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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29)화 (229/425)

남궁마제

구휼할 진(賑) 죄 화(禍) : 이전과 다른 출발(4)

챙--! 챙챙--!

진화의 몸이 회전하며 흑표를 몰아쳤다.

챙! 챙챙!

폭풍처럼 주변의 공간을 집어삼키면서 몰아치는 진화로 인해 흑표가 점점 뒤로 물러섰다.

겉보기에는 흑표가 진화보다 한 뼘은 더 크고 우람했지만, 둘의 움직임은 그 반대였다.

진화가 힘으로 흑표를 누르고 있었다.

비결은 진화가 만들어 내는 속도와 회전의 힘이었다.

점점 빨라지는 회전만큼 진화의 검과 마룡삭이 부딪치면서 번쩍이는 불꽃도 늘어만 갔다.

하지만 흑표가 가진 건 마룡삭만이 아니었다.

쉐에에엑--!

순식간에 진화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는 단검을 보며, 진화가 급히 몸을 반대로 회전했다.

“헛!”

흑표가 놀라 신음을 내고 말았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온 힘을 실어 공격한 터라, 앞으로 기울어진 몸을 곧바로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단 한 걸음.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딛고 만 것이, 진화의 눈에 띄었다.

타앗.

진화가 반대로 회전하면서 생긴 반발력을 그대로 이용하여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당황한 흑표와 진화의 눈이 마주쳤다.

진화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듯 몸을 돌리며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파지직-!

진화의 눈에 번개가 내리치고.

진화의 눈동자에 흑표가 재빨리 허리를 젖히고 몸을 틀려는 것이 그대로 비쳤다.

진화는 그대로 몸에 반동을 주고 힘을 실어, 공중에서 양다리를 휘젓듯 내리찍었다.

퍼-억!

스치듯 피한 왼발.

하지만 이어진 오른발은 피하지 못했다.

빠--악!

“크억!”

기운이 제대로 실린 공격에, 마룡삭의 창대가 부러지고 흑표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절묘한 내공 운용에 제대로 속도와 힘이 실린 공격은 사람의 둥글고 말랑한 다리조차 날카로운 칼날처럼 만들었으니. 흑표의 가슴팍에는 짐승의 발톱에 할퀸 듯, 날카롭게 찢어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크읏, 네놈!”

흑표가 가슴을 잡고 진화를 노려보았다.

진화의 발끝에 스치듯 머리를 맞은 탓에, 흑표의 얼굴에는 붉은 피가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화가 덤덤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한 번의 경합.

두 사람의 차이는 보이는 그대로였다.

진화는 여전히 여유가 있었고 흑표는 상처를 입고 간신히 죽을 위기를 피했으니.

이대로 두 사람이 싸움을 이어 갔을 때의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화와 흑표의 수준 차이는 순식간에 드러났지만, 진화는 솔직히 흑표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제법이군.’

견자현이었던가.

소리마제의 후인이라던 암살자와 맞먹는 몸놀림이었다.

많아 봐야 진화보다 네댓 살 많은 나이.

광마제가 제물실 출신에 구덩이에 빠져 있는 저들을 왜 데려갔는지는 뻔했다.

광룡귀면대는 낙오자를 희생시켜 정예 대원을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광마제의 입장에선 독수 속에서 살아남은 저들이 좋은 희생양이 되든지 혹은 살아남아 좋은 대원이 되든지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죽든 말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아 이곳까지 온 것을 보면, 흑표가 좋은 무재를 지닌 것만은 확실했다.

‘첫발을 피하던 허리의 힘과 유연성, 빠른 발과 안력. 전부 타고난 재능이지. 이런 무재를 이전 생에서 보지 못했던 건…… 그런가, 무맥에게 도전하다가 죽었던 거였나?’

진화의 눈이 흑표가 들고 있는 마룡삭을 향했다.

쇠로 된 창대가 부러지면서 마룡삭과 마룡아는 완전히 분리되었는데, 단검을 쓰는 흑표가 마룡삭과 마룡아를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억! 퉤엣!”

흑표가 입에서 핏물을 뱉었다.

“꽤 건방진 눈깔로 날 보는데,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애초에 돈 많은 정파에서 곱게 자란 네놈들을 이겨 보려고 한 게 아니니까.”

흑표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허세나 허풍 같지 않은 당당한 태도.

눈빛에도 여전히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겨 보려 한 것이 아니라고?’

흑표의 말에 이번엔 진화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흑표의 말에 진화의 눈빛은 금방 차갑게 식어 버렸다.

“네놈들을 죽일 거다, 죽이려고 온 거라고!”

시뻘건 핏물이 맺힌 이를 드러내며 흑표가 신이 난 듯 떠들었다.

“씨-발, 정파 새끼들이랑 짝짜꿍 멋지게 칼싸움이나 하러 온 게 아니라고. 네놈들을 전부 죽여 버리려고 온 거다!”

“헛된 망상이군.”

진화가 차갑게 일갈했다.

흑표가 그런 진화를 비웃었다.

“옆을 보지그래?”

“뭐? ……저건!”

흑표의 말대로 옆으로 고개를 돌린 진화의 눈이 커졌다.

“크흐흐, 우리가 아무 준비도 없이 네놈들을 노렸을까. 저놈들이 다 죽을 때까지, 그동안 너는 내가 특별히 짝짜꿍해 주지. 전부 죽인 다음에 네놈을 마지막으로 죽여 주마!”

타앗--!

흑표가 양손에 단검 대신 마룡삭과 마룡아를 들고 달려들었다.

휘이익- 챙!

오른손으로 긴 창을 쓰던 때보다 훨씬 빨라진 몸놀림이었다.

흑표의 공격을 막아 내며 진화의 눈이 자꾸 옆을 향했다.

촤르르르르르---!

전생에도 들었던 불길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죽음의 소리다!”

챙-! 챙-!

카—앙!

마룡삭과 마룡아가 진화의 검과 얽히며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했다.

파지직-.

아주 작은 번쩍임과 이질적인 소리.

흑표는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그때, 검을 맞댄 진화가 흑표를 향해 사르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과연 그럴까?”

파지지직---!

마룡아와 마룡삭을 맞댄 진화의 검에 뇌전이 번뜩였다.

흑표는 손바닥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화들짝 놀라 팔을 휘둘렀다.

* * *

퍼엉! 퍼-엉!

촤르르르르----!

흙바닥이 튀어 오르면서 발밑에서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휙휙!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아오는 쇠사슬이 달린 갈고리.

“피해--!

“아악!”

쇠사슬에는 날카로운 가시까지 달려 있어서, 청룡단과 적호단 사이를 가로지르는 동안 단원들의 살갗을 찢어 놓았다.

착. 착. 착!

순식간에 사슬에 달린 갈고리가 다른 곳에 감기고.

촤아아악-!

서로서로 엮여서 팽팽하게 떠오른 쇠사슬은 커다란 거미줄처럼 청룡단과 적호단을 가뒀다.

“나와라!”

타-앙!

적호단원을 노리는 사슬을 보며, 적호단주가 달려가 사슬을 때렸다.

적호단주의 파갑추에 맞은 사슬이 옆으로 쏠리면서 적호단원은 무사히 안으로 피했다.

“젠장! 더럽게 질기군.”

적호단주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새어 나왔다.

적호단주는 사슬을 끊어 낼 생각으로 사슬을 때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적호단주의 파갑추가 사슬을 때리는 순간, 사슬이 늘어지며 적호단주의 파갑추 충격을 흡수했다.

광룡귀면대의 귀형진 운용이 적호단주의 예상보다 훨씬 능숙하고 유연하다는 의미였다.

“광룡귀형진이다! 안으로 더 모여라-!”

“충!”

“물러나!”

“충!”

청룡단주가 빠르게 광룡귀면대의 귀형진을 알아보고 명령을 내렸다.

적호단주 또한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청룡단주를 보았다.

귀천성과의 전투에 있어서는 적호단보다 청룡단의 경험이 더 풍부했다.

정확하게는 적호단주보다 한눈에 광룡귀형진을 알아본 청룡단주의 경험이 더 풍부했다.

“저거, 부수는 법을 알고 있습니까?”

적호단주 팽치가 진지하게 물었다.

위아래 없는 망나니에 적호단의 폭군이라 불리는 팽치였지만, 적을 앞에 두고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는 걸 망설일 멍청이는 아니었다.

“저 사슬 전체가 백련현철로 만들어진 것이네. 안에서부터 조금씩 끊어 가는 수밖에 없을 걸세.”

말처럼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기에, 청룡단주의 얼굴도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초절정의 고수들이 나서서 사슬을 끊고, 남은 단원들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앞선 고수들을 지키고 스스로의 몸을 보호한다.

위험하면서, 무엇보다 시간을 잡아먹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쪽은 청룡단과 적호단이었고, 특히 그동안 광룡귀면대의 공격을 막아 낼 일반 단원들의 희생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호단주의 반응은 청룡단주의 예상과 달랐다.

“전부 안으로 들어가서 검 들어라! 남궁진혜, 나하연, 팽신, 팽수!”

“예!”

적호단주의 명에 남궁진혜와 나하연, 팽가 형제가 단원들의 앞으로 나섰다.

“나눠서 매듭을 끊어라!”

“충!”

“나는 왼쪽!”

“하핫! 내가 줄은 안 넘어 봤어도 끊어 먹는 건 해 봤지!”

적호단주의 명을 따라 남궁진혜와 나하연, 팽가 형제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본 후, 적호단주가 청룡단주를 돌아보았다.

“안에 단원들 지휘 부탁드립니다.”

“이봐, 자네, 설마, 저들만으로 광룡귀형진을 끊을 생각인가?”

“예!”

당황한 청룡단주의 물음에 적호단주가 시원하게 답을 하고 청룡단주의 앞을 막아섰다.

“가자--!”

“우아아아---!”

청룡단주가 뭐라 더 말을 하기도 전에, 적호단주가 소리쳤다.

적호단주의 외침과 함께 남궁진혜, 나하연, 팽가 형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불이 붙은 양 붉은 기운에 휩싸인 적호단주가 검은 사슬을 잡고 양쪽으로 당겼다.

파—앙!

붉게 달아오른 사슬이 순식간에 끊어졌다.

그리고 적호단주가 그대로 사슬을 안듯 앞으로 달려 나갔다.

“크아아아---!”

촤아아아아--!

적호단주가 사슬들을 끌어모으면서, 사슬들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검은 가시가 적호단주의 살을 파고들려 했지만, 적호단주 경격권 팽치를 멈추진 못했다.

“크아아아아---!”

적호단주는 서로 떨어지려는 사슬을 더욱 단단하게 붙잡았다.

그 덕에 사슬을 잡고 움직이던 광룡귀면대원 열 명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지금이다-! 가자!”

카---앙! 카앙! 카앙!

남궁진혜가 제왕무적검을 마치 도끼질을 하듯 움직였다.

남궁진혜의 검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던 아지랑이가 점점 새파랗게 변해 가고, 마침내 푸른 기운이 일렁이며 그녀의 검을 감쌌다.

“죽을 때까지 패 주지!”

파—앙!

남궁진혜의 앞에서 검은 사슬이 실타래처럼 끊어져 나갔다.

“용기 있는 여협이 미인도, 사슬도 얻는다!”

카아아아악----!

용수십팔반 화룡전기의 연속기가 그 반대편에서 사슬을 감아 당겼다.

나하연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몸에 칭칭 감기던 그것은, 그녀의 기운에 따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파-----앗!

터져 나가듯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형님, 내가 위.”

“내가 아래.”

팽수와 팽신은 적호단주와 마찬가지로 도를 쓰지 않았다.

팽가의 도법은 사실 양손과 양발로 펼치기에 조금의 무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팽가 도법이 힘없는 후손들을 위한 도구 사용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였다.

파---앗!

쾅! 쾅!

팽수의 혼원권이 사슬 위를 넘나들며 유려하게 매듭을 벌리고, 그 뒤에서 팽신이 맹호의 발톱처럼 다섯 손가락의 거력권을 휘두르며 사슬을 끊었다.

촤아아아----!

퍼-억!

“크아아악!”

순식간에 광룡귀형진이 흔들리며, 사슬을 잡고 있던 광룡귀면대원들이 힘에 휘둘리다 부딪히고 쓰러졌다.

“앞으로 나간다!”

청룡단주가 때를 놓치지 않고 단원들을 이끌고 끊어진 사슬진을 뚫고 광룡귀면대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청룡단주 남궁현의 천뢰제왕검법 낙엽은 진화의 그것과 달리 전광석화처럼 날아들었다.

“크윽!”

풀썩.

사슬을 잡고 있던 이들의 얼굴로 빨간 피가 흘러내리며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보며 흑표의 얼굴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어떻게……!”

광룡귀면대의 귀형진은 경지를 넘어선 고수조차 쉽게 풀려나지 못하는 움직이는 감옥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흑표는 도무지 방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한눈을 판 그의 뒤로 섬뜩한 바람이 느껴졌다.

“헉!”

흑표가 마룡아를 나무에 박아 그것을 딛고 높이 솟구쳤다.

피투성이에 왼팔이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그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파파파파팟--!

쾅!

뇌전이 나무의 밑동부터 터뜨리며, 결국 나무를 쓰러뜨렸다.

흑표의 몸도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착지를 준비하는 흑표의 귓가에 서늘한 숨소리가 들렸다.

“이제 진짜 죽음의 소리를 알겠구나.”

푸—욱!

귓가에 뭔가 터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 듯했다.

흑표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제 가슴을 뚫고 나온 푸른 번개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릴 정도로 차디찬 눈동자가 천천히, 흑표를 따라 땅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커헉!”

흑표가 가슴을 붙잡고 피를 토했다.

‘효, 효서는?’

흑표의 눈이 오갈 데 없는 아이처럼 효서를 찾았다.

그 앞으로 짙고 선명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여자는 진즉에 튀었어. 네게 남아 있는 구원은 없다.”

푸—욱!

“억울해하지 마라. 그 여자에게도 구원 같은 건 없으니까.”

진화의 검이 흑표의 심장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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