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252)화 (252/425)

남궁마제

움직일 진(進) 죄 화(禍) : 운명의 중첩(2)

“음식 나왔습니다!”

“어……?”

식당에 음식 냄새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진화와 일행이 있는 식탁에서 음식들이 한가득 차려졌다.

그런데 음식을 받은 현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주문했던 동파육과 어향육채가 아니라 다른 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저기…… 음?”

“하하하, 맛있지? 여남객잔만의 특색이 있는 음식이야. 우리 땡중 묵언 수행하듯 처묵처묵 하셔.”

남궁구가 현오의 입을 막듯 음식을 쑤셔 넣고 그를 재촉했다.

“으음.”

점소이를 부르려던 현오는 여전히 의아한 듯했지만 일단 입에 들어온 고기부터 씹었다.

그리고 곧 입안을 가득 채운 음식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강렬하게 심처를 때리는 첫 불향과 고소한 돼지기름의 풍미, 달짝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양념 사이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살코기의 식감.

현오가 눈을 감으면서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현오뿐 아니라 일행 모두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 동파육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다. 어향육채에 생선이 없지만, 뭐, 물고기 어(魚) 자가 아닌가 보지.’

이제 주문과 달리 나온 음식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아!”

오색국수의 국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켠 현오가 그릇을 놓았다.

현오를 제외하곤 모두 식사를 마쳤지만 자리를 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적호단에서 관도생들만으로 이뤄진 조의 조장은 진화였고, 진화가 다음 일정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오까지 식사를 마치자, 진화는 기다렸다는 듯 관도생들을 주목시켰다.

“조금 이따 검을 들 거다. 그리고 보이는 적들은 전부 죽여.”

“……뭐?”

남궁구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하지만 곧 남궁구와 남궁교명, 관서겸, 제갈상은 잔뜩 긴장한 채 각자의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지금까지 방에 올라가 편히 쉴 것만 기다리고 있던 나머지 일행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그때.

드르르르륵-.

의자를 밀고 일어나는 소리가 식당 안을 크게 울렸다.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의자 밀리는 소리가 나다니.

그 잠깐 동안의 기묘한 정적이 진화 일행뿐 아니라 적호단과 사패천 무인들을 대번에 긴장시켰다.

“가자! 보이는 놈들은 전부 죽여라-!”

“추—웅!

적호단주의 커다란 외침과 함께 적호단이 망설이지 않고 검을 빼 들고 움직였다.

그것이 마치 신호라도 된 듯.

휘이이이이익!

사방에서 귀면을 쓴 흑의인들이 적호단과 사패천 무인들을 공격해 들어왔다.

광룡귀면대였다.

‘그래, 광마제 당신이 빠지면 섭섭하지.’

진화의 입가에 서늘한 비소가 맺혔다.

살기 어린 눈빛이 뭔가를 찾는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간다!”

“존명!”

강무련과 사패천 무인들도 검을 빼 들고 움직였다.

쉐에에엑---!

강철 그물이 막고 있는 계단은 사패천 교룡대주 곡병서가 단번에 베어 냈다.

“크아아아-!”

적호단주 팽치가 위에서 떨어진 강철 그물을 힘으로 끌어당겼다.

휘익! 쿵! 쿵!

“광룡귀면대다! 확실하게 죽여라!”

푸-욱!

위에서 떨어진 광룡귀면대원들의 위로 어김없이 적호단원들의 검이 꽂혔다.

“이 새끼들이! 또 당할 줄 알고?”

퍼어어억-!

남궁진혜가 기둥을 타고 올라 천장에 숨어 있던 광룡귀면대원을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진화와 일행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적호단에 섞여 광룡귀면대와 싸우고 있었다.

* * *

순식간에 벌어진 아수라장이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된 전투이기도 했다.

퍼어어억-!

“이놈들이 있는 건 언제 안 건가?”

현오가 염주를 감은 주먹으로 광룡귀면대원 하나의 얼굴을 주저앉히며 물었다.

귀면과 함께 얼굴이 움푹 꺼지고 깨진 귀면 사이로 피거품이 올라오기 무섭게 현오가 다른 광룡귀면대원을 잡았다.

쉐에에엑-!

“처음부터.”

진화가 현오가 들고 있던 광룡귀면대원의 목을 베며 말했다.

현오의 얼굴로 피가 흠뻑 튀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긴 제갈소현과 사건이 있은 후로 동파육과 어향육채를 팔지 않거든. 갑자기 여남객잔에 위기가 있었을 때의 요리를 말하다니, 이상할 수밖에. 음식을 주문하면서 적호단주와 소천주에게도 전음으로 알렸다.”

“아, 그래서…….”

진화의 말에 현오가 납득이 되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 요리를 가져다준 뒤 점소이들은 물론 주방, 계산대, 객실에서 일하는 점원들이 전부 보이지 않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진화에게 위험을 전한 후에 전부 미리 몸을 피한 것이다.

타타타타탁.

당혜군의 은화대침이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강철 그물을 그대로 한쪽 벽에 박아 버렸다.

벽에 박힌 강철 그물은 오히려 나하연과 팽수, 팽신이 벽을 타고 오르는 좋은 발받침이 되어 주었다.

탓탓탓-!

“흐아아앗-!”

제일 먼저 위층 난간에 오른 나하연이 난간에 있던 광룡귀면대원의 멱살을 쥐고 끌어당기는 반동을 이용해 자신은 안쪽으로 뛰어올랐다.

“간다!”

“오!”

“준비되었다!”

나하연이 신호와 함께 난간을 따라 걸어 나가며 용수팔반의 연속기로 광룡귀면대원들은 밀쳐 냈다.

그리고 팽수와 팽신이 벽에 매달린 채 옆으로 이동하며, 난간에서 떨어지는 광룡귀면대원의 몸을 두들겼다.

퍼어어억!

퍽! 퍽!

하북팽가의 파갑추는 주먹과 대상의 거리가 얼마나 짧은지 상관없이 폭발적인 힘을 실어 주는 절기라, 팽가 형제의 주먹이 꽂히는 족족 광룡귀면대원들이 어디 한군데가 부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퍼억!

“……아.”

잘못하다 벽으로 주먹을 움푹 넣고 만 팽수가 뒤늦게 신음을 내고, 팽신이 그런 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늘에서 쓰레기가 우수수 떨어지는군.”

아래에선 제갈상과 관서겸이 부상당한 적들을 확실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복잡한 교전 상황 속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적호단원들을 돕고 있었다.

퍼어어어엉--!

사 층 객실이 터져 나가고.

적호단은 강무련과 사패천이 꼭대기인 사 층까지 밀고 올라갔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 한창 치열하게 싸우는 중에도 진화의 눈이 부지런히 누군가를 찾았다.

‘교성흑오대가 한바탕 휩쓸고 간 뒤 가장 피로하고 방심했을 때를 노리는 건 효서의 방식이지.’

기감을 끌어 올린 중에도 효서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쥐 새끼같이 기운을 숨겼군.’

진화의 기감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지금 효서는 싸움에 끼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 순간 진화의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이 스쳤다.

수많은 무인들 사이에 없다면 어디에 숨었을까.

이 싸움을 지켜보면서도 힘들이지 않고 숨을 수 있는 곳.

“잠깐 다녀오지.”

진화가 순식간에 여남객잔의 다른 쪽 건물로 움직였다.

파-팟!

진화는 옆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날아드는 무언가를 급하게 쳐 냈다.

그리고 그것이 날아온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쉐에에에엑-!

새파랗게 빛나는 검강이 한쪽을 가리고 있던 벽을 베어 냈다.

스르르륵-. 쿵!

콰과광, 쾅!

정확하게 나뉜 두 조각이 어긋나면서 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안쪽에서, 주방에서 일하는 점원을 인질로 삼은 효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하고 새까만 쥐가 여기 숨었군.”

진화가 흑의에 사나운 쥐 원귀 모양의 가면을 쓴 효서를 향해 비꼬았다.

그 말에 효서가 거칠게 가면을 벗었다.

단정하게 생긴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진화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효서의 질문에 진화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왜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난 쥐 새끼처럼 숨어 있는 광룡귀면대를 보자마자 네가 있을 거라 눈치챘는데. 이런 불리한 싸움에 나설 정도로 용감하지 않잖아? 또 다른 대원들을 던져 놓고 제 살 궁리만 하고 있었겠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제 목숨밖에 없는 여자였다.

광룡귀면대에서 원귀가면을 쓸 정도로 성장해 놓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서슴치 않고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는 효서를 보며, 진화는 그녀의 본성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효서를 놓아주었다.

진화나 현오같이 천운이 닿아 탈출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물양육실 출신 따위에게 돌아갈 곳이 있을 리 없으니. 결국 도망치고 도망치다 광마제가 있는 곳을 제게 알려 주리라 생각한 것이다.

진화의 예상대로 효서는 그때도 광마제에게 돌아갔고, 다시 진화의 앞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광마제는 여전히 제가 효서에게 어떤 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효서 본인조차 그딴 건 기대도 하지 않는데. 

“광마제의 상태는 어떻지?”

진화가 비웃음을 삼키며 묻자, 효서의 표정이 흔들렸다.

놀라움 반, 의심 반.

그녀는 진화가 질문하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내가 그걸 대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거친 목소리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그에 진화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물었다.

“대답을 안 하면, 어떻게 살아 나갈 작정이지?”

“……!”

진화의 질문이 정곡을 찌르며 효서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하지만 곧 제 품에 있는 인질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자를 죽일 셈이야?”

“아아, 안타까운 희생이지.”

진화가 태연하게 답했다.

“으읏.”

진화의 태연함에 오히려 효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효서는 진화가 인질의 목숨 따윈 신경도 쓰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화가 효서를 기억하듯, 효서 또한 제물양육실에서 태연하게 간수들, 심지어 저를 괴롭힌 아이들까지 죽이던 진화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파인의 탈을 바꿔 쓴들, 인간이 가진 본성이 달라질까.

효서가 아는 진화는 그 어린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괴물이었다.

“대답을 한다면, 살려 줄 건가?”

효서가 물었다.

완벽하게 불신이 깔려 있는 물음이었지만, 그녀가 붙잡을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푸른 검강을 번뜩이는 모습에서 그녀는 진화와의 싸움을 포기했다. 

“대답에 따라 살려 주지.”

진화가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약속했다.

다만 진화의 미소는 효서가 아닌 그녀의 손에 잡힌 점원을 향하고 있었다.

진화는 효서에게 약속을 하는 한편, 눈물 범벅이 되어 떨고 있는 점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그래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있다가 안전해지면 도망쳐 나가세요. 날 믿어요. 알겠으면 눈만 깜박여요.

진화와 눈을 마주친 점원이 눈을 깜박거렸다.

점원의 뒤를 잡고 진화만 보고 있는 효서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었다.

진화가 당연한 듯 효서에게 입구를 내주었다.

“……궁금한 게 뭐지?”

효서가 여전히 불안한 듯 인질을 붙잡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

입구 가까이로 가서 입구를 등지고 선 모습에서, 여차하면 대답 후에 곧바로 도망치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진화는 여전히 그 모습을 웃으며 보고 있었다.

“광마제의 현 상태. 힘을 찾았나?”

“……아직. 하지만 곧 찾으실 거다.”

변명하듯 말하는 효서의 대답에 진화의 미소가 짙어졌다.

“광룡귀면대는, 여기 온 자들이 다인가?”

“내가 맡은 조는.”

“마지막으로 묻지. 너는 무맥의 이름을 받았나?”

마지막 진화의 물음에 효서가 인상을 찌푸리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슨 소리야? 무맥은 네가 죽였…… 헉!”

진화의 말에 답하던 효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눈을 부릅뜨고 다시 보아도, 제 배를 뚫고 눈부시게 푸른 번개가 번뜩이고 있었다.

“컥. 왜, 살려 준다고……?”

효서의 입가로 피가 흐르는 중에, 그녀의 얼굴에 억울함과 불신이 가득했다.

진화가 다가오자 효서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사이 잡혀 있던 인질이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진화가 효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대답에 따라 살려 준다고 했지. 마지막 답이 틀렸다.”

“무……슨?”

효서는 죽어 가면서도 의문을 표했지만, 애석하게도 진화는 거기까지 알려 줄 생각이 없었다.

푸욱!

“커-헉!”

진화의 검이 효서의 몸에 더 깊이 박혀들어 왼쪽으로 반바퀴 비틀렸다.

효서의 간이 산산이 부서지는 동시에 온몸의 기혈이 터져 나가며, 결국 효서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화가 무심한 얼굴로 순식간에 빛이 사라지는 효서의 눈을 보았다.

“첫 번째 대답이 정답이었다. 광마제가 아직 힘을 찾지 못했다면, 진짜 전쟁은 아직 멀었다는 거니까.”

귀천성의 처음 발호 때에도, 이전 생에도 모두.

귀천성이 중원을 몰고 들어올 때에 가장 광폭한 행보를 보인 이는 다름 아닌 광마제였다.

광마제가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그에게 종속된 ‘진짜’ 광룡귀면대가 완성되지 않았다면, 아직 귀천성의 완전한 부활까지 시간이 남았다는 의미였다.

진화가 효서에게 얻고 싶은 정보는 그것이 다였다.

‘진짜 광룡귀면대를 완성하는 게 광마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될 테니까.’

진화가 죽은 효서를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대답을 잘했을 때 살려 준다고 하진 않았잖아.”

이전에는 필요에 의해 살려 두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없는 편이 좋았다.

그녀를 살려 주었을 때처럼, 그녀를 죽인 이유 또한 단지 그뿐이었다.

진화가 돌아갔을 때 상황은 거의 정리가 되었다.

다음 날이 되자, 적호단과 사패천 무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정의맹으로 출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