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구휼할 진(賑) 죄 화(禍) : 이전과 다른 출발(3)
누구든 처음은 있었다.
한 살을 겨우 넘겨 납치된 진화는 세상 모든 처음을 제물 양육실 안에서 겪었다.
탕-! 탕-!
“씨발! 잡소리 말고 밥 처먹어!”
간수들이 뿜어내는 폭력적이고 거친 목소리에 진화가 인상을 찌푸리자, 누군가 진화를 품에 껴안았다.
“아기야, 밥 먹자. 맘마! 맘마 먹는 거야.”
땀에 쩐 듯 짭짤한 냄새와 함께 조용히 귓가에 울리던 목소리.
“옳지!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잘했어!”
다정한 목소리가 진화에게 걸음마를 가르쳤고.
“자, 이렇게 쥐고, 입에 넣는 거야!”
팟-!
“아! 거봐, 잘 안 되지? 그러니까 자, 아- 해 봐! 먹여 줄게.”
작은 소녀는 귀찮은 기색도 없이 진화의 밥을 챙겨 먹이고, 제물 양육실에서 생활하는 모든 것을 진화에게 가르쳐 주었다.
진화는 소녀의 모든 것을 보고 배웠다.
“웅크려! 간수와 눈이 마주치면 안 돼!”
소녀가 불안한 듯 진화를 끌어안고 웅크리면.
“이 새끼들이 어디서 눈깔을 똑바로 뜨고 보는 거야?”
퍽! 퍽! 퍽!
“아악! 악!”
“살려 줘! 살려 줘-!”
거친 폭력과 비명이 진화의 귀에서 조금 멀어졌다.
“누나, 누나라고 해 봐.”
“…….”
소녀는 제물 양육실에서 진화의 보호자가 되었다.
“누, 나.”
“꺄-! 잘했어!”
진화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 준 최초의 사람이기도 했다.
소녀가 구덩이에 빠진 것이 열세 살 때였다.
그녀는 그때와 그다지 달라진 것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다정하던 목소리가 변해 버렸다.
“잘…… 지냈니, 내 동생?”
병든 노인처럼 거칠고 힘없는 목소리.
진화가 놀란 눈으로 소녀, 아니 효서를 보았다.
그 모습에 흑표가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왜? 쟤 목소리가 놀라워? 듣기 거북해? 씨발! 쟤가 왜 저렇게 됐는데! 너 때문이잖아!”
흑표의 말에, 효서가 진화를 보며 조금 씁쓸한 얼굴로 웃었다.
“야, 너도 말 좀 해! 구덩이 속에서 저 새끼한테 살려 달라고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그때 왜 안 살려 줬냐고! 형, 누나 소리 잘도 뱉더니, 우리가 죽어 갈 때 왜 모르는 척했냐고 물어봐야지!”
흑표가 효서를 다그치듯 소리쳤다.
그가 한 말은 효서를 향했지만, 사실 진짜 들어 줬으면 하는 건 진화인 듯.
붉게 달아오른 흑표의 눈이 진화를 향했다.
“우릴 다 구덩이에 처넣고 혼자 살아남으니 좋더냐, 이 개새끼야?”
흑표가 진화를 노려보며, 한 자 한 자 곱씹듯 물었다.
새빨간 분노가 금방이라고 쏟아질 듯 일렁거렸다.
말없이 흑표를 마주하던 진화가 효서에게도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사르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름도 없는 애들끼리 호칭 좀 챙겼다고, 진짜 형, 누나라도 돼?”
진화의 질문에 효서와 흑표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흑표의 눈에서 불꽃이 넘쳐흘렀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이 개-새끼야! 씨발! 네가 개돼지만도 못한 새끼라도, 그게 효서한테 할 소리야? 네 입에 밥 처넣어 주고 똥 치워 주며 키워 준 게 누군데!”
진화는 흑표가 분노하는 모습을 덤덤한 눈으로 보았다.
그러다 피식- 터지는 웃음을 구태여 막지 않았다.
“그래, 키웠지, 개처럼…… 평범한 애들이 새끼 개를 욕심내듯, 그냥 날 가지고 싶어 한 거잖아, 누나. 아니, 이제 효서랬나?”
진화의 말에 흑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흑표의 시선이 방황하듯 헤매다 효서를 찾았다.
이제까지 가장 피해자라고 생각해 왔던 효서는 저 개소리를 듣고 어떻게 반응할까? 나보다 더 기가 막히겠지…….
흑표의 기대와 달리, 효서는 그저 담담한 눈으로 진화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누구든 처음은 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자란 나이에 제물 양육실에 들어온 소녀는, 처음 만난 무지막지한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끄어어어어---!”
“쿨럭! 우엑-!”
“이런 씨발! 이 새끼, 뒈지라면 그냥 좀 뒈지지, 더럽게 꼭 피를 토해요! 젠장!”
하루가 다르게 옆에 있던 누군가가 죽어 나가고, 입에 들어오는 것 하나에도 경계심을 가져야 했다.
안 먹을 순 없지만, 소녀는 영악하게 다른 사람의 상태를 살피고 나서야 음식을 입에 대었다.
간수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숨소리도 줄였다.
퍼-억!
“이 새끼들이 왜 오늘따라 거치적거리고 지랄이야! 죽어! 죽어, 이 벌레 같은 놈들아!”
퍽! 퍽! 퍽!
“아악!”
“악!”
무지막지한 폭력이 있는 날에는, 모르는 척 구석에 숨거나 다른 애의 밑을 파고들어 몸을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야, 저기 봐!”
“뭔데 그래, 개새끼야.”
“저기.”
“와아!”
순식간에 탄성이 쏟아졌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단어는 배운 적이 없었기에, 아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눈만 휘둥그레 떴다.
세상에서 처음 보는 예쁜 아이였다.
소녀는 아이가 예쁘고, 귀여웠고, 귀했다.
소녀는 아이를 표현할 만한 말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만 알 거야! 나만 가질 거야!’
제물 양육실 안에서도 가장 큰 아이들 중 하나였던 소녀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독차지했다.
내 것.
소녀가 처음으로 독차지한 ‘내 것’이었다.
아주 어릴 적 옆집에서 키우던 개보다 예쁘고, 귀엽고, 귀티가 나는 것이었다.
소녀는 아이를 보듬어 주고, 아이에게 밥을 주고, 똥을 닦아 주고, 걸음마를 가르쳤다.
“잘한다! 잘한다, 내 아기!”
“야, 이 개 같은 새끼들아! 저거 봐! 아기가 걸어!”
아이들은 금방 아기를 좋아했다.
순수한 이들은 금방 예쁘고 좋아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소녀는 그들의 관심이 싫었다.
이건 소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녀는 아기에게 가르쳤다.
“누나, 누-나 해 봐.”
“…….”
말똥말똥한 눈으로 저를 보고만 있는 아기에게 소녀는 끈질기게 말을 가르쳤다.
밥을 안 주거나 독이 든 밥을 주자, 영리한 아기는 곧 소녀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누, 나.”
“꺄-! 잘했어!”
그래, 이건 내 거야.
소녀가 환하게 웃었다.
처음 남궁세가에 가서도 진화가 웃는 방법 하나 몰랐던 이유였다.
진화는 서늘하게 웃으며 흑표의 분노를 부정했다.
“나 때문에 죽었다고? 천만에. 그냥 죽을 때가 되었던 것뿐이잖아.”
진화는 제대로 웃는 법 하나 배우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었다.
이기적으로 살아남는 소녀의 방식을 보며, 진화도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능교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광마제의 제물을 아무렇게나 죽일 순 없어. 만약 죽일 수 있다면, 그건 처음부터 아무렇게나 죽여도 되는 제물이었던 거지. 그때 능교가 구덩이에 밀어 넣었던 아이들 전부, 죽을 때가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
진화의 물음에 흑표는 비수에 찔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배신자? 웃기네. 그러면 내가, 대신 죽어 주길 바랐어? 다른 사람을 밟아 살아남아 놓고 너는 살려 주길 바랐나?”
진화가 싸늘한 비웃음을 던졌다.
독수에 닿으면 즉시 살이 녹아내린다.
최후에 어떤 방법을 쓰든, 어쨌든 처음에 죽지 않으려면 다른 아이들을 밟고 독수에 닿지 않는 방법뿐이었다.
* * *
그때 즈음해서, 소녀는 이상할 정도로 진화를 안고 구석에 몸을 웅크렸다.
마치 눈에 띄면 당장이라도 죽을 사람처럼.
소녀만이 아니라 조금 자란 아이들은 유난히 간수들을 겁냈다.
열 살이 넘도록 비약을 마시고도 죽지 않은 아이들은 간수들이 구덩이에 던져서 죽여 버린다는 걸 아이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 누나? 하! 이것들 봐라? 여기서 가족 놀이 중이었어? 푸하하하하! 야, 얘들 다 끌어내!”
“예!”
탕-! 탕!
“아악! 사, 살려 주세요!”
“씨발, 빨리 기어 나와, 이것들아! 꾸물거리지 마 ! 짜증 나게!”
“싫어! 싫어-!”
귀 아프게 울리는 폭력과 비명.
“아악!”
순식간에 진화의 몸에서 뜯겨나가듯 소녀가 끌려 나갔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구덩이로 던져졌다.
철-썩.
“아아악--!”
퍽! 퍽!
쉽게 가라앉지 않는 늪과 같은 독수 속에서, 아이들이 발버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능교가 비릿한 웃음을 머금고 진화에게 물었다.
“어쩔래? 형, 누나를 위해 네놈이 대신 죽을래?”
“…….”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는 것 따위, 진화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원래 가족들은 그래.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너 하나만 죽으면, 저 녀석들을 모두 살려 주지. 어떠냐?”
“…….”
가족이 어떤 건지 진화는 알지 못했다.
“아니야! 대답하지 마-!”
진화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효서가 구덩이 속에서 소리쳤다.
그때 흑표는 진화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살 수 있었는데, 진화가 그를 살려 주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내 궁금했었다.
진화는 죽기 싫어서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뭐라 할지 고민하는 동안 효서 때문에 입을 다물었던 걸까.
“그래. 손톱이 빠져라 벽을 잡고 밑에 놈들을 밟고 며칠을 버텼지. 그랬더니 우릴 꺼내 주더라고. 그런데 씨-발! 그렇다고 네 새끼가 우린 배신한 게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지! 네놈!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잖아!”
흑표가 분노를 토하듯 소리쳤다.
진화는 그런 흑표를 덤덤하게 보고만 있었다.
그때.
“허어, 시주는 어째 한 치도 자라지 않으셨소?”
“넌……!”
흑표가 인상을 찌푸렸다.
현오가 어슬렁거리듯 진화의 곁으로 다가왔다.
“쯧쯧쯧, 그때 그 난폭한 애새끼 그대로구려.”
“너…… 누구냐? 날 알아?”
“응? 나, 모르오? ……하하하, 하긴 그땐 삐쩍 말라서 눈만 동그랬지.”
흑표가 현오를 알아보지 못하자, 현오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진화는 현오의 설명으로도 흑표가 전혀 알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
“간수 손을 붙잡던 놈.”
“뭐? 네놈이?”
진화의 설명에, 다시 현오를 본 흑표가 더 놀란 눈을 떴다.
“허허허! 사정을 묻지 마시오.”
여러 의미가 담긴 시선에 현호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종일관 덤덤하던 효서도 눈을 가늘게 뜨고 현오를 살폈다.
현오가 효서와 눈을 마주쳤다.
“시주들은 여전히 괜한 분노를 품고 사는구려.”
투명하리만치 또렷한 시선이 효서에게 닿자, 효서가 슬쩍 현오의 시선을 피했다.
“괜한 분노? 살아남아서 떵떵거리는 놈들이 괜한 분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흑표가 잔뜩 흥분한 눈을 현오를 노려보았다.
현오는 청명하리만치 단호한 얼굴로 흑표를 마주 보았다.
“살아남은 것이 배신이오?”
“저 새끼는 달라! 우릴 살릴 수 있었다고!”
“아니, 살릴 수 없었소. 시주도 그걸 알고 있지 않소?”
“아니라잖아--! 씨발, 네가 뭘 알아!”
“당신을 살릴 수 있었던 건 광마제지. 죽이려 했던 것도 광마제고! 광마제의 개가 된 주제에 감히 어디다 분을 쏟는 게야! 너도 알고 있잖아!”
소리를 지르는 흑표에게 현오 또한 지지 않고 소리쳤다.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는 현오의 모습에 진화가 놀란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흥분한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현오는 시종일관 단호한 얼굴로 흑표의 분노를 마주하고 있었다.
현오의 얼굴에서 각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신 차리시오! 진정 분노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잖소! 아직 늦지 않았소. 이제라도 시주의 인생을 찾으시오. 각자 출신과 배경이 적힌 장부를 확보했소. 친부모와 형제를 찾을 수 있단 말이오.”
현오가 간곡한 말투로 흑표를 설득했다.
애달픈 눈빛 가득 진심을 품고 있었다.
진화는 처음으로 현오가 소림의 제자라는 것을 실감했다.
흑표 또한 현오의 진심에 눈빛이 흔들리는 듯했다.
“……달라. 우리는 저 새끼랑 달리 선택받은 게 아니라 팔려 왔으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흑표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곧 다시 시커먼 악의로 물들었다.
“그런데도 저 새끼 옆에 있다니. 넌 배알도 없어?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린 그냥 겉절이야. 다 저 새끼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억울하지 않아? 너야말로, 배신감 들지 않냐고!”
흑표가 비릿한 웃음을 달고 현오를 떠보았다.
“……죽이고 싶지 않아?”
흑표의 시선이 진화를 향하고, 현오의 시선도 진화를 향했다.
사실 흑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광마제의 제물은 진화였고, 다른 이들은 그저 독수를 위해 남겨둔 실험작들일 뿐이었으니.
진화와 현오의 눈이 마주쳤다.
“난 저 시주를 늘 죽이고 싶소.”
현오가 담담하게 말했다.
흑표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현오는 자신의 말에도 덤덤한 진화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는 천살지체거든. 난 뭐든 죽이고 싶네. 특히, 시주같이 쥐뿔도 없는 평범한 인생을 쓰레기같이 허비하고 있는 종자들은 대가리를 터뜨려 죽이고 싶네.”
현오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현오의 주먹에는 어느새 염주가 단단히 감겨 있었다.
“이 배신자 새끼들-!”
퍼—억!
흑표가 창을 들어 현오의 주먹을 막았다.
그사이, 시퍼런 검기가 흑표의 배를 찔러 들어왔다.
“배신한 적 없다. 처음부터 같은 편인 적도 없었으니까. 괜히 친한 척하지 마, 가당치도 않게.”
진화의 눈동자에 새파란 번개가 내리치고, 동시에 진화의 검이 뒤로 물러나는 흑표의 창을 사정없이 갈라 버렸다.
쉐에에에엑----!
과거의 기억이라면 제 발목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광마제의 생각을 추측하던 진화의 입가에 서늘한 살기가 맺혔다.
‘실로 가당치 않지.’
귀천성에서 있었던 과거 따위, 진화에겐 언제든 죽여 없앨 수 있는 흔적일 뿐이었다.
진화의 눈이 효서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