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시끄러울 화(譁) : 혈마제의 각성(1)
중원에서 떨어진 촌구석.
그러나 파군과 장기군은 제국의 군사들을 먹여 살리는 주요한 곡창지대 중 하나였다.
가뭄 걱정 없이 큰 강 유역의 기름진 땅에 내내 따뜻한 날씨를 가진 반면 주변 전체가 험준한 산맥이 발굽처럼 둘러싸고 거친 협곡이 이어진 천혜의 요새라, 중요성에 비해 신 제국과 밀접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위기를 느끼지 않던 곳이었다.
파군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검각이라 불리는 절벽 잔도를 지나 삼협의 위험한 물길을 거슬러야 하는데, 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가는 것도 힘들지만 군량과 물자를 보급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번에 신 제국이 파군을 노리고 쳐들어온 것은 실로 의외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파군의 전장은 파군에서도 남쪽 구상현의 관문에 있었다.
“아유, 이놈의 날씨. 끈적거려 죽겠구먼.”
“난 가랑이 사이에 땀띠가 나서 죽겠어.”
가뭄 걱정 없이 내내 따뜻하다는 말은 달리하면 덥고 습하다는 의미였다.
천혜의 요새라는 말 또한 달리 해석하면 교통이 막혀서 대부분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의미였고.
하여 본래 파군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하고 중앙에서 온 표기군들은 낯선 환경에 불만이 쌓여 가고 있었다.
“어? 저기.”
“저건, 성도의 병사 아니야?”
“맞는데, 무슨 일이지?”
관문 성벽에 있던 표기군 병사들이 의아한 얼굴을 한 가운데, 성도의 깃발을 등에 꽂은 병사가 관문의 코앞까지 말을 달려왔다.
“강-황! 황도에서 온 전갈이오!”
“황도?”
성도의 병사가 약속된 암호와 함께 용건을 소리치자, 성문에 있던 표기군 병사들이 급하게 관문을 열었다.
그때, 성벽에 있던 병사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북회군 복장 아니야?”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
성벽에 있던 병사들이 성도 방향에서 달려온 병사의 복장을 알아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발을 보내도 성도까지밖에 닿지 않는 이곳의 사정상 중요한 서찰을 사람이 직접 운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미 표기군이 원정을 와 있는 곳에 북회군 병사가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잘 보니 갑주와 휘장이 있는 북회군의 장수였다.
“황궁에서 온 전갈이오. 황태자 전하를 뵈어야 하오.”
“이쪽으로 오시오.”
북회군 장수의 말에 표기군 비장 정지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황태자에게 안내했다.
* * *
황태자에게 전해진 것은 황도의 명령서가 아닌 호양공주의 서신이었다.
[전하, 황궁 지척에 계시던 전하께서 먼 파군에 가 있다니 여전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파군은 덥고 습한 곳이라 전하의 옥체가 상하진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파군에 있는 황태자에 대한 걱정과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된 서신.
반가운 황도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서신을 펼쳤던 황태자는, 서신을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다.
서신은 허미인과 관련된 대략적인 황도의 소식과 함께 혈성(血星)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대충 허미인이 역적 무리와 내통하다가 발각되어 멸문지화를 당했고, 그 허미인이 죽으면서 역적 무리가 찾는 ‘혈성’이 황태자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감히 무도하게도 역적들이 찾던 혈성이 죽은 폐서인의 핏줄이라 말하였다 합니다. 이에 조정 신료들과 무도한 무리가 감히 전하의 혈통을 들먹이며 의심을 조장하고 용심마저 흔들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옵니까. 궁지에 몰린 폐서인이 뱉은 말 한마디에 전하께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이 고모는 원통하고 억울하여 가슴을 칩니다.]
호양공주의 전서는 사실과 달랐다.
혈성에 관한 일은 조정에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호양공주 본인도 원귀빈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그 내용조차 원귀빈의 입맛에 맞춰 각색한 것이었으니.
콰-앙!
“말도 안 돼!”
황태자가 사나운 얼굴로 탁자를 내리쳤다.
황궁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정을 주고 뒷배가 되어 준 호양공주의 서신이라, 황태자는 전서의 내용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며 불같이 분노했다.
“허미인이 죽어 가면서 날 모함한 것이 분명합니다! 물귀신처럼 날 끌어내려 제 아들을 살리려 한 것이 분명해요!”
황태자는 황도의 조정이 허미인의 헛소리에 휘둘리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특히 ‘혈통을 들먹이며 의심을 조장하고 용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에, 깊이 사고할 새도 없이 펄쩍펄쩍 날뛰었다.
불안한 혈통과 황제의 불신.
서신의 내용이 온통 황태자의 약점만 골라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께서 이같이 저급한 모함에 휘둘릴 정도로 저를 싫어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투기에 미쳐 후궁이나 독살하던 여자의 말을 믿고 어떻게, 어떻게 이 제국의 황태자인 나를 의심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황태자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에 호양공주의 서신을 다시 읽어 보던 표서량이 한숨을 쉬었다.
“전하,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생각해 보시지요. 호양공주마마는 폐하로부터 황궁 출입을 삼가당한 후로 황궁의 소식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평소 감정이 격하고 전하의 일에는 성급하게 나서는 경향이 있으니, 이 일 또한 황도에 사람을 보내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표서량이 차분하게 황태자를 달랬다.
하지만 황태자는 쉬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서신을 보십시오. 벌써 용심이 흔들리고 있다 하지 않습니까! 지금 허씨 가문마저 축출되었다면 조정에는 원귀빈의 사람과 하남 조씨의 사람으로 가득할 겁니다. 그들이 폐하께 뱉어 낼 말이야 뻔하지 않습니까! 그들이 늘 하던, 내 혈통! 내 친모! 게다가 이제는 혈성까지! 허어!”
황태자의 말에 표서량도 심각한 얼굴을 했다.
황태자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씨 가문이 몰락하고 그 일파가 발언권을 잃었다면, 황태자의 말처럼 조정에는 하남 조씨 측 신료들과 원귀빈 쪽 사람들뿐이었다.
늘 폐서인 표씨의 만행과 그 불안한 혈통을 이유로 황태자를 흔들어 대던 이들 말이다.
하지만 황태자의 말이 맞다면 더더욱 흥분해서 좋을 것이 없었다.
표서량이 더 단호한 말투로 황태자를 자제시켰다.
“호양공주마마의 서신을 불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분히 마마의 주관이 들어간 서신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고모님의 주관만이 아닙니다. 서신의 말미를 보십시오! 폐하께서 이황자와 북회군을 이곳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황태자의 말에 표서량의 눈썹이 들썩였다.
그는 최대한 다급하지 않은 손짓으로 서신을 마저 읽어 내렸다.
[폐하께서 파군 전장에 이황자와 북회군을 원군을 보낸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 전장에 원군이라니요,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아무래도 폐하께서 이황자와 북회대장군의 아들, 원자기를 보내 사실을 확인하시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태자 전하와 역적들이 연결되었을 리 없으나, 호시탐탐 태자의 자리를 노리는 그들로 하여금 태자를 끌어내릴 꼬투리만 찾으려는 것은 아닌지 이 고모는 몹시 불안하고 걱정이 됩니다.]
원군.
‘이황자와 북회군이라…….’
표서량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표서량은 일전에 그를 무시하던 이황자와 그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내던 태사 조위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 일도 조 태사, 그 늙은 구렁이가 꾸민 짓인가!’
하남 조씨가 나서서 꾸민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북회군, 원귀빈과 삼황자 일파가 협력했다면…….
표서량의 눈빛이 무섭게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전하, 심기를 굳건하게 하소서. 늘 그렇듯 전하를 흔들려는 저들의 수작일 뿐입니다. 전장은 승전을 계속하고 있고 큰 위기가 없으니, 제가 군량미와 보급을 이유로 원군을 돌려보낼 방법을 찾겠습니다.”
표서량은 불안한 속내를 감추고 황태자를 진정시켰다.
“외숙만 믿겠습니다. 저를 걱정해 주고 위해 주는 것은 호양 고모님과 외숙밖에 없군요.”
황태자가 눈물마저 글썽이며 말했다.
황제가 저를 의심하여 이황자와 북회군을 보냈다는 사실이 가슴에 사무치는지, 황태자는 제 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믿는 호양공주와 표서량에게 더욱더 의지하는 듯했다.
“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공주마마께오서 수면초를 전해 왔습니다. 그것을 태우고 한잠 푹 주무십시오.”
황태자가 힘없는 모습으로 막사를 나가고, 표서량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황태자가 침상에 몸을 뉘었다.
황태자의 처소는 일반 병사들이 보기에 융단이 겹겹이 깔린 호화 막사였지만,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변변한 전각 하나 없는 관문에서 겨우 쪽잠이나 청할 수 있는 불편한 곳일 뿐이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이 고생을 감수하고 있는데……!”
황태자의 얼굴에 설움이 복받쳤다.
“전하.”
“한숨 잘 것이다. 고모님이 보내 주신 수면초가 있으니 그걸 피워 놓고 물러가라!”
전장을 따라온 궁인에게 울음을 참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에, 황태자는 옆으로 몸을 돌려 얼굴을 가렸다.
* * *
신 제국 신건궁.
전쟁이 시작되고 매일 파발과 전서가 오가는 중에, 혼현마제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서가 도착했다.
사패천으로 간 수오가 보낸 전서와 황도에서 독부가 보낸 전서였다.
두 개의 전서가 공교롭게도 동시에 도착했다.
혼현마제는 먼저 수오의 전서부터 확인했다.
어쩌면 그에게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수림 생존 확실.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나, 처소를 오가는 사람들 확인.]
‘의선문으로 갔다가 사패천으로 도로 돌아간 한수림이, 살았어?’
혼현마제의 눈동자가 떨렸다.
한수림이 살았다면, 그와 같은 독에 당한 천수현인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한수림이 의식을 차렸다면, 천수현인 제갈길현 또한 깨어났을지도 몰랐다.
혼현마제는 수오에게 ‘한시라도 빨리 한수림이 의식을 찾았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적어 까마귀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두 번째 전서.
독부의 전서를 확인한 혼현마제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발각. 허씨 가문 몰살. 혈성은 폐서인 표씨의 혈통이라는 정보. 육황자가 깨어났다는 소문은 확인 불가.]
꾸-깃.
혼현마제가 저도 모르게 독부의 전서를 손에 움켜쥐었다.
‘육황자가 깨어났다니!’
혼현마제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독부의 독에 의해 사경을 헤매다 죽었어야 할 한수림이 의선문에 갔다가 사패천으로 돌아왔다.
만약 한수림이 죽었다면, 사패천주의 성격상 황도의 일에서 하오문이 정의맹과 협력하도록 내버려 둘 리 없었다.
한수림은 살아 있다, 최소한 더 나빠지지 않은 상태로.
거기에 아무리 강도를 조절했다곤 하지만 독부의 독에 당했던 육황자의 생존 소식.
‘의선문, 한수림, 육황자…… 정의맹과 관련해서 독부의 독에 쓰러진 이들에 대한 소식이 조용하다. 과도할 정도로 잠잠해. 마치 의도적으로 숨긴 것처럼…… 만약 독부의 독을 해독한 거라면? 한수림이 완쾌되어 사패천으로 돌아갔고, 육황자도 소문처럼 의식을 찾은 것이 맞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나면 남은 것은 하나였다.
“누군가 독부의 독을 해독했다면, 제갈길현도 깨어났을 거다!”
혼현마제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제갈길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놈이 가진 내 진짜 역천비록이지. 만약 놈이 깨어나서 그걸 해석하려 한다면 어디를 갈까…….’
혼현마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곧 냉정한 얼굴로 교성흑오대원을 손짓했다.
“황도로 가. 월하회 놈들의 움직임을 쫓아라.”
“존명.”
혼현마제의 명에 교성흑오대원들이 순식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천비록을 해석할 수 없도록 사방으로 퍼뜨린 것이 이렇게 되돌아오는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독부도 혈성의 실마리를 찾았고 역천마제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혈성을 불러들여야겠어.”
혼현마제가 눈을 빛내며 붓을 들었다.
그리고 독부에게 보낼 전서를 쓰기 시작했다.
* * *
한편.
“또다시…….”
신건궁에서 교성흑오대원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검마제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때, 검마제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그의 허락 없이 일초지적에 다가올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주군.”
“허허허, 뭘 그렇게 보고 있느냐?”
“교성흑오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 치의 거짓 없는 답변.
역천마제는 흐뭇한 얼굴로 검마제를 보았다.
“한 제국과의 전쟁으로 혼현이 또 바쁜 모양이군.”
“예. 그런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아, 아닙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
말끝을 흐리는 것은 검마제답지 않은 일이었다.
자식처럼 키운 제자이자 수하.
역천마제는 뭔가 석연치 않아 하는 검마제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말해 보거라.”
“그게, 혼현의 행태가 이상합니다.”
역천마제의 명에 검마제가 순순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일전에 환마제를 연성하려다 실패하고 빠져나오는 길에 혼현이 주군의 제물에 손을 댔습니다. 그는 출혈만 낼 정도로 베었다고 했지만, 제가 보기엔 죽일 작정으로 손을 쓴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허허허, 그걸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주군의 제물을…….”
“필요 없는 것이었다.”
“예?”
“내게 제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혼현도 알았던 게지.”
“그렇군요.”
그 정도 설명만으로도 충분했던 건지, 검마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구나. 육신의 강함도, 육신에 남아 있는 시간도.”
“아! 감축드립니다, 주군.”
육체의 시간마저 아득히 초월했다는 역천마제의 말에, 검마제가 감격하며 인사를 올렸다.
혼현마제의 일은 더 이상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역천마제가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환마제는 운명을 완성하고 갔으니, 이제 남은 운명들도 순조롭게 흘러가면 되겠구나.’
역천마제는 여유로운 얼굴로 파군이 아닌 한 제국의 황도 쪽으로 향하는 교성흑오대의 기운을 읽었다.
‘혼현이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어. 허허허.’
끝도 없이 깊은 눈이 하늘을 꿰뚫을 듯 응시했다.
* * *
다그닥, 다그닥.
“관문을 열라-! 폐하의 명을 받아 온 원군이다.”
진화와 적호단, 북회군 병사 이천 명이 구상현 관문 앞에 섰다.
관문 위에는 황태자와 표서량이 진화와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어떤 움직임도, 표정도 없이 진화와 황태자의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것은 북회군의 사마 원자기였다.
원자기가 불쾌한 얼굴로 다시 소리쳤다.
“무엇 하는가! 폐하의 명을 받아 이황자 전하와 북회군이 도착했으니, 당장 문을 열라-!”
북회군 사마인 원자기의 외침에도 꿈쩍하지 않는 관문.
원자기가 성벽 위에 있는 황태자와 표서량을 노려보았다.
“이런 쓰불.”
원자기의 옆에서 짧게 욕지거리가 들리고, 누군가 앞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마치 그들을 놀리듯 관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쌍놈의 새끼들이 누굴 놀리나.”
“아- 저 조막만 한 새끼, 손가락 하나면 척추를 다져 줄 수 있겠구먼.”
이건 환청이다, 이건 환청이다.
“들키면 곤란하니 몰래 하세요.”
‘이황자까지!’
원자기는 귓가에서 느껴지는 뜨끈한 콧김과 함께 차마 듣기도 무엄한 말들을, 최선을 다해 못 들은 척 군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