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진압할 진(鎭) 꽃 화(花) : 밝히는 자, 아는 자, 숨기는 자(5)
“인이에게 그런 독을 먹일 줄 알았다면 내가 먹었을 겁니다.”
그때의 일에 대해 말을 하는 사황자의 얼굴은 지독한 가시가 심장에 박힌 듯 아파 보였다.
“한창 허미인이 후궁전에서 일어나는 독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범인인 게 확실했죠.”
사황자는 허미인을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다.
그녀를 말하는 입엔 냉소마저 걸려 있었다.
“허미인이 의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택한 방법이 자식 중 하나에게 똑같이 독을 먹이는 거였습니다, 제정신이라면 어미가 자식에게 그런 짓을 할 리 없으니까.”
하지만 허미인은 했다.
육황자 한유인에게 독을 먹이고, 자식을 잃은 슬픈 어미를 연기했다.
황제는 물론 대소 신료 누구도 그런 저급한 연극에 속지 않았다. 오히려 자식을 그렇게 만들 정도로 미쳐 있는 그녀에게 질려 버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증거와 명분이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을 건드린다는 건 도덕적 측면에서 체면을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었고, 누구도, 황제마저도 ‘넌 미쳤으니 자식을 그렇게 했지?’라고 묻지 못했다.
증인이나 증거 하나 남지 않은 상황에서 허미인이 자식까지 해쳐 가며 명분을 가져간 것이다.
조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투기와 악독한 행실을 트집 잡아 용화였던 허씨를 미인으로 강등시킨 것이 전부였다.
결국 육황자 한유인의 희생으로 그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그 여자와 허미인이 원하는 대로였죠.”
사황자의 눈빛에서 짙은 원망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 여자가 해독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을 찾는 날, 혹은 제가 황태자가 되는 날에 그 해독제를 주기로 했으니. 젠장! 황제 폐하께서 미친 여자의 아들을 황태자 위에 올릴 리 없지요! 세상이 알고 그 여자도 아는 것을, 망할 그 미친 여자만 모르고 있어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약 기운으로만 연명한 게 벌써 수년째입니다. 육황자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태의도 이제 슬슬 위험하다 했고요. 그런데도 그 미친 여자는……!”
결국 사황자의 눈에서 눈물과 함께 지독한 증오가 터져 나왔다.
사황자의 입으로 듣는 사건의 전말.
일행 모두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사황자를 보았다.
황자라는 껍데기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고작 열일곱 살짜리의 얼굴이 보였다.
“황제 폐하는?”
“태의를 동원해서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백방으로 애써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허미인과 그 여자를 건드리지 못하는 이유도 반쯤은 해독제 때문이었고. 그 여자는 유인이를 허미인의 인질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폐하의 인질이었던 거죠. 그런데…….”
사황자가 진화를 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진화에게 향했다.
“허미인이 이황자 형님까지 건드리는 바람에, 폐하와 황후마마께서 더는 참지 않으시려고 합니다. 무, 물론 그걸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유인이는…….”
결론적으로 사황자가 급해진 것이 진화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진화로 인해 황후와 하남 조씨가 그 여자를 쫓기 시작했고, 공교롭게 월하회가 조정의 일과 무림의 일에서 연관성을 찾았다.
당문이 독마제 은요의 독으로 확신했고, 그다음은 정사 무림과 황실이 독마제와 허씨 집안을 본격적으로 노리게 된 것이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는 속에서, 오직 사황자만이 육황자의 안위를 걱정했다.
‘황제는 보통의 아비와 다르다 했던가?’
진화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저 때문에 황제가 육황자를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진화는 육황자의 생사에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슬쩍.
적호단 십 조 일행이 아닌 척 진화를 힐끗거렸다.
그들도 진화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 독이라면 내가 해독할 수 있다.”
“아! 가, 감사합니다!”
진화의 말에 사황자가 크게 안도하고 기뻐했다.
일행 역시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았다.
“너는, 증언을 할 수 있겠나?”
낳아 준 어미를 죽이게 될 것이었다.
“……제게 선택지가 있습니까?”
“없다.”
“하하, 그냥 물어본 것입니다.”
저 또한 폐서인의 자식이 될 것이다.
지금의 황태자가 그것 때문에 제국의 황태자임에도 불구하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면, 그 멍에가 두고두고 사황자의 발목을 잡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고작 발목 하나 내주고 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증언할 것입니다.”
진화의 단호한 거절에 멋쩍게 웃은 사황자가, 진지하게 각오를 세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죄책감도 없나?’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할 일은 해야지. 아니면 네가 대표로 단주님께 욕 들어 먹을 거냐?’
‘……모름지기 남자라면 차가워질 때가 있어야지.’
‘장하다, 우리 황자 시주!’
십 조 단원들은 이전보다 더 흐뭇한 얼굴로 그들을 보았다.
“그 여자가 모 상궁 맞나?”
“아니요. 모 상궁과 그녀가 데려온 이들은 ‘그 여자’의 수하들일 뿐입니다. 그 여자는 대사마 허임, 외조부 댁에 있을 겁니다.”
사황자의 말이 끝나자, 남궁구가 달려 나가고 진화와 적호단 십 조 또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스스스스슷--!
적호단과 당문, 하오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금군을 움직이는 것은 황제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일로, 그사이 독마제 은요나 그 일파가 눈치를 채고 도망을 칠까 봐 무림에서 먼저 움직인 것이다.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허씨 가문의 장원은 아직 대사마 허임의 집으로, 적호단과 당문, 하오문은 장원의 주변을 빼곡하게 에워싼 채 금군의 도착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부터 쥐 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다. 들어가는 놈은 그냥 두고 나오는 놈들은 잡아서 빼돌려 놔라.”
“충!”
적호단주 팽치가 눈을 부라리며 허씨 가문 장원을 노려보았다.
“독의들은 독마제나 그 수하들의 용독에 대비하고, 혹시 장원 주변에 함정은 없는지 살펴라.”
“예.”
보통 독공은 은밀한 용독이 생명이라 어지간한 독공의 고수가 아닌 이상 미리 정해진 곳에 독을 발라 놓은 경우가 많았다. 하여 당문의 독의들은 독의장 당황의 명에 따라 허씨 가문 장원의 출입로를 중심으로 수색에 나섰다.
“전서구나 다른 방법을 통해 전서를 주고받을 수 있으니, 날아다니는 것부터 기어 다니는 것까지 사람이 아닌 건 전부 죽여라.”
“예.”
하오문주 채명지의 냉철한 명에 흑의 흑면을 한 하오문도들이 나무 그림자 속으로 은밀하게 숨어 들어갔다.
팽팽한 긴장감이 저자에 흐르면서, 길을 지나는 일반 백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스산한 분위기에 몸을 떨었다.
잠시 후, 자연스럽게 주변을 통제한 적호단에 의해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밖에서 적호단과 당문, 하오문이 금군을 기다리는 사이.
진화와 적호단 십 조, 그리고 연락을 받고 들어온 남궁진혜와 적호단 일 조는 곧바로 영수전으로 향했다.
척. 척. 척. 척.
금군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진화와 적호단의 뒤를 따랐다.
사황자의 움직임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것인지, 영수전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미인 허씨와 영수전 궁인들은 문을 열고 황명을 받으라!”
엄 태감이 앞으로 나서 황명을 들고 소리쳤지만 영수전 문은 열리지 않고 고요하기만 했다.
“흠흠, 미인…… 엇, 황자님?”
영수전의 낯 뜨겁고 무엄한 행실에 엄 태감이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키워 다시 나서려는 순간, 진화가 엄 태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타---앙!
“황자님!”
아무 말도 않고 정문을 날려 버리는 진화의 행동에 엄 태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뭔가 말을 하기 전에 부서진 문 안쪽에서 검기가 날아들었다.
쉐에에엑--!
카-앙! 퍼억!
안에서 날아든 검기보다 남궁진혜의 검이 더 빨랐다.
새파랗고 엄 태감만큼이나 큰 검강을 발현한 남궁진혜가 진화의 앞으로 날아든 검기를 막은 것이다.
“이 쌍년들이 했다 이거지? 전부 조진다!”
“추웅…… 아, 아니, 부단주님! 잠깐!”
반사적으로 외치려던 일 조 조장 서장원이 급하게 남궁진혜를 부르며 엄 태감을 보았다.
후궁전에서 가장 아름답다던 영수전 문이 부서진 순간부터 남궁진혜의 검강에 막힌 아니, 남궁진혜의 검강에 튕겨 나간 검기가 영수전 벽을 박살 내기까지, 모든 광경을 목격한 엄 태감은 곧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눈을 뒤집고 있었다.
일 조 조장 서장원이 급하게 진화를 찾았다.
날뛰는 미친 소를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장원은 진화가 남궁진혜를 말릴 순 있으나 이제까지 그녀를 말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몰랐다.
“누님의 검강이 그때보다 짙어졌군.”
진화가 느긋하게 진혜의 뒤를 따라 영수전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모 상궁이 데려온 수하들로 보이는 궁녀들이 남궁진혜에게 대항하고 있었다.
‘저긴 괜찮아.’
진화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한 곳을 살피던 진화가 손을 뻗었다.
퍼---엉!
“꺄아아악!”
천뢰장 한 방에 본관 창문이 폭발하듯 사라지고,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허미인과 궁녀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하연, 당혜군, 저들을 끌고 나와라.”
“충!”
곧 폐서인이 되거나 처형될 것이 자명하나 그래도 한때는 황제의 여인이었던 여자라, 진화는 같은 여성인 나하연과 당혜군에게 허미인과 궁녀들을 맡겼다.
“까아아아악-!”
“이, 이거 놔라! 네 이년! 감히 내가 누군 줄 알…… 아아악!”
허미인이 궁녀 둘과 함께 나하연의 양손에 머리채가 잡혀 질질 끌려 나오는 모습에, 과연 진화의 결정이 배려였는지는 의문이었다.
나하연의 원초적인 폭력 앞에 당혜군은 남은 궁녀들을 손쉽게 끌어낼 수 있었다.
“여기 역적들이 숨어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수전 외에도 후궁전 곳곳에 귀천성 세력이 숨어 있었던 듯, 금군의 고함이 곳곳에서 울렸다.
“일 조는 저쪽을 맡죠. 팽가 형제와 제갈상, 관서겸, 도우러 가라.”
“충.”
적호단에서의 직위는 같은 조장이었지만 이곳은 황궁이고 진화는 경지도 넘었지 않은가.
서장원은 체면이고 뭐고 구원의 동아줄을 잡은 듯 조원들과 함께 이 난장판에서 발을 뺐다.
“얍삽한 뒷모습에 속셈이 투명하게 드러나는군.”
“저 마녀는 이제 누가 말리냐?”
“…….”
궁녀로 위장한 독마제의 끄나풀들을 검강으로 두들겨 패는 남궁진혜의 모습을 보며 남궁구와 남궁교명 모두 말이 없어졌다.
저러다 죽으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저기에 끼어드는 것보다 그편이 낫겠다 싶었다.
다행히 남궁구와 남궁교명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구, 교명, 저쪽.
진화의 전음에 따라 고개를 돌린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영수전에 있는 연못에 잔잔한 파동이 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화의 손짓이 아니었다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파동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퇴로를 막아설 준비를 하고.
진화의 손에서 번뜩이던 뇌전이 연못을 향해 쏘아졌다.
파지지지지직-----!
파다다다닷! 타다다다닷!
끓는 기름에 물방울이 떨어진 듯.
푸른 뇌전이 순식간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못 전체를 뒤덮었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난리였다.
“…….”
퍼더덕!
잉어 한 마리가 연못 밖으로 튀어 오른 것을 끝으로, 연못에 있던 모든 생명체가 둥둥 떠올랐다.
그 안에 있던 사람도 함께.
“모 상궁 그 여자 맞아?”
“모 상궁이건 누구건, 이미 죽지 않았을까.”
황금 열 관에 버금가는 비단잉어들이 집단으로 폐사당한 가운데, 모든 사람들의 눈이 진화에게 향했다.
“살아 있다. 건져 와.”
진화의 명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민망함을 숨기고 기절한 모 상궁을 건져 냈다.
둥. 둥.
모 상궁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장대에 끌려 나오는 광경을 모두 넋을 잃고 보는 가운데.
우지--끈!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굉음이 울렸다.
콰---광! 쿵! 콰-앙!
“…….”
“허! ……폐, 폐하!”
고작 후궁 하나와 궁녀들을 포박하여 압송하는 일에, 후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광을 자랑하던 영수전 본관이 무너졌으니.
엄 태감은 황제 폐하를 볼 낯이 없어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 * *
콰---앙!
“역적 허임은 황명을 받으라!”
“모조리 끌어내라!”
사례교위 조정호의 명과 함께 사례군들이 순식간에 대사마 허임의 장원에 있던 식솔들을 끌어내어 분리하기 시작했다.
허임의 일가와 노비, 허씨 일가의 손님들은 각자 금군에 의해 끌려 나갔다.
“아아악-!”
“꺄악!”
“이거 놔라!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오해가 있는 것이다! 내, 폐하께 고해 네놈들의 무례를 벌할 것이다! 이것 놔라!”
몸은 떨어졌어도 마음은 통했던 것일까.
대사마 허임은 숨어 있다가 금군에 끌려 나오면서 미인 허씨처럼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상대는 진화의 일로 단단히 벼르고 있던 사례교위 조정호였다.
퍼-억!
“억!”
“감히 제국의 역도인 귀천성과 손을 잡아 놈들을 황궁으로 들여?”
“사, 사례교위!”
“이황자님을 건든 것이 실수였다. 폐하의 인내심마저 다했으니, 네놈들은 차라리 사형당하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서슬이 퍼런 조정호의 겁박에 대사마 허임은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졌다.
그때, 적호단주 팽치가 한 손으로 허임의 멱살을 잡아 들었다.
“그 여자, 독마제는 어디 있나?”
적호단과 당문 독의들, 하오문이 독마제 은요를 찾아 샅샅이 장원을 수색했지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열이 받은 적호단주의 눈에서 살기가 번들거렸다.
“히이익! 그, 그 여자는 모르오! 그저 별채 하나를 내주었는데, 제가 있고 싶을 때만 머문단 말이오!”
“어디로 갔어! 계속 황도에 머물 때는 어디에 있었지?”
“모, 모르오! 정말이오!”
퍼억-!
“젠장!”
적호단주의 추궁에 겁에 질린 허임이 소변까지 지리자, 더 알아낼 것이 없다 생각한 적호단주가 허임을 내려놓으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황도 주변을 에워싼다. 멀리 가진 못했을 테니, 독의들과 조를 짜서 항구는 물론이고 황도를 오가는 길목까지 샅샅이 뒤져!”
“충!”
적호단주의 명에 적호단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에 사례교위 조정호가 말을 보탰다.
“항구와 황도의 관문, 오가는 길목은 사례군이 맡을 것이니, 적호단은 무림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저자의 뒷거리를 수색하는 것이 어떻소?”
“……그리해 주신다면 호의는 고맙게 받겠습니다.”
적호단주는 사례교위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황도에 있는 무림의 영역도 넓었지만, 황도 자체는 그보다 훨씬 넓고 사람은 더 많았다. 하나하나의 실력은 적호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드넓은 황도를 뒤지는 데에 군대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사례교위의 도움에도 적호단주의 표정은 쉽게 밝아지지 않았다.
넓디넓은 황도에서 찾아야 할 것은 단 한 사람. 게다가 독마제와 같은 고수라면 황도를 빠져나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울 것이니.
적호단주는 독마제의 색출을 명하면서도 어쩌면 그녀가 이미 황도를 빠져나갔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궁에는 빠르게 추국장이 꾸려지고.
대사마 허임을 비롯한 허씨 일가와 영수전 궁녀들은 추국을 빙자한 고문을 통해 그들의 짓으로 의심되는 모든 일들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밤낮으로 이어지는 비명이 깊은 지하를 뚫고 들어왔다.
지하 옥사에 갇힌 허미인은 완전히 미쳐 버린 듯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실 거야, 오실 거야…….”
그녀의 주문과 같은 혼잣말이 통했을까.
깊은 밤, 옥사의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