알아본 것이다.

‘태복령이라고?’

경악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대소 신료들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먼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황족들과 손님들은, 이미 숙연한 분위기 속에 숨소리도 조심하고 있었다.

전전 앞 공터 오른쪽에는 곽구윤의 형제와 아들을 비롯한 일가가 무릎 꿇려 있었고, 왼쪽에는 오왕과 이왕자, 삼왕자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벌벌 떨며 서 있었다.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 동해왕 전하 나오십니다!”

환관의 알림이 있고, 모든 사람들이 황제에게 예를 취했다.

“헙!”

“……!”

황족들과 귀빈들은 진화의 얼굴을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곳곳에서 비명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에서 진화의 얼굴을 본 황족들은, 진화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누가 보아도, 황도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아도 황제와 황후의 아들이었다.

특히 황제와 황후가 그들의 옆자리에 진화를 앉히자, 태자를 비롯한 황자들의 얼굴이 오뉴월에 찬 서리를 맞은 듯 뻣뻣하게 굳었다.

궁녀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황제와 황후가 진화의 발걸음과 자리를 손수 챙기니.

황족들의 눈동자가 바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붉은 옷을 차려입은 진화의 모습에 감탄하기 바쁜 이들도 있었다.

“와, 우리 진화…… 다 죽였네!”

“어쩜!”

“번쩍번쩍하네!”

남궁진혜와 팽연화, 남궁경 부부가 황족들을 제치고 진화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 *

황제와 황후, 새로 입조식을 치른 진화가 천천히 자리를 잡자, 사례교위 조정호가 앞으로 나섰다.

“죄인들을 대령하라!”

사례교위 조정호의 명에 따라, 금군들이 커다란 사각틀에 죄인들을 묶어 놓은 수레를 끌고 들어왔다.

끼익. 끼이익.

죄인들은 양손과 발이 활짝 벌어져서 나무 기둥 끝에 묶여 있었고, 고개를 돌릴 수 없도록 목에도 밧줄이 메어 있었다.

수레가 움직일 때마다 줄이 출렁거리며, 죄인들의 목과 팔, 다리를 잡아당겼다.

“저, 저런!”

“어머!”

전 태복령 곽구윤과 전 오왕비 곽경란의 처참한 몰골에 장내가 술렁였다.

한때는 황도 최고 부자로 손꼽히던 곽구윤과 귀부인들의 선도자라 불리던 곽경란이, 산발한 머리와 온갖 고신의 흔적을 담은 몸으로 사각틀에 묶여 나타난 것이다.

“아아! 아아아-!”

곽구윤과 곽경란이 사각틀에 묶인 채 요동쳤다.

그들의 맞은편에 있는 가족들을 이제야 본 것이다.

헝겊으로 입이 막혀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던 곽경란이, 온몸을 요동치며 고개를 돌리려 했다.

황후의 느긋한 눈길이 곽경란과 마주쳤다.

“으으으으!”

금군에 의해 줄이 당겨지며, 곽경란이 마구 꿈틀거렸다.

사례교위 조정호가 황제의 전교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죄인 곽구윤과 곽경란은 들으라! 죄인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역적과 내통하여 궁궐 담을 넘게 하고, 이에 모자라 황자님의 납치에 공모하였다. 또한 황자님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알면서도 황제의 눈과 귀를 속이고 이제껏 역적들과 손을 잡고 부귀영화를 탐하였다!”

“으! 으으으-!”

“역적과 공모한 자들은 마찬가지로 역적이다. 게다가 이후 사실이 드러날 것이 두려워 직접 황자님의 목숨을 노리고 진실을 은폐하려 했으니, 그 죄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바! 지엄한 국법에 따라 역적의 처결은 삼족을 멸한다!”

“으으으! 으으으윽!”

사례교위가 읽어 내는 황제의 교서에, 곽구윤이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을 보았다.

“아, 안 돼! 우리는 죄가 없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곽구윤의 일가가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엎드려 빌었다.

그러나 사례교위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석상처럼 다음 구절을 읽어 내릴 뿐이었다.

“오왕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나, 황족의 몸으로 죄인을 왕비로 맞아 가정을 이루었으니. 불충의 죄를 물어 오왕부를 폐하고, 오왕은 폐서인하여 한평으로 유배한다!”

“화,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오왕이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절을 올렸다.

한평은 겨울에 입김마저 얼어 버릴 듯한 추위로 유명한 산으로, 황족들을 소리 없이 죽일 때 보내는 유배지였다.

그러나 지금 같은 때에는 그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가담 사실이 없고 황족임을 감안하여, 오왕부의 다른 이들에게는 십 년 유배형을 내린다. 단, 죄인의 아들들에게는 마찬가지로 죄를 묻는다!”

사례교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금군들이 오왕의 뒤에 숨어 있던 이왕자와 삼왕자를 끌어냈다.

“으으으으---!”

곽경란의 비명과 같은 신음이 왕자들을 향했다.

“아, 아바마마! 아바마마!”

“폐하, 살려 주십시오! 폐하!”

금군들이 왕자들을 끌어내어 밧줄로 묶고, 곽구윤의 일가가 있는 곳으로 던졌다.

또다시 황족들과 대소 신료들이 술렁였다.

설마 황족인 왕자들까지 이렇게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폐서인과 천한 죄인의 자식이니, 처결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금군들은 죄인들의 머리와 눈을 잡고 일족의 죽음을 똑똑히 지켜보게 하라! 일족의 죽음을 지켜보게 한 뒤, 죄인들을 능지처참할 것이다!”

“황명을 받드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금군들이 명을 받들고, 뒤늦게 황족들과 대소 신료들도 절을 하며 명을 받들었다.

죄인들의 처결에 대해 대소 신료들에게 한마디도 묻지 않은 것은 현 황제의 치세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일로 황제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눈치챈 황족들과 신하들은, 짧은 사이에 입을 다물기로 결정한 것이다.

“죄인들을 마족태살형(馬足跆殺刑)에 처하라!”

사례교위의 말에 고개 숙인 채로, 황족들과 신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미 전전 앞에서는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히이이이잉---!

마족태살형은 미쳐 날뛰는 말의 발굽에 짓밟혀 죽게 하는 것으로, 운이 좋으면 일찍 죽을 것이나 운이 나쁘면 피를 토하고 온몸에 뼈가 부서질 때까지 고통을 맛보게 되는 형벌이었다.

“아아악!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바닥에 묶인 죄인들이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곧 십여 마리의 말이 공터로 뛰어들고, 그 주변을 금군들이 검을 들고 지키니.

“아아악--!”

“안 돼! 안 돼--!”

히이이이잉----!

타각! 타각! 타각-!

비명과 말 울음소리, 말발굽 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크게 울려 퍼졌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이들이 금군의 검에 쫓겨 다시 안으로 들어가거나, 금군의 검에 베인 채 안으로 던져졌다.

“으으으--!”

“아아아아아----!”

곽구윤과 곽경란은 자식과 가족들의 몸이 말발굽에 부러지고 짓이겨지는 광경에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들 모두 목에서 피가 나도록 울음을 울었다.

잠시 후.

휙-! 휘휙-!

마부장들이 흥분한 말들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그리고 한 밧줄에 몇 사람씩 매달려 말들을 진정시켜 데리고 나갔다.

남은 공터에는 처참하게 밟혀 죽은 시체들만이 가득했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

곽구윤이 넋을 놓은 듯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곽경란은 죽은 왕자들의 시체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

금군들이 나서서 시체들을 실어 나르고 바닥에 깔린 멍석을 치울 때까지, 전전 앞에는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황제와 황후가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고, 황제가 환관에게 말을 전했다.

잠시 후, 사례 교위가 황제의 명을 전했다.

“죄인들의 능지처참은 연회 마지막 날에 집행한다!”

좋은 날 더는 피를 보지 않겠다는 황후의 자비 덕분이라 했지만, 누구도 그것이 자비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식과 가족들이 죽는 광경을 지켜본 곽구윤과 곽경란은 이미 지옥에 팔 할 정도 발을 들인 것과 같지 않을까.

금군들에 의해 수레에 실려 나가는 그들은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들이었다.

* * *

황제가 일어나 좌중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숨을 죽이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직 역도들이 무림에 남았다고 하는군. 동해왕 한진화를 파군대장군에 명해, 감히 짐의 아들을 해하려 한 역도를 처단하게 하겠다!”

“황명을 받드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의 말에 진화가 앞으로 나와 허리를 숙여 포권하며 황명을 받았다.

오직 적통 황자들만이 황제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되었으니.

모든 이들이 진화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한 사례교위 조정호는 조정에 남아 있는 역도의 무리를 발본색원하여, 다시는 이 같은 무도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황명을 받드옵니다.”

사례교위 조정호가 진화의 옆에서 부복하였다.

마치 약속된 것과 같은 일련의 상황은, 황족들과 대소 신료들 사이에 거대한 파문을 만들었다.

황제의 총애가 변했다!

앞으로의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걸 읽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시에 잔인한 피바람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엄중한 경고도.

“오늘은 짐의 황자가 돌아온 기쁜 날이니, 모두 즐겁게 연회를 들도록 하지.”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의 말에 모든 이들이 부복했다.

방금까지 시체가 가득하던 전전 앞 공터에 악사들과 아름다운 무희들이 그 자리를 메우며, 음악과 함께 연회가 시작되었다.

마치 한편의 희극처럼.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술과 음식을 즐겼다.

이제까지 있던 공포의 공기가 연기처럼 사라진 듯하였다.

다만, 몇몇 황족과 신료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갈피를 잃은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잔인한 광경과 잔인한 연회.

그리고 그보다 더 잔인한 사람들을 보며, 팽연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진화를 불렀다.

“진화야…….”

귀빈으로 초대를 받은 팽연화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화의 왼손을 잡았다.

진화는 그런 팽연화에게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번에는 황후가 진화의 오른손을 잡았다.

“아무 걱정 마세요. 이 어미가 지켜 줄 것입니다.”

황후가 정면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진화의 오른손을 잡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힘주어 잡는 그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음에, 진화가 조용히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와, 숙부, 황궁도 한따까리 하는데요.”

“그러게. 좀 곱게 죽여 주긴 했지만, 일반 백성들이니까.”

“그래도 아까 그 영감탱이랑 마귀 같은 여자는, 우리가 처리하면 안 될까요? 한 삼천 번 포를 뜰 때까지 살려 두려면 칼질을 잘해야 하는데…….”

“글쎄다. 나중에 황제 폐하한테 말이라도…… 으-따!”

황제가 그들의 대화를 듣기 전에, 팽연화가 남궁경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스-읍!”

팽연화의 눈초리에, 남궁경과 남궁진혜가 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 * *

어두운 석굴.

석굴 한복판에, 한 남자가 붉은색 머리를 산발한 채 눈을 감고 잠이 든 듯 앉아 있었다.

사내가 입은 검은 도포에는 붉은 눈의 황호가 사방을 경계하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니.

적발(赤魃)의 홍안금호(紅眼金虎)라면, 당금 무림에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권마(拳魔) 태금호(太金虎).

귀천성 마제 중 한 사람이나 그 전에는 사패천주의 두 번째 제자였다.

귀천성의 무림 정복에서 활약한 것보다, 사패천을 배신한 뒤 온 사파에 쫓기고 있는 것으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 권마 태금호가 대낮에 석굴에서 편히 쉬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시간이 흘렀을까.

석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함께, 자는 줄 알았던 권마가 눈을 번쩍 떴다.

휘이이익---!

순식간에 옆으로 손을 뻗은 권마가 뭔가를 잡아채 던졌다.

휘이익- 탁.

권마의 손에 던져진 것은, 검은 복면을 쓴 사람이었다.

검은 복면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바닥에 부복했다.

“네가 견자현인가?”

“권마제 태금호 님을 뵙습니다.”

권마의 물음에, 검은 복면인이 복면을 벗으며 인사했다.

복면인은 평범한 점원의 모습으로 소리마제를 보필하던 자였다.

“소리마제가 죽었다.”

“알고 있습니다.”

“팔현성의 한 자리가 비었다. 혼현마제는 네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더군.”

권마 태금호의 말에 견자현의 눈동자가 떨렸다.

숨기려 했지만, 견자현의 눈빛에 기대와 흥분, 열망이 가득했다.

그 눈빛을 본 권마가 견자현의 앞으로 뭔가를 던졌다.

철컹.

요란한 쇳소리가 석굴에 울려 퍼졌다.

권마가 던진 물건을 확인한 견자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건……!”

“새로운 암림혈귀갑이다. 혼현마제가 소리마제 문악이 남겨 둔 역천대법을 완성했다.”

“……!”

권마의 말에 견자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내, 흥분과 설렘, 기대로 벅차올랐다.

“소리마제의 암림혈귀갑을 회수해 와라. 그것에 남아 있는 혈정이라면, 새로운 암림혈귀갑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럼?”

“완전한 암림혈귀갑을 얻는다면, 네가 새로운 마제가 될 것이다.”

“아아!”

권마의 말에 견자현이 탄성을 참지 못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

꿈에서도 바라 마지않던 자리가 그의 눈앞에 떨어졌다.

견자현이 떨리는 손으로, 권마가 던져 준 새로운 암림혈귀갑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암림혈귀갑에 내기를 불어 넣자.

차라라락---!

검은 사슬들이 견자현의 팔을 타고 올랐다.

“윽!”

뾰족한 침이 파고드는 고통에 견자현이 신음을 내었다.

하지만 검은 사슬은 멈추지 않고 견자현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끄으으!”

차라라라라락! 차락!

마침내 견자현의 양팔과 목 뒤에, 암림혈귀갑이 자리를 잡았다.

뼈를 뚫는 듯한 고통을 견디고 나니 견자현은 온몸에 힘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견자현은 자신의 양팔에 연결된 암림혈귀갑을 보며 희열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권마의 목소리가 매섭게 날아들었다.

“소리마제는 그것의 힘에 취해 방심하다 죽었다.”

잠깐 권마의 존재조차 망각하고 있었던 듯, 견자현이 움찔 놀라 권마를 보았다.

붉은 눈이 견자현의 속을 꿰뚫듯 지켜보고 있었다.

“주군께서 깨어나셨다. 팔현성에 들고 싶거든, 대업이 시작되기 전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권마의 충고에, 견자현이 순순히 감사를 표했다.

온몸에서 펄떡이는 기운을 느끼며 견자현의 자신감도 함께 차올랐다.

‘대업이 시작되기 전에 팔현성이 된다! 내가! 내가 새로운 마제가 된다!’

그 전에 소리마제의 암림혈귀갑 안에 남은 혈정을 회수해야 했지만, 지금 견자현에게는 어떤 것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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