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볼 진(診) 재앙 화(禍) : 운명의 완수(5)
화재 현장.
관군도 아닌 복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무사들이 앞을 지키고 녹색 무복을 입은 이들이 현장 곳곳에 남은 시체를 조사하고 다녔다.
“허어, 장관이군요. 하오문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당문의 독의들이 현장을 누비는 광경이라니.”
월하회주 정소팔이 혈수문 화재 현장을 둘러보며 경탄을 했다.
“하오문이 사패천 소속으로 들어가고 난 후에도 이렇게 협력할 일은 없었으니까요.”
하오문주 채명지가 은근히 웃으며 옆을 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당문에서 나온 독의장 당황이 있었다.
하오문이 같은 황도에 있으면서도 당문과 협력할 일이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당문 때문이었는데, 그동안 당문은 사천을 떠나 황도로 피난 온 뒤 가세를 회복하는 데에 힘을 쏟았을 뿐 무림이나 정의맹의 일에는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하오문주는 은근슬쩍 그런 당문의 소극적인 태도를 꼬집은 것이었다.
하지만 독의장 당황은 하오문주의 말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관의 조치가 빨랐더군요.”
“하남 조씨 가문에 알렸습니다. 낙양부에 알리는 것보다 조치가 빠르더군요.”
월하회주는 이 상황에서도 제 필요한 말만 하고 마는 당황의 태도에 웃음을 흘렸다.
‘사패천의 암고래가 임자를 만났군.’
당황의 뒤에서 그에게 눈을 흘기고 있던 하오문주는 월하회주와 눈을 마주치자 노골적으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
한 사람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위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기어코 피를 볼 때까지 찔러 볼 위인이니.
“임자를 만난 것은 나인가. 허허.”
월하회주는 앞으로도 이 협력작업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시료의 채취가 모두 끝이 나고.
그날 저녁 월하루 꼭대기 방에서 월하회주와 하오문주, 독의장 당황이 다시 모였다.
“결과는요?”
하오문주 채명지가 대뜸 결과부터 물었다.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그들과 함께 있기 싫다는 기색이 풀풀 풍겨 나왔지만, 월하회주의 예상대로 거기에 굴할 당황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었소.”
“뭐예요?”
당황의 당당한 대답에 하오문주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섰다.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며 회의를 미뤘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요?”
“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알아내야 하는 것이었소.”
“뭐라고요?”
덤덤한 당황의 말에 하오문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자 안 되겠다 싶었던 월하회주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자, 문주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독의장도 제대로 당문의 결론을 설명해 주시지요.”
월하회주의 말에 당황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오문주는 그런 당황을 째려보며 한발 물러섰다.
탁.
당황이 탁자 위에 접시 하나를 내놓았다.
그리고 작은 호리병에 든 내용물을 하얀 접시 위에 부었다.
독한 백주 냄새와 함께 검게 탄 조각들.
“죽은 혈수문주의 간과 비장, 타다 만 혈맥이오. 어떤 독이든 간에 독기가 쌓이기 마련인데, 보다시피 독기는 하나도 남지 않았소.”
보다시피라니…….
애초에 뭘 봐야 하는지도 몰랐다.
하오문주와 눈빛을 마주하니, 그녀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그렇군요. 그럼 혈수문주를 죽인 것은 독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월하회주가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 갔다.
“아니오. 이 혈관은 화재로 탄 것이 아니라 그 전에 말라붙은 것이오.”
“호오.”
당황이 접시 위의 혈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에도 월하회주와 하오문주는 접시 위의 혈관의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지만, 월하회주가 적당히 호응을 하자 이야기는 순조롭게 이어졌다.
“간과 비장에 독기 하나 없이 혈맥을 말려 죽이는 독은 당문이 알기로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소.”
당황의 말에 월하회주의 눈이 이채를 띠고 반짝였다.
월하회주가 뭔가 확인하려는 듯 하오문주에게 물었다.
“문주님, 남은 사체나 현장에서 다른 무공의 흔적은 발견하셨습니까?”
“딱 한 놈. 문 앞에 남아 있던 사체는 날카로운 손톱에 찔려 죽은 흔적이 남았어요.”
“혈수문주나 다른 사체에서는 없었다는 말이군요.”
“네. 현장에 다른 전투 흔적은 하나도 없었어요. 천하의 혈수문이 저항도 하기 전에 전부 독살당했다고 봐야겠죠.”
하오문주의 말에 월하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빛내며 당황에게 물었다.
“당문에서는 이 독을 전에도 본 적이 있습니까?”
“…….”
월하회주의 말에 당황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닫았다.
‘본 적이 있으나 말을 하기 어렵다는 의미로군.’
월하회주는 당황의 침묵을 이해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의선문에 오랫동안 계신 그분이 이 독에 쓰러지신 것이 맞습니까?”
“……!”
월하회주의 질문에 당황이 놀란 눈을 떴다.
월하회주가 의선문에 계신 그분이라 높일 만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월하회주가 대강의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자 당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독의라 하나 의원입니다. 환자의 사정에 대해 동의 없이 말하기 곤란함을 이해해 주시오.”
“대답은 충분합니다.”
당황의 말에 월하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이번에는 하오문주도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리 사패천 소공자가 근래에 의선문을 찾은 적이 있어요. 그분과 같은 독에 당했다고 판단해서였죠. ……맞나요?”
하오문주의 질문에 월하회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오문주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독부로군요.”
귀천성 팔마제 중 하나인 독마제 독부 은요.
독이라면 중원 제일이라는 당문과 천하제일 의가라는 의선문에서도 해독해 내지 못한 독을 쓰는 여자는 그녀밖에 없었다.
“귀천성에서 혈수문을 없앨 이유가 있소?”
“소리마제 문악이 남궁세가의 손에 죽고 살인시문 전체가 멸문당했어요. 새로운 소리마제가 필요했겠죠. 영악하고 속물적인 혈수문주가 그런 거래 건수를 놓칠 리 없을 테고……. 귀천성에 거래를 제안하는 건 곧 거절이죠. 거절의 대가는, 보는 바와 같고요.”
독에 관해서는 당문보다 못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상황을 유추하는 데에선 하오문주를 따라갈 자는 없었다.
하오문주는 개개인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다음 행동까지 추리해 내었다.
게다가 자신의 추리에 저만한 확신을 가진다는 건…… 그건 월하회주인 정소팔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과연. 성녀님께서 하오문주를 눈여겨보시는 이유를 알겠군.’
월하회주는 내심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가는 하오문주에 감탄하는 한편, 자신이 해야 할 일 또한 잊지 않았다.
“독의장, 제가 다른 시체를 구해 주면, 그 시체의 혈맥을 보고 독을 알아낼 수 있습니까?”
“다른 시체 말이오?”
월하회주의 말에 당황은 물론 하오문주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귀천성이 혈수문에 손을 뻗었다가 거래가 결렬되었다……. 그것 말고 다른 게 더 남았나요?”
하오문주의 물음에도 월하회주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당황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황궁 안에서 죽은 시체입니다. 가능합니까?”
“……부패가 심하지 않다면 가능합니다.”
당황이 대답을 하고 나자, 월하회주가 심각한 얼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황도에서는 정쟁을 통해서 많은 신료들과 후궁들이 죽었습니다. 당장 황궁의 일이라 무림의 일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고, 사실 당문의 결과를 듣기 전까지는 혈수문의 혈사도 정쟁에 엮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독에 대해 듣다 보니…… 며칠 전, 월하회에서 하남 조씨 문중의 의뢰를 받아 조사 중인 일이 생각나더군요. 독의 흔적이 남지 않는 독살 증거를 찾아 달라는.”
“독의 흔적이 남지 않는 독살의 증거라니…… 설마?”
월하회주의 말에 하오문주와 당황의 눈이 커졌다.
“중원에 그러한 독이 귀천성 독부의 것밖에 없다면, 아무래도 독부가 오래전부터 황도에 있었던 모양이군요.”
월하회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래도 하오문과 당문을 넘어 협력의 범위가 조금 더 넓어질 듯했다.
* * *
황궁 영수전.
황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후궁전이라는 평과 달리, 영수전 안의 분위기는 살얼음판같이 고요했다.
엄격하고 잔인한 주인을 가진 염녕전조차 그 안의 궁인들끼리는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이들만의 끈끈한 정이 있기 마련인데, 영수전 궁인들은 서로를 향해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 아슬아슬한 고요함 속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영주전의 주인, 미인 허양뿐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 오늘은 푸른색으로 해.”
“예, 마마.”
나비가 날갯짓을 하듯 나긋나긋한 목소리.
실수를 했다고 곧장 따귀가 날아들거나 채찍을 맞는 일이 없었음에도 어린 궁인들은 벌벌 떨리는 손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킥!”
그 모습을 보며 허미인이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어린 궁인의 얼굴이 당장 기절할 듯 하얗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후궁으로서는 최초로 악랄한 손 속에 대한 질책성 강등을 당한 사람이 바로 그들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영수전에서 뭔가 잘못을 하면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조용히 시체로 발견된다.
그냥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문이 아니라 실제 오늘 아침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마마, 모 상궁이 환궁하였습니다.”
“응? 그래? 어서 오라고 해.”
밖에서 알리는 말에 허미인이 반색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제를 제외하고 그녀가 이처럼 반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모 상궁!”
허미인이 꿀 떨어지는 듯 진득한 목소리로 모 상궁이라 하는 중년 여인을 불렀다.
간만에 친정어머니를 본 듯 허미인이 한달음에 달려갔다.
모 상궁은 푸근한 몸으로 달려와 안기는 허미인을 익숙한 듯 토닥거렸다.
“마마,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모 상궁이 없어서 얼마나 아쉬웠다고.”
허미인은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모 상궁에게 애교스럽게 투덜거렸다.
모 상궁은 순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허미인의 어리광을 받아 주었다.
“호호호, 우리 마마께서 그러셨어요? 송구하옵니다. 이년이 원체 몸이 느려 마마를 기다리게 했군요.”
“괜찮아. 어쨌든 돌아왔으니까.”
허미인이 가는 눈을 사르륵 접으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머리 장식을 마저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모 상궁이 당연한 듯이 허미인의 뒤를 땄다.
“아침에 또 하나가 나갔다고요?”
“상관없어. 그딴 년 따위.”
“마마, 너무 자주 쓰시면 황제 폐하께서 싫어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모 상궁이 허미인의 머리를 빗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하지만…… 됐어! 요즘은 영수전엔 발길도 안 하시는데, 궁녀 몇이 죽어 나간들 신경도 안 쓰실걸. 흥!”
“…….”
궁녀들의 죽음은 이제 황제의 관심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허미인에게 중요한 건 그 사실뿐인 듯했다.
“그보다 모 상궁, 황후전에서 내 꽃 한 송이를 꺾어 갔어. 그런데 그게 죽었다는 소리가 도통 안 들리네?”
“이런, 별일이군요. 황후전에서 마마의 꽃을 가져가시다니.”
“흥, 황후의 아들에게 조그마한 장난을 쳤더니 화가 났나 봐.”
“……이황자에게 장난을 치셨나요?”
허미인의 모든 말을 유연하게 받아 주던 모 상궁이 잠시 멈칫했다.
이황자라니…… 그런 일이라면 황후전도 예사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하도 황제 폐하께서 걔만 찾아 대니까. 심술이 나서 그랬어.”
“마마, 그분은…….”
“그런데 말이야, 모 상궁.”
모 상궁은 허미인에게 뭔가 주의를 주려 했지만, 허미인이 대뜸 몸을 돌리며 모 상궁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로 모 상궁과 눈을 마주했다.
“걔가 안 죽었어, 해독제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에 말간 눈이 어쩐지 서늘하게 모 상궁을 비쳤다.
마치 눈빛으로 모 상궁을 추궁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허미인은 모 상궁을 추궁하고 있었다.
“……궁녀들에게 쓰던 것을 보내셨나요?”
“응. 혹시 그래서 안 죽은 거야?”
“듣기로 이황자께서는 무림인이라 하셨으니, 궁녀들에게 쓰는 그것으로는 부족하셨을 거예요.”
“아아, 그런 거야? 그럼……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마마.”
“호호,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니, 뭐, 그걸 당장 쓰겠다는 건 아니고.”
모 상궁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허미인이 사르르 눈매를 접으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모 상궁에게 머리카락을 맡겼다.
“황후궁에 잡힌 쓸모없는 꽃은 모 상궁이 처리해 줄 거지?”
“물론입니다.”
“호호, 그래. 역시 모 상궁이 있어야 편해.”
여상한 태도로 사고의 수습을 맡기는 허미인의 모습에, 그녀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모 상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다음 날, 다행히 현오가 무사히 깨어났다.
“아아아아아아----!”
현오의 방에서 비명이 나고.
마침 현오에게 오고 있던 관도생 일행이 그 소리를 들었다.
“고통은 있어도 후유증은 없을 거라더니. 저렇게 소리를 지를 정도로 아픈 건가?”
팽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궁교명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당혜군조차도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제일 가까이에서 현오를 지켰던 남궁교명은 태연하기만 했다.
“아, 지금쯤 그 소식을 들었겠네. 그 소식 때문이니 걱정하지 말게.”
“그 소식?”
“위장을 다쳐서 한동안 금식을 해야 된다더군. 한 일주일?”
“…….”
모두가 황당하다는 듯 남궁교명을 보았다.
그때, 현오의 방에서 다시 현오의 비통에 찬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아--! 부처님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신단 말입니까! 차라리 절 데려가시지요!”
“…….”
“일어나자마자, 하루치 끼니를 한 번에 찾더군. 동정할 가치도 없는 놈이야.”
남궁교명이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만 그럴 뿐, 남궁교명의 손에는 물보다 조금 나은 미음이 들려 있었다.
현오는 오랜만에 만난 친우들에게 인사도 하기 전에 미음을 들이켜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말하지 않아도 몸은 괜찮은 거 같네.”
꽤 많은 피를 흘렸던 터라 은근히 마음을 졸였던 관도생들은 현오의 모습이 반가운 듯 웃었다.
“우리 도련님이 하도 잘 붙여 놔서 끄떡도 없대.”
“아파서 죽을 뻔했지! 삼도천을 마시려는 찰나에 건져진 느낌일세.”
“부처님이 너한테는 물도 주기 아까우셨나 보다.”
“뭐야?”
“하하하하하!”
모처럼 만난 이들은 바로 어제도 그러했던 것처럼 시시덕거렸다.
오늘 깨어난 현오도 그렇지만, 다른 이들도 오늘에서야 겨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환마제의 악몽을 스스로 깨고 검을 들었던 진화나 현오, 나하연과 달리, 다른 이들은 나하연이 여인을 죽일 때까지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었다.
그리고 억지로 깨어진 악몽에서 눈을 뜨자마자 본 광경이 피를 철철 흘리는 현오였으니.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편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 하루의 시간이 필요했다.
“으, 흉터가 상당하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젊고 탱탱한 몸을 가졌어도 치명적인 흉터일세. 남들이 보면 대머리 스님이 아니라 대머리 산적인 줄 오해할 걸세.”
“그래. 이 정도면 우리 도련님이 책임을 져야지.”
타---앙!
“나란히 황천으로 보내 줄까?”
나하연이 주먹으로 침상 한 귀퉁이를 부수며 진화의 책임을 운운하던 현오와 남궁구를 노려보았다.
나하연은 아직 후유증을 털어 버리지 못한 듯도 했다.
현오와 일행이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진화는 적호단주의 호출을 받아 그의 방에 왔다.
적호단주의 방에는 남궁진혜와 각조 조장들이 먼저 와 있었다.
“내일 바로 정의맹으로 귀환한다.”
“갑자기요? 사흘은 쉬고 움직일 거라더니?”
적호단주의 말에 남궁진혜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적호단주가 진화를 힐끔 보고는 대답했다.
“맹에 일이 생겼다는군. 준비해라.”
“어이구, 쉬질 못하는군.”
“맹이 그렇지. 뭐.”
“추-웅!”
적호단주의 명에 다른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귀환 준비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진화도 십 조에 귀환을 알리려 나가려는데, 적호단주가 진화의 손에 뭔가를 쥐여 주었다.
“……?”
“특별히 너한테 온 전서다.”
진화는 방을 나오자마자 전서를 확인했다.
[좌활백설옥이 깨졌다. 적호단과 귀환 후 은밀하게 올 것.]
내용을 본 진화가 저도 모르게 전서를 꾹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