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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298)화 (298/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시끄러울 화(譁) : 황궁에 숨은 혈성(3)

황도 저잣거리의 한복판.

사람들이 몰려든 아침 식사 시간, 죽집 구석에 앉은 사내들이 주변의 눈치를 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자네들, 그거 들었나? 저번의 그 난리. 육황자 저하도 독에 당하신 거라며?”

“그러니 황제 폐하의 진노가 보통이 아니었지!”

“그러면 그것도 들었나? 사황자 저하께서 동생을 살렸다는 거?”

“그래?”

“에휴, 외가가 멸문지화를 당했는데, 두 분 황자님들이라도 우애가 좋아서 다행이지.”

소란스러운 식당 안에서도 사내들의 목소리가 인근 식탁까지 퍼졌다.

식사를 하던 사람들은 아닌 척하면서 사내들의 대화가 귀를 쫑긋 세웠다.

하늘같이 높은 윗전의 비밀스러운 이야기야 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아니겠는가.

식사를 마친 사내들이 식당을 나가고, 남은 이들이 사내들의 대화를 가지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당을 나온 사내들은, 어쩐지 피곤한 얼굴이었다.

“…….”

“……목 아프네. 몇 집째지?”

“네 번째. 다음 집은 어디 탁주집이라도 가지. 목이 아파 안 되겠네.”

“아침에 여는 탁주집이 어딨다고. 그런데 이게 효과는 있는 거야?”

“모르지. 우리 같은 말단은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사내들은 기어코 다섯 번째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아 나섰다.

어슬렁거리는 발걸음은 그들의 부른 배만큼 무거웠다.

* * *

황궁 건희전.

진화를 비롯한 적호단 십 조원들은 ‘대기’라는 명령 아래 모처럼 휴식일을 맞이했다.

팽수, 팽신 형제와 나하연은 평소처럼 정원 바위를 뽑아 놀거나 수련을 빙자한 신체 학대를 계속했고, 당혜군은 궁녀들이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는 정원의 화초를 구경하는 척 뽑지 못해 안달이었다.

거기에 현오는 건희전 숙수들과 경쟁하듯 먹어 대고 있었고, 제갈상과 관서겸은 휴식이라는 명목 아래 침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내려와 봐.”

한숨 섞인 진화의 목소리에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지붕에서 내려왔다.

“무슨 일이야, 도련님?”

“대체 왜 자꾸 황궁 지붕에 올라가는 거냐?”

진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내, 심지어 밤중에는 교대로 건희전 지붕을 지키는 이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남궁구와 남궁교명은 질문을 하는 진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황궁 안에는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궁인들이 너무 많아서, 한시라도 주의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

생각지도 않은 말에 진화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자신을 지키려고 그런 것일 줄이야.

남궁세가의 사람으로서 자발적으로, 몸에 밴 습관처럼 남궁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

이전 삶에서 늘 진화가 다른 남궁세가 사람들에게 해 왔던 일이라, 본인이 받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특히나 과거 진화의 원망 대상이자 보호 대상이기도 했던 남궁교명의 모습은 진화에게 바뀐 삶을 실감하게 했다.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진화의 모습에, 그의 생각을 눈치챈 남궁구가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도련님, 손에 든 그거는 뭐야?”

“아, 나가래.”

“응?”

“너희들 데리고 정자에 가서 다과라도 즐기다 오라며 동 태감이 들려 주더군. 건희전 지붕 위에 있는 것이 거슬렸나 봐.”

“……은신을 어떻게 알아차리셨지? 동 태감님이 은둔 고수 뭐 그런 건가? 하하하.”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다.

결국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은 말없이 정자로 향했다.

어느덧 셋이 함께한다면 무엇을 하든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독부가 정말 올까? 게다가 혈성도 죽이든 살리든 해결을 해야 할 텐데…….”

남궁구가 진화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어쨌든 어미는 다르지만 형제지간이 아닌가.

하지만 진화는 혈성이라는 말에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정의맹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먼저 나서기 곤란해. 어쨌든 상대가 황태자니까. 자칫하다간 황실 아니, 제국의 적으로 몰릴 수도 있다. 결국 그 문제는 황실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러니 혈성은 황실에 맡겨 두고 우린 독마제라도 놓치지 말아야지.”

“마녀는 뭐래?”

“하오문과 황도 개방 지부에서 소문을 만들어 풀고 있고, 적호단과 사례군이 황도를 샅샅이 수색 중이라고 한다.”

“소문이 효과가 있을까요? 오히려 공자님이 독부의 독을 해독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공자님까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남궁교명의 염려에 남궁구와 진화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달랐다.

“안 그래도 내가 해독했다는 사실은 빼고, 육황자가 깨어났다는 사실과 사황자와의 우애를 중점으로 말을 흘리고 있다. 독부는 아직 혈성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그걸 알아내기 전에 독부의 관심을 육황자에 집중시키려는 의도다. 자신의 독에 자부심이 높은 여자라면 육황자가 깨어났는지 반드시 확인하려고 하겠지.”

사람들은 윗전이 행복한 이야기보다 윗전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인다. 

특히 황실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라면 언제든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될 수 있었다.

정의맹과 하오문은 그런 사람들의 속성을 꿰뚫어 교묘하게 진화에 대한 말을 숨겼다.

“황궁엔 비밀이란 것이 없다 하니, 혈성에 대한 것도 언제 새어 나갈지 몰라. 독부가 그걸 알고 황도를 벗어나기 전에 잡아내야 한다.”

“황궁의 비밀이 새어 나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독부를 속여야 하는군.”

십 조 일행이 건희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에도 황궁 바깥에서는 적호단뿐 아니라 정의맹 소속 문파와 하오문, 군부까지 독부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소문을 풀다 보면 소문의 근거지로 찾아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는데, 아직까지는 독부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궁인들에 대한 감시는 황궁 궁내부 자체에서 해 주고 있지만, 우리도 언제든 독부의 등장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해.”

“그건 그렇……습니다만.”

진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던 남궁교명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동시에 남궁구가 진화의 눈치를 보았다.

“도련님, 그 전에 우리가 쫓겨나면 어떻게 되지?”

남궁구의 말에, 진화가 그들의 시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일행의 모습을 발견한 진화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곧 할 말을 잃었다.

“으아아! 제발 멈추십시오!”

그곳엔 팽가 형제와 나하연이 거대한 바위를 들고 뛰어다니고, 그 뒤를 내관들이 어쩔 줄 모르며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돌 하나, 화초 하나도 풍수와 지리, 화초의 상생 조화에 따라 꾸며 놓은 건희전 정원이 미묘하게 지저분하고 어수선해져 있었다.

“아앗! 그 바위, 거기 놓으시면 안 됩니다! 중원 제일의 풍수사인 진법 선생이 악풍이 통하는 길이라며 열어 둔 곳이란 말입니다!”

“으악! 그거 뽑으시면 안 됩니다. 황궁 제일의 정원사이신 대자성 어른이 직접 심은 화초들입니다. 소성초가 있어서 그곳에 있는 금매화와 수선화가 상생하여 함께 자랄 수 있는 거란 말입니다!”

내관들의 비명과 정 상궁의 고함이 곳곳에서 울렸다.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현오와 제갈상, 관서겸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앗! 자네들, 나 빼놓고 뭘 먹었나?”

“…….”

현오는 건희전 숙수들을 얼마나 혹사시킨 것인지, 어느새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황궁의 화려한 요리에 넋이 나가 살이 오른 것은 제갈상과 관서겸도 마찬가지였다.

“저……하.”

동 태감이 이전보다 십 년은 더 늙은 얼굴로 진화를 찾아왔다.

“사황자님과 육황자님이 인사를 위해 뵙길 청한다 하옵니다.”

“그…… 내가 찾아간다고 전하게.”

“예, 저하!”

진화의 작은 배려에 동 태감이 촉촉한 눈으로 웃었다.

“제발 하오문이 소문이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그 전에 우리가 쫓겨날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진화와 남궁구, 남궁교명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동 태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 * *

황궁의 비밀은 진화 일행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새어 나갔다.

아니, 애초에 비밀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허미인의 일이 있고 난 후, 황제의 유일한 후궁이 된 염녕전에는 훈풍이 불고 있었다.

염녕전 주인인 원귀빈의 기분이 요즘처럼 좋은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후후, 혈성이라니…… 애초에 폐서인의 핏줄 따위 일찌감치 제거했다면 이런 문제가 없잖아?”

“하오나 황제 폐하께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으신다 하셨답니다.”

원귀빈이 사가에서부터 데려온 기 상궁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원귀빈은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내 부군이시다. 내가 그분을 모를까. 세상 그 무엇보다 제국을 아끼는 폐하시다. 폐하께서는 이미 결정을 내리셨어. 다만 역도들에게 휘둘리기 싫은 것뿐이지.”

“위 장군님의 생각에는 폐하께서 이것에 대한 확인을 이황자에게 맡길 가능성이 크다 하십니다.”

“이황자가 황실과 무림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그리되겠지. 후후후, 걱정 마라. 박쥐같이 양쪽에 발을 걸친 것이 조정 신료들의 눈에 좋아 보이겠느냐? 이황자가 나서서 황태자를 내려앉힌다 해도 우리에겐 나쁠 것이 없으니.”

황도와 황궁, 대전을 벗어난 것들은 모조리 아래로 보는 신료들이었다.

그치들의 눈에 천한 무부들과 어울리는 황자가 결코 좋아 보일 리 없었다.

나중에는 필시 황위에 대한 욕심으로 황태자를 넘어뜨렸다는 말이 나올 게 분명하니, 오히려 삼황자는 이 일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것도 나았다.

계산을 마친 원귀빈은 시종일관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황태자가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꾼다지?”

“그렇다고 합니다.”

기 상궁의 말에 원귀빈의 입술이 비릿하게 올라갔다.

툭. 툭.

원귀빈의 날카로운 손톱 장식으로 탁자를 두드리자, 기 상궁이 품에서 뭔가를 내놓았다.

“자색 합판화입니다.”

“악몽초라 불리기도 한다지? 후후후, 부군께서 굳이 확인을 해 보겠다 하시니, 아녀자로서 그걸 돕는 것도 도리가 아니겠어?”

원귀빈의 매서운 눈매 끝에 섬뜩한 독기가 번뜩였다.

“중독과 착란을 일으키는 것이니, 황태자의 수면향에 섞어 넣으면 될 것입니다.”

스윽.

원귀빈이 기 상궁이 내놓은 보자기를 그대로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앞에는 호양공주 한외련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왜요? 공주께서도 이전의 권세를 찾으시려거든 줄을 다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는 해 주셔야 저도 공주를 한편으로 믿을 수 있지 않겠어요?”

은근히 설득해 오는 원귀빈이 목소리에 호양공주는 목이 졸린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호양공주를 보며 원귀빈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고민은 그 전에 끝냈어야지. 네년이 여길 찾아왔을 때 이미 네년은 뱀의 똬리에 스스로 기어들어 온 거야.’

원귀빈은 호양공주가 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걸 확신했다.

지아비도 자식도 없이 황제의 총애마저 잃었으니, 아무리 황제의 유일한 동복 남매인 호양공주라도 끈 떨어진 황족들의 비참한 말로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결국 제 손을 잡아야 할 것이었다.

“잡아요, 공주. 딱 한 번, 공주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어차피 꺼꾸러질 황태자입니다. 지금 공주가 나서지 않는다면, 공주는 다시는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원귀빈은 한 번 더 호양공주의 선택을 재촉하며 그녀를 압박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원귀빈이 내놓은 주머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호양공주는, 결국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주머니를 잡고 말았다.

“후후후, 그래요. 좋은 선택을 했어요. 이왕이면 황태자에게 혈성의 일을 알리는 것도 좋겠군요.”

“……!”

원귀빈의 말에 호양공주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황태자도 제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는 있어야, 나중에 억울하지 않을 테니까. 응?”

원귀빈은 마지막까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호양공주를 압박했다.

호양공주의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하염없이 떨렸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에는 독초가 쥐여 있었다.

호양공주에게는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어차피 영원한 편은 없다는 황궁입니다. 황태자도 공주를 원망하진 못할 겁니다.”

원귀빈의 말에 호양공주가 독초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 *

해가 어둑하게 진 밤.

쨍그랑-!

“에구머니나!”

황도 저자에서 포목점이 쭉 이어진 골목.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 나왔던 여주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제 가게 뒷문 옆으로 널브러진 형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이 뒷문을 열면서 힘없이 밀려난 모양새와 언뜻 보인 치맛자락, 곱게 땋은 머리카락까지. 아무리 봐도 저녁부터 술 한잔 걸치고 아무 데나 널브러진 취객같이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가게 주인의 뒷골을 치고 지났다.

툭.

간신히 앉아 있는 듯 보였던 인형이 완전히 쓰러졌다.

여주인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여, 여보, 여기 사람이! 사람이 죽었어! 여-보!”

가게 주인의 외침에 물론이고 근처 가게의 사람들까지 뛰쳐나왔다.

그들 사이로 두 명의 사내가 급히 튀어나왔다.

“이런! 궁녀다!”

해가 진 골목의 어둠 속에서도 사내들은 용케 죽은 여인의 복장을 알아보았다.

“문주님께 알려라! 어서!”

“예!”

사람들 속에 있던 하오문도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곧이어 하오문주의 명을 받은 이가 당문에 있는 적호단을 찾았다.

그리고 적호단원이 급하게 궁으로 달려갔을 땐, 구름 사이로 달이 떠오른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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