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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68)화 (268/425)

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진짜가 가지는 힘(3)

파드드득.

팔에 매응이 내려앉자 남궁진혜가 매응의 가슴 털 속에서 전서를 꺼냈다.

보통은 다리에 달기도 하지만, 남궁진휘는 안력이 좋은 고수라면 다리에 달린 전서통을 볼 수도 있다며 이 방법을 택했다.

“하여튼 유난은.”

남궁진혜의 입가에 웃음기가 있는 것을 보면 특별히 유감이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서를 읽고 난 후.

파-직.

“이런 씨, 남궁진휘, 이 새끼 이걸 정보라고 보낸 거야?”

남궁진혜가 잔뜩 열이 받은 얼굴로 구겨진 전서를 노려보았다.

[핏자국, 피의 흔적이 많은 곳 주목. 전쟁을 이용 중.]

남궁진혜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남궁진혜의 시야가 닿는 곳은 온통 핏자국이 선연했다.

남궁진혜의 말을 들은 적호단주와 진화의 반응도 그녀와 같았다.

“며칠 전에 수백 명을 죽였는데, 거기서 피를 찾으라고? 도움이 안 되는군. 도울 생각이 없나?”

적호단주가 불만스러운 듯 전서를 비꼬았다.

“…….”

이번만큼은 진화도 남궁진휘의 편을 들 수 없었다.

결국 적호단은 하던 대로 맨땅에 머리를 박듯 조금이라도 이상한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 * *

마을의 분위기가 다시 조용해졌다.

처음 황태자와 표기군이 떠나도 기뻐하던 백성들도 이제는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적호단을 보았다.

어찌 되었든 강한 힘을 가진 무림인들이라, 언제 돌변해서 그들을 위협할지 모른다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적호단도 좋아서 마을에 남은 것은 아니었다.

적호단원들 또한 매일같이 두 시진씩 걸리는 산길을 올라, 온통 시체가 쌓여 있는 적사문에서,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것을 찾아 뒤지는 것은 곤욕이었다.

“구덩이를 깊게 파라!”

적호단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산 한쪽에 구덩이를 팠다.

자신들을 반기지 않는 것은 알았지만, 시체들이 썩어 가며 풍기는 악취와 들끓는 짐승과 벌레를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호단은 마을 사람들과 시체를 정리할 조와 군대에 당해 텅 빈 마을 안, 숲속, 적사문 본 문을 수색할 조를 나누었다.

진화와 관도생들은 적사문 안쪽을 뒤지고 있었다.

‘핏자국은 덜하지만, 온통 비밀스러운 통로들이군.’

바람이 흐르는 기운을 느끼며 진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총 세 채의 거대한 건물로 이뤄진 적사문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공간과 통로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문주의 방을 비롯해서 위쪽은 일, 이, 삼 조에 맡겨 두고, 우리는 우선 지하를 찾아보는 게 어떤가?”

“지하?”

현오의 제안에 진화와 일행이 의아한 듯 그를 보았다.

그러자 현오가 염주를 굴리며 씨익 웃었다.

“내가 환마제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가.”

“오랫동안 잡혀 있던 것도 그런 거라면.”

남궁교명이 딴지를 걸었지만 어쨌든 현오가 환마제를 가장 오래 본 것은 맞았다.

“그 얼마나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는지 안 겪어 본 자는 알 수 없네!”

“아아, 그래서, 환마제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어?”

“그자는 어둡고 음습한 곳, 지하를 좋아했지. 그 육중한 몸으로는 계단을 오를 수도 없을 테니 당연하겠지만. 지하에 사람을 가둬 두고 하나씩 죽여서 갓 도살한 정육 고기처럼 걸어 두는데, 내 그 미친 곳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크흐! 부처님이 돌봐주시지 않았다면…….”

“넌 악몽에 부처가 나온 거잖아. 양심도 없냐?”

현오와 남궁교명이 티격태격하는 것을 들으며, 순간 진화의 눈이 커졌다.

‘인간 시장 노예를 포함해서 사람을 가둬 둔 감옥, 사람을 도살한 흔적.’

진화는 인림(人林) 밑에 있던 환마제의 소굴을 떠올렸다.

지하에 가둬 두었던 사람들과 인육방처럼 천장에 걸려 있던 시체들.

시체들의 밑에 피를 받는 큰 통이 있었다.

도살한 고기처럼 피를 빼서 흘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모으고 있던 피.

그래, 피가 중요했다.

“그러니까! 내 악몽이 불마대법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 환기도 안 되는 곳에서 코를 찌를 듯한 혈향을 맡으면서 내가 얼마나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견뎠는지. 사부님 잔소리와 사형제들의 찝찝한 품이 아련하게 떠오르면서 마침내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지하를 찾자!”

진화가 현오의 말을 끊고 말했다.

“응? 진짜 이 땡중의 말을 듣는다고?”

일행이 황당하다는 듯 진화를 보았다.

진화의 말에 반색하는 건 오직 현오뿐이었다.

“그렇지! 남궁 시주는 아는군. 그 음습한 놈! 제놈이 내 정신을 깨워 준 줄도 모르고 무슨 피를 술처럼 퍼마시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자는 척을 하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자네들은 상상도 못 할 걸세!”

모두가 의아한 속에 현오만 신난 듯 떠들었다.

하지만 일행은 물론 진화도 현오의 혼신의 힘에는 관심이 없었다.

“핏자국을 찾아. 건물 내부에는 전투가 없었으니까, 전투로 생긴 혈흔과 헷갈리지 않을 거다.”

진화의 말에 이제야 일행이 관심을 보였다.

“그때 놈들의 지하 소굴엔 음식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만 잔뜩 잡아다 놓았지. 현오의 말처럼 그때 환마제는 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

“우리는 대량으로 피를 모아 놓은 곳이나 그랬을 법한 흔적을 찾는다. 그렇게 많은 피를 모아 놓으려면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은 곤란할 테니, 사람들 몰래 숨기기 좋은 지하에 있을 가능성이 커. 일단 지하로 이어진 비밀 통로나 입구부터 찾지.”

“추-웅!”

“좋은 생각이다!”

“아니, 이럴 건가? 내 생각과 한 치도 다르지 않구먼, 반응은 왜 이런 건가?”

“땡중은 닥치고 따라와!”

진화의 말에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일행이 급히 움직였다.

흩어진 진화 일행이 일 층을 중심으로 뒤지자 몇몇 적호단원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진화 일행의 설명을 들은 이들은 그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땅에 머리를 박는 것보다는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따라가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 통로다!”

“여기도!”

“젠장, 뭐가 이렇게 많은 거야! 입구는 찾았어?”

지하로 연결된 비밀 통로가 너무 많고, 중요한 입구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반시진 동안 별다른 소득이 없자, 적호단에서도 슬슬 다른 말들이 나왔다.

“그냥 통로를 타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나?”

“어떤 함정이 있을 줄 알고.”

“이대로 시간을 보내도 성과는 없을 듯합니다.”

“흠, 단주님께 보고하고 비밀 통로로 진입하자.”

“충.”

경험 많은 단원들의 말처럼 비밀 통로를 타고 들어가는 것은 위험했다.

어디까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어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뭔가 준비를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통로 진입을 결정하면서 표정이 좋지 못한 단원들을 보며, 진화는 생각을 바꿔 보기로 했다.

‘어쨌든 비밀 통로들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이거지?’

마침 진화의 눈에 팽가 형제가 들어왔다.

“돌 같은 건 금방 치우지?”

“음?”

“그게 무슨 말이야?”

팽가 형제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진화는 팽가 형제에게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이며 그대로 바닥을 향해 발을 굴렀다.

콰---앙!

쿵. 쿵. 콰과광-쿵!

건물 전체로 퍼지는 거대한 기운의 파장과 함께 바닥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곳이 무너졌다.

“뭐, 뭐야!”

“읏!”

찾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섣불리 땅을 판다면 자칫 통로가 무너질 수도 있지만, 만약 위치를 안다면?

바람의 흐름을 통해 진화는 자신들의 발밑에 거대한 공간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비밀 통로로 진입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다칠 걱정이 없다면, 곧바로 내려가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놀란 일행과 적호단의 눈이 뽀얀 먼지 속에 땅으로 꺼져 버린 진화와 팽가 형제를 찾았다.

“야! 도련님, 괜찮아?”

“무슨 일이야? 밑에 괜찮나!”

곁에 있던 남궁구와 적호단 일 조 조장이 급히 달려왔다.

거대한 구멍.

그저 바닥 한 층만 무너뜨린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구멍이 아래로 이어졌다.

“몸은 괜찮지?”

“……몸은 괜찮다.”

“마음이 안 괜찮다! 다음에는 땅을 무너뜨리기 전에 미리 말해라!”

진화의 물음에 팽가 형제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팽가 형제도 진화를 탓할 수 없었다.

무너진 돌무더기 너머, 어쩌면 그들이 찾는 것일지 모르는 거대한 문이 보였기 때문이다.

“……금방 치우지.”

팽수의 말과 함께 팽가 형제가 문을 반쯤 막고 있던 바위를 치우기 시작했다.

진화는 위를 향해 문의 존재를 알렸다.

“여기-! 뭔가 찾았습니다!”

“뭐? 찾았다고?”

“미친!”

진화의 말에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놀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남궁구를 비롯한 진화 일행과 적호단이 어디서 찾아왔는지는 튼튼한 줄을 내렸다.

줄을 타고 관도생들을 비롯한 적호단원들이 구멍 아래로 내려왔다.

그들은 내려오자마자 진화가 발견한 것을 보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무슨……!”

팽가 형제들이 순식간에 치워 버린 바위 뒤로 거대한 문이 오롯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문에서는 무엇으로 칠한 건지 모를 수 없을 만큼 비릿한 혈향이 풍겨 왔다.

“모두 정렬. 문을 열다.”

진화의 말에 적호단원들이 진화의 뒤에 서고 팽가 형제가 양쪽으로 서서 문을 당겼다.

크르르르릉-.

조금 남아 있던 돌과 모래를 밀어내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 같았다.

진화를 비롯한 적호단원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안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르릉--!

“큿!”

“윽! 무슨 냄새가……!”

마침내 문이 열리면서 모두가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그때, 진화가 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

* * *

쉐에에에엑----!

탕! 탕! 쉐에에엑---!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금속성.

날카로운 무언가가 문을 베고 적호단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팟-!

“큿!”

푸른 불꽃이 팽가 형제의 눈앞에서 튀었다.

파지지지직---!

진화가 손을 펼친 곳 앞으로 푸른 번개 속에서 무언가가 튀겨지듯 부서지고 있었다.

‘현홍사. 맞게 찾았구나.’

까맣게 재가 되어 흩어지는 현홍사의 흔적을 보며 진화가 눈을 빛냈다.

“괜찮나?”

“……몸은.”

이번에도 마음은 괜찮지 않은 것인지.

진화는 팽가 형제의 대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제일 먼저 현홍사에 당한 형제였다.

그 뒤로는 대부분 진화가 막아 주긴 했지만, 처음 두부를 자르듯 문과 돌을 잘라 내는 현홍사를 맨몸으로 막아 낸 것치곤 팽가 형제의 양팔에는 가는 혈선으로 된 상처만 남았다.

“너희는 몸만 무사하면 돼.”

팽가 형제의 무사함을 확인한 진화가 적호단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살기 어린 함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화의 신호에 일 조 적호단원들이 먼저 문 안으로 진입했다.

“윽! 시취(屍臭)다!”

“흡! 지독하군.”

짧은 신음과 함께 적호단원들이 급하게 코를 막았다.

경험 많은 일 조 단원들마저도 시체가 한창 썩어 가는 냄새의 고약함은 견딜 수 없는 듯했다.

당혜군과 제갈상, 남궁교명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역질을 해야 했다.

왜 지하를 이렇게 깊게 팠는지 이해가 되는 높은 제단이 있었다.

그 아래로, 뭔가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던 네모난 흔적.

제단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정도로 제단 아래, 네모난 흔적에서 벗어난 곳곳에 산산이 부서진 채 썩어 가는 시체들이 있었다.

그 앞쪽으로 까맣게 뭉쳐 있던 파리떼가 날아가자 색깔마저 검게 변한 혈흔이 넓게 이어졌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어느새 내려온 적호단주가 눈살을 찌푸렸다.

곳곳에 치워지지 않은 시체와 땅을 흠뻑 적실 정도로 남아 있는 혈흔에 온갖 짐승과 벌레가 득시글거리는 모습.

경험 많은 적호단원들조차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지독한 흔적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죽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수없이 많은 전투를 한 적호단원들이었지만, 그들의 상상력으로도 이만한 흔적을 남길 만큼 끔찍한 일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진화의 시선은 뭔가가 있었던 듯한 네모난 흔적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도 네모난 목간통 같은 것에 피를 받았지. 그럼 피를 옮긴 곳도 있을 텐데…….’

진화가 네모난 흔적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혼현마제도 함께 있었다. 그자가 자신이 있었던 곳에 어설프게 단서가 될 만한 흔적을 남기진 않았을 거야.’

진화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그때, 구멍 아래로 뛰어 내려온 적호단원 하나가 적호단주를 찾았다.

“단주님, 부단주께서 수상한 관을 발견했습니다!”

진화가 급히 밖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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