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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19)화 (219/425)

남궁마제

나아갈 진(進) 재앙 화(禍) : 애물단지(2)

마치 용이 똬리를 튼 듯한 산맥의 형세에, 용의 입을 나타내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용문산.

용문산에는 용의 입에 물린 여의주 모양으로 둥글고 깊은 석굴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용정석굴이라 불렀다.

문제는 용정석굴이라 불리는 그것이 사실은 하나의 굴이 아닌, 깊이도 크기도 제각각인 수십 개의 동굴이 모여 있는 군집이라는 것이었다.

누구도 용정석굴의 모든 석굴을 다 알지 못했고, 지금도 매해 새로운 석굴이 발견되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낙양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석굴 안에 범이나 요괴 같은 식인귀(食人鬼)들이 있어서, 석굴에 들어온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오래전부터 돈 소문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때 이후로 용정석굴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그리고 용정석굴은 이 지역의 사람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이 되었다.

“암살자들에겐 천혜의 환경이죠, 어둡고 선선한데, 비밀스럽기까지 하니까.”

군조가 앞장을 서며 말했다.

오늘은 군조도 하오문의 묵빛 무복을 갖춰 입었으나 여전히 복면은 쓰지 않고 있었다.

“살인시문에서 오래전부터 용정석굴을 은거지로 쓰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소란 때에 금군이 본거지를 털기 전에 문파 암살자들이 모조리 용문산으로 사라졌고요. 우리 문도가 뒤를 쫓았는데, 돌아오진 못했죠. 우린 시체가 남긴 흔적을 읽고, 놈들이 용정석굴로 도망쳤다고 확인했고요.”

군조는 하오문의 대표해서 적호단과 당가암혼대에게 용문산을 안내하고 있었다.

군조의 곁에는 적호단주 팽치와 부단주 남궁진혜, 당가암혼대주 당성문이 있었다.

“시체가 남긴 흔적으로, 놈들이 용정석굴로 간 것을 확신할 수 있나?”

당가암혼대주의 말에, 군조가 뒤를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의뢰금의 대가는 치러야죠. 나머지는 영업비밀입니다.”

군조의 말에 적호단주와 남궁진혜, 당가암혼대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암살자들이 의리나 정이 없다고 하지만, 동료의 목숨보다 돈을 중시하는 태도를 면전에서 확인하니 영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의맹이 사패천 소속의 하오문에 기대하는 바도 그것이었다.

중간에 배신하지 않고 의뢰비를 준 만큼 그들을 제대로 안내하는 것.

그래서인지 적호단주나 당가암혼대주 모두 별다른 말 없이 군조의 뒤를 따라 산을 올랐다.

그들의 뒤로 적호단과 당가암혼대 무인들이 움직이고, 적호단에 소속되어 함께 움직이게 된 진화 일행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 * *

“대붕(大鵬) 군조. 하오문주가 데려온 양자인데, 하오문 내에서는 백 년 만에 났다 어쩐다 말하는 기재예요.”

일행 중 그나마 사패천의 사정에 밝은 당혜군이 군조에 대해 설명했다.

이틀 전 하오문에서 군조를 만난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을 제외하면, 모두 사파의 신진고수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도 군조에 대해 하는 것이라곤 남궁구를 싫어한다는 것뿐이었다.

“실력은 어때?”

나하연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진화 일행 면면이 명문 정파의 직계나 후계들이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위치의 사파 후기지수라니 경쟁심이 동하는 눈치였다.

“글쎄. 어쨌든 사패천 내에서는 오호이봉(五虎二鳳)이라 불리는 신진고수 중 한 명이야.”

당혜군도 자세히 아는 것은 없다는 듯 말했다.

그때, 남궁구가 코웃음을 쳤다.

“흥! 사패천에 있는 일곱 문파의 후계들에게 공짜로 내준 자리잖아. 후계자에 남자가 다섯이고, 여자가 두 명이라는 뜻일 뿐, 실력을 증명하는 건 아니지 않아?”

남궁구의 말에 일행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남궁구가 경박해 보이긴 해도, 누군가에 함부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보게. 진화, 이틀 전에 저자와 구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 뭔 일이 있었기에 구가 저렇게 화가 났나?”

현오가 은근슬쩍 진화에게 물었다.

그러자 진화의 시선이 군조와 남궁구를 향했다.

안내 중에도 간간이 남궁구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군조와 그걸 애써 무시하고 있는 남궁구.

“……화가 난 게 아니야. 새우 새끼가 철없이 날뛰다가 잡아먹힐까 봐 걱정하는 거야.”

진화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다만 현오는 진화의 말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새우? 걱정? 그게 무슨 말인가?”

현오가 더욱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자 남궁교명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은밀하게 속삭였다.

“저자가 구를 진상 고객 취급 했다. 구 녀석은 그냥 당하면 억울하니, 진짜 진상이 되기로 한 모양이다.”

“아아!”

남궁교명의 설명이 있고서야 현오가 납득이 간 듯 탄성을 내었다.

주변에 있던 팽가 형제와 나하연, 당혜군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 있었다.

진화는 남궁구에 대한 동료들의 깃털처럼 가벼운 평가에, 처음으로 동정을 담아 남궁구를 보았다.

일행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푸는 동안.

어느새 용정석굴 근처에 도착했다.

적호단과 당가암혼대가 조용히 몸을 낮추고 기척을 숨겼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군조가 눈으로 적호단주와 당가암혼대주에게 물었다.

그러자 적호단주가 군조에게 비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어쩌면 이제 뒤로 빠지라는 것인지도 몰랐다.

군조가 슬쩍 물러서자마자, 당가암혼대원들이 용성석굴 주변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뭘 하려는 거지?’

군조가 의문을 담은 눈으로 흩어지는 당가암혼대원들을 보았다.

군조는 안력을 집중하거나 심각하게 관찰할 필요도 없었다.

펑----!

펑펑펑펑펑---!

군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는 것과 동시에, 용정석굴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당가암혼대원들이 일제히 용정석굴에 있는 동굴들을 향해 독연을 던졌기 때문이다.

“적호단 삼 조, 사 조는 뒤를 막아라!”

동굴 안으로 독연이 새어 나오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과 함께, 적호단주의 명을 받은 단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기다리길 잠시.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살아지는 생물이었다.

독연이든 뭐든, 언제까지고 숨을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굴 안에서 독연을 들이마시고 뿜어내는 작은 기침 소리, 동굴을 빠져나오는 독연의 양과 형태.

모든 것이 당가암혼대주의 눈에 걸려들었다.

잠시 후, 당가암혼대주의 눈빛이 번뜩였다.

‘저기, 저기. 저기, 저기.’

당가암혼대주의 손짓이 있자마자, 남궁진혜와 적호단이 벌떡 일어섰다.

진화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적호단으로 움직인 경험은 부족하지만, 하나같이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신진고수였다.

적호단주는 진화와 일행을 나누어 적호단에 적응하게 하기보다, 그들을 별도의 조로 묶어서 적호단과 함께 움직이도록 했다.

진화와 함께 빠르게 앞으로 나가는 남궁구의 모습에 군조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함께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군조가 진화 일행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역할을 어디까지나 안내.

이후로 무상 노동을 제공하겠다는데, 적호단주의 입장에선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적호단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군조가 빠르게 진화 일행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쉐에에에엑----!

퍼---엉!

군조가 눈을 크게 떴다.

‘뭐 이런 막무가내 공격을!’

아무리 놈들이 숨은 동굴을 찾았다지만 다짜고짜 검기부터 날리며 시작하는 남궁진혜와 적호단의 모습에, 군조가 당황한 듯 그 모습을 보았다.

그간 정파인들을 만나 보지 못한 것은 군조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군조는 자신이 생각했던 명문 정파의 고지식한 무인들의 모습이, 시작부터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었다.

* * *

퍼--억!

바닥을 밟자마자 튀어 오르는 쇠 정을 뛰어넘으며, 남궁진혜가 날아드는 철퇴는 주먹으로 부수었다.

“포로는 없다. 전부 죽여라!”

소리마제를 죽인 마당에, 정의맹에게 살인시문의 잔당들은 불을 끄고 남은 그을음과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귀천성과 암살문이라는 특이점을 생각하면, 사로잡아도 알아낼 것은 없고 남겨 두면 내내 가시처럼 정의맹 무인들을 위협할 존재들.

“쥐새끼 같은 놈들! 여기 숨으면 모를 줄 알았냐!”

남궁진혜를 필두로 석굴로 들어간 적호단은 숨어 있던 살인시문 암살자들을 사냥하듯 죽여 나갔다.

석굴에는 쇠 정이나 철퇴, 미로진과 같은 함정이 있었지만, 적호단과 그 뒤를 따라 합류한 당가암혼대는 거침없이 석굴을 뚫어 갔다.

진화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진화 일행이 들어서자마자 사방으로 사슬들이 움직이며 그곳에 박힌 쇠 정이 움직였다.

“아, 저!”

암살자들이 사용하는 함정 중 익숙한 것을 발견한 군조가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지만 사슬을 보자마자 일행은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 있었고, 당연한 듯 앞으로 나선 진화는 망설임 없이 사슬 중 하나를 잡아챘다.

그리고 진화의 손에서 파란 불꽃이 튀었다.

파파파팟--!

천뢰제왕검법 필거심뢰--!

파-앗! 처러렁-! 철렁철렁!

지진이 인 듯 동굴이 흔들리며, 바닥과 벽, 천장에 숨겨진 쇠사슬이 요동을 쳤다.

움직이는 사슬과 날아드는 철퇴들 사이에 숨어서 공격을 준비하던 암살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잡고 있던 그것은 끊어진 생명줄처럼 그들을 바닥으로 처박았다.

온몸을 떨며 경련하는 암살자들도 그렇지만, 놀라서 떨어져 나온 암살자들은 모두 남아 있는 일행의 먹잇감이었다.

“메뚜기 사냥도 한철이지!”

남궁구가 눈을 빛내며 뛰어들고, 팽가 형제와 나하연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을 튀어나온 암살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질풍 같은 검과 철퇴보다 강력한 주먹을 휘둘렀다.

남궁교명과 현오는 쓰러진 이들까지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목숨을 끊었다.

당혜군은 도망치는 암살자들의 사혈(死穴)을 향해 은화대침을 쏘았다.

철저하고 무자비한 학살.

군조는 암살자들이 정말로 한낱 벌레처럼 사냥당하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만약 이들이 하오문이었다면.

귀천성 무인이나 정파인이 하오문을 이렇게 공격했다면, 문도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갑자기 등골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파지지지직-!

번뜩이는 뇌전을 담은 진화의 천뢰장이 한쪽 동굴 벽을 부쉈다.

다른 길을 통해 도망가던 암살자들이 진화와 눈이 마주쳤다.

석굴 속에서도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이 사르륵 접혔다.

“어딜 가는 거지? 이곳이 네놈들의 지옥이다.”

콰과광--!

그들의 발 앞으로 푸른 번개가 떨어졌다.

길을 가다가 번개를 맞는다면 황당함을 느낄까.

아니다.

거대한 자연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 속에 심장이 멎어 갈 것이다.

진화가 푸른 번개를 휘두르며 암살자들을 향해 뛰어들고, 이내 새빨간 핏방울과 함께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이들의 비명이 한참 울려 퍼졌다.

군조는 멍하니 그들의 학살을 지켜보고 있었다.

콰광--!

쾅! 쾅!

용정석굴이 무너질 듯 굉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그쳤을 땐, 시큼한 혈향과 죽음의 냄새가 용문산에 가득 퍼졌다.

적호단과 당가암혼대는 각자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남아 있는 흔적은 없는지 조사에 나섰다.

“이제 살인시문의 잔당 놈들을 모두 죽였으니, 그나마 암림혈귀갑을 옮기는 것의 위험이 조금 줄지 않겠습니까?”

“글쎄.”

남궁진혜의 말에 적호단주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좁혔다.

그에 남궁진혜가 의아한 듯 물었다.

“뭔가 이상한 것이 있습니까?”

“……일이 너무 쉬웠어. 놈들이 뭔가 다른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적호단주의 말에, 남궁진혜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느낌이 쎄해.”

적호단주의 말에 남궁진혜가 눈을 크게 떴다.

적호단 내에서는 ‘귀천성에 관한 적호단주의 쎄-한 느낌은 거의 예언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확성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진화도 적호단주의 그 예민한 촉은 들어 알고 있었다.

필시 암림혈귀갑을 운반할 때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불안감.

진화도 적호단주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남궁진혜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상관있습니까? 소리마제도 죽은 마당에.”

남궁진혜의 말에 적호단주와 진화가 그녀를 보았다.

“놈들이 전부 팔마제처럼 강한 것도 아니고, 팔마제도 사람인데 죽지 않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참에 한 놈 더 때려잡죠.”

“허! 미친놈.”

남궁진혜의 말에 적호단주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적호단주의 얼굴은 이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궁진혜를 보는 진화의 눈도 그와 같았다.

남궁진혜의 말이 맞았다.

정의맹보다 강했던 건, 역천마제와 팔마제였다.

그리고 이전 생과 달리, 이번에는 벌써 두 명의 마제가 죽었다.

“누님의 말씀이 다 맞습니다.”

“그치?”

진화가 남궁진혜의 말에 웃으며 맞장구를 치자, 남궁진혜가 신이 난 얼굴로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궁진혜는 계속 진화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건 진화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보며 웃고 있는 그림같이 다정한 남매를 보며, 한쪽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곱게 미친놈들.”

적호단주가 조용히 욕지거리를 뱉었다. 

생각을 달리한들, 불길한 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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