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벼락 진(震) 시끄러울 화(譁) : 황궁에 숨은 혈성(1)
“이거 놔! 이거 놔-아!”
무슨 기대를 했던 걸까.
허미인이 끌려 나온 곳은 당연히 추국장이었다.
물론 허미인이 기다리던 사람도 있었다.
“허억! 폐, 폐하! 폐하, 어찌 제게 이러실 수 있사옵니까! 소첩은 폐하께서 제게 어찌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미인이 추국장 단상에 앉은 황제를 향해 소리쳤다.
황제는 무심한 얼굴로 허미인을 보고 있었다.
“폐하, 그렇게 보시면 싫어요. 소첩을 불쌍히 여기시어요. 소첩, 무섭사옵니다. 소첩을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영수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허미인이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애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기괴하게 비치는지 그녀 자신만 모르고 있는 듯했다.
추국장에 있는 대소 신료들은 물론 진화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허미인의 옆에는 만신창이로 기절한 허임이 쓰러져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추국장에 역모죄를 저지른 죄인에게 하는 지독한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었거나 죽어 가고 있는 허씨 일족과 영수전 궁녀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추국장 가득 그들의 피비린내와 살 타는 냄새가 자욱했다.
모두 허미인과 허임의 죄에 연루된 이들이었다.
황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귀영화를 누리던 허씨 일족이니, 처형이 시작된다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죄가 있든 없든 그들과 한 핏줄이라는 사실만으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한데, 허미인은 지금도 교태스럽게 목소리를 꾸며 황제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완전히 미쳐 버렸군.”
어느 신료의 말이 추국장의 소란 속에서도 귀에 들어와 박혔다.
“더 시간 끌 것 없다. 진행하라.”
황제는 이 이상 허미인의 발악을 구경할 생각이 없는 듯 금군들에게 눈짓을 했다.
금군들이 허미인을 바닥에 엎드리도록 눌렀다.
“아악! 이거 놔라! 네 이놈들! 감히 폐하의 여인에게 손을 대는 것이냐!”
허미인이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지만 금군들에게 머리가 눌려 말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았다.
“미인 허씨는 사특한 역적 무리와 어울려 그들을 황궁으로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감히 폐하의 후궁과 궁녀들을 해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수가 수십에 달하니 더 이상 이를 좌시할 수 없다. 또한, 그간 황족을 출산한 공으로 이전의 죄를 탕감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제국의 황자를 해하였다. 황족을 해하는 역모의 죄는 물론이거니와 친모로서 어린 황자를 해하는 천인공노할 폐륜에 경악을 금치 못하니, 천륜을 저버린 대역죄인 허씨를 폐서인한다!”
“아니야---!”
“또한! 죄질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간악하고 죄를 뉘우치지 않고 방약무인하니, 폐서인 허씨를 한 달간 냉궁에 유폐하여 죄를 뉘우치도록 한 후 사사한다!”
“아니야-! 아니야-!”
허미인의 발작이 심해질수록 바둥거리는 그녀를 누르는 금군들의 힘도 강해졌다.
중서령 사마윤은 허미인의 상태에 상관없이 냉정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황제의 판결을 전했다.
어차피 허미인을 추국장에 올릴 때부터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래도 한때는 황제의 후궁이었던 여인을 고문할 수 없으니 모든 죄가 명명백백해질 때까지 시간을 둔 것뿐이었다.
판결이 끝나고 황제가 빠져나간 뒤 금군들이 모든 죄인을 옥사로 데려갔다.
그러나 모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허미인의 추국은 이제 시작이었다.
* * *
허미인이 무의미한 저항으로 힘을 빼며 끌려간 곳에는 그녀가 그토록 찾던 사람이 있었다.
“폐, 폐하! 폐-하!”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허미인을 금군들이 잡아다 바닥에 무릎을 꿇렸다.
“이익!”
금군들이 몸을 짓누르자, 허미인이 두 눈을 희번덕거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허미인의 고개가 사방으로 돌아갔다.
횃불이 켜진 지하.
그녀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곳이었다.
금군들이 사방을 철통같이 지키는 가운데, 정면에는 황제와 이황자인 진화, 추국장에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사황자 한유영이 자리했다.
본래 황제는 사황자가 추국장은 물론 그 어떤 곳에도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
어떤 죄를 지었건 결국 어미를 고발하고 일족을 몰살시키는 데에 사황자가 일조하게 된다면, 앞으로 내내 혈육을 죽였다는 지탄이 사황자를 따라다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황자의 마음에 맺힌 증오가 얼마나 지독한지, 사황자는 기어이 허미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자 했다.
황제의 옆에는 황제가 진짜로 중시하는 공신들이 자리했다.
태사 조위례와 위장군 원수경, 대사농 정조인, 중서령 사마윤이었다.
허미인이 희번덕거리며 눈알을 굴렸다.
황자들의 옆에는 그녀가 처음 보는 젊은 무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앞으로 모 상궁이 의자에 앉혀 있고, 모 상궁이 데려온 궁녀들이 피투성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궁녀들은 목과 사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허미인의 눈이 커졌다.
“폐, 폐하, 어째서 저, 저를 이곳으로 부르셨나요?”
허미인이 두려움 가득한 목소리로 황제를 찾았다.
이마와 눈썹, 미간은 공포로 일그러졌는데 입꼬리만 교태를 부리고 있는 꼴이라니,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모를 기괴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한때 황제의 사랑받는 후궁으로 영수전의 주인이었던 인물이 저런 추한 모습이라니.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 한 사람, 황제를 제외하고.
“허미인, 감히 짐의 자식들을 해치고 그렇게 쉽게 끝날 것이라 생각했나?”
“폐, 폐하?”
“추국장엔 보는 눈이 많아 참았을 뿐, 그대의 죄는 거기서 끝이 아니지 않나.”
“폐하, 어인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소첩은 죄가 없어요, 폐하.”
“소첩 같은 소리 집어치우라!”
참고 있던 인내심이 다했는지 황제가 버럭 노성을 터뜨렸다.
덤덤하게 가라앉은 듯 보였던 눈에서는 분노를 넘어선 증오가 일렁이고 있었다.
“말하라. 정녕 육황자에게 네 손으로 독을 먹였더냐?”
허미인의 입으로 직접 답을 듣고 싶었던 황제가 그녀를 압박했다.
허미인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뒤로 물러나려다 금군들의 손에 막혔다.
“폐하, 아니에요! 아니에요! 나는…… 저, 저놈이 그랬나요?”
황제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허미인이 사황자를 보았다.
그리고 허미인의 표정이 돌변했다.
“너지! 너지? 이런 살모사 같은 놈! 어떻게 어미를 모함하고 외가를 멸문시킬 수 있지? 이 천하의 폐륜아! 너 같은 걸 왜 낳아선!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자식! 너였어야 했는데! 독을 먹은 게 너였어야 했는데!”
허미인이 사황자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허미인의 최후를 지켜볼 것이라 독하게 마음먹은 사황자지만, 저에게 향하는 친모의 날 선 악의 앞에서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것을 본 진화가 슬쩍, 사황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
저를 노려보는 핏발 선 눈이 가려지자, 사황자가 놀란 얼굴로 진화의 등을 보았다.
진화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허미인의 악의 앞에 섰다.
“그 여자, 독부 은요와 거래한 내용은 뭐지?”
“네놈이야? 네놈이 내가 그랬다고 일렀어? 이 악마 같은 새끼! 황후가 시켰나, 나를 죽이라고? 황후를 닮아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로…….”
파지지직-!
“꺄아아악-!”
진화는 자신을 향해 독설을 쏟아 내던 허미인이 선을 넘자 가차 없이 손에서 뇌전을 뿜었다.
푸른 뇌전이 허미인의 치맛자락을 태웠다.
“저기, 저 여자들이 어떻게 되었나 잘 보고 말해. 무림에는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통을 줄 방법이 많으니까.”
진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혜군이 싸늘한 얼굴로 손을 휘둘렀다.
“아아아악---!”
“꺄아아악!”
당혜군의 손짓에 궁녀들의 몸에 박혀 있던 대침들이 빠져나가고, 궁녀들이 귀가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기괴하게 뒤틀렸던 근육이 바로 펴지면서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궁녀들 대부분이 고통에 못 이겨 정신을 잃었다.
눈이 뒤집혔거나 입에 허연 거품을 문 몰골이, 사지가 뒤틀렸을 때보다 나아 보이진 않았다.
“다시 묻지. 그 여자, 독부 은요가 당신에게 원한 게 뭐지?”
벌써 죽었는지 축 늘어진 모 상궁과 정신을 잃은 궁녀들.
그리고 저를 내려다보는 서늘하게 가라앉은, 황제와 닮은 눈빛.
허미인은 놀란 눈으로 궁녀들과 진화를 번갈아 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가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하지만 곧 결론을 내렸는지, 허미인의 표정이 또 돌변했다.
“그걸 알려 줘서 내가 얻는 건 뭐지?”
“글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허! 병신 같은 새끼. 거래도 할 줄 몰라? 날 살려 줘. 날 궁에서 내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대답부터 해.”
진화를 향한 직설적인 욕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의 눈이 대번에 살벌해졌다.
황제와 조위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작 진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 아들을 살려 주겠다고 했어!”
“당신 아들은 당신이 직접 독을 먹였잖아.”
“어쩔 수 없었어! 모두 날 의심하는 중이었단 말이야! 나는 그냥 착한 내 아들에게 부탁만 했어! 그것뿐이라고!”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죄를 뉘우치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횡설수설하는 허미인의 모습에서 도무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죽어 버린 모 상궁의 입에서 얻어 낸 사실이라곤 ‘허미인의 곁에서 그녀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라.’는 명을 받았다는 것뿐이니, 허미인에게서 답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진화가 천천히 허미인에게 다가갔다.
누군가 진화를 말리려 했지만,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스으으으으…….
소리는 없었는데, 어쩐지 소리가 들린 듯했다.
공기가 스산하게 변했다.
“으으. 닥닥닥닥…… 왜, 왜 이러지?”
그건 비단 느낌만은 아니었던지, 허미인이 이까지 부딪히며 덜덜 떨기 시작했다.
“말해. 그 여자가 당신에게 바란 것.”
“으으. 으으으으…….”
단지 추워진 것만이 아니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빨리 뛰며, 추워진 동시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바닥에서부터 뼈까지 얼려 버릴 듯 시린 한기가 고통스럽게 찾아왔다.
허미인은 처음 겪어 보는 고통과 공포에,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진화를 올려다보았다.
“괜한 계산하지 마. 난 이대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당신을 죽여 버릴 수도, 영원히 아프게 할 수도 있어.”
“내 아들…… 내 아들이 죽을 거야.”
“아니. 그건 답이 아니야. 이제 와서 모성이 남아 있는 척 매달릴 생각하지 마. 육황자는 안 죽어, 내가 살렸으니까.”
“……뭐? 걔, 걔가 살았어? 어떻게?”
역시 죽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놀라서 되묻는 허미인의 얼굴엔 기쁜 기색이라곤 없었다.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아직 부탁하지 않았다고! 그 여자가 황궁에서 뭔가 찾을 때까지, 내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나는 아직 모 상궁에게 인아를 깨워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
허미인이 혼란스러운 듯 말을 쏟아 냈다.
그녀의 말에 진화의 눈이 번뜩였다.
“그 여자가 황궁에서 뭔가 찾았다고? 뭘 찾은 거지?”
진화의 질문에 허미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가 말해 주면?”
진화는 허미인의 말을 아예 못 들은 척 무시하며 다시 물었다.
“그 여자가 뭘 찾았지?”
“호호호, 혈성(血星). 알아, 혈성?”
허미인이 의기양양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모르지? 그 여자도 모르더라. 모르는 걸 찾고 있었어. 호호호호! 병신들.”
“당신은 알고 있나?”
진화의 물음에 허미인이 진화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알아. 하지만 그 여자에게 알려 주지 않았지. 그 여자는 편리했으니까.”
허미인이 비소를 지었다.
진화는 의기양양한 허미인을 보며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독마제의 일방적인 이용이 아니었나 보네. 죽어도 억울하진 않겠어.“
진화가 허미인을 보며 마주 웃었다.
“그래서 혈성은? 당신은 알고 있나?”
“호호호! 당연하지!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 황궁에 혈성이라고 할 게 하나밖에 더 있냐고!”
허미인의 말에 진화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황제와 조정 신료들은 뭔가 아는 듯 얼굴을 굳혔다.
“그 여자! 폐서인과 그 핏줄!”
허미인이 붉게 핏발 선 눈으로 소리쳤다.
대나무 숲에 비밀을 외치는 사람처럼 사방에 보란 듯이 외치는 그녀의 말에, 황제는 물론 조정 신료들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폐서인의 핏줄이라면…… 황제와 신료들의 머릿속에 황태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고 있었다.
“호호호호호! 황궁에 혈성이라고 불릴 핏줄이 그 여자와 황태자 말고 더 있겠어? 바보 같은 것들! 어떻게 그렇게 쉬운 걸 몰라? 호호호호!”
허미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진화와 십 조원들이 눈을 마주쳤다.
그들도 허미인의 말에서 뭔가 눈치를 챘다.
‘혈성이라…… 혈마제의 존재를 찾고 있었나?’
귀천성의 팔마제 중 그 어떤 정보도 없었던 단 한 사람, 혈마제에 대한 단서가 황궁에 있었던 것이다.
필요한 것을 모두 알아낸 후.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황제를 비롯해서 모두의 얼굴이 밝지 못했다.
원하는 정보였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날 살려 줘.”
“그럴 수 없어.”
“뭐야? 날 살려 준다고 했잖아!”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지. 지금 생각해 보니 안될 것 같군. 알다시피 황명이 워낙 지엄하여.”
진화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냉정하게 돌아섰다.
애초에 허미인과 어떤 거래도 할 생각이 없었다.
허미인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모 상궁처럼 죽을 때까지 고문을 할 생각이었다.
진화가 황제를 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황제를 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챈 허미인이 다시 황제에게 기어갔다.
“폐하, 폐하, 저를 버리지 마세요! 소첩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소첩이 더 잘할게요. 아들도 다시 낳으면 돼요. 폐하!”
정말 미쳐 버린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허미인의 모습에, 황제는 더 이상 꼴도 보기 싫은지 미련 없이 일어섰다.
“날이 밝는 대로 형을 집행하라.”
“황명을 받듭니다.”
황제의 불편한 마음을 이해하는 듯, 중서령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진화와 십 조원들이 모 상궁과 궁녀들의 시신을 챙겨 나갔다.
독마제 수하들의 시체라 당혜군이 당문으로 가져가서 연구해 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진화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허미인을 지나쳤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황자 또한, 허탈한 듯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폐하! 폐하-!”
온기 하나 없는 지하 옥사엔 미쳐 버린 허미인의 비명만 남았다.
* * *
다음 날.
허미인은 새벽닭이 울자마자 냉궁으로 끌려갔고, 저자에는 수백 명에 이르는 허씨 일족의 처형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처럼 만의 큰 볼거리를 구경하러 저자에 나왔다.
‘정말로 전부 죽이잖아? 황제가 육황자의 목숨을 포기했다고? ……아니, 아직 육황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없었어.’
여인은 죽어서 목이 매달리는 허임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목을 매단 기둥에 적힌 죄목 어디에도 황자를 죽였다는 말은 없었다.
그건 같이 죽임을 당한 궁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녀들의 죄목에는 허임과 다른 글귀가 있었다.
‘황자를 해치려 했다? 역시 죽지 않았다는 말이잖아!’
그때, 사람들의 대화 중 무시하지 못할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육황자님이 일어나 허미인이 독약을 주었다고 증언했다지?”
“사황자가 마시지 않은 것을 육황자에게 대신 먹였다는군. 그러니 사황자의 마음이 어땠겠어?”
“죽어 가는 육황자님을 사황자님께서 지극한 우애로 살렸다잖아.”
“어미는 그 모양이지만 황자님들이라도 우애가 지극해서 다행이군.”
사람들의 대화에 여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육황자가 일어났다고? 말도 안 돼!’
여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곧 눈빛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