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247)화 (247/425)

남궁마제

엿볼 진(診) 불행 화(禍) : 운명의 시작(2)

모두가 자신만의 우주를 가진다.

그것은 만물이 가지는 우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너는 비범하다. 특별한 것이지!”

“그래. 나는 이상(異常)한 게 아니라 비범(非凡)한 거야.”

아니었다.

나는 평범(平凡)한 개인이었다.

나는 유일한 우주를 가진 개인(個人)이었을 뿐이었다.

모두가 특별하기에 평범하다는 것.

평범함과 특별함은 인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콰과광---쾅!

진화의 속이 환희로 들끓었다.

그의 몸이 천지가 개벽하듯 요동쳤다.

그럴 수밖에.

이제까지 진화의 안을 가득 채우던 개념과 논리, 자아가 모두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지지직---!

단전의 내공이 온몸을 유영하며 곳곳에 퍼져 있던 혼돈기를 깨웠다.

혼돈기가 천뢰제왕신공과 싸우듯 부딪혔다.

마치 혼돈기가 자신의 특별함을 내세워 투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화는 이전에 제 속에 있는 혼돈기가 순리를 거스른 부조화스러운 것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그것이 다른 기운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 모든 기운이 그러했다.

파파파---팟!

천주산 개벽지.

남궁세가에서 직계들의 은밀한 수행을 위해 찾아내고 세가의 모든 비법을 쏟아부은 천혜의 비지.

그곳에 소가주인 남궁진휘나 지금 세가에서 남궁경에게 얻어맞고, 아니 가르침을 구하고 있을 남궁진혜보다 먼저, 양자 출신인 남궁진화가 들어 있었다.

개벽지는 천주산의 기운이 가장 충만하게 모여드는 중심부로, 자격 있는 자들의 깨달음을 돕기 위한 곳이었다.

제왕검과 남궁가주는 진화가 그 자격을 갖추었다고 인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는 대체 뭘 넘어서고 있는 것이냐.”

개벽지의 주변을 에워싸고 호법을 서고 있는 남궁호명은 푸른 불꽃으로 둘러싸인 제자를 경악을 넘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제왕검과의 대련 이후, 진화는 사흘 밤낮 동안 저 푸른 불꽃 속에 있었다.

푸른 불꽃은 천뢰제왕신공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기였다.

진화는 마치 구멍 난 항아리에서 물이 빠지듯 급속도로 천주산 전체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파---팟!

“저런……!”

남궁호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흘째 새벽이 밝기 전이었다.

이제 서서히 진화가 깨어나도 모자랄 판국에, 진화를 둘러싼 푸른 불꽃으로 뇌전이 번뜩거리는 것이 아닌가.

혹, 일이 잘못된 건가?

과유불급이라 했는데 주화입마라도 빠지면 어쩌지?

지금 당장 진화를 깨우면 더 위험해지는데……!

남궁호명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진화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대로 개벽지 절벽 위로 솟구쳐 올랐다.

“진화야-! 이런 망할!”

남궁호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진화의 뒤를 다급하게 쫓았다.

* * *

내공심법은 단지 기(氣)를 머금는 수단이었다.

혼돈기는 진화에게 머무는 특별함일 뿐.

세상의 모든 기운이 다르지 않았다.

파---팟!

새롭게 눈을 뜬 진화의 시선에 천주산에 섞여든 기운들이 감지되었다.

남궁세가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머물고 있는 기운들.

‘감히……!’

진화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곧바로 남궁세가의 영역으로 들어온 침입자들을 찾아 나섰다.

탓. 탓. 탓. 탓.

나뭇가지를 스치듯 밟고 공중을 나는 듯 달렸다.

진화는 어느새 천주산 자락의 끝에 도착했다.

하늘과 맞닿은 듯 높은 나무의 끝에 서서, 진화의 눈이 아래를 향했다.

스스스슷---!

흑의에 복면을 쓴 무리가 깊은 어둠을 헤치며 숲을 달리고 있었다.

눈에 익은 자들이었다.

‘교성흑오대.’

바위에 찍혀 있는 발가락 세 개, 흑조보의 흔적이 진화의 시야에 들어왔다.

삐익!

앞서 달리던 교성흑오대원 하나가 뒤에 있던 자들을 멈춰 세웠다.

앞에 있던 자의 손짓에 따라 교성흑오대가 흩어졌다.

휘이이-잉.

숲의 끝에서 휘돌고 있던 기운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진화는 천주산이 남궁세가의 북쪽 방어벽이라 말하던 어른들의 말이 이제 이해가 되었다.

천주산 전체에 청림에 있던 기묘한 진법이 펼쳐져, 침입자들의 등장과 함께 이질적인 바람이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남궁세가의 안배를 알게 된 진화가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진화는 조용히 교성흑오대가 뭘 하는지 지켜보았다.

쒜에에엑-----!

곳곳에서 공기가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반짝였다.

진화는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가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현홍사를 보며 눈빛을 빛냈다.

진화는 이전에 숭산에서 저러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갈가리 찢긴 매화단원들의 시체가 걸려 있던 그것.

저들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현홍사를 나뭇가지 곳곳에 걸어서 짐승을 사냥하듯 남궁세가 무사들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는 것이었다.

‘감히…… 짐승처럼 죽는 것은 네놈들이 될 것이다!’

진화의 눈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교성흑오대의 의도를 안 이상, 진화는 망설임 없이 땅으로 내려섰다.

조용히, 깃털 하나 닿은 흔적 없이 교성흑오대원의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

번-쩍.

순식간에, 비명도 없이 교성흑오대원이 진화의 팔 위로 쓰러졌다.

그가 쥐고 있던 현홍사는 이제 진화의 손에 쥐어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교성흑오대원이 고개를 돌린 순간. 진화가 현홍사를 쥐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양손에 있던 현홍사를 휘둘렀다.

휘이이익----!

진화를 중심으로 숲으로 퍼진 현홍사가 춤을 추듯 움직였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현홍사의 모습이 마치 달무리가 내려앉은 듯 아름다웠다.

파, 팟!

퍼-엉.

천뢰제왕검법 월명무전(月明舞電)와 함께 반짝이던 빛무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화의 기운을 견디지 못한 현홍사가 하얀 재가 되어 날리지 않았다면 그저 아름다운 환상이라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진화야……!”

언제 도착했는지, 남궁호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진화를 불렀다.

진화의 몸엔 아직 푸른 정기가 다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안개와 어둠 속에서, 홀로 푸르게 빛나는 진화의 모습은 마치 달빛이 인간이 되어 내려온 듯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바닥에 수십 명의 흑의 복면인들이 소리도 없이 죽어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들은 대체……!”

“교성흑오대입니다, 스승님. 놈들이 세가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노릴 만한 게 너무 많아서 뭘 노릴지 모르겠어요. 어림도 없다는 걸 알면서 왜 여기에 함정을 만들고 있었을까요?”

진화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허어!”

사흘이 넘도록 심상 속에 있던 녀석이 깨달음에서 깨어나자마자 소리도, 기척도 없이 수십 명을 죽여 놓고, 어릴 적처럼 순진유구(純眞有垢)한 얼굴을 하고 제게 묻고 있었다.

남궁호명은 그저 기가 막혀서 웃고 말았다.

녀석은 알까.

백 척이 넘는 절벽을 단번에 뛰어오르고, 하늘을 달리는 듯 숲을 달린 것을.

혼현마제의 독문무기에 천뢰기를 실어 천뢰제왕검을 펼친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은 것은 남궁호명이 훨씬 많았지만, 남궁호명은 깨달음에 대해 묻는 대신 다른 말을 하고 말았다.

“입술이나 집어넣어, 인마.”

진화는 어릴 적부터 심사가 꼬이면 입술을 불퉁 내미는 버릇이 있었다.

* * *

사패천.

돌아 나오는 강을 끼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사파의 성은 여전히 활기찬 모습이었다.

“쓰불! 덤벼! 이 고추 대가리 같은 새끼야!”

“뭐? 고추 대가리? 내가 고추 대가리면 넌 씨 바른 수박이냐!”

“뭐야? 씨를 발라? 이 새끼, 너 오늘 죽어 봐라!”

“누가 할 소리!”

챙--! 챙!

“와아아아! 붙었다!”

사랑탑 한쪽엔 여전히 태금호와 삼부인이 시체가 걸려 있어, 그 난리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사파 무인들의 신경은 온통 사랑탑 앞에 벌어진 싸움을 향해 있었다.

“이번에는 누구야?”

“호방도 진가와 사곡검 자공이야!”

“오, 사곡검이 삼 층을 오르려는 건가?”

“에이, 호방도가 호락호락 길을 내주겠어?”

내기판이 벌어지는 건 금방이었다.

요즘 들어서 사랑탑 앞에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결투전이 벌어졌다.

권마제의 죽음도 죽음이었지만 금수대가 축출된 후로 그 자리를 노리는 사파 무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일이 터지기 전보다 훨씬 강한 무인들과 화려한 무공, 피가 끓은 결투가 잦아진 모습이, 사패천이 전성기를 모습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때, 사랑탑 안에서 촐랑촐랑 아이 하나가 튀어나왔다.

싸움판을 구경하고 싶은지 순식간에 어른들 사이로 뛰어들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한수림과, 그런 한수림을 쫓아다니는 것만도 힘겨워 보이는 하녀 하나.

싸움판을 구경하던 사람들 속에 있던 사내가 그들을 발견하고 조용히 움직였다.

‘너무 쉬워서 황당할 정도군. 그 사달이 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외부인도 막지 않고 애도 혼자 다니게 해?’

수오가 기가 찬 듯 입꼬리를 비틀었다.

사패천의 안일함이 제게 나쁠 건 없었기 때문이다.

“친자식인지 모를 아이를 데려오려다 권마제가 죽었다. 생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이의 어미뿐이었는데 그조차도 죽었지 않느냐. 가능성은 없애는 것이 좋겠지.”

혼현마제의 말을 떠올리며 수오의 눈빛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이의 생시는 당시 출산을 도운 하녀에게서 얻은 것이었다.

바로 저기, 아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하녀 말이다.

사패천주가 아이의 사주를 점쳤다고 했으니 의심할 여지도 없는 것이었다.

그것을 혼현마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죽여야 한다는 말이지, 사패천주의 자식을?’

처음 수오는 혼현마제가 저를 죽이려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그의 손에 쥐어진 극독이 증거였다.

무색무취에, 먹든, 만지든,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극독이 흔할 리 없었다.

이런 극독이라면 사패천주의 자식이 아니라 사패천주 본인을 독살하다고 해도 시도해 볼 만했다.

그래서 더 의심스러워진 것이다.

‘이런 극독을 동원해서라도 이 아이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나?’

수오가 아이를 보았다.

그의 예감이 스승 혼현마제에게 불리하고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제게도 불리할 것 같진 않다는 것이었다.

“공자님, 여기요, 여기!”

“알았어!”

하녀가 방법을 달리했는지, 제 쪽에서 한수림을 불렀다.

한수림은 하녀가 제법 좋은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사패천 무인들의 헤집고 그녀 쪽으로 왔다.

“안녕, 소공자님, 자리를 조금 내줄까?”

수오가 제 옆자리까지 다가온 한수림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

한수림이 멀뚱멀뚱한 눈으로 수오를 보았다.

“왜? 여기 자리에 온 것 아니니?”

하얀 얼굴에 순하게 처진 눈.

선한 미소를 짓는 소년을 보며 한수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즘은 이 몸을 노리는 납치범으로 이런 샌님도 쓰는 거야?”

“뭐, 뭐?”

건방진 비웃음을 흘리며 되묻는 말에, 수오가 당황하고 말았다.

한수림은 그런 수오의 반응에 오히려 더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이봐, 이봐, 샌님같이 생겨서 딱 이용하기 좋게 보이더니.”

“저기, 애야.”

“봐요, 형. 아직 나이도 어린데 이렇게 일 처리가 서투르면 나중에 성공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눈치가 있으면 주변 좀 돌아봐. 여기 아저씨 중에 형처럼 호구같이 생긴 사람이 있나. 척 봐도 수상하잖아.”

“……!”

한수림의 말에 수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한수림이 손가락을 흔들며 말했다.

“태금호인지 나발인지 때문에 예쁜 형아도 떠났는데, 형도 역적질하려고 나한테 붙는 거야? 그런 인간이 한둘이어야지. 쯧쯧쯧, 아직 어린데 인생 종치지 말고 가 봐. 호구 같아서 불쌍하니까 내가 인심 써서 한번 봐줄게.”

이제까지 그렇게 접근한 권마제의 일파가 꽤 있었는지, 충고하는 한수림의 모습이 퍽 익숙해 보였다.

되바라진 손가락이 사랑탑 구석에 아무렇게 쌓여 있는 사람의 머리통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쩐지 사패천주가 한수림을 홀로 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들과 수오는 달랐다.

“하하하, 내가 그렇게 호구같이 생겼어?”

“엉.”

“이런.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럼 못써. 내가 상처받을 수 있잖아.”

“나 참, 형, 바보야? 여기 사패천이야. 뭘 바다는 고…… 어?”

한수림이 놀란 눈으로 수오를 보았다.

점점…… 한수림의 얼굴이 굳어 가고, 동그랗게 커진 눈이 빛을 잃어 갔다.

뒤로 넘어가는 한수림의 몸을 뒤에 있던 하녀가 자연스럽게 안아 들었다.

“조심해야지. 내가 복수할 수도 있잖아.”

수오가 창백하게 굳은 한수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잠시 후.

“승자는 사곡검 자공이다!”

“와아아아--!”

싸움판에 결론이 나고 사람들이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꺄---아! 공자님!”

사람들의 함성을 뚫고 한수림을 안아 든 하녀의 비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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