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엿볼 진(診) 불행 화(禍) : 운명의 시작(4)
“읏! ……흐읍!”
남궁진혜가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대로 힘을 풀어 버렸다.
남궁진혜의 입장에선 안간힘을 써서 침상에서 다섯 치 정도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누운 것 같았지만, 사실 그녀는 머리만 살짝 들었다 다시 누웠을 뿐이었다.
자고 일어나서 이런 격통을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온몸을 골고루 두들겨 맞은 듯한 고통.
게다가 무공을 처음 배울 때 이후로는 느껴 본 적 없었던 피곤함도 몰려들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얼마나 맞았더라.
반나절 정도는 제대로 싸운 것 같았는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없었다.
“맞다가 맞다가 눈이 돌아갔던 것 같은데. 숙부가 열받아서 기절한 뒤에도 쥐어 팼나?”
남궁진혜가 누워서 진기를 돌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 침상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걷혔다.
“제왕무적단주님이 들으면 무척 억울해하실 소리네요.”
“쩡미야, 아으으으.”
정미는 어릴 적부터 친구처럼, 자매처럼 남궁진혜를 보살핀 하녀였다.
정미의 얼굴을 보자 남궁진혜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혹시 나 죽었냐?”
“유감스럽게도 살아 계십니다.”
어릴 적부터 남궁진혜를 보아 온 정미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가씬 눈 돌아간 것도 모르고 제왕무적단주님과 사흘 밤낮을 대련하셨어요. 그러다가 아가씨 이렇게 되시고 가주님이 제왕무적단주님 멱살까지 잡으셨으니…….”
“푸하! 우리 아부지, 그래도 귀한 딸내미가 다쳐서 마음 아프셨나 보네.”
남궁진혜가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정미가 잠시 멈칫했다.
지난밤, 반으로 접혀서 남궁경에게 들려 오던 남궁진혜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땐 다들 큰 사달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모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 남궁진혜를 보며 굳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귀한 줄 아시면 좀 조심하세요. 앞으로는 어음 말고 정상적인 전서도 좀 보내시고요.”
“하하하, 그럴까? 난 그렇게 서운해하실 줄은 몰랐지.”
정미의 속도 모르고 남궁진혜가 푼수처럼 웃어 댔다.
괜히 죄책감이 밀려든 정미가 억지로 남궁진혜를 일으켰다.
“으악! 살살해. 나 부상자라고!”
“괜찮아요. 의원이 짐승 같은 회복력이라 까딱없을 거라고 했어요.”
그 주인에 그 하녀라고.
정미는 남궁진혜를 잘 알았다.
“아, 허리가 굳어서 당분간 힘쓰기 불편하실 거라긴 했어요. 호호호! 그 소리 듣고 가모님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자자, 청담포목에서 좋은 비단 와서 옷 지어 놨어요. 오랜만에 꾸며 보자고요.”
“악! 살살해! 하지 마! 아, 젠장! 너 꺼져!”
정미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남궁진혜를 일으켰다.
잠시 후엔 가모 하후민까지 들이닥쳐 남궁진혜를 마음껏 단장했다.
툭.
젓가락이 떨어져 내렸다.
놀란 팽치가 급히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데, 누군가 스윽- 새 젓가락을 주었다.
“고, 고맙……소.”
팽치는 뭔가 다 안다는 눈빛을 한 노인에게 떨떠름한 얼굴로 인사했다.
식탁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흐뭇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대체 내가 왜 여기에…….’
팽치는 제가 왜 남궁세가 직계들의 아침 식사에 끼어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사이, 팽치의 옆으로 남궁진혜가 앉았다.
순간 코끝에 처음 맡아 보는 꽃향기가 밀려들었다.
‘이런 씨!’
놀란 팽치가 남궁진혜를 노려보았다.
“왜, 왜요?”
“……아무것도 아니야.”
가까이서 보니 곱게 화장까지 했다.
대체 남궁진혜를 잡아다 어떻게 한 것인지.
단복 소매를 찢어 팔근육을 드러내고 들소처럼 날뛰던 남궁진혜만 알던 팽치는 뭔가에 단단히 홀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자꾸 옆에서 꽃향기를 풍기는 남궁진혜를 힐끗거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
눈이 마주친 남궁진혜가 이상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송아지처럼 크고 까만 눈.
남궁세가 특유의 짙은 이목구비에 시원한 입매, 산천을 뛰어다니며 곱게 탄 피부는 평소처럼 남궁진혜 특유의 기분 좋은 건강함이 느껴졌다.
다만 양가 규수처럼 곱게 땋아서 늘어뜨린 머리에 하늘하늘한 옷차림, 가는 허리만 조여 여성미를 한껏 드러낸 남궁진혜는…….
오싹.
소름이 돋았다.
주변을 보자, 모든 남궁들이 흐뭇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새까만 흑요석 같은 눈 하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복잡했다.
“누님, 불편하시면 제가 도와드릴까요?”
“우리 진화, 누님 식사 시중들어 주는 거야? 다치는 게 꼭 나쁘진 않구나!”
얌전한 사고뭉치인 남궁진화가 애써서 남궁진혜의 그릇 위에 고기를 올리고, 남궁진혜는 평소처럼 남궁진화를 끌어안고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다 큰 남동생을 뭐 저렇게 끌어안는 건지.
못마땅하게 쳐다보는데 또다시 시선이 느껴졌다.
가모 하후민이 그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아니, 그게…….”
당황한 팽치가 뭐라 말을 하려는데, 가모 하후민이 더 빨랐다.
“호호호, 많이 들어요. 아침에 이이가 직접 닭을 잡았답니다.”
“닭, 말입니까?”
“푹 고았어요. 사위.”
“네?”
“많이 들게. 오늘도 진수성찬이네. 자네 덕에 닭요리가 많아. 하하하하!”
뭔가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었는데.
팽치는 마치 요괴 소굴에 끌려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의 접시 위엔 이미 큼지막한 닭 한 마리가 놓여 있었으니.
‘……!’
닭의 날개가 없었다.
팽치는 가모 하후민이 여전히 흐뭇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는 것을 느끼며 마치 생사 대전을 앞둔 듯 심장이 떨려 왔다.
‘나가야 해!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해!’
팽치는 하루라도 빨리 남궁세가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적호단의 휴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적호단이 떠나기 전.
남궁가주의 집무실에 모여 이동 경로를 의논했다.
남궁세가 본가가 있는 잠삼현에서 정의맹이 있는 양청현까지, 육로로는 최선을 다해 달려도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멀고 험한 거리라 적호단은 하는 수 없이 수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놈들의 함정이 있을 것이네.”
“예? 무슨 정보라도 얻으신 것입니까?”
놀란 적호단주의 물음에 남궁가주가 흐뭇하게 웃으며 진화를 보았다.
적호단주가 대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도끼눈으로 진화를 노려보았다.
“너, 또 무슨 사고를 친 거냐!”
적호단주가 진화를 닦달하려는데, 스-윽, 두툼한 손 하나가 진화의 시선을 가렸다.
“쓰-읍.”
“…….”
팽치는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한테 쫄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남궁세가에 들어서는 마음껏 큰소리 한번 못 낸 느낌이었다.
“진화가 가문의 수련 중 교성흑오대 놈들을 발견했네. 남궁세가에 대한 공격인가 싶어서 처리를 하긴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아 심문해 보니, 역시 자네들을 노린 것이더군.”
“적호단을요?”
“정확히는 역천비록이겠지.”
남궁가주의 말에 적호단주 팽치가 입을 다물었다.
남궁세가에 있으면서 조금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바짝 조여 오는 듯했다.
“있던 놈들은 말끔히 처리했네. 문제는 거기에 없는 놈들이지.”
“습격을 예상하시는 겁니까?”
“습격? 하하하하, 이 사람 농담도.”
적호단주의 물음에 남궁가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대번에 칼날같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적호단주를 보았다.
“역천마제나 다른 마제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놈들의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우린 감히 겁 없이 남궁세가의 영역에 들어온 놈들을 사냥하려는 거네.”
남궁가주의 말에 적호단주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중원 무림에 귀천성을 눈앞에 두고 이처럼 광오한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던가.
‘사패천주나 제왕검…… 하지만 이건 제왕검이 아니라 남궁세가 자체가 가진 자신감이다.’
적호단주의 머릿속에 남궁세가 본가에 들어온 소리마제가 하룻밤 사이에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때도 제왕검이 나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적호단주가 조심스럽게 묻자, 두 형제가 나란히 웃었다.
“사냥을 어찌하겠나?”
“찾아야지. 그리고 죽여야지.”
간단한 말 한마디에는 승자의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망나니처럼 불물 가리지 않고 전투에 뛰어드는 적호단주조차 한 번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꾸욱.
적호단주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부러움, 질투, 경외. 하지만 그보다 속에서 화가 끓어올랐다.
그런 적호단주의 모습을 보며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조금 기다려 주었다.
남궁경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혔고, 남궁가주는 덤덤했다.
호승심 넘치는 적호단주의 모습이 남궁경에게는 흡족했고, 남궁가주에게는 아직 부족한 듯했다.
진화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그들을 지켜보았다.
“문제는 말이야,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거지. 대충 유추는 해 볼 수 있지만 말이야.”
“그게 가능합니까?”
적호단주가 놀란 듯 물었다.
툭 찌르면 톡 나오는 단순한 반응이 남궁진혜와 많이 닮았다.
“양주 땅 끄트머리에 들자마자 진화에게 당했으니, 아쉽게도 양주 땅으로는 다시 들어오진 않을 걸세. 문제가 바로 그것이지. 양주 밖으로는 남궁세가 무단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남궁가주가 말을 멈추고 적호단주를 보았다.
마치 적호단주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하여, 적호단주는 일부러 더 눈에 힘을 주었다.
남궁가주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적호단의 이동 경로가 어찌 될지 모르니 대충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길목을 찾겠지. 육로와 수로, 어느 곳을 택하든 이 세 지점은 지나야 하거든.”
그러면서 남궁가주가 지도에서 어떤 곳들을 가리켰다.
달소항과 남양관 그리고 여남현.
육로를 택하든 수로를 택하든, 길이 모여든 곳이었다.
적호단주가 긴장된 얼굴로 지도의 세 곳을 보았다.
적호단주가 지도에 집중하며 주변 지형이나 전투 방식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그때.
남궁가주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사패천에서 정의맹으로 움직이고 있네.”
“예?”
적호단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사패천이 움직인 지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은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한수림이 귀천성 놈들의 독에 당했다는군. 사패천에는 의선문의 도움을 얻길 원하고.”
“한수림이 말입니까?”
남궁가주의 말에 적호단주 팽치가 크게 놀랐다.
권마제의 마수에서 한수림을 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귀천성에서 한수림의 암살을 시도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사패천도 눈 뜨고 당한 일이었다.
“귀천성에서 한수림을 노릴 이유가 있습니까? 아, 귀천성에도 누군가 한수림이 권마제의 진짜 제물인 것을……!”
“눈치챈 것이지. 이미 알고 있었거나. 어쨌든 사패천에 다시 빼내 올 수는 없으니, 아예 죽이기로 작정을 한 것이고.”
잔망스럽고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 적호단주는 금방 냉정해질 수 없었지만, 남궁가주는 달랐다.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 남궁가주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남궁세가의 정보원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소천주 강무련이 직접 한수림을 데리고 움직이고 있네. 그들도 이곳, 남양관과 여남현을 지나겠지.”
“그렇다면?”
“한수림을 확실하게 처리하려는 놈들과 자네들이 가진 역천비록을 노리는 놈들이 함께 움직일 수도 있다는 말일세.”
“아!”
남궁가주의 말에 적호단주가 탄성을 뱉었다.
사패천 소천주가 지키는 사패천주의 아들과 적호단이 지키는 역천비록.
이 둘을 모두 노린다면 그들도 적잖이 준비를 해 올 것이 분명했다.
“괜찮겠나?”
남궁가주가 또다시 적호단주의 반응을 살피듯 물었다.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듯한 눈빛.
적호단주 팽치는 저도 모르게 냉정해졌다.
“따로따로 노릴 가능성은 없습니까? 놈들에게 기회이긴 하지만, 놈들 또한 위험부담이 큰 일입니다.”
적호단주의 물음에 남궁가주가 되레 놀란 눈을 떴다.
그리고 조금 의외인 듯 적호단주를 보았다.
“음…….”
남궁가주가 슬쩍 신음을 내자 옆에서 남궁경이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적호단주가 의아한 듯 그들을 보았지만, 남궁가주는 입을 굳게 닫았다.
대신 남궁경이 씨-익 웃으며 이를 드러냈다.
“아까 말했지 않은가. 사냥이라고. 사냥감을 몰아야지.”
“사패천에 이미 전갈을 보내 두었네. 달소항을 지나고 나면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일세.”
“아! 처음부터 사패천과 우리가 함께 움직이면 놈들은 선택지가 없겠군요!”
적호단주가 크게 감탄했다.
하지만 이내 미심쩍은 듯 물었다.
“정의맹에서는 아는 사실입니까?”
적호단은 정의맹의 명 없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적호단주의 예리한 질문에 남궁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주와 사패천 영역의 일은 남궁세가와 사패천의 협력만으로 충분하지. 아마 전갈을 받고 나면 정의맹에서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네.”
허락받지 않은 것인가.
남궁가주의 여유로운 미소에 적호단주는 영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많든 적든, 숨어 있는 놈들은 모조리 죽이고 가면 되겠지요.”
적호단주가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하하! 바로 그거지. 말이 잘 통하는 사내군!”
“무단을 움직일 수는 없으나, 남궁세가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예, 그럼 전 이만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남궁경과 남궁가주가 매우 흡족한 얼굴로 적호단주를 배웅했다.
“영 똑같은 놈이면 어쩌나 했는데 그래도 진혜보단 낫지 않소?”
“그렇긴 하다만…….”
“왜? 이제 와서 보내려니까 아깝소?”
“아니. 저 녀석이 팽가로 언제 돌아갈까 싶어서. 진휘가 화근덩어리가 둘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더군.”
“아…….”
등 뒤에서 남궁경과 남궁가주의 대화가 들렸다.
적호단주는 심상치 않은 대화 내용에 불안감을 느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적호단주가 도망치듯 창천정을 나간 뒤.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순식간에 미소를 거두었다.
“천주산에 남아 있는 놈들은?”
“아버지가 신나서 뛰어나가셨잖소, 오랜만에 몸 푸신다고.”
“사패천주가 십이좌회를 모았다지?”
“영감탱이 말로는 아들 녀석이 당한 독이 천수현인이 당한 그것과 같다고 하니까.”
“흐음. 귀천성 놈들이 본격적으로 날뛰겠군. 신제국의 기세도 심상치 않으니, 황실에 전서를 보내 보아야겠구나.”
남궁가주와 남궁경의 표정이 무겁게 굳었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괜찮겠느냐? 놈들의 준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아까 백부님이 말씀하셨듯이, 이건 사냥일 뿐입니다.”
진화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감을 뽐내지도, 불안감을 드러내지도 않는 담담한 얼굴. 그래서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언제 저렇게 컸는지.
남궁가주의 눈에 감격이 차올랐다.
다만 남궁경은 여전히 걱정을 놓지 못했다.
“놈들이 남양관에 기다리고 있겠지 싶구나. 사패천 놈들이 독이 잔뜩 올랐어.”
“걱정 마세요, 아버지. 독은 제가 더 많이 올라 있어요.”
진화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녀석!”
생각지도 않은 말에 남궁가주와 남궁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남궁경은 아비를 위해 잘 할 줄 모르는 농담으로 애쓰는 진화가 기특한지 단정한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그러나 진화는 정말로 농담 같은 건 할 줄 몰랐다.
‘중독…… 천수현인과 같은 독이라면.’
지난날 제왕검과 남궁가주가 당했던 독이었다.
무색무취, 경로도 출처도 알지 못했던 독.
진화의 눈빛이 진득하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