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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34)화 (234/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 화(火) : 아정분타불륜(3)

퍼---억!

좁은 통로에서의 전투는 인원수보다는 개개인의 실력이 중요했다.

하지만 계단의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이 아래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힘을 쓰기 좋은 것도 사실.

다만 적호단에는 남궁진혜가 있었다.

푸른 진기를 피워 올리며 복면인들의 검을 밀어 올리자, 위에서 내리누르던 이들도 처음에는 주춤하던 것이 순식간에 한 층 밀려 올라갔다.

채—앵!

남궁진혜가 복면인들의 검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흩어져라!”

“충!”

“야아아압--!”

남궁진혜의 뒤에 있던 적호단원들이 양쪽으로 흩어졌다.

빙- 둘러서 만나는 복도를 양쪽으로 나누어, 복면인들을 가운데로 몰아간 것이다.

일 조와 오 조 조장이 각각 앞장서서 복면인들을 베어 갔다.

그 모습을 보던 남궁진혜의 시선은 다음 층을 향했다.

위로 갈수록 짙어지는 살기.

게다가 아까 전 진화가 순식간에 계단을 뛰어오르던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졌다.

사 층에는 척 봐도 더 많은 수가 계단 쪽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뚫는다!”

“충!”

남궁진혜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적호단원들이 식탁 두 개를 들고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뒤에 선 남궁진혜가 식탁을 뚫고 오는 검을 막아 주었다.

푹! 푹!

갈고리 같은 것이 식탁에 박혔다.

“헛!”

촤아아아--!

남궁진혜가 급하게 갈고리에 연결된 사슬을 끊어 냈다.

하지만 적호단원들이 방패처럼 들었던 식탁은 이미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내가 앞을 뚫는다! 여긴 네가 맡아!”

“부단주님!”

삼 조 조장 표공이 붙잡기 전에 남궁진혜가 적호단원들이 든 식탁을 밟았다.

탓.

남궁진혜가 새털처럼 가볍게 올라섰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기세로 검은 복면인들의 머리와 어깨를 밟기 시작했다.

퍽! 퍽!

파파파팟--!

눈 깜짝할 사이, 천근만근 같은 힘이 실린 진각(進脚)에 밟힌 검은 복면인들이 우수수 주저앉았다.

누군가는 이미 목이 꺾였고, 누군가는 쇄골과 어깨뼈가 부서졌다.

“지금이다! 밀어 버려!”

적호단 삼 조 조장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명령을 내렸고, 적호단은 단숨에 사 층까지 진입했다.

그리고 기세를 멈추지 않고 오 층으로 오르려는 때.

퍼---엉!

굉음과 함께 정화루 한쪽 벽이 무너졌다.

동시에 검붉은 무복을 입고 이마에 신살(迅殺)이라 적힌 띠를 두른 무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신양초가의 신살대(迅殺隊)였다.

“태금호를 찾아라-!”

“충!”

신살대는 옆 건물 옥상을 통해 사 층부터 밀고 들어와, 앞에 보이는 검은 복면들을 베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계단 앞에서 남궁진혜와 마주쳤다.

“네놈들이 여긴 웬일이지?”

남궁진혜가 신살대의 앞에 선 중년인을 경계하며 물었다.

신살대 대주 매석검(昧析劍) 초전후였다.

사파를 대표하는 검호(劍豪)로서 남궁진혜 또한 그의 위명을 익히 알고 있었다.

“여긴 신양초가의 영역이다. 적호단이야말로 이만 물러서라. 이건 분명히 정사 협정을 위반한 일이다.”

신살대주가 매서운 눈으로 남궁진혜를 노려보았다.

위험한 살기가 남궁진혜를 향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남궁진혜의 기운을 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협정은 지랄! 우리가 너흴 공격한 것도 아니잖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영역 침범이지. 이곳에서 태금호를 목격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방해하지 말고 떠나라.”

“그쪽이야말로 이미 방해다! 우리가 다 잡은 먹이라고!”

신살대주가 풍기는 살기에 맞서며 남궁진혜가 사나운 얼굴로 투기를 발산했다.

한 치도 밀리지 않는 기세 싸움.

‘남궁세가의 어린 계집이 벌써 이 정도라고?’

파랗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며 신살대주는 내심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세를 가다듬고 남궁진혜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더 이상 본가의 행사를 방해한다면 베겠다. 정사 협정이고 나발이고, 먼저 선을 넘은 건 너희니까!”

신살대주가 눈빛을 번뜩이며 남궁진혜와 적호단을 향해 살기를 뿜었다.

기세 싸움 따위가 아닌, 이번엔 진심으로 죽이겠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살갗이 따끔할 정도로 사나운 살기에 남궁진혜의 분노를 터뜨렸다.

“씨발, 선을 넘은 게 누군데? 지금 해보자는 거야--!”

남궁진혜의 투기가 불이 붙은 듯 활활 타올랐다.

적호단도 신살대를 향해 일제히 검을 겨누었다.

그때, 신살대 대원들을 가르고 낭창낭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세가의 여식이 앞뒤를 모르고 들소처럼 날뛴다더니, 소문이 그르지 않군요.”

타는 듯 붉은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남궁진혜를 향해 독설을 날리며 나타났다.

“…….”

순간, 검을 든 사내들의 숨소리가 멎은 듯했다.

흑단같이 검고 긴 생머리에 새하얀 얼굴.

안계가 트이듯 어떤 화려한 옷보다 여인의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짙은 호선 아래 비단잉어의 꼬리처럼 올라간 눈꼬리가 요염하게 눈웃음을 치고, 봉긋 솟은 코끝이 애교스럽게 찡긋거렸다. 깊은 인중 아래 새빨간 입술과 그 옆에 찍힌 작은 방점 하나는 어떤 독설을 퍼부어도 달콤할 것만 같았으니.

처음 본 얼굴이었지만 모두가 여인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바로 사파제일미, 신양초가의 붉은 연. 홍련(紅蓮) 초서비가 분명했다.

“아무리 정의맹의 사냥개들이라지만, 정파인들이니 협정의 지엄함 정도는 알고 있겠죠? 본가에서 정의맹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만 물러서세요.”

초서비가 신살대주를 물리고 남궁진혜를 향해 말했다.

남궁진혜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의기양양 짓는 미소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남궁의 영애라더니,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군.”

초서비가 다 들리도록 하는 혼잣말에, 남궁진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허어!”

역시, 미친년인가.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년이 나서긴 어딜 나서.

역시 사파 년이라 그런지 곱게 생겼어도 싸가지가 없구나.

……선빵 날릴까.

순식간에 수많은 고민들이 이어지며, 초서비를 보던 남궁진혜의 주먹이 일렁거렸다.

그 순간.

“물러서야 할 쪽은 그쪽이다. 확실히 사파의 무지렁이들이라 그런지, 나이가 많든 적든 예와 도를 모르는 듯하군.”

남궁진혜가 속으로 하던 독설들이 정파인답게 순화되어 날아들었다.

옥구슬처럼 귀를 감싸는 낭랑한 목소리에 남궁진혜가 반색하며 위를 보자, 진화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태금호는 없다.”

“…….”

진화의 말에 누구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꿀꺽.

신살대 무사들의 검 끝이 흔들리며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에 침묵이 깨졌다.

신살대주마저도 넋을 놓고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초서비가 분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자, 남궁진혜와 적호단이 여유롭게 미소까지 짓고 그들을 보고 있었다.

남궁진혜와 적호단은 마치 전투에서 이긴 양 의기양양했다.

* * *

청해상단 본부.

적호단주와 신살대주가 마주 앉았다.

적호단주의 옆으로는 남궁범과 진화, 남궁진혜가 함께했고, 신살대주의 옆으로는 초서비와 젊은 사내 하나가 앉았다.

남자답게 굵직한 이목구비에 단단한 체격, 과묵하게 다문 입이 가볍지 않은 성격을 말해 주는 듯했다.

진화의 눈길을 끈 것은 용미처럼 솟은 눈썹 아래 잘 갈무리된 눈빛이었다.

‘신양초가에 저런 자가 있었나?’

기운을 갈무리한 것부터 생각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 눈빛은 마치 남궁진휘를 연상케 하는 것이, 진화의 시선이 집요하게 사내를 살폈다.

그런 동안, 양측 사이에는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양쪽 모두 누가 먼저 말을 꺼낼지 내기라도 한 듯 버티고 있었다.

“…….”

“흐흐흐.”

침묵 사이로, 남궁진혜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두의 시선이 남궁진혜를 향했다.

남궁진혜는 한번 터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지 적호단주와 신살대주의 살벌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초서비가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궁진혜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살기 어린 눈빛에 남궁진혜는 더 기세등등하게 웃어 보였다.

초서비는 무엇이 그리 분한지 입술을 짓씹었다.

결국 이 사달의 중심에 있는 남궁범이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권마제가 제 하나밖에 없는 여식을 노리고 있습니다. 신양초가에서 내 여식을 지켜 줄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내 여식을 지켜야겠소.”

호인이라고 소문난 남궁범이 그답지 않게 처음부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신살대주 또한 애초부터 칼을 갈고 들어온 터라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본가의 영역에 정파의 무단은 들어올 수 없소. 그것을 알기에 남궁세가도 이제까지 무사들만 파견했고 우리는 그것을 용인해 왔소. 그런데 정의맹의 적호단이라니! 엄연한 협정 위반이오.”

신살대주는 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매정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협상이 아니라 우기는 것이라면 적호단주도 만만치 않았다.

“협정에는 귀천성과 관련한 일이 모든 조항을 우선한다고 되어 있지. 권마제가 남궁금영을 노리는 이상, 이 일은 모든 협정 사항에 우선한다. 따라서 이번 일도 그쪽 잘못이다.”

적호단주는 타협의 여지라곤 없는 듯 단정 지어 말했다.

신살대주와 적호단주의 눈이 싸늘하게 마주쳤다.

서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면서 ‘절대, 어떤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본가에서는 정의맹으로 항의 서한을 보냈어요!”

“헹, 정의맹에서 어떤 답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 누구 말마따나 우린 정의맹의 사냥개라서, 답이 올 때까지 우리가 물었던 건 놓을 생각이 없는데, 어쩐다?”

초서비와 남궁진혜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남궁진혜가 가소롭다는 듯 귀를 후비며 초서비에게 비소를 날렸다.

이 둘의 싸움은 왠지 기세에서부터 초서비가 밀리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진화 때문이었다.

“이 사람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죠?”

초서비가 잔뜩 약이 오른 얼굴로 진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남궁범이 탁자를 내리치며 목소리를 키웠다.

“무례하시오! 이분은 남궁세가의 소공자이시자, 황실을 대표하여 무림에 협조 중이신 동해왕 전하시오! 당장 사과하시오!”

“뭐? 그게 무슨…….”

남궁범의 말에 초서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진화를 보았다.

답은 진화보다 남궁진혜에게 얻는 것이 더 빨랐다.

“내 동생이 배경과 미모, 지성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어쩌냐, 이제 역적까지 되어 보게?”

유치하긴 했지만 초서비를 당황시키는 데는 무척 효과적이었다.

남궁진혜의 말에 초서비의 고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존심에 사과하긴 싫고, 넘어가자니 진짜 큰 죄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남궁진혜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 모습을 즐겼다.

그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젊은 사내가 진화를 향해 입을 열었다.

“원래 자리를 찾으신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다만, 앞으로도 무림에선 남궁진화의 신분을 그대로 유지한다 들었습니다만?”

초서비가 진화에 대해 몰랐던 것은 정파 사정에 어두우면 그럴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신양초가의 초서비가 모르는 일을 젊은 사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들으신 대로입니다.”

진화는 사내의 말에 답을 하며, 사내가 아닌 초서비와 신살대주의 얼굴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초서비는 사내를 향해 얼굴을 붉히며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했고, 신살대주는 사내가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차분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우리 쪽이 원하는 것은 권마제 태금호의 신변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는 남궁금영의 안전입니다. 그걸 지키자니 부득이 권마제를 쫓아야 할 듯합니다.”

“…….”

“…….”

사내가 말이 없자 진화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고소를 지었다.

이것으로 누가 더 급한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먼저 꺼낸 이는 사내였다.

“협조하도록 하죠. 태금호의 신변을 우리에게 넘겨준다면, 신양에서 적호단이 활동하는 것을 허락하겠습니다.”

처음부터 거기까지 생각하고 왔을까.

사내의 타협책을 들은 진화가 사르르- 미소를 지었다.

초서비가 그 미소에 넋을 잃고 진화를 보았다.

“어림없는 소리군요. 적호단주의 말처럼 귀천성과 관련한 일에 그쪽의 허락을 얻을 이유는 없습니다.”

진화는 웃는 얼굴로 사내의 타협책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이렇게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거절당할 줄은 몰랐는지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번에 눈빛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짐승이 이를 드러낸다고 겁을 먹을 진화가 아니었다.

“남궁금영이 있는 한 태금호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겠군요.”

느긋하게 웃으며 신경을 돋우는 진화의 모습에 사내가 짧게 이를 갈았다.

그러나 급한 건 그들이었고 상대가 그걸 알아 버렸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신양초가가 가진 역천비록을 내놓겠습니다.”

“좋습니다!”

진화는 사내가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얼른 말을 받았다.

적호단주와 남궁범이 놀란 눈으로 뜨고 진화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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