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마제 (300)화 (300/425)

남궁마제

벼락 진(震) 시끄러울 화(譁) : 황궁에 숨은 혈성(5)

“젠장!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독부가 당황스러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황궁에 제 독공을 막아 낼 사람이 있을 줄이야.

방심했다고 하기에도 억울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제까지 숱한 무림 고수들조차 제 독은 피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남궁진화!’

이황자가 된 남궁진화에 대한 말은 혼현마제나 수하들을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번번이 혼현마제의 계획을 망쳐 몇 번이나 입에 오르내리던 인물.

하지만 이제까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독부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그것이 독부의 발목을 잡을 뻔했던 것이다.

“두고 보자, 애송이.”

독부가 다음을 기약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움직였다.

잠시도 지체할 틈이 없었다.

황궁과 황도에 쫙 깔린 정의맹과 사패천 놈들이 쫓기 시작한다면 아무리 독부라도 곤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부가 나무 사이를 뛰어넘으며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으려는 순간.

툭.

단 두 개 남아 있던 손톱 장식 중 하나가 부러져 나갔다.

“무슨……!”

독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독부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에 저를 노리던 그 뇌전.

그것을 쳐 내려 뻗었던 손.

투둑. 툭. 툭!

독부의 손톱 장식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그놈! 남궁진화라 했지?”

독부가 녹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산 아래 불이 밝혀진 황궁을 노려보았다.

피부가 나무껍질처럼 갈라지고 검게 변한 손.

습관적으로 새까맣게 변색된 손톱끼리 부딪치며 달그락거린 순간, 그녀가 잡고 있던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삭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부도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한편.

진화는 당장 독부를 쫓으려던 십 조원들을 데리고 물러섰다.

‘정말 이것으로 된 걸까?’

진화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진화는 급하게 군을 움직이려는 중랑장 또한 불러 세웠다.

“날이 밝는 대로 폐하께 허락을 구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하오나 침입자가 이대로 산을 빠져나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아니옵니까.”

“그래서일세. 침입자에게 달아날 시간을 주려 함이니.”

“네? 혹시 폐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시네.”

“아!”

‘뭔가 있구나!’

진화의 말에 중랑장이 탄성을 뱉었다.

“알아들었다면, 그대는 저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만 움직이도록.”

“예, 저하.”

중랑장이 우렁찬 소리로 답하고는 병사들을 움직였다.

독부가 넘어간 곳은 황족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워진 사당과 절이 있는 성산이었다.

황족을 제외하곤 황제나 황후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출입을 금하고 있는 곳이니, 중랑장은 병사들을 이끌고 산 밑을 둘러싸는 척을 하며 황제의 허락을 얻을 때까지 시간을 끌 것이었다.

이것으로 오늘의 목표는 달성하였다.

하지만 진화의 얼굴이 그리 밝지 못한 것은 목표를 달성하는 모든 과정이 성공적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건희전으로 돌아가던 진화가 고개를 돌려 잠시 성산을 쳐다보았다.

* * *

독마제, 독부 은요가 황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정의맹 적호단은 당문과 사패천 하오문, 월하회 그리고 황실과 협력하여 독부를 찾아내는 임무에 참여했다.

거기에서 두 가지 변수가 생겼다.

하나는 그동안 어떤 정보도 없었던 혈마제가 황실에 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비밀리에 적호단과 함께 황도로 왔던 천수현인 제갈길현과 홍랑대부가 생각보다 더 일찍 독마제의 비록을 해석해 낸 것이었다.

“독부는 아무 의심 없이 빠져나간 듯합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잘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적호단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까지 갸웃거렸다.

책상 위에 잔뜩 늘어놓은 죽간을 살피고 있던 천수현인 제갈길현이 그 모습을 보곤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 모르겠다니? 그냥 솔직하게 말하게. 적호단주는 일이 영 잘못된 것 같은 모양이군.”

“사실은…… 예, 저는 그렇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독을 해독한 사람은 숨기면서 독부의 독이 해독되었다.’는 사실만 알리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독부가 마지막에 육황자가 아닌 허미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필시 혈성에 대해 알아 갔을 겁니다! 이건 계획에서 완전히 어긋난 일이 아닙니까?”

제갈길현이 옆구리를 찔러주자 적호단주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 냈다.

“그래서?”

“그래서긴 뭐 그래서입니까? 괜히 귀천성 놈들만 좋은 일 시켜 준 것 같단 말입니다, 젠장!”

그래도 천수현인인데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싶었지만, 말을 하다가 점점 열이 오른 적호단주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던져 버렸다.

왜 제갈길현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렇게 열이 오르는 건지.

욕지거리까지 뱉은 뒤 적호단주가 슬쩍 제갈길현의 눈치를 보았다.

제갈길현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으면서 그를 보고 있었다.

“왜, 이제 좀 실수했다 싶어? 흐흐흐, 고놈, 참, 톡- 건드리면 화들짝 놀라 퍼드득거리는 게 꼭 멧돼지 같구나!”

“아, 천수현인 어른!”

“이놈아, 내가 사지는 곯았어도 귀는 안 먹었어!”

천수현인에게 놀림을 당했다는 걸 깨달은 적호단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성질머리로는 천수현인을 이기지 못했다.

“흐흐흐, 이놈아. 세상일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것이 있는 줄 아느냐? 계획이라는 것도 결국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강구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혈마제는…….”

“과정은 좀 틀어져도 된다.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적호단주에게 제갈길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그냥 성질머리를 부리는 것과 달랐다.

제갈길현에게서 적호단주마저 움츠러들 만큼 강렬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던 홍랑대부 초산하도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정사 연합이 귀천성 놈들을 어떻게 멈췄을까. 그놈들과 정면으로 부딪치고자 했다면 우리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우리가 잠시라도 그놈들을 멈출 수 있었던 건, 무수히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역천마제를 직접 노렸기 때문이다!”

“…….”

수십 년 전 귀천성과의 전쟁을 이끈 사람이 하는 말이었다.

순식간에 중원의 절반을 빼앗기고 필패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전설적인 대반전을 이뤄 낸 책사의 말이었다.

적호단주가 입을 다물고 제갈길현의 말에 귀를 열었다.

“귀천성을 따르는 무리의 숫자도 숫자지만, 중원이 밀린 건 결정적으로 단 세 명 때문이었다. 역천마제는 말할 것도 없고, 광마제와 검마제. 그 세 놈은 우리가 열두 번 죽었다 깨어나도 상대가 안 될 듯이 강했다. 무서운 힘, 무서운 무공, 무서운 재능! 그놈들을 멈추기 위해 수백 번을 좌절하고, 수천 명도 넘는 이들을 잃었다.”

역천마제 하나를 죽이기 위해 일곱 명의 중원 최고 고수들이 덤볐고 그중 셋이 죽었다.

천하제일이라 떠받드는 제왕검조차 이전에는 그 일곱 명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셋 중에 한 놈을 죽일 기회를 찾았다! 혈마제? 독마제? 그놈들은 언제고 다시 죽일 기회가 생기겠지! 하지만 세 놈은 아니다! 어떤 희생도 없이 놈들의 죽일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제갈길현의 눈에는 광기마저 번들거리는 듯했다.

제갈길현은 명성과 자존심, 복수심과 원한,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직 귀천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현실을 직시했다.

제갈길현의 냉철한 판단 이면엔 처절함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갑자년 임신월 신사일 술시, 천애와 월애의 천문을 가진 것이 독마제다. 태양과 달은 결코 만날 수 없는 비극적인 애정이니. 청 쥐는 흰 뱀을 위해 검은 원숭이를 죽이고 스스로를 죽일 것이다!”

제갈길현이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

“임신년 경오월 갑자일 술시! 개벽을 지키는 수문장의 천문. 역천마제를 지키는 검마제의 운명이다! 그리고 그 검마제, 임신년의 검은 원숭이를 독마제가 죽이는 것이지! 독마제가 우리의 기회를 만들 것이다!”

제갈길현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운명이 만들어 낸 기회.

제갈길현은 독마제가 검마제를 죽이고, 결국엔 역천마제를 향해 가는 문을 열 것이라 믿었다.

그것이 이번에 정사 연합이 독마제를 놓친 이유였다.

적호단주는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제갈길현을 걱정스럽게 보았다.

그는 광기마저 보이는 제갈길현의 모습에, 그가 역천비록에 너무 빠져든 것은 아닌지 미심쩍었다.

“이전과는 다릅니다. 역천비록에 적힌 운명도 중요하지만 눈앞의 기회도 놓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남궁진화는, 결코 그들에게 부족한 재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을해년 정사월 계유일 묘시! 광마제의 운명을 함께하며 역천마제를 죽일 아해다! 그러니 녀석을 더 아껴 줘야지. 하늘이 내려 준 무림의 기회가 아니더냐.”

“무인의 기회는 뼈를 깎는 수련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적호단주가 제갈길현과 눈을 마주쳤다.

어떤 것도 숨기지 않고 올곧이 직시해 오는 강직한 눈에 깊게 가라앉아 있던 노회한 군사의 눈빛이 일렁거렸다.

어느새 제갈길현이 덤덤하고 서늘한 얼굴을 했다.

거친 말투와 다혈질 같은 성미, 다양하게 꾸며진 표정, 모든 겉치레가 사라진 제갈길현 본연의 모습이었다.

적호단주를 보던 제갈길현이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전에는 제왕검, 신검, 성검, 의천검 그리고 지금은 남궁진화와 자네 같은 젊은 단주들. 그대들이 온전하게 제힘을 발휘하여 싸울 수 있도록, 어떤 방해도, 장애물도 없이, 등 뒤에 지켜야 할 사람들을 두고 싸우지 않도록.”

“…….”

제갈길현의 말에 이번에는 적호단주의 눈이 흔들렸다.

등 뒤에 지켜야 할 이들.

입 밖으로 말은 하지 못했지만, 한 번도 싫다거나 버겁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때때로 등 뒤에 남겨진 이들은 격렬한 전투에서 약점이 되기도 했다.

“전장에 선 이들이 완벽한 상태로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나와 같은 책사들이 해야 할 일이지. 믿고 따르게. 온전한 전장을 만들어 주겠네.”

“……늘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적호단주는 제갈가주와 제갈길현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무인들이 온전한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무얼 위해서겠는가.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다.

언제나 얼음같이 고요하고 냉정한 제갈가주는 모든 상황에서 정의맹 무인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데에 집중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믿고 따를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천수현인 제갈길현도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적호단주가 나가고 월하회에 마련된 집무실이 다시 고요해졌다.

하나둘 죽간을 쌓던 홍랑대부 초산하가 슬쩍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오랜만에 깨어나 보니 이전과는 다르지요?”

“흐흐흐, 꼬랑지에 불붙은 망아지 같은 놈들이 꽤 많아졌어.”

“무인의 기회는 뼈를 깎는 수련에서 나온다, 멋진 말이 아닙니까.”

“흥, 골백번 뼈를 깎아도 소용없는 일이 있다는 걸 모르는 애송이의 항변이지.”

“그래서 좋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귀천성이 두려워 겁을 먹는 놈들이 없어. 참으로 괜찮아졌어.”

제갈길현의 입가에도 미소가 맺혔다.

그런 제갈길현을 보며 홍랑대부 초산하가 슬쩍 농담을 던졌다.

“제갈가주의 공이 큽니다. 다음에 만나면 칭찬해 주시지요.”

“별 개소리는.”

“후후, 그렇게 칭찬에 인색하니 자식 교육에 실패하시는 겁니다.”

“…….”

진심 아니, 진실이 담긴 농담이라, 제갈길현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고소를 짓던 홍랑대부 초산하가 다시 말을 던졌다.

“역천마제가 정말 이 모든 걸 모르고 있을까요?”

“……모를 리가 없지.”

덤덤한 제갈길현의 말에 홍랑대부 초산하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문제는 놈이 어디까지 두고 볼 것인가 하는 것이네. 놈이 어디까지 용인할지 지금 당장 예측할 순 없지만, 반드시 검마제를 죽이도록 상황을 만들어야겠지.”

“기회를 만드는 것이군요.”

제갈길현의 말에 홍랑대부 초산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죽간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죽간을 눈이 빠져라 살피는 것도 모두 그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였으니까.

낙타가 들어갈 바늘구멍을 만들어야 했던 이전에 비한다면 지금은 죽간 속에 파묻혀 있어도 웃을 수 있었다.

* * *

허미인의 장례가 냉궁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냉궁에서 나와 사사되었어야 할 폐서인 허씨가 냉궁의 혹독함을 이기지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한다. 죄인 된 몸으로 형벌을 다 마치지 못한 것 또한 불충의 죄이니, 죄인의 시신은 위패도 남기지 않고 모두 태우도록 하겠다. 다만, 짐의 자식을 낳은 공로가 있으니, 그것으로 형벌을 다 마친 것으로 하겠노라.”

“황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폐하.”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조정의 발표대로 허미인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다만 황제의 특별한 배려로 사황자와 육황자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허미인의 바람과 달리 황제는 끝끝내 허미인의 주검을 보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사황자와 육황자가 건희전을 찾았다.

“형님께서 저희를 찾아 주신다 하셨지만, 저희가 직접 찾아오는 것이 도리인 듯하여 이리 들렀습니다.”

“……괜찮다.”

때아닌 손님이라. 대답을 하기 전 진화가 은근히 동 태감의 눈치를 보았다.

다행히 오늘은 아무도 사고를 치지 않은 듯 동 태감의 얼굴이 편안했다.

“감사합니다.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한유인이라고?”

“아, 소제가 실수를 하였사옵니다. 소제 육황자 한유인이라 합니다.”

서 있는 것마저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마른 체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이름을 물은 것이었다.

이토록 위태로운 상태에서도 어머니의 장례를 갔다가 제게 인사를 하러 온 사람의 이름 정도는 기억해 주는 것이 예의인 듯하여.

그런데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웃는 모습을 보자니, 마른 얼굴 뒤 앳된 모습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겨우 열여섯. 병석에 누웠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더 어릴 때 어미와 형을 위해 독을 마셨겠구나.’

육황자를 보는 진화의 눈빛이 한결 호의적으로 변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이 은혜는 무엇으로든 갚을 것입니다.”

육황자의 손을 잡고 사황자가 다부지게 말했다.

그는 허미인의 일을 벌써 극복한 듯 밝은 얼굴이었다.

“전에도 말했다만, 은혜랄 것 없다. 너는 적호단을 도왔고, 나는 그 보답을 돌려주었을 뿐이니.”

“헤헤, 그래도요.”

진화의 말에 사황자가 기분 좋게 웃었다.

실처럼 휘어지는 눈이 여우처럼 교활해 보이던 것은 온데간데없이, 이제 보니 개구진 청년 그 자체였다.

진화는 제가 ‘대가’가 아닌 ‘보답’이라 말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황자는 그 단어의 변화를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곧 떠나신다지요?”

“폐하께서 파군의 전장을 도우라 하셨다.”

“아! 그렇군요…….”

허미인이 혈성에 대해 말을 할 때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황자였다.

그는 ‘파군의 전장’이라는 말에 황제가 진화에게 무엇을 맡겼는지 알아차린 듯 말끝을 흐렸다.

“무탈하게 돌아오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전장이라니……. 부디 무사히 공을 가지고 돌아오십시오.”

사황자가 진화의 안녕을 바라고, 함께 듣고 있던 육황자도 진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말에 담긴 무게는 서로 달랐지만, 진화는 형제의 인사가 듣기 나쁘지 않았다.

남궁진휘나 남궁진혜와는 다른, 혈연으로 연결된 형제의 인사였다.

갑자기 혈연의 정을 느끼거나 형제의 의리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거리는 진화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다음에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보지.”

진화도 덤덤하게 형제의 안녕을 바라며 인사를 건넸다.

며칠 후.

“아아, 황자님, 제발 무탈하게 돌아오십시오!”

“건희전이야말로 집이 아닙니까. 꼭 집으로 돌아오십시오.”

동 태감과 건희전 궁인들이 황궁을 나갈 때까지 진화와 일행을 배웅했다.

눈물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그간 정이 많이 든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분들도, 부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바라겠습니다!”

“꼭이요!”

궁인들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간 것은 착각일까.

진화는 근래 동 태감의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음에는 혼자 오도록 하지.”

“황자님!”

진화의 말에 동 태감이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해했다.

이번에 진화가 황궁에 왔을 때 어떻게든 오래 계시도록 하겠다며 각오를 다시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건희전 궁인들의 복잡미묘한 배웅을 받으며, 진화와 일행이 적호단에 합류했다.

적호단의 옆에는 북회군 사마 원자기와 북회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이번 파군 원정에서 진화와 함께하게 되었다.

“저 새끼들은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흐흐, 황태자를 살피러 가는데 저놈들이라니. 여정이 참 재밌겠네.”

남궁교명과 남궁구의 대화를 들으며 진화가 적호단과 북회군의 앞으로 갔다.

진화는 이번 임무의 정식 책임자가 되어 적호단과 군을 이끌게 되었다.

적호단주 팽치가 콧김을 뿜으며 아니꼬운 눈빛으로 진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화는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라는 남궁구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게 북회군 때문만은 아닐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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