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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87)화 (287/425)

남궁마제

볼 진(診) 재앙 화(禍) : 운명의 완수(2)

혼현마제의 주살진에 조각난 시체에서 흐른 피가 땅에 스며들고.

천천히.

죽은 몸에서 혼이 일어서는 듯, 피가 배인 땅에서 희미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새벽 숲의 운무보다 어둡고, 붉은.

검은 독무와 피안개가 합쳐지는 듯 땅속에서 피어오른 그것들이 넘실거렸다.

그때.

파지지지직---!

콰광! 쾅! 쾅!

어두운 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뜩이듯, 사방에서 불꽃이 번쩍였다.

“이런……!”

혼현마제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타닷. 탓. 탓. 타-앗!

적호단을 덮치던 섬뜩한 현홍사들이 파지직- 하는 마지막 불꽃과 함께 재가 되어 부서지며 흩어졌다.

적호단의 주변뿐 아니라 동굴 사방에서 날카로운 현홍사가 조각조각 부서져 비처럼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서 냉정할 정도로 침착한 진화의 목소리가 남궁진혜를 불렀다.

“누님!”

진화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궁진혜를 찾고 있었다.

진화의 부름에, 멍하니 부서지는 현홍사를 보고 있던 남궁진혜가 정신을 차렸다.

남궁진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이런 씨!”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었다는 것에 창피함을 느낀 듯 남궁진혜가 작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현재 이곳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남궁진화였다.

아니 어쩌면 적호단주를 포함하더라도, 남궁진화보다 강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적호단원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경지를 넘어선 진화의 실력에 관해 전 무림이 떠들썩한데, 함께 싸우고 있는 적호단원들이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적호단에게 명을 내려야 하는 사람은 남궁진혜였다.

현재 적호단의 전략은 진화가 가장 강한 적을 처리하는 동안 적호단이 주변을 정리하고 진화를 돕는 데에 중점이 맞춰져 있었다.

진화에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를 지켰어야 했다는 것이 남궁진혜의 생각이었다.

아니, 적호단의 임무가 아니라도, 진화가 엄청나게 강한 것과 상관없이, 남궁진혜에게 진화는 지켜 주고 싶은 동생이었다.

못난 꼴을 보였다는 생각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남궁진혜가 혼현마제를 노려보았다.

“저 외팔이 영감은 내가 맡는다. 적호단은 최대한 빨리, 여기 있는 모든 적들을 죽인다!”

“추-웅!”

남궁진혜의 말에 적호단이 기세를 끌어 올려 안으로 나갔다.

“죽인다-! 영감!”

남궁진혜가 사나운 외침과 함께 비호처럼 혼현마제를 향해 뛰어올랐다.

“애송이 계집년이 감히!”

혼현마제의 하나 남은 눈에서 붉디붉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촤라라라라락----!

카—앙!

혼현마제의 현홍사와 남궁진혜의 검이 맞부딪히며 굉음을 내었다.

그와 함께 적호단의 움직임도 더욱 빨라졌다.

퍼-억! 퍽!

쉐에에엑---!

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적호단이 휘두른 검에 교성흑오대와 환마제를 따르는 백성들이 물러섰다.

각오를 단단히 한 적호단의 움직임은 한층 더 냉정해졌다.

교성흑오대의 검이 적호단을 위협했지만, 적호단원은 위험하다 싶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적호단의 목적은 교성흑오대와 환마제를 따르는 백성들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자신들이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퍼---억!

우두두둑!

적호단의 검을 피해 움직인 백성들이 비명도 없이 쓰러졌다.

팽수, 팽신 형제의 파갑추가 정확하게 백성들의 머리를 때려 의식을 잃게 하거나 목을 부러뜨린 것이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휘이이익---- 타탓! 타다다다닷-!

“컥!”

“끄어…….”

퍼—억!

당혜군의 만천화우에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쓰러진 이들의 머리로 현오의 금강붕산권과 나하연의 사천패룡권 화룡결기가 뜨겁게 날아들었다.

퍼억! 퍽! 퍽!

“수박 깨지는 소리 같아서 섬뜩하군.”

“하지만 저쪽이…… 더 섬뜩하지 않아?”

남궁교명의 말에 남궁구가 한쪽을 눈짓했다.

그와 함께.

퍼----엉!

스스스스슷----!

거대한 기운이 한쪽 동굴 벽을 부수며 동굴 전체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진화와 검마제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군.”

검마제가 쏘아 대는 검기를 뇌전으로 터뜨리는 진화를 보며, 남궁교명과 남궁구가 조금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여전히 자신들은 도울 수 없는 싸움이었다.

* * *

카—앙!

캉! 캉! 캉!

눈 바로 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붉은 검기가 진화의 미간을 노리며 정확하게 날아들고, 진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것을 바로 코앞에서 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오는 검기는 검마제를 향해 날려 버렸다.

채-앵!

검기가 자신의 앞까지 닿자 검마제의 눈이 커졌다.

“놀랍군.”

검마제가 감탄했다.

그의 눈빛 또한 그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검마제의 솔직한 반응에 진화의 눈매가 매섭게 굳었다.

검마제 백천흠.

그는 귀천성 인사들 중 유일하게 정파 무림에까지 인정받은 무인이었다.

역천마제를 충심으로 따르는 절개 있는 수하인 동시에 검에 미친 검귀.

하지만 무공에 한해서만은 더없이 솔직하고 오직 검술만 좇는 진짜 무인이라는 평가를 듣던 유일한 마제였다.

이전 생에서 진화와 맞닥뜨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정의맹에서 의와 협도 모르는 살인귀 소리를 듣던 뇌왕 남궁진화와 끊임없이 비교되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검마제의 솔직한 감탄에 진화의 심사가 뒤틀렸다.

“같잖지도 않지! 힘에 혼을 판 검귀 따위가 감히 남궁의 검술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뭐라!”

진화의 말에 검마제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 전에, 진화의 손에서 수십 가닥의 검기가 쏘아져 나갔다.

쉐에엑! 쉐-엑! 쉐에에에엑----!

천뢰제왕검법 낙엽(落曄)--!

푸르디푸른 남궁세가의 번개가 사방에서 수십 갈래의 길을 따라 검마제를 향해 쏘아졌다.

펑! 펑! 펑펑!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기운이 터져 나간 여파가 주변을 흔들었다.

땅이 패고 동굴 벽이 무너졌다.

어지간한 무인이라면 벌집이 되어 쓰러졌어도 남을 위력이었다.

그러나 검마제의 신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뿌옇게 피어오른 돌먼지 사이로 수십 개의 붉은 안광이 존재를 빛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맹수의 눈동자와 같은 그것들이 진화를 향했다.

그 속에서 덤덤한 검마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인정하지. 정파에 너와 같은 무재가 있을 줄은 몰랐군. 하지만 겨우 경지의 영역에 한 발자국 발을 디딘 것으로 우쭐대면 곤란하다.”

진화의 공격에 불구하고 검마제는 처음 섰던 자리를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여태까지 그곳에서 진화에게 수십 개의 검과 같은 기운을 날렸고, 진화의 검기를 막아 냈다.

그리고 지금.

뿌연 먼지가 가라앉자, 어둠 속에 숨은 맹수의 눈동자와 같았던 붉은 정광들이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동자처럼 보였던 작고 동그란 것들은 모두, 검마제가 자신의 기운으로 만들어 낸 검 끝이었다.

검마제의 손에 들린 검이 아닌 수십 개의 기검이 진화를 향해 있었다.

“앞으로 더 정진하게 해 주마!”

쏴아아아아아-----!

만류검종(挽留劍終) 도산검림(刀山劍林)-!

검마제의 말과 함께 수십 개의 붉은색 검이 진화에게 쏟아졌다.

‘오냐, 와라!’

진화의 눈이 번뜩였다.

세간에서 보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진화에겐 생을 거슬러 다시 그만큼의 세월이었다.

진화는 자신이 이전 뇌왕의 시절보다 더 강해졌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금 검마제와의 싸움이야말로, 진화에겐 그걸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파지지지지직----!

진화의 온몸에서 넘실거리던 푸른 기운이 불꽃을 피워 올렸다.

격렬하고 빠르게.

진화의 몸이 폭풍을 헤치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파팟-! 퍼엉!

도무지 눈으로는 좇을 수 없는 속도.

그저 도중에 나는 폭발음, 간간이 보이는 푸른 불꽃과 주변으로 퍼지는 부서진 기운의 여파만으로 진화가 검마제의 검림을 헤치고 있다는 걸 짐작할 뿐이었다.

‘나는 이제 닿을 수 있다-!’

이전 생에서는 손쓸 틈도 없이 광마제의 손에 당했다.

하지만 지금, 광마제만큼이나 강하다고 알려졌던 검마제를 상대하면 할수록, 진화는 이전 생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쉐에에엑---!

캉! 캉! 카-앙!

육체의 한계, 안력의 한계를 벗어나 뇌전으로 열린 안계.

진화는 그 속에서 검마제의 붉은 검을 일일이 불태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진화의 내공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던 천뢰기가 오랜만에 흥분한 듯 검게 요동치기 시작했지만, 진화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네놈들을 죽일 수 있다면 색깔은 신경 쓰지 않겠다!”

이전 생에서, 진화가 뇌왕이라는 별호를 얻은 이면으로 남궁세가의 옥의 티, 태생을 숨길 수 없는 정파 같지 않은 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유.

바로 진화가 죽을힘을 다하는 순간마다 검은 빛을 뿜던 천뢰기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의 푸른색 기운과 다른 검은 번개는 불길함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진화는 거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은, 그때는 검은 빛을 숨겨서라도 함께하고 싶은 가족들이 모두 죽어서 포기해 버린 것이라면 지금은 검은 빛을 뿜어서라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쉐에에에엑-!

카-----앙!

진화와 검마제의 검이 부딪혔다.

검마제의 진짜 검이.

‘닿았다!’

귀천검을 휘둘러 진화의 검을 막아 낸 검마제의 눈이 커졌다.

평정이 깨어진 것과 동시에 사납게 일그러진 검마제의 얼굴을 보며 진화는 통쾌함을 느꼈다.

쉐에에에엑---!

묵빛이 스며든 검푸른 기운이 더 이상 청명할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소낙비를 퍼붓는 듯 쏟아지는 유성우를 막는 듯.

섬전십삼검뢰 붕격우산의 연속적 움직임에 검마제도 더 이상 여유 부릴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진화는 육체의 안력을 넘은 안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검마제만이 아니라는 듯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진화의 공세에 검마제가 뒤로 밀려났다.

그 사실이 검마제의 자존심을 건드린 듯, 그의 기운이 횃불처럼 거세게 끓어올랐다.

“날 죽이기엔 아직 멀었다, 애송이-!”

까아아아앙----!

주작이 날개를 펴듯, 날카로운 검명과 함께 검마제의 검에 실린 거대한 기운이 진화의 번개를 단숨에 떨쳐 버렸다.

퍼----엉

진화가 검마제의 검을 막아 내며 뒤로 물러섰다.

‘이십 보.’

진화의 눈이 순식간에 자신이 물러선 거리를 파악했다.

‘이 정도 차이라면……!’

진화의 눈 속에 떨어지는 유성우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드드드드드드드드----!

바닥이, 땅이 흔들렸다.

쿵! 쿵!

동굴이 흔들리며 천장에서 큰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뭐, 뭐야?”

당황한 적호단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남궁진혜가 혼현마제와 대등하게 맞붙고, 적호단원들이 교성흑오대를 압도하던 차였다.

그런데 몸이 흔들리고 동굴이 무너질 듯 심한 진동이라니.

놀란 적호단원들이 무너지는 바닥을 피해 비교적 안정적인 벽 쪽으로 물러섰다.

남궁진혜 또한 놀란 얼굴로 주변을 보다가, 혼현마제를 노려보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진화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겪는 일.

“혹시?”

진화가 급히 혼현마제를 보았다.

혹시 이전처럼 혼현마제가 동굴을 무너뜨리는 장치를 한 것인가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혼현마제마저도 예상치 못한 일인 듯 놀란 얼굴로 무너지는 바닥을 보고 있었다.

드드드드드-----

땅이 크게 무너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으아아악!”

미처 피하지 못한 백성들이 갈라진 틈으로 떨어졌다.

철-퍽.

익숙한 소리.

진화와 현오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본 적 있는 까만 독물이었다.

“크아아악!”

“끄어…….”

지옥의 문이 열리듯 바닥에서 솟아오른 시커먼 독물이 남아 있던 시체와 떨어진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 사이로.

“부단주님, 거기!”

“나도 보인다!”

적호단은 물론 진화의 눈이 커졌다.

촤아아아아아---!

시커먼 독수 속에서 솟아오르는 단상.

진화는 그 또한 익숙한 것이었다.

‘저건 그때의 그……!’

이전 생에서 진화가 마지막으로 누웠던 그 단상과 같은 것이었다.

독수 속에서 단상이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단상에 누워 있던 여인의 몸이 천천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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