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아름다운 풍경 위 진짜 절경(5)
한수림의 생일 연회가 있기 이틀 전.
강무련은 뱃놀이, 아니 이제 온전히 모의 수전이라 불리는 그것을 준비하며 사패천 전체의 방비에 고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화가 강무련에게 물었다.
“태금호는 어떤 자입니까?”
진화의 질문이 의외인 듯 강무련이 고개를 들어 진화를 보았다.
“갑자기 그걸 왜 묻는지 알 수 있겠소?”
강무련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진화의 표정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살피고 있었다.
“소천주께서 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화의 답에 강무련의 눈이 커졌다.
그는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은 듯 놀란 얼굴이었다.
하지만 진화는 내내 태금호에 관한 것이라면 조금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강무련을 보며 궁금해졌다.
마제들이라면 진화도 알 만큼은 알았다.
다만 진화가 궁금한 것은 ‘태금호가 강무련 같은 사내조차 긴장해야 할 정도인가?’ 하는 거였다.
“내가 긴장했다라…… 그럴지도 모르겠군.”
진화의 말한 의미를 모를 리 없는 강무련이 슬쩍 웃었다.
그 모습이 꽤 자조적이었다.
“태금호는 서른도 되지 않아 경지에 오른 천재였소.”
강무련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내겐 아비이자 형제이자 친우였소.”
강무련의 말에 진화가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와 내 사형제들은 그저 같은 스승을 모신 경쟁자일 뿐이었소. 봤다시피 사부가 조금 그래서……. 사실 그것도 수림이가 태어나고 조금 나아진 것이오. 수림이가 태어나기 전의 사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았지. 인정사정없고 거칠기 짝이 없어, 어린 제자의 뼈를 부수고도 눈물을 짓는 제자를 비웃을 수 있는. 사패천 전체가 그러했소. 약한 자가 짓밟히는 게 지극히 당연한 분위기…… 그러나 태금호 그자는 조금 달랐지.”
강무련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걸렸다.
“어린 사제를 안아 일으키고, 도태되는 수하들을 버리지 않았소. 든든한 울타리처럼 모두를 감쌀 수 있는 사람 같았고, 마냥 큰 등을 따르고 싶은 사람이었지. 그자가 사부를 배신했을 때도 모두들 그자를 배신자라 하지 않고 뜨거운 연정을 버리지 못해 발목이 잡힌 것이라 말했으니까. 그자가 수십 명의 사패천 무인을 죽이고 뛰어나갔음에도 말이오.”
강무련이 진화의 눈을 보았다.
투명하리만치 시린 눈이 마치 벽을 세워 놓은 듯한 모습에, 그만 웃음이 새고 말았다.
“하하하, 그대, 지금 내 말에 전혀 관심이 없구려?”
“……송구합니다.”
진화가 강무련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진화가 관심이 있는 건 강무련과 태금호의 시시콜콜한 사연이 아니라, 강무련을 긴장하게 만든 태금호의 무위였다.
“그대는 눈빛이 참 정직하오. 하는 말이나 생각을 보면 우리 천주처럼 냉혈한이나 다름없는데, 눈빛은 그 어떤 정파인들보다 정직하고 곧다니. 그대는 신기한 사람이오.”
“…….”
“하하하! 알겠소, 그대가 원하는 걸 말하지.”
점점 불만스러워지는 진화의 표정을 보며 강무련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금호는 강하오. 불과 서른에 경지를 넘은 그를 보며, 모두가 마흔이 넘으면 천주의 무위를 넘볼 것이라 말했지. 그리고 태금호는 지금 마흔이 넘었소.”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어찌 됩니까?”
“무공, 사실 그게 더 문제요. 제자들 중 유일하게 사부님의 절기인 패천아룡권(敗天牙龍拳)을 익혔소. 패천아룡권은 그 손에 묻힌 피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숙련도가 극명하게 차이가 나오. 상대를 죽이면 죽일수록 혈기가 짙어지기 때문이오.”
“혈기라…….”
진화는 강무련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참 편한 무공이 아닌가.
죽인 만큼 강해질 수 있다니.
“그자는 사패천의 편에서 귀천성과의 전쟁을 치렀고, 지금은 귀천성의 편에서 사패천 무인들을 죽이고 있소. 그자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는지 감히 상상하기 힘들 것이오. 긴장? 그렇소. 긴장하고 있소. 하지만 태금호가 두려워서는 아니요.”
강무련이 강인하고 단호한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내가 고심하는 것은 그저 더 이상 그자의 손에 사패천 무인의 피를 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오.”
“……무례한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권마제의 사냥에 동참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대가 최선을 다해 준다니 마음이 든든하군.”
진화의 말에 강무련이 평소의 그처럼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 강무련을 보며 진화는 내심 고소를 지었다.
‘그자의 손에 얼마나 많은 피가 묻었는지 상상하기 힘들 거라고? 조금 아쉽네. 천뢰제왕검법이 혈기와는 상관없는 무공이라…….’
손에 묻은 피라면 진화도 결코 적지 않았다.
광마제의 손에 죽은 남궁세가 사람보다 진화가 복수를 위해 죽인 귀천성도의 수가 훨씬 많았다.
죽인 숫자로만 승패를 나누었다면 진화가 이겼을 것이었다.
“중요한 건 진짜 적을 죽이는 거지.”
강무련의 집무실을 나오며, 진화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이틀 뒤.
진짜 적을 파악하지 못한 자의 결말은 결코 좋지 못했다.
“금수대주, 감히 그대가 사패천을 배신한 것인가!”
강무련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 * *
모의 수전을 위해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 나하연이 검은 깃발을 장식한 배에 올랐다.
“이번만 양보하는 것이다!”
“헤헤헤, 형아, 남자든 여자든 힘세고 돈 많으면 장땡이래.”
나하연의 으름장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 한수림은 해맑은 얼굴로 진화의 손을 이끌었다.
한수림의 반대쪽 손에는 강무련의 손이 잡혀 있었다.
한수림, 강무련과 함께 진화 일행이 배에 오르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금수대가 마지막으로 배에 올랐다.
가슴에 금색 쌍도끼를 새긴 금수대는 사패천이 자랑하는 난전, 그중에서도 특히 수전에 능한 자들로, 등에는 가슴의 자수와 같은 커다란 도끼를 메고 있었다.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지.”
소처럼 큰 눈망울을 한 금수대주가 배를 먼저 출발시켰다.
거기까진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서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속된 위치로 가는 배의 속도가 강무련의 생각보다 빨랐다.
“금수대주?”
강무련이 의아함을 느꼈을 때는 배가 약속된 위치에서 한참 멀어지고 있었다.
“금수대주, 이게 무슨 짓인가!”
강무련이 금수대주에게 소리쳤다.
그때, 배 안에서 유유히 태금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수대주에게 뭐라 하지 말거라. 그는 그저 내 명에 따른 것뿐이니.”
“태금호!”
강무련의 큰 소리에 한수림이 겁에 질린 얼굴로 진화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강무련의 앞에는, 강무련과 진화 일행 그리고 겁에 질린 한수림을 둘러싸고 금수대 전체가 도끼를 겨누고 있었다.
“감히 사패천을 배신하다니!”
강무련이 금수대를 향해 이를 갈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강무련과 달리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 나하연은 냉정한 눈으로 상황을 살폈다.
금수대의 숫자는 오십 명에서 강무련과 한수림을 포함한 진화 일행의 수만큼을 뺀 마흔넷.
단지 죽이기만 하면 된다면 얼마나 간단한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화는 이번만큼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파지지직----!
진화의 손에서 번뜩이는 뇌전을 보며 태금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형아?”
한수림이 갑자기 저를 들어 올린 진화를 불렀다.
그러자 진화가 한수림의 고개를 뒤로 돌리고 그의 등을 토닥였다.
“소공자, 상황이 공교롭게 되었으니, 잠시 내게 안겨 있도록.”
“응!”
한수림이 진화의 목을 꼭 껴안았다.
더 이상 한수림의 등을 토닥이지 않는 진화의 손에는 다시 뇌전이 번뜩였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이제 좀 보기가 좋군.”
진화가 태금호를 향해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 * *
“남궁 공자, 대체 무슨 짓을……!”
강무련이 경악에 찬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태금호와 금수대는 물론, 이번에는 남궁구와 남궁교명, 나하연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쉿.’
진화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강무련의 말문을 막았다.
그리고 저를 향해 살기를 뿜고 있는 붉은 머리의 사내를 보았다.
사패천주처럼 크고 우람한 체격.
붉은 갈기같이 거친 머리칼을 질끈 묶고 신비로운 붉은 눈을 드러내고 있는 태금호는 야생을 누비는 한혈마처럼 강인한 눈으로 진화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태금호의 주변으로 붉디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게 혈기인가?’
맹수처럼 날뛰는 기운.
조절하지 않는 것인지 조절되지 않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기운이 마치 스스로 살아 있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공평하게 한 가지씩 내놓을까.”
“……무슨 말이지?”
뜬금없는 진화의 말에 태금호가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나는 소공자를 안전하게 안에 데려다 놓지. 대신 당신은 내 질문 하나에 답을 해 주는 거다.”
“무슨 수작이냐!”
“수작이라…….”
불신으로 가득 찬 태금호의 말에 진화가 슬쩍 웃음을 흘렸다.
미묘하고 야릇한 미소와 함께, 진화의 손이 다시 번뜩였다.
“무슨 짓이야!”
진화의 뇌전이 한수림의 등에 가까이 다가가자, 태금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 평화로운 권유를 수작이라 부르기에, 진짜 수작처럼 해 주었지. 어쩌겠나, 질문에 답을 하겠나?”
“크읏, 내가 진짜 답을 알려 줄 거라 생각하나?”
태금호가 잔뜩 경계심이 오른 늑대처럼 이를 드러냈다.
진화는 그런 태금호를 가소롭다는 듯 보며 손을 휘둘렀다.
진화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뇌전이 강물에서 번뜩였다.
파파파파팟----!
물고기들이 몸서리치다 강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진화의 손이 다시 한수림의 등으로 갔다.
이번에는 뇌전을 뿜지 않고 가만히 토닥이기만 하는데, 모두가 불신에 가득 찬 눈으로 그 손을 보고 있었다.
“내 신뢰를 저버릴 텐가?”
천역덕스럽게 태금호를 협박하는 모습에, 강무련은 아예 넋이 빠진 듯했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한수림을 가지고 악당처럼 협박하는 정파의 후기지수.
심지어 그 협박이 먹히고 있었다.
이걸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정작 문제는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진화의 협박이 그들 입장에선 전혀 손해 볼 것이 없었던 것이다.
“네놈…… 으드득! 좋아, 받아들이지. 어서 아이를 안에 데려다 놓아라!”
태금호가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며 소리쳤다.
“흥!”
진화가 코웃음을 치며 한수림을 강무련의 품에 안겼다.
한수림은 수풀에 숨은 새끼 맹수처럼 숨소리를 죽이고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왜, 왜?”
“소공자를 안전한 안쪽에 데려다 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그, 그러겠소.”
왜라니, 정말 바보 같은 물음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상황이 여전히 얼떨떨했던 터라, 강무련은 한수림을 안고 배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불안한 듯 두어 번 진화를 돌아보았다.
그의 불안은 곧 사실로 드러났다.
강무련이 한수림을 데리고 선창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진화와 그 일행이 앞으로 튀어 나갔기 때문이다.
-구, 내려가서 노 잡고 있는 놈들 전부 죽여 버려.
-충.
남궁구가 사나운 얼굴로 재빨리 배 아래로 내려갔다.
* * *
쉐에에에엑---!
진화의 손이 검을 뽑았다.
동시에 새파란 번개가 선미를 향해 뻗어 나갔다.
파파파파팟---!
“우앗!”
“억!”
도끼를 들고 있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도끼를 떨어뜨렸다.
찰나의 실수.
잠깐의 당황.
그 대가는 곧바로 살갗 깊숙이 혈관을 베고 지나는 남궁교명의 검과 근육을 부숴 놓는 나하연의 용수권이었다.
“내, 내 팔-! 아악!”
“크어어억!”
남궁교명과 나하연은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곁에 들어오는 적들에게 치명상을 남겼다.
그리고 다른 쪽에선…….
휘익!
카---앙!
진화의 검이 날카로운 검명을 울었다.
비호처럼 달려온 권마제 태금호의 주먹이 진화의 검을 때렸기 때문이다.
검을 쥔 손끝까지 떨림이 전달된 정도로 포악한 공격과 함께, 태금호가 새빨갛다 못해 활활 불에 타는 듯한 눈으로 진화를 노려보았다.
“이 악마 같은 새끼! 각오는 했겠지!”
금방 이를 드러내고 위협하는 태금호를 보며 진화가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왜 한수림이었지?”
“무슨 소리야!”
채----앵!
날카로운 칼날과 태금호의 주먹이 서로를 밀어내며 떨어졌다.
하지만 곧 다시 맹렬하게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쉐에에엑---!
캉! 캉! 카-앙!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성.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붉어지는 권마제의 주먹을 보며, 진화는 강무련의 말을 떠올렸다.
‘혈기. 내공의 힘을 폭발시키는 기운. 아니, 성질인가?’
태금호의 혈기에 진화가 몸을 회전하며 그의 주먹을 흘려보냈다.
힘에서 밀린 것이 아니었다.
강한 자였지만 피할 이유도 없었다.
펄떡펄떡 살아서 날뛰어 봤자 손안에 잡힌 물고기가 무서울 리 없었다.
면전에서 파닥거리는 새파란 마제 따위 이전 생에 부딪혔던 사악하고 농익은 광마제와 귀천성의 마두들에 비하자면 가소로울 뿐이었다.
파지지지지직---!
“크읏!”
태금호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진화의 왼손이 태금호의 가슴을 때린 것이다.
아니 그 전에, 진화가 몸을 비트는 척 태금호를 속였다.
너른 가슴에서 하얀 뇌전이 번뜩이다 곧 일렁이는 혈기에 사라졌다.
‘내공은 비슷한 수준인가.’
진화가 냉정한 눈으로 태금호를 살폈다.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은 아니나, 일장에 최선의 힘을 담아 때린 공격.
진화는 반발하는 내공에 한 걸음 물러났지만 태금호는 다소 흔들렸을지언정 그 자리에서 버텨 냈다.
하지만 진화가 힘에 밀려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음 공격을 위해 거리를 벌린 것뿐.
이번엔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지만 태금호는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진화의 검격으로 들어왔다.
쉐에에엑---!
쉐익! 쉭! 쉭! 쉐에엑!
단 한 걸음을 계기로 진화가 매섭게 움직였다.
섬전십삼검뢰 붕격우산(崩格雨山)-.
천뢰제왕신공과 달리 섬전십삼검뢰는 단번에 폭발적인 힘을 내는 대신 충격이 쌓고 쌓이는 쾌검의 연속기였다.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가 산을 무너뜨리듯 매서운 검격이 태금호를 무너뜨릴 듯 쏟아졌다.
쉐에엑!
캉! 캉! 캉!
“크읏!”
정신없이 퍼붓는 연속기에 태금호가 다급하게 뒷걸음질 치며 막아 냈다.
그 과정에 진화의 검이 칼바람처럼 태금호의 팔에 무수히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하지만 조금 당황했기로서니 태금호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꾸-욱.
태금호의 다리에 힘이 실리고, 반대쪽 주먹에 내공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온몸을 쥐어짜듯 내지른 주먹과 함께 크게 포효했다.
“크아아아-!”
카---앙!
태금호의 주먹이 결국 진화의 검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뒤로 물러난 열 걸음과 다시 앞으로 날아든 일곱 걸음.
세 걸음이었다.
태금호는 딱 세 걸음만큼 진화에게 수 싸움에서 밀린 것이다.
태금호와 숨소리까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진화가 기다렸다는 듯 태금호를 향해 물었다.
“아직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왜 아이를 노렸지?”
“수림이는 나와 영영의 결실…….”
“그런 개소리를 듣자는 게 아니야. 질문이 어려운가?”
진화가 태금호의 대답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
사람들이 떠드는 너저분한 천년 불륜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다시 묻지. 왜 신시가 아니고 인시였지?”
“……!”
태금호의 얼굴이 다시 경악으로 물들었다.
파지직-.
진화의 뇌전이 패룡기로 둘러싸인 팔을 태워 버릴 듯 답을 다그쳤다.
처음의 협박 같은 약속.
그것을 상기한 태금호가 사납게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해가 바뀌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