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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70)화 (270/425)

남궁마제

참 진(眞) 꽃 화(花) : 진짜가 가지는 힘(5)

자신을 책임지라니.

게다가 강무련의 저 비는 동작은 대체 뭘까.

아이를 책임지라는 걸까, 아니면 아이를 때리지 말아 달라는 걸까.

진화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한수림과 강무련을 보았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한수림이 내민 꽃에 손을 내밀 즈음.

탁.

“아앗!”

누군가 한수림의 손에서 꽃을 빼앗듯 가져갔다.

남궁진휘였다.

“형님!”

진화의 반가운 목소리에 남궁진휘가 난처한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단 채 많은 의미를 담은 눈으로 한수림을 쏘아보았다.

“소공자, 내 일전에도…… 어린 나이를 빌미로 순진한 척 개수작을 부리는 건 동네 일곱 살짜리한테도 통하지 않을 거라…… 친히 조언하지 않았던가?”

남궁진휘의 말투에 서늘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한수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쉽다는 듯 앙증맞은 입술을 불뚝 내밀었다.

“칫. 나도 안 될 줄 알았지만, 그래도 귀여운 얼굴 믿고 한번 해 본 거라고요.”

진화가 놀란 눈으로 한수림을 보았다.

남궁진휘와 강무련이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자니, 남궁진휘가 아니었다면 거의 꽃을 받을 뻔했다는 건 끝까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알다시피 그 결정은 우리가 아니라 사패천주의 요청이었네. 그러니 공자도 이만 수긍하시고 착실하게 준비하길 바라네.”

“……히잉.”

남궁진휘의 단호한 말에 꿋꿋하던 한수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쪽에는 이미 강무련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곧, 기다렸다는 듯 터지고 말았다.

“우에에에엥! 가기 싫어! 가기 싫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한수림을 강무련이 안아 들고, 한수림은 그 품에서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우에에에에-! 형아! 임무 가서 보지도 못했는데! 형아, 나랑 겨론하자! 엉? 형아랑 겨론해서 나 안 갈 거야! 허어어엉!”

강무련에게 안겨 멀리 떨어질 때까지도, 한수림은 울면서 진화에게 손을 뻗었다.

“형아아아아앙-!”

애처롭고 간절한 목소리와 손짓에 진화는 몹시 황당한 얼굴로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남궁진휘가 한숨을 쉬며 놀란 진화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패천에서 소공자를 돌려보내라는 전갈이 왔는데, 그 후로 계속 저 상태더구나. 울고 떼쓰다가 남궁세가에 청혼서를 보내고, 네가 왔다는 소식에 이렇게 직접 나설 줄이야. 사패천주의 아들답게 추진력이 상당해. 하하하.”

“…….”

진화로서도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일은 이전 생을 합쳐 처음, 아니 두 번째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천수현인께서 기다리신다.”

남궁진휘가 진화를 안으로 이끌었다.

그랬다.

애초에 진화와 만나기를 요청한 사람은 한수림이 아닌 제갈길현이었다.

의선의 말처럼 제갈길현의 회복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이제는 제법 깨어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리고 제대로 대화를 하게 된 후로 제갈길현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진화와 현오였다.

* * *

제갈길현의 방에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 현오가 먼저 와있었다.

봇짐을 한쪽에 둔 채 만두만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소림에 들르지 않고 만둣가게에 갔다가 끌려온 듯 보였다.

제갈길현은 눈치를 보면서도 꿋꿋이 만두를 먹고 있는 현오를 두고 관찰 중이었다.

남궁진휘와 진화가 들어오자 제갈길현의 눈이 진화를 향했다.

“음…….”

세세하게 진화의 얼굴을 관찰하는 듯한 인상.

제갈길현은 첫 만남의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부리부리한 눈에 번뜩이는 안광, 매서운 콧날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한눈에도 결벽한 학자 같은 제갈가주보다는 전형적인 무인 같았던 제갈후현과 더 많이 닮은 듯했다. 오랜 세월 누워 있느라 왜소해지긴 했지만 크고 굵은 골격도 그런 생각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진화와 현오의 얼굴을 살피는 제갈길현은 어떤 사람들보다 신중했다.

“역시.”

한참 진화와 현오를 살핀 후 제갈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 특히 의선과 홍랑대부가 급히 다가왔다.

“뭔가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의선과 홍랑대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제갈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게 뭡니까!”

“관상은 상관없네.”

“……네?”

“혹시, 기껏 현오 스님과 황자 전하를 불러내서 알아낸 것이 ‘관상은 상관없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의선과 홍랑대부의 기대가 싸늘하게 식었다.

홍랑대부는 진화를 남궁 공자가 아닌 황자라 칭하며 은근히 제갈길현에 대한 비난을 키웠다.

의선과 홍랑대부는 처음에 비해 제갈길현을 대함에 있어 격과 기대가 많이 사라진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제갈길현과 시간을 보내며, 의선과 홍랑대부도 중원의 현자라는 천수현인이 사실은 장난기 많고 괴팍한 노인네라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관상이 아주 좋아. 이마, 눈썹, 눈 끝, 코끝, 입술 끝이 모두 길하니. 특히 복덕궁과 명궁, 질액궁, 재백궁, 노복궁이 모두 좋아서 말년까지 고생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겠군. 도화살이 짙기는 하지만 신분이 높으니 그 또한 처첩을 거느릴 관상이고. 흐흐흐.”

“다행이군요!”

진화를 향해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는 제갈길현의 모습에, 그의 말을 듣고 좋아하는 사람은 남궁진휘밖에 없었다.

남궁진휘는 진화의 등을 토닥이며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갈길현을 보는 진화의 눈빛은 의선이나 홍랑대부의 그것과 비슷해졌다.

‘사기꾼 같은 자로군. 이전 생의 내 인생이 어떠했는지 알려 주고 싶군.’

진화는 속으로 제갈길현을 비웃었다.

“저는요? 저는요?”

“잉? 스님은…… 팔자가 중요해? 이미 충분히 박복하지 않아?”

“지금 관상 가지고 신분 차별하는 것입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흐흐, 걱정 말게. 말년이 좋아. 편안한 말년을 누리겠어. 장사를 해야 할 관상이긴 한데, 소림에서 고기도 팔아먹을 관상이니 소림이 부흥하겠군.”

“그, 그래요?”

제갈길현의 말에 현오가 손에 든 만두를 보며 눈을 빛냈다.

진화는 소림 아래에서 ‘극락왕생만두’를 팔던 현오를 생각하며 이번에는 제갈길현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때, 한쪽에서 덤덤하게 있던 제갈가주가 끼어들었다.

“이렇게 사이좋게 노닥거리자고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아닐 텐데요.”

“쯧, 더럽게 재미없는 놈.”

흥이 깨졌다는 듯 제갈길현이 제갈가주를 향해 혀를 찼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진화와 현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뚫어질 듯 쳐다보는 눈빛, 번뜩이는 안광에서 언뜻 살기가 스쳤다.

진화와 현오의 표정도 굳었다.

“말 그대로 관상과 상관없다는 말일세. 혼돈의 빛이 눈 안에 있지만, 관상은 오히려 이쪽이 더 역천의 관상이야. 저 스님도, 살성이 묻어나지만 대상의 운이 더 강해. 광마제와 역천마제 놈들과는 다르지.”

제갈길현의 말에 진화와 현오는 물론, 의선과 홍랑대부의 안색이 달라졌다

“역시 역천비록은 사주와 천문으로 이뤄진 것이로군요.”

홍랑대부가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의선을 힐끗거렸다.

하지만 제갈길현은 홍랑대부의 말엔 대답도 없이 진화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 본 날, 내가 한 말을 기억하나?”

“……제 운명 또한 ‘역천마제에게 닿아 있다.’고 하신 것 말입니까?”

“그렇다. 내가 아는 한, 운명의 중첩은 마제와 제물에 관한 말이 아니었다.”

“그럼?”

“오히려 역천마제와 팔현성의 관계를 말함이었지. 같은 운명의 큰 줄기에 엮인 자들…… 혼현마제 그놈이 제 역천비록을 혼자 몰래 가지고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

“그래서 그게!”

제갈길현의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문 진화와 달리 의선과 홍랑대부는 뭔가 깨달은 듯 탄성을 내었다.

제갈가주와 남궁진휘가 의선과 홍랑대부를 보았다.

“뭔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까?”

“아니, 아니오. 다만…….”

“최종 제물이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마제들과 같은 생일 시를 가지고 같은 천문마저 가졌으니, 그들의 사주와 천문의 조합이 마제들과 거의 동일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만약 운명의 중첩이 역천마제와 팔현성의 관계를 가지고 한 말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마제들 간에 운명의 중첩을 찾을 수 있을 듯해서 말이오.”

“마제들 간에 말입니까?”

남궁진휘의 물음에, 의선과 홍랑대부의 시선이 진화와 현오를 향했다.

“두 사람은 생시가 동일하오. 해가 바뀌는 시간 안에서도 다시 바뀌는 시간. 계유(癸酉)는 해를 잡아먹는 검은 닭. 역천마제와 현오 스님은 흰 뱀, 달을 잡아먹는 검은 닭이지요.”

“반면, 광마제와 남궁 공자의 을해(乙亥), 청 돼지는 하늘의 귀족이라, 닭의 목을 비틀어 아침을 여는 자. 같은 시간에 만나는 두 사람의 사주와 천문은 서로가 죽고 죽이는 관계입니다.”

의선과 홍랑대부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진화와 현오를 보았다.

현오는 놀라고 당황한 눈으로 진화를 보고 있었다.

반면 진화는 그보다 침착해 보였다.

“우리가 역천마제, 광마제와 같은 운명을 가졌다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관계라는 거겠지요?”

진화가 제갈길현을 향해 물었다.

진화는 제갈길현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마도 의선과 홍랑대부가 알아차리기 전에 제갈길현은 모든 사실을 추측하고 그것을 확인해 보고자 자신과 현오를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관상을 본다는 핑계로 자신과 현오를 관찰한 것이고. 

진화의 추측이 맞다는 듯, 제갈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현마제가 자신의 역천비록을 숨긴 것이, 정말 그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혼현마제의 역천비록은 나도 보지 못했네. 하지만 사주와 천문의 관계를 파악한다면, 그 관계 속에서 그걸 깨뜨리는 법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놈이 그토록 지독하게 자신의 비록을 숨긴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네.”

제갈길현이 지지한 얼굴로 말했다.

의선과 홍랑대부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천마제와 광마제의 운명이 어찌 보면 악연으로 묶였음에도 그들이 함께 있는 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 조건이나 다른 요소가 있겠지.”

“그걸 전부 알게 된다면, 운명대로 만들 수도 있겠군요.”

“음.”

진화의 말에 제갈길현이 심각하게 표정을 굳힐 뿐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오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날 죽이겠다고?”

“내 운명이 널 죽일 수 있다면, 내가 역천마제도 죽일 수 있다는 거니까.”

“아!”

진화의 말에 현오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감탄했다.

제갈가주나 의선, 홍랑대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의선과 홍랑대부는 뭔가 희망을 찾은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다른 비록에도 시(時)가 중첩되는지 찾아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성을 중점으로 풀어 보겠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암호와 같은 역천비록을 해석하고 뭔가 풀어내는 것은, 적호단이 뭘 찾는지도 모르고 산을 수색하는 것과 같았다.

맨땅에 머리를 박듯 앞이 깜깜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향만 정해진다면, 그다음은 시간과 인내의 싸움이었다.

의선과 홍랑대부가 다시 의욕에 불타고 제갈가주가 기대를 표하는 중에, 제갈길현은 이전보다 한결 누그러진 눈빛으로 진화와 현오를 보았다.

“운명 때문이 아니라, 그대들은 내 수십 년의 세월이 아깝지 않을 인재들일세.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길을 잃지 않고 간다면 반드시 평화로운 관상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네.”

이번에야말로 실로 천수현인다운, 현기 가득하고 자애로운 덕담이었다.

하지만 제갈길현의 진심이었다.

실로 무섭고 버거운 운명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이건만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굳건한 두 젊은 무인들의 모습이, 수십 년 전 무림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었던 수많은 동료들을 떠올리게 했다.

제갈길현은 그때 그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진화와 현오에게 해 줄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동시에, 마치 서툰 아버지였을 적 자식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을 할아버지가 되어 비로소 손자, 손녀에게 쏟아 내는 듯 제갈길현은 눈을 감고 흘려보낸 수십 년의 세월을 실감했다.

‘혼돈을 담아 낸 역천의 관상이 역천마제를 죽이는 것이라니…… 실로 하늘의 뜻을 짐작할 수 없구나.’

다시 잠이 들기 전, 제갈길현은 방을 나가는 진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날 오후.

진화는 본의 아니게 의선문에 한 번 더 걸음을 했다.

“후에에에에엥! 형아-! 조금만 기다려 줘요! 새끈하게 커서 돌아올게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으아아아앙-! 형아--!”

한수림이 사패천으로 돌아가는 것은 일급 기밀로, 의선문 안에서부터 꽁꽁 싸인 채 사패천까지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어른들의 사정과 상관없이 한수림은 가는 날까지 진화를 보지 않고는 출발하지 않겠다며 떼를 썼고, 긴 울음소리를 남긴 채 떠났다.

* * *

한편, 황태자가 돌아온 한 제국 황궁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표기대장군부의 잔치에 누구누구가 불려 가고 누가 참석했더라는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그들의 잔치는 장장 사흘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 공교롭게도 원귀빈의 친정인 북회대장군부와 허미인의 친정아버지인 대사마 허임이 같은 날에 회합을 가졌다.

그것을 우연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맞이한 첫 조정 회의.

신료들이 저마다 눈치를 살피며 대전에 들었다.

하지만 대전에 든 신료들 모두 한쪽에 있는 인물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 태사! 태사께서 여긴 어인 일로!”

“허허허, 다들 잘들 있었는가.”

태사 조위례.

조정 회의에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두의 등장에 신료들이 앞을 다투어 그 앞에 눈도장을 찍었다.

마침 대전에 들던 좌장군 또한 조위례를 발견했다.

‘저 늙은이는 왜…… 설마 알아챈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설사 알아차렸다고 해도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다!’

좌장군이 조위례를 보며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곧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조위례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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