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273)화 (273/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꽃 화(花) :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투기장(3)

황궁처럼 소문이 많고 빠른 곳이 또 있을까.

황제가 이황자와 독대를 가졌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궁 안팎으로 퍼져 나갔다.

황제가 이황자와의 독대에서 기함을 하고 황실에서는 절대 마시지 않는 냉수까지 찾았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퍼져 나갔지만, 내관들 누구도 답해 주지 않았다.

황제와의 독대 이후 이황자는 황후와 매일 궁을 찾는 태사 조위례와 시간을 보냈고, 황제도 더는 이황자를 찾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황제와 이황자의 관계가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누군가의 기대 섞인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곧 밝혀졌다.

신제국이 파군과 장기군일대로 군사를 옮기고 있다는 소식이 조정에도 알려졌기 때문이다.

황제의 집무실에는 북회대장군 원수경과 대사농 정조인, 중서령 사마윤이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었고, 그들은 신료들을 소집하여 준비를 시작했다.

다시 궐 안에 곧 신제국과의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그런 와중에 조정 회의가 열렸다.

“조사관의 전서가 도착했다.”

황제의 말에 한차례 분위기가 술렁였다.

신제국과의 전쟁에 정신이 팔려 모두 황태자의 일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황자 저하가 왜 조정회의에 나왔나 했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제국과의 전쟁에 대해 논할 줄 알았던 신료들은 그제야 황태자와 좌장군의 눈치를 살폈다.

“폐하, 신 좌장군 표서량 아뢰옵…….”

“아, 됐다.”

좌장군이 급히 앞으로 나서려는데, 황제가 손을 들어 끊었다.

순간 대전의 분위기가 살얼음이 언 듯 차갑게 굳었다.

“태자와 좌장군은 입 열지 마. 그대들이 하고자 한 말은 그때 전부 들었어.”

황제의 말이 하얀 서리처럼 차갑게 황태자와 좌장군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고개 숙인 황태자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신제국이 파군과 장기군으로 군을 움직였다. 그런데 군량미가 부족하다더군. 한중 평야의 삼분지 일이 추수를 앞두고 불에 탔거나 농사를 지을 백성들이 부족해서 군량미 충족이 어렵다고.”

탕--!

황제가 손바닥으로 용좌를 내리쳤다.

추상같은 군주의 분노가 대전에 울려 퍼졌다.

“조사관에게 보고를 받을 필요도 없었어. 파군과 장기군 일대의 군사들이 당장 굶을 판이니까! 황태자와 좌장군은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것인가!”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좌장군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황태자가 그 뒤를 따라 나와 바닥에 엎드렸다.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않을 것을 상정하고 저지른 짓이었다.

지금까지는 쭉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황제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나선 순간, 그때부터 일은 이미 틀어진 것이었다.

설마 신제국까지 끼어들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 줄은 몰랐지만, 이런 때에는 변명 없이 그냥 비는 것이 현명했다.

황제는 못된 짓을 하다가 걸린 것보다 비굴하게 구는 모습을 더 싫어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황제의 반응은 이번에도 좌장군과 황태자, 신료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황제는 바닥에 엎드린 황태자의 모습에 더 크게 분노했다.

“통촉? 대체 뭘 통촉하라는 것이냐! 너 때문에 죽은 표기군의 죽음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은 것? 이황자에게 목숨을 빚지고도 은혜를 모함으로 갚은 것? 그러고도 내게 너를 통촉해 달라? 너는 대체…… 금수도 하지 않을 짓을 제국의 황태자라는 놈이 하고서, 그것을 짐에게 통촉해 달라는 것이냐!”

황제가 고성을 터뜨리며 황태자를 노려보았다.

아들이 아닌 원수를 보듯 살기마저 어린 눈빛에, 고개를 들었다가 황제와 눈이 마주친 황태자는 황급히 눈을 피하며 몸을 떨었다.

“십수 년 만에 찾은 형제다. 태자로서 넓은 아량과 덕을 보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형제지간의 정을 쌓아 보라 하지도 않았다만…….”

황제의 시선이 황태자와 함께 한쪽에 조용히 있던 진화에게 슬쩍 닿았다.

“목숨을 구해 준 형제에게 감사는 못 할망정 되레 모함을 해?”

“아니, 아니옵니다! 그것은 정말 오해이옵니다! 이, 이황자가 뭐라 말했는지는 몰라도 진실은…….”

황태자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황태자는 궁지에 몰려 이성을 잃은 듯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울음으로 생떼를 쓰는 아이 같았다.

“이놈이 그래도! 이황자가 말해 보라. 오해가 있더냐?”

“신 동해왕 한진화 아룁옵니다.” 

진화가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도중에 좌장군과 황태자와 마주쳤으나, 진화는 길을 막고 있는 그들을 깔끔하게 지나쳤다.

“아뢰기 송구하오나 소신은 태자 전하가 무엇을 오해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화는 자신을 노려보는 황태자의 시선을 무시한 채 황제를 향해 덤덤하게 말했다.

“당시 상황을 보여 드려도 되겠습니까?”

“당시 상황을 보인다?”

황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순간, 진화가 황태자의 목을 향해 매서운 기세로 팔을 뻗었다.

“전하!”

퍽-!

좌장군이 놀라 황태자를 밀쳤다.

“……허어!”

“저, 저.”

황태자가 바닥을 나뒹굴며 놀라서 좌장군을 보고, 좌장군은 매서운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신료들 또한 방금의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황제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을까.

진화가 태연하게 황태자를 향해 물었다.

“방금 좌장군은 태자 전하를 해한 것입니까, 구하려 한 것입니까?”

진화의 물음에 황태자의 눈이 급격하게 떨렸다.

“당시에는 검이었지요. 제 검이 적사문주의 검을 막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전하의 오해는 어떤 부분입니까?”

“그, 그…….”

결국 황태자는 진화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쯧쯧쯧쯧!”

경악스러운 침묵이 맴도는 가운데, 혀를 차는 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황태자가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용좌에 앉은 황제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황태자를 보고 있었다.

신하들은 갑작스러운 진화의 행동을 질책했어야 마땅했지만, 황태자와 좌장군의 몰락을 지켜보기 위해 입을 닫았다.

“결론이 났군. 황태자 한유강과 좌장군 표서량은 빠른 시일 안에 민란을 수습하는 공을 세웠지만, 수많은 임야를 불태워 제국에 손해를 끼치고 죄 없는 백성들까지 도탄에 빠뜨린 실책이 더 크다. 또한 황태자는 실책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형제를 모함하는 치졸한 추태까지 보인바. 황태자는 앞으로 일 년 동안 동궐 밖 출입을 자제하고 근신토록…….”

추상같은 황제의 판결이 이어졌다.

그때.

황태자가 황제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저, 전장으로 가겠습니다!”

감히 황제의 말을 끊은 것도 놀라웠지만, 황태자가 던진 말이 워낙 충격적이라 모두 경악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황제마저도 놀란 눈을 했다가, 곧 황태자를 노려보았다.

“전장으로 가겠다?”

“민란 수습에 실책이 생긴 것도, 이황자의 행……동을 오해한 것도, 모두 소자가 약하고 경험이 미천했기 때문입니다. 전장으로 가서 진짜 전투를 겪어 보고 제국의 승리를 가져와, 제가 끼친 피해를 만회하겠습니다.”

“모두 경험 부족 때문이다?”

황제가 황태자를 노려보고, 황제의 눈빛을 마주하는 황태자의 눈에도 서서히 독기가 차올랐다.

“그것이 네 결론이냐?”

“그러하옵니다.”

“오냐, 좋다! 황태자의 근신을 취소하고 전장으로 보내겠다. 북회군에 섞여 말단 장수로서 전쟁을 수행하라! 이전과 같은 황태자에 대한 의전이나 호위는 없을 것이다!”

“폐, 페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신료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황제가 명을 내리고 황태자가 그것을 덥석 받아 버렸다.

좌장군 또한 놀란 얼굴로 황제를 보고, 신료들은 편을 떠나서 모두가 크게 경악했다.

오직 진화만이 덤덤하게 황제와 황태자를 볼 뿐이었다.

이날 조정 회의는 그렇게 화가 난 황제가 일방적으로 파해 버림으로써 혼란 속에 끝나고 말았다.

* * *

황제의 집무실로 황태자가 들어서자.

퍼---억!

“읏!”

서책이 날아들어 황태자의 가슴팍에 꽂혔다.

놀란 황태자가 고개를 들자, 자리에 앉은 황제가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황태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장으로 가겠다? 고작 그것이 네가 내린 결론이더냐?”

묵직하게 내리깐 목소리.

황태자는 황제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제 숨통을 죄어 오는 듯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고작 전장이냐? 멍청한 놈!”

“……!”

차라리 소리를 질렀으면.

크게 소리를 질렀으면 이렇게 답답하지도, 이렇게 질식해 죽을 것처럼 괴롭지 않았을 텐데!

이제는 기대든 뭐든 다 내려놓은 듯한 목소리에 황태자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시에 살아남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다.

“차라리 잘된 것이 아닙니까.”

살아남고 싶다는 욕망이 황태자의 마음에 독기를 불러일으켰다.

“뭐라?”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속에서 터져 나온 독기가 겁을 상실케 한 듯, 황태자가 당당하게 황제의 눈빛을 마주했다.

“부황께선 언제나 강한 자식을 원하셨지요! 그래서 늘 제가 못마땅하고 제게 화가 나는데, 때마침 본인을 닮은 강한 황자가 눈에 들어오니 이제라도 저를 치우고 싶으신 게 아닙니까! 저를 치워 버리고 싶어 안달이 나실 터인데, 제 스스로 꺼져 드리겠다 했으니 부황께선 기뻐하셔야지요!”

“허!”

황태자의 말에 황제가 코웃음을 쳤다.

그 모습이 황태자의 독기에 불을 질렀다.

“늘! 늘 그런 눈! 왜요! 무엇이 그리 불만이신 겁니까! 저도 이렇게 약하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저도 무림에서 아무 걱정 없이 무공만 쌓았다면 달랐을 겁니다! 뭘 그렇게 바라는 게 많으십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단 말입니다! 소자더러 대체 뭘 더 하라는 말입니까!”

한 맺힌 울음소리.

상처받은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가슴 아프게 들렸다.

황제도 제 자식의 울음이 가슴 아팠다.

그러나 황제는 여느 아버지와 같을 수 없었고, 같아서도 안 되었다.

“난 단 한 번도 네게 뭘 기대한 게 없다! 약하게 태어난 네게 강해지라 한 적 없고, 무예를 익히라 강요하지 않았다. 네가 나처럼 할 것이란 기대는 애초부터 한 적이 없단 말이다!”

“……!”

황제의 말에 비수처럼 황태자의 가슴에 꽂혔다.

“불만? 네게 가진 불만은 진화 그 아이가 돌아오기 전부터 가진 거였지! 네가 무림으로 가서 걱정 없이 무공만 쌓아? 하! 기가 찰 소리구나! 넌 거기서도 뭐든 핑계를 찾아 네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고 동정했겠지!”

황제는 조정에서와 같이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도 기대가 있을 때나 가지는 것이라, 조정에서의 분노는 그저 신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

지금의 황제는 오히려 황태자를 비웃고 있었다.

“네게 무슨 불만이냐고? 네 바로 그 태도! 천자의 자식으로 태어난 주제에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그 비천한 사고방식! 네가 태어나 지금까지, 네게 바란 것은 딱 하나였다. 네 외숙의 품에서 기어 나오는 것, 그것 하나!”

“…….”

황태자의 눈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곧 꺼질 듯 남은 작은 불씨로, 황제가 북풍한설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넌 그것 하나를 못 하는 놈이지.”

“아!”

황태자가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 황태자를 냉정하게 지켜만 보았다.

“전장으로 간다고? 좋다. 네 외숙과 표기군을 붙여 주지. 잘난 외숙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면, 네 외숙의 반만큼이라도 닮아 와라. 적어도 표서량은 뛰어난 장수이기라도 하니까.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 봐라. 좌장군에게도 널 수습하려 들를 필요 없다 전하고.”

황제의 축객령과 함께, 황태자가 집무실을 나갔다.

얼이 빠진 듯 비틀거리는 황태자의 모습에 내관들이 안절부절못했지만, 황제의 냉정한 태도에 그를 혼자 보내야 했다.

그렇게 황태자가 가장 좋지 못한 상태에, 가장 좋지 못한 시기 그리고 절대 마주치지 말았으면 하는 장소에서, 황태자와 진화가 마주치고 말았다.

“너…….”

황태자가 진화의 앞을 막아서며 진화의 턱밑에서 그를 노려보았다.

붉게 핏발 선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조심스레 질투심만 비치던 이전의 눈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진화에게 위협이 될 리 없었다.

“뒤늦게라도 감사 인사는 생각이 없나 보군. 뭐, 나도 구해 주고 싶어서 구해 준 건 아니니 인사를 받을 마음도 없었지만.”

진화가 황태자의 위협을 무시하며 한 걸음 떨어졌다.

“너무 붙지 마.”

여유로운 진화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듯 황태자가 치를 떨었다.

“네가 이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부황이 지금은 네 편을 들지만, 언제 바뀔지 모른다. 황제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니까. 그분은 여느 아버지처럼 자식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거든. 그리고 용좌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고.”

“허!”

“나 하나 보냈다고 기분이 좋은 모양인데, 겪어 봐라. 부황이 네 편을 든 것만으로도 너는 이제 큰 경쟁자가 되었으니, 황궁의 온갖 살쾡이들이 너를 노릴 것이다.”

마치 저주를 퍼붓듯, 황태자가 진화를 노려보며 악담 같은 경고를 남기고 휙- 하니 지나갔다.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온몸으로 독기를 뿜어내며 대전을 나가는 황태자의 모습에, 기다리고 있던 좌장군이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황자님…….”

황태자와 진화의 충돌을 보고 있던 태감이 걱정스러운 듯 진화를 불렀다.

황태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진화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전으로 들어갔다.

“찾으셨습니까.”

진화가 안으로 들어오자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황태자의 상태를 보아선 뭔가 일이 있었던 듯한데, 황제의 모습에선 전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진화의 뇌리로 황태자의 말이 스쳐 갔다.

‘황제는 여느 아버지와 다르다 했던가? ……확실히.’

황제는 아버지라는 말과 함께 진화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남궁경과 전혀 달랐다.

물론 남궁경도 여느 아버지들 같지는 않았지만.

“조정에서 황태자를 공격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렇습니까?”

“……그렇다.”

진화는 오히려 황제의 이런 모습이 더 대하기 편했다.

한숨을 쉬며 인내하는 모습이 어쩐지 남궁가주와 비슷한 것 같아서일까.

적어도 황제는 진화에게 가장 어려운 감정표현을 바라진 않는다는 점에서, 진화에게 가장 편한 상대였다.

“적사문주는 황태자를 죽이려 했다는데, 설마…… 황태자를 죽이려고 손을 뻗지 않았겠지?”

“그럴 리가요.”

불안한 듯 확인하는 황제에게 진화가 가볍게 웃어 주었다.

“황태자를 죽이는 데 손까지 뻗을 필요도 없습니다.”

“……빌어먹을. 내가 강한 놈을 좋아한다고?”

진화의 말에 황제가 뭔가 불만인 듯 구시렁거렸다.

진화의 귀에 그게 안 들릴 리 없었지만, 진화는 그것을 못 들은 척 무시했다.

황제가 그러했듯, 진화도 황제의 감정표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당부할 것이 있어 불렀다.”

“하명하십시오.”

진화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혈연에 의해 맺어졌지만, 상명하복으로 이어 가는 편안한 관계.

진화는 황제를 대함에 있어서 자연스럽고 편안한 선을 찾은 듯했다.

오히려 진화에게 어려운 것은 자신에게 그 이상을 바라는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였다.

“곧 삼황자의 탄신연회가 있을 것이다. 사흘 연회 중 황실 연회에서 황후를 부탁하마.”

“…….”

그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일이었다.

진화가 말없이 멀뚱멀뚱 보고 있자, 황제가 골치 아픈 얼굴로 엄 태감에게 손짓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