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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39)화 (239/425)

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아름다운 풍경 위 진짜 절경(3)

환영 연회를 마치고 처소로 돌아온 진화는 강무련의 말을 곱씹었다.

“이제 팔 년 되었겠군요. 시집을 온 것과 거의 동시에 그놈과의 밀회를 들키고 임신한 몸으로 처소에 감금되었으니.”

서로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 임신을 한 것이 먼저인지, 태금호와의 밀회가 먼저인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수림이 태어난 달을 기준으로 열 달을 거스르면 신방을 치른 첫 달에 임신이 되었다.

태금호와 밀회를 들킨 건 석 달이 지났을 때였지만, 그 이전부터 만나 온 것이 확실했기에 오해를 풀 수 없는 것이다.

삼부인은 ‘자신은 시집오자마자 아이를 가졌고 태금호는 그런 자신을 안타까워하다가 다시 사랑이 싹튼 것이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천주의 자식을 임신했는데 여인을 안타까워했다라…….’

진화는 자신도 모르게 삼부인의 진술에서 사패천주가 가장 분노하는 부분을 집어냈다.

물론 진화에게 사패천주의 분노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연회장에서부터 뭔가를 고심하던 진화의 곁으로 남궁구와 남궁교명, 현오가 다가왔다.

“도련님, 아까부터 뭔가 고심하더니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남궁구의 물음에, 진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뱉었다.

“만약 삼부인의 말이 맞다면…… 어때?”

“삼부인의 말이 맞아? 애는 천주의 아이고, 권마제는 임신을 하고 만났다는 말?”

“에이, 그게 말이 됩니까?”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남궁교명이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대화가 시작되자 팽가 형제와 제갈상, 관서겸도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글쎄요. 상식적으로야 다른 남자의 아이까지 가진, 그것도 스승의 부인이 되어 그 아이까지 가진 여인을 다시 사랑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애초에 상식적인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패천에서 천주의 눈을 피해 불륜을 벌인 사람들인데.”

제갈상의 말에 또 몇몇이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밀회가 발각되고 쫓겨났으니, 그러면 권마제가 이 주변을 맴돈 것도 팔 년째라는 말이잖아. 사패천주가 사지를 찢어 버리겠다고 눈이 벌건데. 그것만으로도 어지간히 미친놈이지.”

“허어, 관음보살도 이겨 먹을 천년 불륜이로군.”

남궁구와 현오가 권마제의 집념에 감탄했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관서겸이 툭 한마디 던졌다.

“천하의 권마제가 도망치면서 그렇게 사랑하는 여인을 버려 뒀다니, 뭔가 달리 원하는 것이 있었던 것 아닌가?”

관서겸의 말에 진화가 눈을 빛냈다.

진화도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무련이 있다지만 태금호의 무위는 단번에 권마제 자리에 오를 정도였어. 순리대로라면 당연히 사패천의 후계가 되었을 자가 스승의 부인과 정분이라니. 그것도 임신까지 한 여자와…… 만약 태금호에게 그 모든 이유를 무시하고 임신한 여자에게 접근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러면 조금 말이 되지 않을까?”

진화가 표정이 진지해지자, 다른 사람들도 달리 생각이 깊어졌다.

“태금호가 처음부터 아이를 노렸을 가능성을 말하는 거야?”

“남자아이. 사패천주의 피를 이은 근골. 게다가 태금호와 사십 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지. 확실히 제물로 고르는 거라면 아이 쪽이 훨씬 유용할 수도 있겠군.”

남궁구과 남궁교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이 모든 가정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남궁금영의 생일은 갑술년 무진월 계미일 신시(申時)가 아닙니까.”

“확실히. 소천주의 말에 따르면 한수림이 태어난 시는 인시(寅時)였지.”

그것이 문제였다.

“차라리 아이가 태금호의 자식이라고 하는 게 더 가능성이 높다.”

“그냥 천년 불륜일 가능성이 더더 높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황으로는 팽가 형제의 말이 맞았다.

한수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태금호와 아무런 연관도 없었고, 어쨌든 지금 태금호와 관련 있는 사람은 남궁금영과 삼부인이었다.

“천륜이든, 천년 불륜이든, 지독하군. 아미타불.”

현오의 말에 진화의 마음에 무겁게 와서 박혔다.

현오가 진화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같은 제물 양육실에서 자란 현오는 진화의 생각을 이해했다.

지독한 사랑 때문에 목숨마저 불사한다는 건,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패천주가 말했지. 자신은 자신이 본 것만 믿는다고. 그리고 태금호의 눈은 언제나 자신의 보물을 향해 있었다고.”

“보물?”

“사패천주의 보물은 삼부인이 아니었어. 사패천주의 보물은 한수림이야. 그런데 왜 태금호는 삼부인이 아니라 한수림을 보고 있었을까?”

진화의 의문에 누구도 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답이라곤 고작.

“천년 사랑이라 그 자식까지 사랑한 건가 보지.”

“제 자식이라고 믿고 있거나.”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답을 내놓았지만, 누구도 완전히 납득하지 못했다.

* * *

사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어둠과 안개가 내려앉은 밤.

바람도 불지 않는 연못 한가운데 잠깐 파동이 일었다.

그리고 감시를 위해 밤에도 불을 끄지 않는 삼부인의 처소에 작게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똑. 똑똑.

잠자리에 들었던 삼부인이 눈을 번쩍 떴다.

“가가.”

-쉿.

바로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

삼부인이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내가 그녀의 옆에 누워 있었다.

삼부인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보고 싶었어요, 가가!’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삼부인이 입 모양으로 태금호에게 제 마음을 전했다.

‘어디 상하신 곳은 없나요? 또 들키면 어쩌려고 오셨어요!’

삼부인이 다친 곳을 확인하려는 듯 태금호의 몸을 만지며 질문을 쏟아 냈다.

그러자 웃음이라고는 모를 듯하던 무뚝뚝한 사내가 미소를 머금고 삼부인을 끌어안았다.

-나도 보고 싶었소. 그대와 아이가 걱정되어 매일매일 이곳을 찾고 싶었소.

‘아아, 가가!’

태금호의 전음을 듣고 삼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태금호의 등을 껴안았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반드시 그대와 아이를 데려갈 것이니.

태금호의 전음에 삼부인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뗐다.

‘안 돼요!’

삼부인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적호단까지 와 있어요, 남궁세가 여자를 데리고. 당신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삼부인이 입 모양과 손짓,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삼부인의 정보에 태금호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적호단? 정의맹의 적호단 말이오?

태금호의 확인에 삼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해진 태금호의 표정에 삼부인이 그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나와 림이는 걱정 말아요. 우린 더 견딜 수 있어요.’

삼부인의 걱정 어린 말에 태금호의 표정이 금방 풀렸다.

-내 걱정 마시오. 적호단이 오는 바람에 오히려 사방이 어수선하더군.

‘그래도……!’

-며칠 뒤 수림이의 생일이 아니오. 사패천주도 그때 연회를 연다지? 내가 와 봐야지. 또 그대 혼자 눈물로 지샐 것이 아니오.

‘가가!’

태금호의 말에 삼부인이 금세 눈물을 쏟아 냈다.

무뚝뚝한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다정한 말은 언제나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고 단단하게 굳혔다.

어떤 역경도 이겨 낼 수 있도록 말이다.

-내 반드시 아이와 당신을 데리고 여길 나갈 것이오. 그리고 우리 셋이서 아이의 생일을 보내게 될 것이오.

‘가가, 당신을 믿어요.’

삼부인이 태금호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삼부인은 간혹 찾아오는 태금호에게 제가 아는 혹은 주변에서 들은 말을 전하고, 태금호는 그녀가 주는 정보를 통해 빈틈을 찾았다.

태금호는 언제나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나갈 거라 약속했고, 삼부인은 그런 태금호를 믿고 팔 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소. 머지않아 우리 세 식구가 함께할 것이오.

‘네, 기다릴게요.’

-내일 또 찾아오겠소.

굳은 약속을 남기고 태금호는 그림자가 지기 전 사라졌다.

* * *

다음 날 강무련이 진화 일행을 찾아왔다.

전날 한 말대로 한수림의 생일 연회 전에 그들과 인사시키기 위해서였다.

“한수림, 이름도 천주님께서 지었소. 우거진 숲처럼 쑥쑥 자라기만 하라고. 큭큭큭, 탑주가 기겁했지만 사실 나도 그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소. 건강하게 쑥쑥 크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 말을 하는 강무련의 입가에 조금 씁쓸한 미소가 달렸다.

그냥 건강하게 자라서 아무것도 되지 마라, 그래서 내가 너를 죽일 필요가 없도록.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이것이 강무련의 진심일 것이었다.

“형—님!”

연못 맞은편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무련을 본 아이가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밝고 순수한 아이지. 사패천 모두가 저 아일 좋아하오.”

“모두가, 말입니까?”

“그렇소. 나도 저 아이를 좋아하오, 단지 사패천을 더 사랑할 뿐.”

강무련이 저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저 아이도 사패천의 일부지. 내가 권마제를 죽이고 싶어 하는 건 저 아이를 위해서요. 권마제의 아들만 아니라면, 내가 저 아이를 살려 줄 수 있으니까.”

강무련이 앞으로 나가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어느새 강무련이 있는 곳까지 달려온 아이가 한달음에 강무련의 품에 안겼다.

“우아! 형님-! 어디 갔었어요? 림이한테 말도 없이! 한참 찾았잖아요!”

“하하하! 녀석. 그새 형님이 보고 싶었더냐?”

“사흘 뒤에 림이 생일이에요. 선물 사 오셨어요?”

“응? 가만, 요 소악마! 림이 어쩌고 존댓말로 잔망을 부리는 걸 보니 이 형님이 아니라 선물을 기다렸구나!”

강무련이 아이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하지만 서로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퍽 우애 좋은 큰형과 막둥이 같은 모습이라, 방금까지 강무련이 한수림의 죽음에 대해 언급했던 것까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하하하하하! 선물 없어도 괜찮아! 대신 그날 림이 뱃놀이시켜 줘야 해! 응? 응? 뱃놀이-!”

“대체 누가 배 타고 칼싸움하는 걸 뱃놀이라고 한다더냐? 천주님이 그건 아직 안 된다고 했잖느냐.”

“아아아, 그래도 형님이 말하면 들어줄 거야! 형님이 아버지 앞에 배 깔고 누워 봐. 응?”

강무련이 한수림을 아낀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듯.

강무련에게 매달려 떼쓰는 한수림의 모습이 무척 익숙하고 아이다워 보였다.

비록 한수림이 하는 말까지 아이답지는 않았지만.

“배 띄우고 돈 자랑 하면 그 누나도 넘어올 거야!”

“누나?”

“응! 어제 진짜진짜 예쁜 누나를 봤어. 돈 자랑 하고 칼싸움 다 이겨서 그 누나 꼬실 거야! ……어? 그 누나다!”

한수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진화를 향했다.

진화는 터질 듯 붉어진 귀를 하고 한수림과 모두의 시선을 피했다.

잠시 뒤.

한수림은 진화가 남자라는 말을 듣고 대차게 울어 버렸다.

하지만 아이답게 한번 “와아앙-!” 울고 나선 또 금세 잊어버린 듯 남궁구 일행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우-아, 더 높이! 높이 높이! 형아들도 대빵 세다! 와아아아!”

한수림은 팽가 형제가 놀아 주자 정신을 못 차리고 즐거워했다.

팽가 형제는 공을 주고받듯 한수림을 공중에서 가뿐하게 주고받고 있었다.

진화 일행도 잠시나마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끝내 아이와 친해지길 거부한 진화는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강무련이 겨우 웃음을 참으며 진화의 곁을 지켰다.

“보기 좋지요? 웃음도 많고 울음도 많고, 천주님을 닮은 게 확실한 것이 벌써 미색도 밝히오. 아이의 말이니 너무 노여워하진 마시오.”

강무련이 웃음을 머금고 진화를 달랬다.

내내 표정이 굳어 있는 진화를 보고 한수림 때문에 불쾌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진화의 시선은 한수림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그 뱃놀이, 들어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수림이의 꼬심에 넘어가 주시게?”

이번만은 진화가 강무련을 노려보았다.

강무련이 금방 손을 들고 항복했다.

“아아, 농담이오, 농담! 하하. 쪼그만 놈이 뱃놀이라니. 다 천주님 때문이오. 여자는 돈과 칼이면 장땡이라고 이상한 걸 가르쳐서.”

“저는 농담이 아닙니다.”

끝까지 진지한 진화의 눈빛에 강무련이 의아한 듯 진화를 보았다.

“사패천주님도, 소천주도 저 아이를 보물이라 말하더군요. 그리고 태금호가 저 아이를 보고 있었다고…… 언제까지 태금호가 나타나기만 기다릴 순 없지 않습니까?”

“……지금 태금호를 유인하자는 말이오?”

그것도 한수림을 이용해서.

뒷말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잔뜩 굳어진 강무련의 표정이 그의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화는 흔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진화는 남궁 이외의 사람들을 배려해 본 적이 없었다.

“태금호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소.”

강무련이 진화를 노려보았다.

불꽃 같은 눈동자에 살기마저 어렸다.

“사패천 안입니다. 무엇이 그리 위험하겠습니까. 약간의 위험 감수로 권마제를 사냥할 수 있다면, 뭐가 더 중요하죠?”

진화의 눈빛이 강무련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흑요석처럼 검은 진화의 눈동자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한 채 숨이 막힐 듯 차디찬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뒤, 강무련이 먼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대야말로 소악마로군. 내게 이런 선택을 하게 하다니.”

강무련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진화 일행과 놀면서 신나게 웃음을 터트리고 있는 한수림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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