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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85)화 (285/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불 화(火) : 시궁창의 사람들(5)

명진 학사의 계산으로 정확히 오늘 밤이 그들의 대법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환마제가 없을 수 없는 시간.

“환마제인지, 환마제가 될 놈인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반드시 죽이다!”

“충!”

적호단주의 말과 함께 적호단이 조용히 산길을 달렸다.

어두운 밤 협곡을 달리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미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한 일이었다.

“부활하고 부활하고 또 부활하는 미친 새끼들. 이번엔 정말로 끝내 버릴 기회다! 죽을까 봐 겁먹는 놈들은 없겠지?”

“지금 누구한테 묻는 겁니까? 단주님 밑에서 무려 십 년째입니다. 이쯤이면 지옥에서도 거부해요, 독하다고.”

“푸하하하하, 십 년 차 이하들은 조심하라고.”

“부단주랑 일 년이면 단주랑 십 년 보내는 거랑 비등하죠!”

“……너 이 새끼, 대가리가 깨지고 싶냐?”

“이것 봐요!”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거는 건 적호단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불안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선 이골이 났다.

거친 말투와 과하게 용감한 몸짓, 유쾌한 대화는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그들만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위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두운 산길을 달리며, 적호단주가 그와 함께 앞서서 적호단을 이끄는 진화를 보았다.

시선을 느낀 진화가 적호단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같은 속도로 가도 위험이 없다는 의미였다.

약속된 신호.

임무에만 몰두한 정직하고 순진한 반응에, 적호단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언제부터 남궁진화가 적호단의 앞을 이끌게 되었을까.

사위는 칠흑처럼 깜깜하고 보이지 않는 발밑은 울퉁불퉁 불안하기만 한 데다, 혹시 적이 알아채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상황이었다.

저는 언제부터 전투를 앞두고 이렇게 웃음을 흘릴 정도로 여유를 가졌을까.

불현듯 일전에 남궁진화의 비범함을 마주하고 남궁조에게 정의맹의 인재로서 써먹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남궁진화가 자신과 적호단을 이끌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지. 경지를 넘어선 고수와 함께 움직이는 것만으로, 적호단의 생명줄을 연장시키고 있는 거니까.’

실질적으로 줄어든 위험.

유쾌한 농담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변화였다.

‘멈춘다. 저기!’

진화가 주먹을 들고 적호단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 몸을 낮춘 이들에게 앞을 가리켰다.

안력을 높여 유심히 지켜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간다!’

* * *

스스스슷----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동굴 입구에 맴돌았다.

“음? 갑자기 웬 바람이지……!”

우두둑.

동굴 밖으로 얼굴을 내놓았던 사람이 천천히 바닥에 쓰러지고, 어둠 속에서 검은 무복을 입은 적호단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시에 적호단주의 뒤에서 푸른 섬광이 쏘아져 나갔다.

번----쩍.

천뢰제왕검법 현첨섬뢰.

새파랗게 날을 빛내는 검 뒤로 어둠보다 더 깊은 진화의 검은 눈동자가 빛났다.

‘입구에 있던 적 섬멸. 안으로.’

동굴의 입구를 지키던 적들이 모두 죽었다는 신호에 적호단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은 동굴을 삼십 장 정도 들어갔을까.

“적이다!”

적호단이 움직이는 울림을 들은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전부 부순다!”

“충!”

적호단주와 남궁진혜의 옆으로 진화와 십 조가 가장 앞으로 나섰다.

적호단에도 경험 많고 관도생들만큼 강한 무인들이 있었지만, 피를 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수단에 있어서는 진화를 비롯해서 팽가 형제와 나하연, 현오, 당혜군만큼 특화되어 있는 인물들도 없었다.

게다가 남궁구와 남궁교명, 제갈상은 밀집된 적진을 헤집고 움직임을 조종할 정도로 영리했고, 관서겸은 귀룡창으로 적들의 간격을 적호단이 죽이기 편한 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퍽! 퍽! 퍽퍽퍽!

안에서 달려 나오는 검은 옷의 무리.

관서겸이 빠르게 창대를 휘둘러 그들의 사이를 벌렸다.

그 뒤로 당혜군의 만천화우가 날아가 박혔다.

타타탁! 탁탁-!

“윽!”

동굴은 적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외길이었지만, 좁은 통로에서는 숫자가 많은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적호단이 크게 불리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타아앗-!”

쉐에에엑--!

캉! 캉! 채-앵!

적호단 일 조와 남궁구, 남궁교명, 제갈상이 검을 든 적들 속을 헤집었다.

횃불이 흔들릴 정도로 거센 바람과 날끼리 부딪히면서 튀어 오르는 불꽃.

하지만 적호단 일 조와 남궁구, 남궁교명, 제갈상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적들의 검을 쳐 내며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

뒤에 있는 거한들이 주먹을 휘두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퍼-억! 퍽퍽! 퍼—억!

창대를 휘두를 때보다 더 질퍽하고 묵직한 소리들이 울렸다.

세 명의 거한, 적호단주와 팽가 형제가 통로를 밀어붙이면서 펼치는 하북팽가의 파갑추에 힘입어 적호단이 점점 적들을 밀고 안으로 움직였다.

“교성흑오대로군!”

“혼현마제가 이곳에 있는 건가?”

진화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놈이 여기에 있다고?’

진화와 일행이 무림에 나와 가장 많이 부딪힌 귀천성 무단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바퀴벌레처럼 끊임없이 생성되는 교성흑오대의 존재에 이제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지만, 혼현마제가 있다는 거라면 생각이 달라졌다.

진화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휘이이익-!

진화가 검을 집어넣고, 천풍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적호단과 적이 섞여 있는 상태에서 천뢰제왕검법 현천섬뢰를 뿌릴 순 없지만, 이미 검과 손의 경계를 무너뜨린 진화였다.

휘이이익---!

퍽! 퍽! 우두둑!

진화의 손에서 폭뢰신권이 펼쳐졌다.

남궁세가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검법이었다.

폭뢰신권은 천뢰장과 더불어 손으로 펼쳐 내는 검법이었다.

쉐에엑--!

진화의 눈앞에서 적의 검이 스쳐 지났다.

아니, 딱 그 정도로만 움직이면서 검을 회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푹-!

진화의 손에서 뇌전이 번뜩이는 것과 함께, 적의 복부 깊숙이 간장을 터뜨렸다.

“끄아아아악---!”

교성흑오대원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봐!”

교성흑오대원이 쓰러져서도 울컥울컥 피를 토해 땅을 적시는 것을 보며 놀란 당혜군이 진화에게 눈치를 주었다.

“…….”

진화가 슬그머니 검을 꺼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남궁구와 남궁교명처럼 적들을 헤집었다.

당혜군은 도망치듯 앞서가는 진화의 모습에 기가 막힌 듯 코웃음을 쳤다.

“도망가 봐야 코앞…… 이런 미친놈!”

실소를 흘리며 진화를 따라가려던 당혜군은 순식간에 제 앞으로 수십 명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진화가 검을 꺼내는 모습에 남궁구나 남궁교명처럼 적들의 검을 먼저 떨어뜨릴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진화와 검을 부딪친 족족 적들이 쓰러진 것이다.

챙-! 챙챙-!

파지직-!

진화와 검을 부딪칠 때마다 진화의 뇌전이 검을 통해 적의 심장을 관통했다.

내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하는 것조차 통하지 않은 것이다.

“뭐……야?”

당혜군이 놀란 눈으로 진화의 뒷모습을 보았다.

* * *

“서둘러라! 어서!”

혼현마제의 다급한 명령에 술사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채근한다고 해서 완벽한 천문이 드는 때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정의맹 놈들이 하필 지금을 노릴 줄이야! 내 실책이야!”

교성흑오대를 움직여 고지마을에서 움직이는 놈들의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상인회가 이방인들을 모두 파악하고 움직이는 통에, 자세히 접근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나가 봐야 하나?”

자책하는 혼현마제를 향해 검마제가 물었다.

하지만 혼현마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곧 이곳까지 당도할 것이네. 적들을 막는 것보다 대법이 완성될 수 있도록 이곳을 지켜 주게.”

검마제를 보내기엔 소리가 너무 가까웠다.

게다가 무슨 수를 쓴 것인지, 전투가 있는 게 분명한데 입구에서부터 피가 흘러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설마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동굴 입구에서 이어진 통로의 양쪽.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도록 묻어 둔 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렇군. 피를 흘리면 안 된다는 것만 알고 있는 거야!’

혼현마제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때.

퍼---억!

무언가에 튕겨 날아가듯, 교성흑오대원들이 제단이 있는 쪽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들을 밀고 들어온 적호단이 혼현마제와 눈이 마주쳤다.

‘저놈은!’

남궁진화였다.

“으드득!”

혼현마제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하얗게 죽어 있는 한쪽 눈.

그리고 비어 있는 한쪽 팔소매.

진화는 여전히 살아 있는 혼현마제와 눈이 마주쳤다.

쉐에에에엑----!

생각과 동시에 날린 검기.

퍼—엉!

혼현마제를 향한 검기의 앞을 누군가 막아섰다.

그리고 서늘할 정도로 시린 살기가 진화를 덮쳐 왔다.

쉐에에엑---!

섬뜩한 느낌에 진화가 자리를 피했다.

진화가 피한 자리를 지난 검기는 순식간에 한쪽 벽에 가서 박혔다.

푸-욱

벽에는 깊숙이, 검에 찔린 흔적이 남았다.

하지만 진화는 그걸 살필 시간도 없이 검을 들었다.

채---앵!

“네가 남궁진화로구나.”

서늘할 정도로 냉정한 목소리가 진화의 귀를 파고들었다.

이제까지 검을 맞댄 상대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이 번쩍이는 진화의 기운을 막아 내며 진화와 마주하고 있었다.

“당신이 검마로군.”

이전 생까지 통틀어 처음 만나는 자였다.

하지만 소문은 들었다.

역천마제가 천하제일검이라 인정한 유일한 남자.

그리고 남궁가주를 위한 해약을 찾으러 나갔다가 행방불명된 제왕검을 죽였을 거라 의심받던 남자.

파지지직---!

진화의 검이 불을 뿜듯 번뜩였다.

검마제의 눈이 커졌다.

채-앵!

진화와 검마제가 각각 한 장씩 뒤로 물러나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때.

“피가 들어옵니다!”

교성흑오대와 환마제에게 홀린 백성들과 뒤섞여 싸우던 적호단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놀란 적호단주가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통로의 양쪽 끝, 땅속에서 울컥거리며 솟아 나온 붉은 피가 그들이 밟고 선 바닥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아주 짧은 구간.

땅속에 묻은 관과 진법이 연결된 부분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붉은 피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흡수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피가 어디서 오는 거야!”

“단주님, 저기!”

제단의 아래.

그들이 밟고 있던 땅의 한가운데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젠장!”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역천대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관을 끊어 버려!”

“통로가 무너질 겁니다. 잘못하면 여기까지 무너질 수 있어요!”

적호단주의 다급한 명을 일 조 조장 서장원이 막아섰다.

환마제의 대법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하면 적호단 전체가 저놈들의 제물이 될 수도 있었다.

“밖으로 가! 나가서 저 빌어먹을 피가 오는 곳을 끊어 버려!”

남궁진혜의 말에 적호단주와 일 조 조장의 눈이 커졌다.

“어서요!”

적호단 부단주의 판단이었다.

추적과 기습에 능한 적호단 일, 이, 삼 조는 이곳에 남아 교성흑오대와 환마제에게 홀린 백성들을 죽이는 것보다 관을 추적하고 피가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어쨌든 적호단의 목적은 역천대법을 파괴하고 새로운 환마제의 탄생을 막는 것이었으니. 많은 적을 죽이는 것보다는 역천대법의 파괴가 더 중요했다.

적호단주가 검마와 맞붙은 진화를 보았다.

그리고 남궁진혜를 향해 말했다.

“여기를 맡긴다!”

“빨리 꺼져요!”

적호단주가 남궁진혜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적호단 일 조, 이 조, 삼 조에게 눈짓했다.

순식간에 적호단 세 개 조가 통로 밖으로 움직이자, 혼현마제가 그들이 가는 쪽으로 현홍사를 날렸다.

“어딜-!”

카---앙!

수백, 수천 가닥의 현홍사가 커다란 대검과 부딪히며 흩어졌다가, 순식간에 앞을 막은 대검을 휘감았다.

하지만 커다란 대검은 꿈쩍도 하지 않고 수천 가닥의 현홍사의 힘을 버텨 냈다.

“재수탱이 늙은이. 너 잘 만났다. 너는 내가 상대한다! 타--앗!”

남궁진혜가 현홍사를 매단 채 검을 휘두르며 뛰어올랐다.

* * *

적호단 이 조, 삼 조가 동굴 입구 양 끝에서 땅에 파묻혀 있던 관을 찾았다.

“젠장! 밑에 더 있어요!”

“뭐?”

“다 못 팝니다! 깊이 있는 것까지 부수려고 하면 입구가 무너질 겁니다!”

삼 조 조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다 끊으려면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먼 곳에서 끊어야 합니다!”

“젠장! 어디서 이어진 거야?”

“위! 저 위쪽입니다.”

땅에 코를 박고 피 냄새를 맡고 철사를 집어넣어 관이 놓인 방향을 가늠하던 이 조 조장이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쪽은 협곡을 만들어 낸 절벽 위쪽이었다.

“횃불입니다! 군대예요!”

일 조 조장 서장원이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절벽 위를 향해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절벽 위쪽에 횃불이 환하게 모여들며 언뜻언뜻 깃발의 일부가 보였다.

적호단주 팽치의 얼굴이 그대로 구겨졌다.

“젠장! 저 쓰불 놈의 새끼들이 어째 가만히 있다 했다! 뭐 해? 당장 가서 멈춘다!”

적호단주 팽치의 명과 함께 적호단 일, 이, 삼 조 단원들이 일제히 산비탈을 기어오르며 절벽 위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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