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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38)화 (238/425)

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아름다운 풍경 위 진짜 절경(2)

“반드시 그 두 연놈이 서로 보는 앞에서 사지를 찢어 버릴 것이다!”

보다 원초적이면서 솔직한 분노.

“약속한 역천비록은 반드시 가져가겠습니다.”

보다 솔직한 욕망.

보기 싫고 거북스러울 수 있는 날것이었지만 서로 솔직한 감정을 나누는 것만큼 신뢰를 주는 것도 없었으니.

보는 사람이 한 치도 방심할 수 없는 조마조마한 대면을 마치고, 사패천주는 진화와 적호단을 기꺼이 귀한 손님으로 맞았다.

적호단은 일단 평소 신살대가 묵는 처소에 묵기로 했다.

사패천에는 정의맹과 같이 정예의 무단이 있었고, 신살대는 곧 신양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적호단이 빈 처소를 편하게 쓰게 된 것이다.

다만 남궁금영은 삼부인과 가까이 두기 위해 따로 처소를 잡았다.

사패천 본성은 넓은 곳이라 멀리 처소를 잡으면 권마제를 유인하려는 것도 소용없었기 때문이다.

남궁금영이 삼부인의 처소와 가까운 곳에 묵게 되면서, 남궁금영의 근접 호위를 위해 진화 일행도 그곳에 함께 묵게 되었다.

남궁금영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기에 친분이 있는 당혜군과 나하연이 낫다는 판단이었는데, 실제로 남궁금영은 처음부터 진화 일행이었는 양 익숙하게 어울렸다.

사패천 소천주 강무련이 직접 진화 일행을 처소로 안내했다.

사랑탑에서 진화의 모습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던 듯싶었다.

진화도 강무련과 할 이야기가 남았다.

“제가 오해를 했군요.”

“네?”

“권마제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은 소천주가 아니셨더군요.”

무슨 말인가 눈을 동그랗게 떴던 강무련이 진화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봐서 알겠지만 사부님이 그렇게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오. 살을 섞고 살던 부인이 제자와 바람이 났으니, 흠흠, 솔직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오만 욕지거리와 온갖 잔인한 살인 방식이…… 하하하하. 어쨌든 내 사부님은 두 사람의 죽음을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볼 것이오.”

‘보려 할 것이다’가 아니라 ‘볼 것이다’.

고작 한 단어가 다른 말이었지만 훨씬 광오하게 들렸다.

타인의 죽음을 원하는 대로 하게 될 것이라니.

하지만 그리 말한 사람이 사파의 지존이었다.

사패천주가 정의맹과의 협력을 허락할 정도로 분노한 것이라면, 그가 말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삼부인을 아직 살려 둔 것이 그 때문입니까?”

“그런 것도 있고, 아직 아이가 어려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도 있소.”

“아이요?”

“사부님의 보물이지.”

“보……물요?”

진화가 되물으며 강무련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강무련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단순한 늦둥이가 아니오. 당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계집을 살려 둘 정도로 사부께서 아끼는 보물이오.”

강무련이 진화를 보며 말했다.

“소천주께서도 아이를 아끼는 듯하군요.”

“하하, 이 삭막한 곳에서 그 녀석이 잔망 떠는 모습을 보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 꽤 많소.”

거침없이 직시하는 눈빛에는 한 점 거짓도 없어 보였다.

진화는 사패천주가 강무련을 후계자로 삼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강무련은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거침없이 내보이는 것이 사패천주와 닮아 있었다.

“이곳이 그대들이 묵을 처소요. 후원에 있는 곳이라 생각보다 지내기 나쁘지 않을 것이오. 삼부인의 처소는 저 연못 건너 맞은편에 보이는 곳이오. 편히 쉬고, 저녁에 있을 연회에서 봅시다.”

강무련이 안내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는 정말로 진화와 잠시 시간을 나누고 교분을 쌓으려 했던 것인지 오면서 나눈 대화 외에는 남기는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강무련의 모습은 진화 일행에게 여러모로 여운을 남겼다.

* * *

진화 일행의 처소는 과연 사패천주의 일가가 머무는 후원에 있는 곳답게 넓고 화려했다.

뒤뜰에는 커다란 연못과 아름다운 정원까지 있어서, 한 번쯤 탄성을 내뱉을 만한 곳이었다.

하지만 처소에 짐을 푸는 동안, 일행은 조금 조용했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여자들과 따로 방을 쓰면서 숙청관에 있던 시절이 생각난다 어쩐다 떠들었는데 말이다.

이유는 뻔했다.

진화와 강무련의 대화, 정확히는 강무련 때문이었다.

처소까지 오는 동안 진화와 강무련은 그들의 대화를 굳이 숨기지 않았고, 일행도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 대화 맥락만으로도 사랑탑에 있었던 일이나 사패천의 상황에 대해 추리할 수 있었다.

다만 일행에게 약간의 충격으로 남았던 것은, 그 모든 상황에 대해 말하는 강무련의 모습이었다.

강무련의 모습이 평소 그들이 생각하던 사파인들과 많이 달랐던 것이다.

정파인들은 흔히 사파인들에 대해 ‘비열하고 탐욕스럽다’ 혹은 ‘잔인하고 야망이 강하다’고 말한다.

진화 일행 또한 사패천 인물들에 대해 그런 선입견을 가졌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 본 강무련은 생각보다 담백하고 다정하며 오히려 정파인들보다 솔직한 사람이었다.

“사패천도 생각보다 질서가 있지 않았어?”

“그러게. 무슨 돼지우리처럼 난장판으로 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사패천이 무슨 산적 소굴인가, 난장판으로 살게?”

“어쨌든.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는 거지.”

남궁구의 말에 모두가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소천주 강무련도 좀 의외였지.”

“음? 좋은 사람 같은데.”

“네 눈에 안 좋은 사람이 어디 있냐?”

관서겸의 눈치 없는 말을 제갈상이 타박했다.

“괜히 친한 척하기에, 호탕한 척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네 눈은 많이 꼬여서 그런 거고. 반말 조금 했다고 심사가 뒤틀려서는. 쯧쯧!”

“뭐야? 그런 네놈의 의심병은! 네놈도 계속 경계해 놓고선!”

“둘이 똑같은 놈들.”

“쌍둥이는 너희들이 하지그래?”

남궁구는 내내 강무련을 못마땅해하던 남궁교명을 타박했고, 남궁교명도 지지 않고 내내 진화에게 접근하는 강무련을 경계하던 남궁구의 모습을 들추었다.

도긴개긴, 남궁구와 남궁교명을 팽가 형제가 놀렸다.

하지만 모두 한마디씩 할 만큼 강무련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뭐 어쨌든 우리 생각보다 사파인, 아니 강무련은 사파인치고 나쁘지 않더군.”

“솔직하고 다정한 성품 같았어요. 우리한테도 내내 친절하고, 사부님의 아이도 진심으로 아끼는 걸 보면.”

나하연과 남궁금영이 그들 모두가 느꼈던 감상을 입 밖으로 내었다.

남자들이 쑥스러워 말하기 피했던 것과 달리 그녀들을 조금 더 솔직했을 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가만히 있던 당혜군이 툭 내뱉듯 말했다.

“잊지 마, 그 사람이 함께 동문수학한 사형제들을 모두 죽였다는 걸. 따지고 보면 권마제도 사형인데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잖아?”

“…….”

“아이 문제도 모르지. 지금은 잔망 떨고 귀여운데 막상 후계 경쟁자로 떠오르면, 또 슥삭 해 버릴지.”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모두 찬물을 때려 맞은 듯 조용해졌다.

“현실은 차디차군.”

“아니, 차디찬 건 당혜군의 심장이다.”

실상 제 오라비와 경쟁을 하고 있는 당혜군의 말이라 더 실감이 났다.

처소에 짐을 풀고 후원에 있는 연못에 산책을 나가서도 일행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래서 그 아이는 누구 자식인 거야?”

“글쎄. 사패천주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한데, 사패천 무인들에게는 그렇지도 않겠지.”

진화는 권마제와 삼부인에 대해서는 분노를 쏟아 내면서도 아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던 사패천주를 떠올렸다.

어쩌면 사패천주와 강무련은 아이를 끝까지 지켜 줄지도 몰랐다.

다만 당혜군의 말처럼 강무련을 따르는 무인들이 아이가 경쟁자로 자라도록 둘지 모를 일이었다.

“어휴, 다 어른들 잘못이지, 애가 무슨 죄라고.”

“그러니까.”

현실은 차디차다.

오히려 남궁세가처럼 다툼이 없는 곳이 이상할 정도로 정파조차 후계 경쟁 앞에선 피도 눈물도 없었다. 심지어 남궁세가조차 남궁도의 반란이 있었다.

그러니 탐욕과 욕망이 죄가 되지 않는 사파야 오죽하겠는가.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여자는 뭐래?”

“사패천주의 자식이라고 하겠지.”

“하긴, 애라도 살리려면 우기기라도 해야지.”

“그것도 알 수 없지 않냐? 태금호의 자식이면 죄인의 자식이 되는 거고, 사패천주의 자식이면 강무련의 경쟁자가 되는 건데.”

“다 그 연놈들 잘못이라니까! 망할 것들!”

제삼자인 그들조차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상황에 한쪽에서 당혜군이 시원하게 독설을 퍼부었다.

이번만큼은 당혜군의 독설에 모두가 동의했다.

“하아, 천년만년 가는 사랑이 어디 있다고. 다 찰나의 탐욕이거늘.”

“뚱뚱한 식탐 대왕 땡중이 할 말은 아니야.”

“그 여자도 그래. 그냥 시집을 갔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왜 외도를 해서는…….”

“박수는 혼자 치냐? 연놈이 똑같지.”

“어쨌든 애만 불쌍하게 됐네.”

“아이는 죄가 없다.”

진화 일행은 안타까운 아이의 처지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산책로를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권마제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도록 대비해 두는 것뿐이었다.

“숨을 만한 곳이나 퇴로로 쓸 만한 데를 찾아 둬. 그게 금영이는 물론 아이를 위해서도…… 어라?”

아이가 있었다.

남궁구가 말을 하다 말고 놀란 눈을 하고, 일행의 눈도 연못가에 쪼그려 앉아 있는 작은 체구를 향했다.

이제 예닐곱 살 정도 되었을까.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사패천에서 실제로 아이를 보게 된 일행도 놀랐지만, 아이도 태어나 처음 보는 외부인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그랗게 뜬 눈, 오동통한 볼살.

검붉은 비단옷에 한 치의 어긋남 없는 바가지 머리를 한 아이가 어느새 일행의 앞으로 다가왔다.

“너희는 누구야아?”

다짜고짜 하는 반말.

그래서 더 귀하게 큰 티가 났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애교스러운 말투를 보면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은 듯했다.

“어? 와아-!”

뭔가를 발견하고 크게 놀라며 웃는 얼굴이 삭막한 사패천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순수했다.

“와아, 누나 진짜진짜 예쁘다. 나랑 놀래?”

“우, 우리?”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남궁구가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 저기 진짜진짜 예쁜 누나.”

아이가 진화를 콕 집어 말하자, 그 뒤에 있던 당혜군의 얼굴이 대번에 사나워졌다.

남궁금영과 나하연의 숨소리도 조용해졌다.

“어때? 당과 사 줄게. 나랑 가자.”

아이가 하는 말에 나하연이 콧김을 뿜었다.

“꼬시는 말이 진부하기 짝이 없군. 이 몸이 전에 써먹었던 방법이다!”

“칫. 예쁜 꽃엔 파리가 꼬인다더니. 벌써 써먹었어?”

“그리고 대차게 실패했지. 이 몸의 경쟁자가 되려면 좀 더 커서 오도록!”

“남자는 젊으나 늙으나 돈이 최고랬어! 나 돈 많아!”

아이와 나하연의 대거리를 들으며, 아무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근처에 있던 하녀가 급히 아이를 부를 때까지도.

“도련님--!”

“쳇. 나중에 봐! 누나, 내가 꼭 참신하게 꼬시는 말 배워 올게!”

아이가 급하게 달려가고, 일행은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아까 누가 애는 죄가 없다고 했냐?”

“심지어 애답지도 않고.”

“이번 일로 크게 느꼈다. 경쟁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더군. 다음엔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

“닥쳐, 미친년아.”

현실은 차디차다.

다들 머릿속으로 그렸던 순수한 아이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에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누구도 진화가 ‘누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 삼지 못했다.

* * *

그날 저녁.

강무련은 진화 일행이 아이를 만났다는 걸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수림이를 벌써 만났단 말이오?”

“이름이 수림입니까?”

“예. 한수림. 제법 잔망스럽지 않았소?”

강무련이 눈을 찡긋하며 물었다.

그는 진화 일행이 아이, 한수림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예상이 가는 듯 짓궂게 웃었다.

“……아이가 조금 오해를 한 모양입니다.”

“음? 오해요?”

“그…… 나중에 아이가 오면 제가 누나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진화의 말에 강무련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아, 미안하오. 하하하하하!”

진화는 강무련이 웃음을 그칠 때까지 인내심을 발휘했다.

한참 뒤 강무련은 눈물까지 닦고 나서야 겨우 웃음을 그쳤다.

“하하하, 안 그래도 조만간 인사를 시킬 예정이었소. 주변의 눈 때문에 오늘 연회에는 없지만, 며칠 뒤면 아이의 생일이라 큰 연회가 있을 거라.”

“생일 연회요?”

이런 시국에도 아이의 생일 연회를 크게 연다니.

아이에 대한 사패천주의 애정을 새삼 실감했다.

그런데 그때, 한쪽에서 관서겸이 툭 내뱉듯 말했다.

“금영 소저의 생일도 나흘 후가 아니오. 마침 같은 날이니, 생일상이 섭섭하지는 않겠소.”

“……!”

관서겸의 말에 진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음? 남궁금영 소저의 생일이 우리 수림이와 같았소? 내 따로 알려서 생일상을 보라 전하겠소.”

“감사합니다. 하하, 안 그래도 아버님이 그것 하나 아쉬워하셨는데 말입니다.”

강무련이 남궁금영을 배려하며 모두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때, 진화가 강무련의 팔을 잡았다.

“권마제가 삼부인과 만났던 때가 언제라고 했지요?”

진화의 눈빛이 워낙 진지해서 강무련의 표정도 덩달아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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