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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24)화 (224/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꽃 화(花) : 역사를 바꾸려는 자들(3)

새나 쥐, 무리를 이룬 원숭이부터 홀로 사는 범까지.

땅을 가진 어미의 밑에 난 새끼가 튼튼하게 자라고, 또 어미의 서열과 영역을 물려받아 순탄하게 살아간다.

한낱 짐승이 이러할진대 사람은 어떻겠는가.

사람은 부모에게 신체뿐 아니라, 부모의 신분과 부, 부모가 이룩한 사회를 물려받는다.

짐승은 싸워 쟁취할 수라도 있지만, 사람은 훨씬 복잡한 사회적 장치로 경쟁자를 배제해 놓았다.

눈앞의 황금 장식이 번쩍거리는 거대한 대궐 문.

누군가는 산속에서 허리도 펴지 못하고 나무를 해다 바쳤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비의 재주를 이어받아 번쩍이는 장식을 만졌을 것이다.

날 때부터 힘이 세고 몸이 재빠른 이는 창을 들고 궁문을 지키고 섰고.

날 때부터 좋은 부모를 가진 이는 이 대궐 문 안에서 편히 자고 있을 것이다.

만일 이 대궐 문에 ‘누가 제일 공이 없냐’ 묻는다면, 단연코 이 궐 안에 몸을 뉘인 자라.

그저 태어난 것만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어찌 하늘의 순리란 말인가!

본래 마땅한 순리대로 되돌릴 것이다.

끝내는 모든 운명을 완전하게 할 것이다.

황금 장식이 번쩍이는 대궐 문을 보는 역천마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광마제는 대궐 문을 싸늘하게 비웃었고, 권마제는 얼굴을 와락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검마제는 역천마제의 뒤에 조용히 시립했으나 손끝이 검에 닿아 있었다.

“노여워 마십시오. 잠시 잘못된 주인의 손에 있는 것뿐입니다.”

혼현마제가 여유롭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누구……!”

역천마제의 앞으로 창을 겨누려던 병사들의 목이 조용히 몸에서 굴러떨어졌다.

휙-! 휙!

검마제와 권마제가 단숨에 높은 성벽을 뛰어올랐다.

“누구냐!”

“어엇!”

문을 기준으로 왼쪽으로 선 검마제가 검을 뽑았다.

쉐에에엑----!

훤한 대낮의 달빛처럼.

하얗고 희미한 흔적이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 사이를 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반대편에선.

“저, 적이다!”

퍼---억!

호랑이의 발톱처럼 강인한 다섯 손가락이 병사들의 심장을 할퀴고 지나갔다.

붉은 기운이 화르르르— 병사들 사이를 지나고.

바닥에는 호환을 당한 듯 발톱 자국이 선명한 병사들의 시체만 가득했다.

덜컹.

검마제와 권마제가 궐문을 열고, 역천마제가 여유로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혼현의 말이 옳아. 모든 것이 올바른 주인에게 간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허허허허!”

궐 안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역천마제의 등 뒤로, 검은 도포를 장식한 은빛 삼두룡의 머리 하나가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고 있었다.

* * *

“적이다! 침입자다-!”

“침입자를 막아라!”

궁궐 안의 금군들이 역천마제와 다른 마제들을 둘러쌌다.

족히 수백 넘어 보이는 금군들을 보며, 광마제의 눈빛이 붉게 달아올랐다.

“흐흐흐.”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린 광마제가 순식간에 신형을 움직였다.

휘이이익---!

“어어?”

붉은 그림자가 한 금군의 앞에 섰다.

금군의 병사는 자신이 붉은 용과 눈이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으로 뜨끈한 피가 튀어 올랐다.

파-팟-!

“으악!”

“아아악---!”

짙은 혈향이 느껴지기 무섭게 비명이 울려 퍼졌다.

쉐에에엣--!

파팟-! 팟!

가슴이 뜯기고 사지가 떨어져 나가는데, 피가 분수처럼 터지는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금군들 사이를 움직이는 광마제의 신형을 따라 혈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광폭한 혈룡이 금군들을 집어삼키는 모습 같았으니.

“크하하하하-!”

비명이 난무하고 혈무가 짙어질수록 광마제는 점점 더 힘이 솟아나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실제로 금군들의 피와 생명을 갈취하며 병색이 완연하던 광마제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저, 저것이 역천제께서 광마제를 곁에 두시는 이유인가!’

광마제의 살육을 지켜보는 혼현마제의 눈이 커졌다.

그는 광마제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광마제는 사람을 죽여 생명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은 곧 사람을 죽이는 전장에서 저자가 지치거나 죽을 일은 없다는 의미였다.

‘역천대법이 아니었다면 십이좌회에 그렇게 당했을 리 없다고 단언을 하더니. 그른 말은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니…… 역천대법! 그것 또한 저자가 가지고 있었지.’

광마제를 살피는 혼현마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한편.

밖에서 들리는 살벌한 비명에 신제국의 조정은 난리가 났다.

“폐, 폐하, 피하십시오!”

“그렇습니다. 폭도들이 지금 대전까지 오고 있다 합니다. 금위장군이 저들을 물리칠 때까지, 잠시 몸을 피해 옥체를 살피소서!”

조정에 들어 있던 대소 신료들은 너 나 할 것 황제에게 몸을 피할 것을 종용했다.

잔뜩 겁에 질린 얼굴들이, 충성심보다는 본인들이 두려워서 도망하고 싶은 마음이 훤히 보였다.

면류관을 쓰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을 한 사내가 그들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신제국의 황제는 신료들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여차하면 저자들이야말로 황제의 여벌 목숨이 될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허어, 폭도들의 기세가 그토록 강맹하다니! 아직 어디에서 보낸 자들인지 알아내지 못했는가!”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허어.”

하긴, 누가 대전 밖을 나가 봤어야 알아 오지.

신료들 모두 겁에 질려 벌벌 떨고만 있었지, 누구도 대전 밖을 나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황궁을 비워야 하나.’

신제국 황제의 눈이 자연스럽게 자신이 몸을 피할 동안 희생양이 될 누군가를 찾았다.

그때, 밖에서 금위장군이 급히 뛰어들었다.

“폐, 폐하!”

“오, 금위장군, 밖은 정리가 끝났는가!”

재상이 반색하며 물었다.

하지만 금위장군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였다.

“그, 그것이,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 침입자들이…… 그들입니다!”

눈을 질끈 감고 말하는 금위장군.

그의 모습에 신제국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들이라 함은?”

“귀, 귀천성이라 합니다! 역천마제와 네 명의 마제들이 폐하를 뵙길 청합니다!”

금위장군의 말에, 신제국 황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자세를 바로 했다.

“정말로 스스로를 역천마제라 하였는가?”

“그러하옵니다! 신이 소싯적 광마제를 본 적이 있습니다. 혈무를 일으키는 혈룡환신(血龍幻身)! 진짜 광마제가 틀림없었사옵니다.”

“흐음…….”

금위장군의 확신에 신제국 황제의 얼굴이 신중해졌다.

“허어. 귀천성이라면 그자들이 아닌가.”

“어찌합니까? 무림을 뒤엎은 악마들이 아닙니까!”

조당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대소 신료들의 얼굴이 또 다른 두려움을 가득 찼다.

“폐하, 그들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역당들입니다. 그런 위험한 자들을 어찌 조당에 들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감히 궐을 침범하여 금군을 죽인 자들입니다! 만나시면 아니 됩니다!”

두려움 속에서 낸 결론은 결국 회피(回避)였다.

신료들이 하나같이 귀천성의 위험성을 논하며 만나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런 신료들의 주장을 듣던 신제국 황제가 결국 표정 관리를 포기하고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뜨렸다.

타-앙!

“만나지 않겠다면 만나지지 않는 것인가! 그럼 그대들이 나가 짐의 거절을 알려 보라! 누가 가겠는가!”

“…….”

신제국 황제의 역성에 신료들이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고 나서지 않았다.

그들은 고작 그런 자들이었다.

신제국 황제가 신료들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한심하고 쓸모없어서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나를 만나겠다는 건,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귀천성과 거래라…….’

신제국 황제가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귀청성이 정사 무림의 반격이 있기 전까지 무림을 정복할 뻔했던 자들이라는 건 알았다.

‘저 허수아비들보다는 뭔가 쓸모가 있겠지.’

“들라 하라!”

“폐, 폐하-!”

“두말 않는다. 더 이상 금군들을 희생시키지 말고, 그들을 들라 하라!”

“명을 받자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금군을 희생시키지 말라는 황제의 자애로운 명에, 금위장군이 감격한 얼굴로 부복했다.

그러나 황제는 손을 휘저어 금위장군이 걸음을 서두르게 했다.

잠시 후.

“귀천성주 역천제 파륜과 그 일당 이, 입시오-!”

역천마제의 입시를 알리던 내관의 목소리가 혼현마제의 엄한 눈빛에 몹시 떨렸다.

신하들 또한 긴장된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오로지 황제만이 긴장된 표정을 숨기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오시했다.

천천히, 한 노인을 필두로 그 일행이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은 천하의 악당, 살인마, 광인이라는 소문과 달랐다.

잿빛 머리는 검은 묵룡잠으로 흐트러짐 없이 고정되어 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순후한 눈매와 오뚝한 콧날, 석 자는 족히 넘는 단정한 잿빛 수염은 여느 제후 못지않은 위엄이 서려 있었다.

천하의 역당이나 동시에 천하제일의 무인이라 했던가.

위풍당당한 그 모습에 누구 하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뒤에 있는 인물들 또한 하나하나 평범한 인물이 없구나! 이런 자들이기에 거친 무림을 전반으로 찢어 놓은 거겠지.’

황제가 역천마제와 다른 마제들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리고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짐을 보겠다 했다고?”

황제다운 기품이 담긴 목소리와 당당한 태도.

겁에 질려 벌벌 떠는 토끼같이 가련한 신료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에, 역천마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천마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혼현마제가 앞으로 나섰다.

“이전부터 관과 무림은 함께 존재하나 전혀 다른 세상이지요. 하나 한제국이 약속을 어기고 본 성을 공격하였으니. 본 성은 신제국에 거국적인 협력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본 성은 남은 무림 절반을, 신제국은 유일한 제국을. 어떻습니까?”

혼현마제가 황제에게 귀천성의 용건을 알렸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눈과 그 입에서 나오는 달콤한 말은 마치 선인을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악마와 같았으나, 황제는 그의 제안이 마음에 쏙 들었다.

“멀리서 귀인이 왔군.”

황제가 역천마제를 긴밀하게 대화를 이어 갈 자리로 안내했다.

* * *

황제와 역천마제, 혼현마제가 잠시 시간을 가지고.

신제국 조정에 혼현마제와 다른 마제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역천제에게 신록대부(新鹿大夫)의 위를 내린다. 앞으로 신제국의 조력자이자 스승으로 짐의 곁에 함께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가 역천마제와 다른 마제들의 관직이 발표되는 자리에서 신료들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데에 만족하는 듯했다.

역천제와 마제들은 신제국 황성의 황제궁 다음가는 궁 하나를 받았다.

퍼-억!

“큿!”

새로운 거처가 된 궁을 정리하고 나서는 길.

혼현마제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기감을 속이고 제 목을 틀어쥔 손을 보았다.

귓가에 잔뜩 성이 난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감히 내 제물에 손을 대려 했다고?”

어떻게 알았는지 광마제가 혼현마제를 향해 살기를 번들거렸다.

“읏! 그놈은 너무…… 위험해! 벌써 두 명이 그놈의 손에 당했다고!”

다 죽어 가던 늙은이 주제에 무슨 힘이……!

혼현마제가 필사적으로 광마제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흐흐, 뭘 모르는군. 그래서 그놈이 소중한 거야.”

“크……읏!”

광마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혼현마제의 목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경고다. 다시는 내 것에 손대지 마라.”

“컥! 아, 알앗…… 허억!”

광마제는 혼현마제의 대답은 듣지 않고, 그의 눈빛이 수긍하자 그제야 손을 놓았다.

그리고 볼일을 마쳤다는 듯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미친 새끼!”

희희낙락 걸어가는 광마제의 뒷모습을 보며 혼현마제가 목을 쓰다듬으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 살모사 같은 새끼한테 물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 멍청한 놈!”

혼현마제가 저주를 뱉듯 광마제의 등을 향해 살기를 뿜었다.

광마제는 혼현마제의 살기를 느꼈지만 상관치 않았다.

파리가 윙윙대는 건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흐흐흐, 그놈이 다른 마제 둘을 죽였다고? 벌써 그렇게 컸어?”

광마제는 집 나간 자식이 출세한 소식을 들은 양 대견해했다.

그리고 곧 눈빛이 변했다.

“위험해? 흐흐흐, 그래서 더 소중한 놈이지.”

광마제의 눈이 붉게 빛났다.

“놈을 위협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죽음을 두려워할 놈이 아니야. 눈앞에서 제 살을 가를 때도 날 노려보던 놈이었다. 흐흐, 공포로! 놈이 진짜 무서워하는 것으로, 내가 돌아왔다는 걸 알려야겠구나!”

광마제의 말에, 어느새 그의 뒤에 선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남궁을 죽이고 비록을 가져와라. 무맥의 마룡삭과 마룡아를 주마.”

광마제의 말에 검은 가면을 속 사내의 눈빛이 번뜩였다.

사내가 광마제가 던져 주는 무기를 받아 들었다.

살짝 떨리는 손끝이 그가 느끼는 격정을 말해 주는 듯했다.

“존명.”

사내가 단숨에 고개를 숙이고 궁을 나갔다.

사내의 손에 쥐인 검은 창끝, 묵빛 삭과 사슬에 달린 송곳이 하얗게 빛을 발했다.

주인의 복수를 할 시간이었다.

* * *

삐이이이이----.

매가 긴 울음을 울었다.

약속된 신호를 준 것이었다.

그리고 매는 허공을 한 바퀴 돈 뒤, 그대로 내려갔다.

먹이를 낚아채듯 빠르게 내려와, 발톱으로 팔을 꽈악 잡았다.

“매응인가.”

청회색 빛 깃털에 눈빛마저 청명한 매.

남궁세가에서 직계와 장로, 무단주 들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특수하게 키워진 전서응, 매응이었다.

푸른 무복을 입은 사내는 익숙하게 매응의 배에 있는 통에서 전서를 꺼냈다.

그리고 전서를 읽던 사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런 전서를 보낸 자가 누구지?’

일 년에 한 번 변할까 말까 할 정도로 무뚝뚝한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며 고민에 휩싸였다.

삐익!

매응이 먹이를 내놓으라며 울자, 그때서야 사내의 눈이 평정을 찾았다.

매응은 남궁세가에서 길들인 귀물로 남궁세가가 신뢰하지 않는 자는 따르지 않았으니.

‘누군지는 돌아가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사내가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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