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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37)화 (237/425)

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아름다운 풍경 위 진짜 절경(1)

진화의 예상대로 정의맹과 사패천은 양쪽 모두 이대로 공조가 멈추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정의맹에서는 역천비록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사패천 술법사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사패천도 귀천성과의 전쟁이라면 정의맹을 도울 의향이 있었다.

게다가 이대로 남궁금영이 남궁세가 본가로 가고 나면 사패천에서는 영영 권마제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 있었기에, 공조를 이어 가는 데에는 사패천이 더 적극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양측은 진화와 강무련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였다.

남은 문제는 남궁금영과 권마제 태금호였다.

‘제물이냐, 사랑하는 여인이냐.’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으나, 귀천성 마제들에게 역천대법은 하늘의 순리를 거슬러 가면서 추구하는 힘이었다.

강한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귀천성의 논리로 보면, 마제들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태금호에게 그 여인은 인생을 포기하면서 찾은 사랑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사패천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위치와 스승의 부인이 된 여인.

불륜을 떠나 패륜아라는 손가락질과 평생 이룩한 모든 것을 잃으면서까지 붙잡고 있는 사랑이라면, 대체 얼마나 깊은 사랑이란 말인가.

정의맹과 사패천 모두 권마제 태금호가 어디에 나타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사패천주가 나서면서 해결되었다.

“남궁금영 소저의 안전은 천주님께서 직접 보장해 주시기로 했소. 두 사람을 한데에 둔다면, 쓸데없이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겠소.”

“우리 적호단과 남궁금영이 사패천으로 간다라…….”

“함께 남궁금영 소저도 보호하고, 권마제도 잡는 것이오.”

“음. 사패천주께서 직접 남궁금영 소저의 안전을 보장해 주시는 거라면, 남궁세가 본가만큼 안전하겠지요. 게다가 우리도 함께 갈 수 있다 하니, 좋습니다!”

사패천 소천주 강무련의 말에 적호단주도 동의했다.

정의맹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망설였던 것은, 적호단을 데리고 사패천 본성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남궁금영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던 듯했다.

“청해상단주와 남궁금영 소저는 제가 직접 설득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하겠소.”

남궁범과 남궁금영의 설득에는 진화가 나섰다.

이미 소가주인 남궁진휘가 나서서 앞으로 일의 진행에 대해 따로 전서를 주었던 참이었다.

사실 남궁금영의 안전만 생각한다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사패천주 낭아왕 한구혈은 제왕검과 비견되는 고수이자 사파 천하의 하늘이었다.

그런 사패천주가 직접 나서서 남궁금영의 안전을 보장했다면 사파 전체가 남궁금영을 보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패천 본부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적호단이 그곳까지 함께할 것이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청해상단주 남궁범과 남궁금영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미리 남궁진휘의 전서를 받고 진화가 따로 설득하기도 전에 흔쾌히 찬성했다.

심지어 남궁금영은 사패천에 가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떠 보이기까지 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틀 후.

남궁금영과 적호단이 떠날 준비를 마쳤다.

목적지는 남궁세가가 아닌 사패천이 되었다.

“살다 살다 사패천엘 다 가 보는군.”

진화 일행은 물론 경험 많은 적호단원들조차 사패천 본성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중구난방 엉망진창이나 다름없던 사파를 일통한 사패천주 한구혈은 정과 사를 떠나 무림인들이라면 한 번씩 동경해 봄 직한 사파 영웅이었다.

적호단과 진화 일행은 긴장감 반, 기대감 반을 안고, 사파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사패천으로 출발했다.

* * *

여기저기 휘날리는 검붉은 깃발.

청색 기와와 자연스럽게 옻칠 된 나무를 써서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의맹과 달리, 사패천 본성은 검은 기와에 기둥을 붉게 칠해 화려하고 위압감을 주는 분위기였다. 특히 기와지붕 끝마다 포효하는 검은 늑대 장식이 있어서 더 그러했다.

따각따각따각.

신살대가 호위처럼 둘러싼 가운데 적호단과 남궁금영을 태운 마차가 사패천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저자를 걸어 들어올 때와는 확연히 다른, 호기심보다 경계심, 호승심과 투기가 버무려진 기운에 얼굴이 따끔거릴 정도였다.

“저 정신 나간 마차는 뭐지?”

“저런 걸 사람이 타고 다닌다고? 정파 놈들은 쪽팔림을 모르나?”

아니면 그냥 구경하는 거였던가.

얼굴이 따끔거린 건 스스로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주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적호단주는 물론 적호단원들은 고개를 들고 있기 힘들었다.

하지만 사파인들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도 없었다.

“자세히 봐라, 무식한 놈아. 꽃마차잖아.”

“대체 저런 정신없는 마차는 누가 만든 거지?”

그러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정신없는 마차를 또 만들었는지!

적호단주가 이전보다 더 크고 화려해진 마차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안에 남궁세가의 절세미인이 타고 있다더군.”

“그 남궁금영인가 뭔가 하는, 태금호가 노리는 제물을 타고 있다며?”

“뿐인가? 정파의 그 청명화 남궁진혜에 독심화 당혜군, 용수권 나하연도 왔다는군!”

“오오!”

“그런데 그중에 절세미인은 누구인가? 우리 사파제일화 초서비 소저보다 예쁘려나?”

“글쎄. 마차 안에 누구 하나는 절세미인이겠지!”

사파 모든 무인들의 선망의 눈길을 받는 초서비 또한 붉은 마차를 타고 적호단과 동행했다. 다만 남궁세가가 새로 만든 마차에 밀려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어쨌든 마차 안이라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으으, 그자는 사내다. 사내다…….’

초서비는 붉은 마차 안에서 분한 듯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적호단이 정신 나간 마차라고 부르는 남궁세가의 꽃마차 안에서도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래요, 누구 하나는 절세미인이겠죠, 우리 셋은 아니었지만!”

당혜군이 지난번 흑사문의 납치범들에게 당했던 굴욕을 떠올리며 벌침을 쏘듯 새침하게 진화를 흘겨보았다.

소천주 강무련과 신살대, 적호단 일행은 본성에 한가운데에 자리한 거대한 오층 건물 앞에 멈췄다.

사랑탑(似狼塔).

처음 들었을 때는 픽- 웃음을 새어 나오는 이름이었지만 사실 ‘사파 늑대들의 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었다.

사랑탑 일 층은 사패천 본성 정문을 지난 자는 누구나 오를 수 있지만, 꼭대기는 오직 사패천주와 그의 허락을 얻은 자만이 존재할 수 있었으니.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위층에 있는 자를 이기면 된다.

그 방식이 실로 간단하지 않은가.

사패천에서는 사랑탑에 올라갈 수 있는 층이 곧 그의 실력과 위치를 보여 주는 것이라, 사패천 고수들은 결사 대전을 통해 언제든 위층에 도전할 수 있었다.

강무련이 다른 제자들을 모두 죽인 것도 바로 그 결사 대전을 통해서였다.

사랑탑은 사패천주의 성이자 사파 무인들의 피와 열망의 투기장 그 자체였던 것이다.

끼-익.

빡빡하게 조여진 경칩이 돌아가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하나둘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내렸다.

제일 먼저 남궁진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머리를 높게 묶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미인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에 쏠렸다.

옷소매가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어지간한 사내들보다 우람한 팔근육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남궁진혜가 사패천에 오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제일 먼저 한 일이 옷소매를 찢어 버린 일이었다.

다음으로 나하연과 당혜군, 남궁금영이 차례로 내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관도복과 남궁세가 무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날카로운 듯 맹한 분위기의 나하연이나 새침하고 귀여운 당혜군, 단정한 남궁금영 모두 탄성이 나올 정도로 눈에 띄는 미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녀들도 크게 사패천 무인들의 주목은 받지 못했다.

여자들에게 밀려서 제일 마지막에 내린 진화 때문이었다.

“헉!”

“와……아!”

곳곳에서 숨이 멎는 소리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큰 키와 단단한 체격은 누가 보아도 사내다웠지만, 진화의 얼굴과 분위기는 그 모든 것을 지워 버릴 정도라.

적호단을 향해 경쟁심을 불태우던 이들까지 모두 넋을 잃고 진화를 보았다.

“절세미인 납셨네. 저 인간 성질머리에 한번 당해 봐야 알지.”

뒤에서 당혜군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어쨌든 꽃마차 때문에 움츠러든 적호단원들의 어깨가 들어올 때보다 한층 봉긋 솟았다.

“드, 드시지요.”

사랑탑 탑주가 소천주 강무련과 적호단주, 진화를 안으로 안내했다.

* * *

“……남궁이라고?”

사파 무림의 하늘. 사패천의 주인. 사파제일인인 동시에 천하제일 고수 중 일인.

내심 고대하던 사패천주 낭아왕 한구혈이 진화와의 대면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뭐라고? 아, 친자는 아니라고? 그럼 그렇지! 남궁강 놈의 밑에 저런 인물이 날 수가 없잖아. 주워 왔다니 말이 되네.”

동네 저자에서 남의 뒷담화를 하듯 편하게 쏟아 내는 사패천주의 말에 오히려 강무련과 탑주가 더 당황했다.

사랑탑 탑주는 당황한 얼굴로 급히 진화의 눈치를 보며 사패천주에게 눈짓을 했다.

앞서 진화가 양자라는 것을 전음으로 알려 주었듯, 새로 뭔가 전음을 보낸 듯했다.

-무슨 전음을 저렇게 티를 내. 저럴 거면 그냥 말로 하지.

적호단주의 전음에 진화는 웃음이 터질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냈다.

“주워 온 곳이 황궁이야? 아니, 황궁에서 주운 건 아니라고? 뭐가 그렇게 복잡해? 그래서, 황제의 아들? 황자, 동해왕이라고? ……쓰불, 누군 혀가 빠지도록 칼질하고 다니면서 나이 오십에 겨우 ‘왕’ 해 먹었는데, 누군 약관도 안 되어서 왕이야? ……아! 알았다고! 황제가 듣긴 어떻게 듣는다고 지랄이야.”

“…….”

탑주의 말은 분명 전음이었는데, 사패천주의 말을 들으며 탑주의 잔소리도 같이 들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몇 마디 말로 사패천주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사파지존(邪派至尊).

격이 없고 식을 무시하는 데도, 격과 식이 느껴지는 자였다.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를 질끈 묶고, 수염과 구레나룻도 산적처럼 짧고 지저분했다.

하지만 깊은 눈에 들어찬 안광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고, 검붉은 장포로도 채 가리지 못한 터질 듯한 근육은 위압적이리만큼 힘이 느껴졌다.

게다가 옆에 아무렇게나 세워 둔 패천아랑도(敗天餓狼刀)는 지금도 피를 머금은 듯 패도적인 기운을 뿜고 있었으니.

실로 사파지존다운 자였다.

“그래. 무림에 있을 때는 그냥 남궁이라고?”

“남궁제일검의 아들, 남궁진화라 합니다.”

“호오. 남궁세가 철딱서니라면 내가 소싯적에 궁둥이를 패 준 적이 있지. 그때 남궁강이 지랄하는 바람에 다 못 때리긴 했어. 때릴 것이 좀 남았는데…… 너는 어떠냐?”

“천주님!”

무림에선 남궁진화라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멍청이가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다.

한제국 유일 적통 황자의 궁둥이를 때리겠다는 사패천주의 말에 탑주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사패천주는 이미 도발적인 말과 함께 거대한 기운으로 진화를 압박하고 있었다.

숨이 막힐 듯 사방에서 온몸을 터뜨릴 듯 조여드는 기운.

진화는 거대하고 패도적인 사패천주의 기운을 견디며 입꼬리를 사르륵 말았다.

“……순순히 맞지 않아도 됩니까?”

진화의 대답에 강무련과 적호단주가 놀란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사패천주와 진화가 눈싸움을 하듯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호오, 요것 봐라?’

자신의 기운을 견디며 눈에서 요상한 것을 번뜩이는 진화를 보며, 사패천주의 얼굴에 장난기가 떠올랐다.

진화를 억누르던 거대한 기운이 사라지고 대신 강한 바람이 진화의 눈을 자극했다.

기어이 진화의 눈꺼풀을 먼저 닫겠다는 듯 사패천주가 짓궂은 얼굴로 기운을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진화는 사패천주의 앞으로 흐르는 기운의 음기를 자극해 냉기를 일으켰다.

“음?”

사패천주의 눈이 감기기는커녕 더 커졌다.

그리고 곧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제 아비처럼 지기 싫어하는 놈일세! 하나, 너는 들소같이 달려들기만 하던 아비와 달리 요상한 짓거리도 할 줄 아는구나! 남궁강이 제대로 주워 갔군. 하하하하!”

칭찬인지 시비인지.

사패천주는 듣는 양자가 기분 나쁠 말을 내뱉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이제는 강무련과 탑주도 전음을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진화와 적호단주는 이상하게 그런 사패천주가 훨씬 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권마제 놈을 잡는 데 한 팔 거들겠다고?”

“역천비록이 필요해서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편한 건 아닌데.

너무 적나라한 말에 적호단주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흐흐흐, 솔직하군. 내숭 떠는 정파 놈들과 달라서 마음에 드는구나.”

강무련과 탑주도 놀란 눈으로 사패천주와 진화를 보고 있었다.

“남궁세가 여아의 안전은 보장해 주마. 대신 그놈을 잡는 데 네 요상한 불꽃을 잘 써 줘야 할 게다.”

사패천주는 한눈에 진화의 무위를 알아본 듯, 진화가 권마제를 잡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진화 또한 숨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마제가 남궁금영이 아닌 그 불륜을 한 부인에게 올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컵!”

진화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강무련과 탑주, 적호단주의 숨이 멎었다.

하지만 사패천주는 그런 말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생각? 아니, 확신이다! 제물 어쩌고 하지만, 나는 할 일 없는 놈들이 찍어 놓은 먹 자국 같은 건 안 믿는다! 내가 믿는 것은 오직 내가 보고 느낀 것뿐! 그놈의 눈은 항상 내 보물을 향해 있었다!”

사패천주의 눈에 불길이 화르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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