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진압할 진(鎭) 꽃 화(華) : 황궁의 꽃들(5)
무공에 조금이라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진화가 보여 주는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았다.
심지어 일반적인 수상비(水上飛)와 달리 저렇게 천천히 물 위를 밟고 서는 것은 남궁세가 사람들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서라도, 사람들은 염천정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진화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녹빛의 물보다 맑고 푸른 옷이 바람 한 점 없는 연못 위에서 하늘거리고, 진화의 전신에서는 은은한 청광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의 것은 아닌 듯, 아름답고 강인한 진화의 모습 또한 방금 천상에서 내려오고 있는 사람 같았다.
진짜 하늘의 자손, 용의 아들.
뇌리와 가슴에 박히는 뚜렷한 무언가를 두고, 모든 이들이 홀린 것처럼 진화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탁.
“허어!”
진화가 연못에서 뛰어올라 세 황자들 앞에 내려섰을 때.
비로소 고요한 연회장에 숨이 트이는 소리가 들렸다.
“…….”
영악하게 진화를 엮으려던 황자들은 어떤 말도 못 하고 진화를 보았다.
황족은 신기한 존재였다.
직접 싸우지도 않고,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전쟁을 벌여 수천, 수만 명을 죽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보물단지처럼 안전하게 모셔진다.
그리고 전쟁에 패하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로 죽음을 맞는 건가?
진화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었다.
진화가 세 황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감히 저를 무대의 광대 취급을 하고도 그저 놀란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두려움 없이.
싸우지 않는 존재들은 다 저렇게 멍청하고 뻔뻔한 것일까.
진화는 입을 벌이고 있는 세 황자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은 뭐가 보고 싶지? 설마 생일 선물 하나에 목숨을 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죽기 전에 소원 하나 못 들어줄까.”
잠시 진화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연회장이 술렁거렸다.
“죽기 전?”
“죽기 전이라니! 황자들을 죽이겠다는 거야?”
비로소 진화의 말을 파악한 사람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원귀빈이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진화를 노려보았다.
“이황자, 지금 형제들을 겁박하는 건가요?”
이제까지 방관하고 있던 원귀빈이 나서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싸늘하게 식은 분위기에 연회장은 이전과 다른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원귀빈의 뒤로 숨는 듯 조용해진 황자들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진화를 비웃고 있었다.
진화도 함께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인을 향해 함부로 경지를 확인하는 건 당연히 죽음을 각오한 결례입니다. 그것도 몰랐습니까? 아니면 설마, 정말로 황자인 내게 무대의 광대처럼 무공을 선보이라고 한 건가?”
마지막엔 말투마저 바뀌었다.
오만하게 세 황자를 내려다보는 진화의 눈빛은 정말로 그들을 죽일 수 있을 듯 차가웠다.
원귀빈이 대답을 망설였다.
무가에서 자라서 무림인들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던 원귀빈이었다.
진화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모욕에 대해서는 참지 않는다는 것.
무림인들은 명예 하나에 검을 들고 생사를 다투는 이들이었다.
지금 보니 눈앞의 황자는 황족이기보다 무림인에 가까웠다.
“황자들이 무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한 결례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형제를 겁박하는 건 참으로 옹졸하지 않나요?”
“무림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로, 황자인 나를 광대 취급 한 거란 말이군요.”
진화의 말에 원귀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진화에게서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압박이 느껴지는 동시에 등 뒤로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심장이 급격하게 뛰고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기운만으로도 상대를 강제하는 힘.
원귀빈은 이것이 무림인들의 살기(殺氣)임을 알았다.
심기가 굳건한 그녀마저 이러할진대 그녀의 뒤에 있던 황자들이라고 무사할까.
“어, 어머니!”
“으으. 사, 살려 줘!”
“으아악! 어머니-!”
가장 어린 칠황자가 울며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급히 내관과 궁녀 들이 움직이려 했지만, 그들은 뭔가에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원귀빈과 황자들이 있는 곳에 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화, 황자!”
원귀빈이 다급하게 진화를 불렀다.
진화가 무심하게 원귀빈을 보았다.
얼음처럼 차고 단단하게 내려앉은 눈빛이 황제의 그것과 꼭 닮아 있는 모습에, 원귀빈은 진화가 기다려 주고 있음을 알았다.
완전히 굴복하고 고개를 숙여야만 저 눈빛이 거두어질 것이다.
“아……직 어린 황자들이 실수를 했어요. 이황자께서 넓은 아량을 보여 형제의 부족함을 감싸 주면 좋겠군요.”
원귀빈의 생각이 옳았다.
원귀빈이 황자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과 함께, 그들을 위협하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윽! 흑! 흐윽-!”
“아아아앙--!”
삼황자가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입을 앙다물고, 오황자와 칠황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관과 궁녀 들이 달려와 칠황자를 안고 그의 실수를 가렸다.
진화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원귀빈이 잔뜩 긴장한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실수를 인정한 이상 다치게 하지 않을 걸 알았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할 수 없는 듯 원귀빈의 눈빛이 겁을 먹은 어미 맹수처럼 맹렬했다.
‘어찌할까.’
저를 건드리고도 희희낙락한 황자들의 모습에 속이 뒤틀려서 겁을 주긴 했는데, 이후에 어찌할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이제야 조위례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황족이 직접 나서는 법은 없습니다. 절대, 절대 다른 황족의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황족은 벌도 아랫사람들이 대신 받는다지?”
진화의 말에 원귀빈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세 황자들을 챙기던 궁인들은 하얗게 질려 얼어붙었다.
그때, 남궁진혜가 반색하며 일어섰다.
“황족은 벌도 다른 사람이 내린다던데, 내가 나서도 되나?”
우지-끈.
남궁진혜의 손에서 나무 의자가 우그러졌다.
파-앗!
남궁진혜의 손 모양 그대로 깊게 우그러진 나무 의자는 남궁진혜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허억!”
아름다운 영애가 보일 거라곤 생각지도 않은 힘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놀라고 있는 사람은 관도공주일 것이다.
‘대가리를 깨겠다더니, 진짜 깰 수 있겠잖아!’
관도공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남궁진혜의 시야에서 조용히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명만 내리시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내일 아침은 절벽 끝에서 눈 뜨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남궁구가 세 황자 중에 하나 고르라는 듯 그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남궁교명이 경쟁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번거롭게 할 필요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지를 잘라 놓겠습니다.”
남궁세가의 세 사람은 어쩐지 조금 신이 난 얼굴이었다.
그들의 뒤에서 동 태감이 부들부들 떨면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고뭉치 어린 내관들이 있는데 차마 윗전의 앞이라 혼내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화가 남궁진혜를 한번 보았다가 동 태감을 보고, 조용히 황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자들이 다른 황자를 모독했으니, 이는 어떤 벌로 다스려야 합니까?”
진화가 황후를 향해 물었다.
황후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진화를 보다 슬쩍 원귀빈을 향해 눈을 돌렸다.
원귀빈이 전에 없이 분한 얼굴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후후후, 귀빈도 어쩔 수 없는 어미로군요. 그러게, 황자들 훈육에 신경 좀 쓸 것이지.’
제 호의를 먼저 거절한 쪽은 원귀빈이었다.
게다가 건드려도 제 아들을 건드리다니.
“황족모독죄는 그 어떤 경우라도 중벌에 해당한단다. 하지만 황자들이 아직 어려 실수를 했음으니, 우리 황자가 사과를 받고 장 오십 대 정도로 봐주렴.”
장 오십 대를 한 번에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황후의 자비로움을 칭송했다.
단칼에 목을 베어도 되는데, 장형이라면 맞으면 죽을 수도 있지만 간혹 살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황후는 장 오십 대를 염녕전 궁인들이 나누어서 맞게 했으니, 앞으로 며칠 동안 콧대 높은 염녕전의 궁인들이 황후궁으로 벌을 받으러 다녀야 할 것이었다.
모두가 황후의 자비로움을 칭송하고, 황후는 일그러진 원귀빈의 얼굴을 보며 만족했다.
* * *
쨍그랑--!
“아아아아아아악-!”
악을 쓰는 소리가 염녕전을 가득 채웠다.
염녕전의 수장인 한 상궁이 장 세 대를 맞고 돌아와 앓아누웠기 때문이다.
설마 염녕전의 상궁까지 부를 줄이야.
원귀빈은 황후에게 제대로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폭발했다.
“마마, 위장군 들었사옵니다.”
“드시라 하라!”
연회에 있었던 일을 들은 위장군 원수경이 염녕전을 찾았다.
“마마.”
“오라버니.”
“괜찮으시옵니까? 이황자가…….”
“됐어요.”
원귀빈은 위장군이 어렵게 꺼내는 위로의 말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
조금 전까지 괴성을 지르며 분노를 표출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 감정을 풀어낸 것뿐이었다.
“황자들에게는 근신을 명했습니다.”
“황자님들께도요?”
“이제 그 아이들도 실패에 대한 대가라는 걸 알 때도 되었으니까요.”
냉정한 원귀빈의 말에 위장군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황자들도 행동거지를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위장군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제 민란을 진압하러 가야 하는데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굴어선 곤란하지요. 황태자와 직접 비교가 될 테니, 적어도 황태자보다는 나아야 할 게 아닙니까.”
“허허허, 안 그래도 그 부분이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마마께서 미리 손을 써 주신다면 한결 편하겠습니다.”
위장군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황자를 그리 두실 겁니까?”
위장군이 은밀하게 물었다.
그러자 원귀빈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못 건드려요. 황자가 생각보다 더 강합니다. 알아보니 남궁세가라는 곳도 어지간한 대호족 집안을 넘어서더군요.”
“흐음…….”
“당장 이황자를 어찌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중요한 건 황태자를 꺼꾸러트리는 것이지. 빈자리가 생겨야 싸울 이유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분노에 찬 고함이 염녕전 밖을 새어 나갈까 염려될 정도였지만, 다행히 원귀빈의 판단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위장군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원귀빈을 보았다.
대장군 아버지에 대장군이 된 오라비까지, 장군부에서 나고 자란 원귀빈의 행동 방식은 매우 합리적이고 실리적이었다.
커다란 목표를 위해서라면 다른 건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원귀빈의 그런 성격은 혈연을 떠나서 커다란 것을 보고 함께 달려가는 동맹으로서 매우 든든한 것이었다.
“이황자는…… 허미인 그년이 나설 거예요. 큰 망신은 내가 당했지만, 허미인 또한 황후의 면전에서 물러나긴 마찬가지였으니. 황태자가 나서는 파군에 우리 사람을 보내 태자의 실정 하나도 놓치지 않게 해요. 그리고 삼황자와 사황자가 함께한다면…….”
“황자들을 붙여 놓으면 모든 공과는 삼황자님의 것이 될 겁니다.”
위장군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황태자를 견제하기 위해 대사마 측과 손을 잡긴 했지만 황태자 못지않게 샌님인 사황자는 첫 전투만으로도 학을 뗄 것이다.
아니, 떼게 만들 것이다.
황궁의 소란과는 별개로 민란과 신제국을 제압하기 위한 군의 준비는 착착 진행 중이었다.
* * *
한제국 군대가 출발 직전이라는 소식은 신제국에도 빠짐없이 전해졌다.
황궁에 있던 첩자들이 모두 축출당하고 눈과 귀가 모두 막힌 상황에서, 귀천성의 연락망이 아픈 곳을 긁어 준 것이다.
그러면서 신제국 황궁에 귀천성의 힘도 점점 더 커졌다.
“그들의 편으로 돌아선 이들이 늘었습니다. 이러다가 저들이 완전히 조정을 장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허, 그걸 누가 모르오? 딱히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소!”
“황제 폐하께서는…….”
“그분이야 곧 한제국의 무너뜨릴 때까지만 그들의 힘을 쓰겠다는 생각이시니까.”
“휴우, 그 전에 놈들이 조정을 장악할 것 같으니 걱정입니다!”
“설마 그렇겠는가? 궁인들로 하여금 빠짐없이 감시 중이지만, 놈들의 목표는 무림이더군. 본래 관과 무림은 별개의 세상이 아닌가. 우리가 한제국을 밀기 시작하면 놈들도 정의맹을 공격한다고 하니, 그러면 놈들도 정신이 없어서 제국에 더 이상 끼어들지 못할 걸세.”
“그러면 다행이지만요.”
신료들이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났다.
대안으로 내세울 것이 없었으니 더 목소리를 키울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또 모이는 모양이군요. 요즘 저들도 바빠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 듯합니다.”
“흐음! 흠!”
신제국의 신료들은 신건궁으로 모이는 귀천성 인사들을 못 본 척, 헛기침을 하며 등을 돌렸다.
신건궁.
신제국 황제가 역천마제와 귀천성 인사들에게 내준 궁이었다.
역천마제는 오랜만에 마제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혼현, 받아라.”
손짓 한 번에 죽간이 혼현마제의 탁자에 날아들었다.
죽간을 본 혼현마제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연구품을 소홀하게 잃어버리면 쓰나.”
“송구합니다.”
무슨 뜻일까.
혼현마제는 역천마제가 이 죽간을 내준 의도에 대해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겨우 표정 관리는 성공했으나, 속이 타들어 갈 정도로 불안했다.
하지만 역천마제의 용무는 거기서 끝이었다.
“소리마제의 자리는 아직인가?”
“혈수문이 끝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음…….”
혼현마제의 대답에 역천마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자리에서 처음 있는 표정 변화라, 혼현마제는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차 한 모금을 마신 역천마제가 덤덤하게 말문을 열었다.
“본 성의 권위를 무시한 자들에게는 마땅한 대가가 필요하지. 독부.”
“예.”
“모두 죽여라.”
“충!”
하늘을 거부한 자들에겐 세상을 빼앗으면 그만이다.
그게 귀천성의 결정이었다.
“암림혈귀갑은 아직 팔현성의 소임이 끝나지 않았다. 혼현, 다른 대체자를 찾아라.”
“존명.”
역천마제의 명에 혼현마제가 고개를 숙였다.
팔현성.
역천마제의 천살성을 감싸고 있는 여덟 별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에게는 그에 마땅한 소임이 있다는 것이 역천마제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혼현마제는 역천마제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는 편이었다.
‘다들 아직 역할이 끝나지 않았지.’
혼현마제의 눈이 마제 후보로서 자리에 함께한 어린 소녀를 향했다.
* * *
퍼-엉.
“진화야!”
남궁진혜가 건희전을 뛰어 들어왔다.
“흐음음!”
동 태감이 헛기침 소리를 내며 남궁진혜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남궁진혜는 눈치조차 자기가 받고 싶을 때만 받는 사람이었다.
“아, 동태, 미안.”
“동태라니요! 성이 동이고, 직책이 태감입니다!”
“아, 미안, 미안.”
남궁진혜가 건성으로 사과하자, 동 태감의 한숨 소리가 커졌다.
그날 연회 이후, 건희전에서 남궁세가 사람들은 손님에서 사고뭉치들로 격하되었다.
물론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화부터가 남궁진혜나 남궁구, 남궁교명이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님!”
진화는 다짜고짜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남궁진혜를 반갑게 맞았다.
남궁진혜는 그런 진화를 향해 활짝, 평소보다 더 활짝 웃었다.
“정의맹으로 돌아가자! 드디어 환마제를 따라 하는 쌍년의 꼬리를 밟았대!”
남궁진혜의 말에 진화도 기뻐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드는 찜찜함은.
“누님, 적호단으로 가는 게 좋은 거야, 환마제를 따라 하는 쌍년을 잡으러 가서 좋은 거야?”
“둘 다!”
남궁구의 물음에 남궁진혜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둘 다.’
진화는 속으로 그 대답을 내내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