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진압할 진(鎭) 꽃 화(華) : 황궁의 꽃들(4)
황실 연회날이 되었다.
삼황자의 탄신을 기념한 연회였기에 연회장은 염녕전에 마련되었다.
붉은 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어 있는 때라,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마다 염녕전의 아름다운 정원과 화려하게 장식된 연회장의 모습에 감탄하기 바빴다.
주최자인 원귀빈과 삼황자가 미리 나와 손님들을 맞이했다.
“하례드리옵니다, 귀빈마마. 황자 저하.”
“자네들도 왔는가? 고맙네. 들어가 보게.”
후궁들의 인사에 원귀빈이 자애롭게 웃으며 맞았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후궁들은 모처럼 후궁전을 나와 화려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원귀빈은 염녕전 장원의 붉은 꽃보다 화려하게 꾸민 후궁들을 그들의 자리로 들여보냈다.
단상 맞은편 저 말단의 자리로.
그리고 돌아서기 무섭게 얼굴을 굳혔다.
“온갖 떨거지들은 다 모였구나.”
“마마, 황실의 연회이옵니다. 빼놓는 사람이 나오면 도처에서 말을 수군거릴 것입니다.”
한 상궁이 부드럽게 원귀빈의 심기를 달랬다.
염녕전의 밖의 일은 기 상궁이 도맡아 하고 있으나, 한 상궁 역시 원귀빈을 위한 궁녀였다.
원귀빈이 따로 기 상궁을 부리면서 자신의 권한을 나누게 되었지만, 한 상궁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원귀빈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알고 있다. 다만 저 향내 풀풀 풍기는 것들의 속셈이 너무 뻔해서 속이 뒤틀리는 거지.”
“마마.”
한 상궁이 다독이듯 부르는 음성에 원귀빈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흥! 혹여 폐하께서 걸음 하시더라도, 과연 제 년들에게 눈길을 주시기라도 할까? 꿈도 야무지지.”
원귀빈은 황제의 눈에 한 번이라도 들어 보겠다고 발악하는 후궁들을 향해 비소를 날렸다.
하지만 염천교를 지나 염녕전으로 들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하는 순간, 그 비소는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사향을 온몸에 문질러도 진짜 꽃 향에 비할 수는 없음이니. 안 그래?”
끓어오르는 질투심에 눈빛을 번뜩이는 동시에 자조적인 말투.
원귀빈의 시선이 닿는 곳에 황후 조정화가 세상 어떤 꽃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황후만큼이나 단단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한 청년이 황후와 함께하고 있었다.
세상의 빛이 잠시 그들만을 비추고 있는 듯한 모습에, 원귀빈만이 아니라 연회장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는 황후를 보며 원귀빈이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마…….”
한 상궁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원귀빈을 보았다.
원귀빈은 어느새 본래 그녀다운 차갑고 단단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 포기한 것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은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원귀빈의 곁에는 삼황자도 있었다.
똑같이 아들을 곁에 두고도 독하게 입술을 깨무는 어머니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삼황자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원귀빈, 삼황자, 축하하네.”
“마마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 자리를 빛내 주시니 황자에게도 몹시 특별한 영광이 될 것이옵니다.”
원귀빈이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후후, 그대는 여전하군.”
원귀빈의 깍듯한 예의에 황후가 쓸쓸한 눈빛으로 웃었다.
그동안 몸이 좋지 못해 거의 모든 황실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던 황후였다.
그런 황후가 진화의 귀환 연회 이후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자리가 삼황자의 탄신 연회였으니.
황후의 입장에서는 원귀빈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원귀빈은 황후가 오랜만에 황실 행사에 나선 것을 매우 ‘특별하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깍듯한 예의와 함께 거리를 벌렸다.
같은 편이 아닌 황후에겐 어떤 호의도 받을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로 원귀빈다운 모습이었다.
그때, 황후의 뒤에 시립해 있던 궁녀들이 비켜서고 누군가가 다가왔다.
황후와 꼭 닮은 얼굴.
하지만 생각보다 더 크고 다부진 체격에, 단호한 표정은 어딘가 황제의 모습도 보였다.
가장 애증 하는 이들을 동시에 닮은 이황자의 모습에 원귀빈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축하드립니다.”
“이황자도 와 주었군요.”
“마침 황궁에 있을 때니까요.”
아무래도 성격은 황후보다 황제를 더 닮은 모양인 듯.
“……그래요. 와 줘서 고마워요. 편히 즐기다 가세요.”
마침 황궁에 있던 김에 들렀다는 성의 없는 진화의 말에 원귀빈이 애써 자애롭게 웃어 보였다.
황후를 따라 진화와 일행이 연회장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모든 황족들과 후궁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일제히 몸을 굽히며 외치는 인사에, 순식간에 연회장의 주인이 바뀐 듯했다.
황제의 여인이 아닌 제국의 황후가 가지는 권위였다.
단상 정면 정중앙의 자리를 황후와 진화에게 내준 원귀빈과 삼황자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쓴 물을 삼켜야 했다.
* * *
눈앞에 차려진 먹음직스럽고 풍성한 음식.
황궁 악사들과 무희들의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
하지만 진짜 연회는 염녕전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연못, 염천정에 붉은 연이 띄워지고 나서야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는 얌전하게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박수나 치고 있었다면, 붉은 연을 띄우고 삼황자에게 황제가 내리는 축언과 함께 하사주가 내려지면서 비로소 술과 음식이 함께하는 연회가 시작된 것이다.
본격적인 연회를 위해 수십 명의 궁녀들이 나와 연회장을 바꾸었다.
“호오, 머리를 썼네.”
“……뭐가?”
“단상이 없어졌잖아.”
남궁구가 바뀐 자리를 보며 감탄했다.
원형의 식탁 위에 음식과 술이 차려지고, 사람들은 그곳에 일행끼리 모여 앉았다.
황후와 진화, 남궁세가의 손님들이 자리를 함께하고, 바로 양옆으로 원귀빈과 그녀의 자식들 그리고 허미인과 그녀의 자식들이 자리했다.
어찌 보면 연회의 참석자들이 친근하고 편하게 연회를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한 듯 보였다.
하지만 단상 정면의 자리가 사라지면서, 그곳에 있던 위계질서도 사라졌으니.
마치 황후와 원귀빈이 대등하게 앉은 듯 보이지 않는가.
남궁구도 알아챈 원귀빈의 의도를 황후가 모를 리 없었지만, 황후는 그저 미소를 띤 얼굴로 진화를 보고 있었다.
“후후, 가끔은 이런 날도 좋지. 우리 아들 얼굴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까.”
“…….”
황후가 진화의 손을 잡으며 웃자, 진화가 어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귀를 붉혔다.
연회장에서도 내내 진화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황후의 모습에, 황후가 극적으로 되찾은 적통 황자의 존재에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 황후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아들을 찾은 것이 너무 기뻐서 ‘사소한’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때, 옆자리에서 누군가 황후에게 말을 걸었다.
“호호호! 마마, 황자님을 찾은 것이 그리 좋으신가요? 눈에서 꿀이 떨어질 듯합니다.”
“오, 허미인.”
황후와 진화 일행이 앉은 탁자의 옆에는 원귀빈전뿐 아니라 허미인전의 사람들도 있었다.
아래로 처진 눈꼬리가 순후해 보이는 미인이 소리를 높여 웃으며 황후에게 말을 걸었다.
윗전에 먼저 말을 거는 것은 무례였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여자였다면 강등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 사람이다!’
‘피하라고 했는데, 옆자리면 어떡하지?’
‘모르는 척하자.’
허미인의 등장에 조위례의 철저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남궁구, 남궁교명, 남궁진혜가 일제히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허미인도 오랜만이군.”
“사정이 있어서 연회장에 늦는 바람에 인사가 늦었습니다.”
“괜찮네, 그럴 수도 있지.”
“황자 저하도 오랜만에 뵙는군요. 건강해 보이시니 다행입니다.”
태연하게 전하는 인사에 진화의 손을 잡은 황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 전 진화에게 독을 쓴 것으로 가장 의심되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간 잃었던 아들을 다시 잃을 뻔한 사람이 그 말을 들었다.
진화의 손등에 올린 황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진화가 손의 위치를 바꿔 황후의 손을 감싸 쥐었다.
처음으로 전해지는 온기에 황후의 눈이 커졌다.
“아, 얼마 전 건희전에 큰일이 있을 뻔했는데, 그걸 들으셨습니까?”
“……아, 그래서 한 말이었습니다, 건강하셔서 다행이라고. 호호.”
건희전의 소식을 모르는 황족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진화에게 괜찮냐고 먼저 묻는 이들은 없었다.
조위례의 말처럼 다들 전혀 모르는 사람인 척, 상관없는 사람인 척 무시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 꺼낼 줄이야.
처음 있는 반응에 당황한 허미인의 대처가 조금 흔들렸다.
다른 쪽에서 원귀빈이 흥미로운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원귀빈만이 아니라 모든 황족들이 진화를 보고 있었다.
“다들 모르던데, 허미인께서는 과연 귀도 밝으신 모양입니다.”
“그런가요? 호호호. 어쨌든 저하께서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허미인이 전혀 다행이지 않은 눈빛으로 진화를 보며 웃었다.
‘아! 이래서 위험한 여자라 했던가?’
눈빛을 전혀 숨기지 않는 허미인의 모습에 진화는 외조부의 충고를 떠올렸다.
허미인은 순한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저를 대하는 진화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안 그래도 요즘 궁 안이 왜 이렇게 흉흉한지…… 오늘 연회장에 늦은 것도, 누가 감히 공주의 시녀를 다치게 했지 뭡니까.”
“공주의 시녀를요?”
황후와 진화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진심으로 놀란 눈이었다.
그 모습에 되레 허미인이 당황했다.
“모, 모르셨나요? 어떤 이가 관도공주의 시녀와 부딪쳤는데…….”
그때, 한쪽에서 큰 탄성이 나왔다.
“아! 그때 그 공주!”
남궁진혜가 손가락으로 관도공주를 가리키며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남궁진혜의 반응에 관도공주가 퉁퉁 부운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이 천둥벌거숭이가 부딪친 이가 관도공주인지도 모르고 있었구나!’
허미인이 가늘게 눈매를 좁혔다.
“마마, 공주의 시녀를 상하게 한 사람을 연회에 데려오신 겁니까?”
허미인이 자못 섭섭하다는 말투로 황후에게 화살을 돌렸다.
남궁진혜에게 어떤 말도 듣지 못한 황후는 난처한 듯 웃었다.
“이런, 남궁 영애가 궁중에 밝지 못해 관도공주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야.”
하지만 황후도 만만치는 않았다.
관도공주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실례일 수 있으나, 시녀의 일은 깔끔하게 무시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화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진화는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궁진혜에게 물었다.
“누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누님이 어디 다른 사람과 부딪히실 분도 아니고, 기습 공격이라도 당하신 겁니까?”
“아, 아니야. 나도 기습 공격인 줄 알고 모가지를 따려다가, 발을 헛디딘 것 같기에 얼른 피했다니까.”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게. 넘어지면서 그랬는지 그 사람 어깨가 빠졌길래 얼른 넣어 줬어.”
“잘하셨습니다.”
진화가 다행이라며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자연스럽게 상황의 전말을 전하는 대화 덕에, 황후가 차분한 눈으로 허미인을 내려다보았다.
“저런. 시녀가 앞을 잘 보지 못한 모양이군. 폐하께서 가장 아끼셨던 공주를 모시는 시녀인데, 그렇게 부주의하면 쓰나. 필요하다면 장 상궁 편으로 새로운 시녀를 보내 줄 수도 있네.”
황제가 관도공주를 아꼈던 것은 과거의 일이라, 황후가 무심하게 지적했다.
진화의 환영 연회 이후 한 번도 따로 찾은 적이 없으니, 이제 허미인이 관도공주를 무기 삼아 휘두르기도 힘들 것이었다.
“아니요. 호호호! 남궁 영애가 잘 처치를 해 줘서 괜찮을 듯합니다. 단지 공주가 아끼는 아이라 다친 것에 마음이 아팠던 듯하더군요.”
“후후, 제 사람을 아끼는 건 좋은 일이지. 불편한 일이 있거든 황후궁으로 기별을 하게.”
“……감사하옵니다.”
허미인이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당사자인 관도공주가 남궁진혜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 뭔가 옭아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미인이 자리로 돌아가고, 황후는 일렁이는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우리 아들, 듬직하기도 하구나.”
황후는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나서 준 진화의 행동에 감격한 모습이었다.
그들의 뒤에서, 동 태감이 매서운 눈으로 남궁진혜를 노려보고 있었다.
‘관도공주는 피하신다더니, 언제 벌써 만나셨던 겁니까!’
동태감은 조위례에게 당당하게 약속하던 남궁진혜를 떠올리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동 태감 혼자 아찔했던 상황이 지나갔지만, 연회가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조위례와 동 태감이 우려한 상황도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서로 술잔을 나누고 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연회의 주인인 원귀빈의 탁자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이번에는 정말 귀한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면서요?”
“과연. 외조부님께서 구하기 힘든 보검을 보내셨다 들었습니다.”
황자들의 눈짓을 받은 이들이 화제를 꺼내고.
“그런데 형님, 형님은 선물 중에 무엇이 제일 마음에 드십니까?”
“에이, 넌 뭐 하러 그런 것을 묻느냐. 형님이 답하시기 곤란하지 않겠느냐!”
어린 칠왕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묻자, 그 바로 위의 형인 오황자가 칠황자를 나무랐다.
오황자는 생일을 맞은 삼황자의 눈치를 살피는 듯 이리저리 눈동자를 돌렸는데, 그의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문 곳은 바로 옆 탁자의 진화였다.
질문을 받은 삼황자의 시선도 은근히 진화를 향했다.
“하하하! 그게 뭐 어려운 질문이라고. 황태자 저하의 선물이 제일 마음에 들더군. 먼 길 떠나시면서도 동생의 탄신일을 위해 홍연칠검을 구해 주시다니, 형님의 정이 참 깊지 않느냐.”
“우아, 역시 큰형님 전하십니다! 한 번만 보여 주세요, 네?”
“하하하, 나중에. 그렇게 귀한 선물을 자랑해 버리면, 다른 귀빈들이 민망해질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삼황자의 시선이 다시 진화를 향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노골적이라, 민망해질 수 있는 귀빈이 누구인지 모두가 눈치챘다.
황후와 하남 조씨 일가가 따로 귀한 선물을 내렸건만, 어리지만 영악한 황자들이 직접 마련한 선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진화를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동 태감이 안절부절못하며 진화를 보았다.
그때, 철없는 말을 내뱉던 칠왕자가 진화에게 말을 걸었다.
“아! 둘째 형님은 무림인이시니까 묘기를 보여 주면 되겠다!”
“유보야!”
묘기라니.
천한 악사나 무희가 하는 것이 아닌가.
동 태감이 두 눈을 부릅떴다.
원귀빈은 벌써 모르는 척 사태를 방관하고 있었다.
“그렇잖아. 셋째 형님의 생일 선물로 묘기를 보여 주면 되지 않아? 형님들도 보고 싶잖아!”
“아, 그건 그렇지만…….”
칠황자의 철없는 소리에 삼황자와 오황자가 못 이기는 척 진화를 보았다.
“둘째 형님, 무림인들은 진짜 하늘을 날고 물 위도 걸을 수 있나요?”
“바보야, 그건 진짜 대단한 고수들만 하는 거라고!”
“그럼 둘째 형님은? 못 해?”
칠황자가 울상을 지으며 물었다.
영악한 황자들이 교묘하게 이황자를 엮어 가는 모습에,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전부 황자들과 진화를 향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황자.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연회장 모든 사람들이 이황자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방금도, 황자들의 말이 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진화를 찾았다.
진화가 조용히 황자들을 보았다.
한결같이 원귀빈을 닮은 사나운 눈매를 하고, 새끼 늑대처럼 저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하!”
진화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싸움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피하려 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있었으니.
진화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일 선물이라…….”
탓.
진화가 단숨에 날아올라 연천정을 뛰어넘었다.
하늘하늘한 청색 비단옷이 바람결에 펄럭였다.
그리고 천천히.
진화가 염천정 물 위를 걸어오는 모습에,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고…… 다른 건?”
진화가 해사하게 웃으며 턱을 벌리고 있는 세 황자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