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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03)화 (303/425)

남궁마제

떨칠 진(振) 시끄러울 화(譁) : 혈마제의 각성(3)

쨍그랑-!

타앗! 쾅! 쿵!

“으아악--!”

황태자가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듯 막사로 돌아와 탁자를 내리치고 물건을 깨부수는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아아악! 젠장! 젠장!”

쾅! 쾅!

황태자가 남은 분을 토하듯 손이 부서져라 탁자를 내리쳤다.

자신의 고함과 이 난리가 막사 밖에까지 새어 나갈 것이 뻔했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황태자는 그런 것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군사들을 움직이던 이황자의 모습.

그런 이황자의 명을 어떤 의심도 없이 따르던 병사들.

압도적인 기세로 적을 물리치던 강한 무인들.

모두 황태자가 전장에 나오면서 꿈꾸던 모습이었다.

그랬다.

이황자는 늘 그렇게 제가 가지고 싶은 것들을 당연한 듯 가졌다.

황제의 총애도, 현숙한 어미와 든든한 외가, 깨끗한 혈통마저도!

황태자는 치솟는 질투심과 들끓는 열등감을 어떻게든 발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악--!”

한참 막사의 물건을 떨어뜨리고 던지고 부순 뒤.

“하아. 하아…….”

황태자가 지친 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황태자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 하셨습니까?”

“……외숙.”

“태자 전하답지 않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감정을 풀어내야 할 때도 있지요.”

표서량이 이해한다는 듯 황태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규칙적으로 어깨를 두드리는 묵직함에 황태자의 흥분이 사그라들었다.

“내일 또 공격이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면 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늘 하던 대로요. 이전까지도 계속해서 이겨 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황태자가 표서량의 말을 반박하려 했다.

이제까지 그들도 계속 승전을 이어 가긴 했지만, 진화와 그의 군이 보여 준 것처럼 압도적이었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서량의 생각은 다른 듯, 표서량이 황태자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주며 그의 반박을 막았다.

“이제까지 위험하고 희생이 예상되는 구역은 파군 주둔군에게 몰았습니다. 표기군은 그동안 딱 싸우기 좋을 정도로 몸을 데웠단 말입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마침 오늘의 일로 표기군 병사들의 호승심이 끓어오른 듯하니. 이 외숙이 표기군의 진면목을 보여 드리지요.”

“외숙만 믿겠습니다.”

표서량의 자신감 넘치는 단언에 황태자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었지만 표서량을 향한 신뢰만큼은 굳건했다.

* * *

신 제국 진영.

진영의 분위기가 침잠했다.

패배도 패배지만, 연이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는 전투 전략이 병사들의 사기를 꺾었다.

진영 내에는 중앙에서 어떤 의도로 병사들을 개죽음으로 몰고 있다는 이야기가 가득 퍼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새로 온 지휘관의 명령은 또다시 관문 성벽으로 돌진하라는 것이었다.

“또…… 말입니까?”

상장군 이현수가 실망스럽다 못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그 앞의 독부는 상장군의 반응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이곳과 이곳. 내가 짚어 주는 곳으로 각각 이천 명은 보내야 해.”

“…….”

이게 뭘까.

상장군 이현수는 잠시 정신이 멍했다.

‘새로 지휘관이 온다고 했을 때, 내가 뭘 생각했더라…….’

비록 지휘권을 빼앗기게 되었지만, 어차피 유명무실한 지휘권이었다.

중앙에서는 지휘관을 무시하고 공격 감행 시간과 때를 지정해서 무의미한 돌진만을 시켰고, 상장군 이현수는 이것만이라도 그만두게 해 줬으면 하고 빌었다.

그래서 중앙에서 새로 지휘관을 보낸다기에 뭔가 변화가 있겠다는 기대도 했었다.

그런데…… 변화는 없었다.

새 지휘관이라고 나타난 여자는 전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 손톱 장식으로 관문 성벽 몇 군데를 지적해 주었을 뿐, 무의미한 돌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안 됩니다.”

“응? 뭐라고?”

“이렇게는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는 병사들만 개죽음을 당할 뿐이란 말입니다!”

상장군이 소리쳤다.

그제야 독부가 의외라는 듯 상장군을 보았다.

“……흐응.”

그뿐이었다.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 한번 낸 것이, 독부가 제게 소리를 지르며 항명한 군인을 향해 보인 반응의 전부였다.

“네가 직접 가.”

“……예?”

“병사들 목숨이 그렇게 아까우면 네가 직접 가라고.”

“…….”

황당해하는 상장군을 향해 독부가 생긋 웃어 보였다.

방금 유일하게 군 전체를 지휘하던 장군을 최전선으로 보내는 명령을 내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요염한 미소라 더 현실감이 없었다.

진시(辰時)와 술시(戌時).

마침 아침 해가 산을 다 올라온 시간과 해가 산을 다 넘어간 시간.

신 제국 군대는 매번 이 시간마다 성벽을 공격했다.

오늘은 진시에 공격을 준비했다.

“정말 가실 겁니까?”

“그렇네.”

상장군 이현수는 기어이 돌격대와 함께 섰다.

“장군님, 앞길도 창창한 양반이 왜 죽을 자리를 찾아가신다는 겁니까! 그 여자에게 말해서 거부하려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가십시오! 병사들을 위해서라도 가십시오! 장군께서 없으면 누가 제때에 후퇴를 시켜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부관이 설득을 하다 못해 화가 난 듯 상장군 이현수를 재촉했다.

하지만 상장군 이현수의 결심은 단호했다.

“그 여자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일세! 중앙 조정은 희망이 없네! 그런데 내 어떻게 병사들을 사지에 보내고 홀로 저곳에 남아 있겠는가!”

“그…… 그래도 사셔야지요!”

아, 아무래도 정말로 희망은 없는가 보다.

상장군의 말에 그것을 느낀 부관은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붉어진 눈시울로 상장군의 팔을 잡았다.

툭.

상장군 이현수가 제 팔을 잡은 부관의 손을 잡았다.

“같이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같이 죽기라도 할 것이네.”

상장군 이현수가 부관의 마음을 안다는 듯 그의 손등을 토닥였다.

부관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두 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눈물을 나눌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둥둥둥둥둥-!

야속하게도 공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 * *

매일 규칙적인 때에 들어오는 공격.

“병신인지, 미친놈들인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 긴장을 풀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성벽에서 대기하고 있기도 뭣 한 상황이라.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병사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헷갈리게 만드는 게 전략이면, 병신 같지만 성공한 전략인데요.”

“성공했다라…… 하긴.”

남궁진혜의 말에 적호단주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면서도 알게 모르게 헤이해진 기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숨이 달린 전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불안과 불확실성이었다.

“흐음, 지금이 결코 유리한 상황도 아닌데 단독으로 싸우겠다고 우긴단 말이지?”

막사를 보는 적호단주의 눈빛이 가늘게 변했다.

지금 막사 안에는 북회군 사마 원자기와 원자기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진화가 들어가 있었다.

갑자기 북회군을 배제하고 전투를 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는 황태자를 말리기 위해서였다.

“역시 수상하지 않습니까?”

“네가 보기엔 어떠냐? 황태자 놈이 혈성이라서 저러는 것 같아?”

“저야 잘 모르죠. 이런 건 단주님 전문 아닙니까?”

“쎄-해.”

“헉! 쎄해요?”

적호단주의 말에 남궁진혜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귀천성과 관련해서 적호단주 팽치의 쎄-한 느낌은 정의맹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정확도가 천기를 읽는 도사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쎄-해. 그런데 그쪽이 쎄-한 게 아니란 말이야?”

“엥?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무튼 느낌이 좋지 않아.”

적호단주가 날카로운 눈으로 막사를 보며 말했다.

그때 황태자의 막사에선 진화와 원자기가 씩씩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아니, 씩씩대는 사람은 원자기 하나였다.

“아니, 이황자님도 그렇습니다! 거기서 ‘그러든가.’ 해 버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죽어 갈 병사들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하십니까? 표기군도 제국군인데, 정말 섭섭합니다!”

원자기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모양인지 막사를 나오면서까지 진화에게 잔소리를 쏟아붓고 있었다.

“저놈도 처음 봤을 때와는 참 달라.”

“그러게요. 그냥 냉랭하고 싸가지없는 장군 새끼인 줄 알았는데…… 저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입니다. 감히 우리 진화한테 목소리를 키워?”

우두둑.

남궁진혜가 목을 움직이자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야-아! 이 여우 주둥이같이 생긴 새끼야! 우리 진화 귀에서 피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남궁진혜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진화에게 달려갔다.

“…….”

적호단주는 사색이 되어 도망치는 원자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남궁진혜의 말처럼 오만하고 진화에게 적대적인 조정의 정치인 같았는데, 이제 보니 전투를 좋아하고 병사들을 아끼는 면도 있었다. 지난번의 일로 속내를 숨기는 건지는 몰라도, 진화에게 적대적인 면도 보이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놈이군. 이번에야말로 안 보이는 데서 척추를 접어 버리려고 했더니. 쩝.”

적호단주가 아주 약간 아쉬운 눈길로 원자기의 뒷모습을 보았다.

마침 남궁진혜와 진화가 적호단주에게 다가왔다.

“너는 그 굵은 팔뚝으로…… 우리 황자 새끼 목 졸려 죽겠다. 황자 새끼님, 너는 그렇게 목이 졸려서 뭐가 좋다고 실실거려?”

“체!”

적호단주의 지적에 남궁진혜가 못마땅한 듯 진화의 목을 감고 있던 팔을 풀고 진화는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적호단주의 한숨이 늘었다.

“그래서 어쩌기로 했어?”

“아, 기어이 자기들끼리 싸워야겠다기에 그러라고 했어요.”

“그래도 되겠어?”

“전투에 나서서 싸울 때 피를 보면 기질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유순하게 하는 말속에 서늘한 날이 느껴졌다.

그래, 이런 녀석이었지.

진화가 이렇게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기에 큰 반발 없이 적호단의 지휘를 맡긴 것이었다.

적호단주는 알겠다는 듯 진화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 적호단에 휴식을 알리러 갔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대기는 하고 있어야겠지만, 적의 전력을 생각하면 특별히 위험한 일 같은 건 없을 듯했다.

둥둥둥둥둥--.

양쪽 모두 단단히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듣는 북소리.

“놈들이 온다! 우리의 힘을 보여 주자!”

“으아아아--!”

표서량과 비장들의 외침에 병사들이 기합으로 답했다.

북소리가 커지고 까맣게 적들의 모습이 보이자, 성벽의 긴장감이 올라갔다.

후열에서 대기하고 있던 북회군과 적호단도 이때만큼은 잔뜩 긴장한 채 밖을 보았다.

잠시 후.

이전과 마찬가지로 신 제국 병사들이 밖에서 바위나 대창을 날리는 동시에 성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왔다.

챙! 챙챙!

“크아아아-!”

“비켜!”

다른 때와 달리 성벽 일렬에는 파군 주둔군이 아닌 표기군 정예들이 섰다.

하지만 전투는 황태자나 표서량의 예상과 달리 쉽지 않았다.

“저, 저놈들이 왜 저래?”

“갑자기 왜……!”

곳곳에서 당황스럽고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성벽 일렬에 표기군 정예가 선 것처럼 신 제국도 정예군이 몰려온 것인가 싶을 정도로, 신 제국 병사들의 기세가 맹렬했기 때문이다.

“막아! 빈틈을 보이지 마라!”

진화와 북회군에게 실력을 보여 주기 위해 나선 전투였다.

그래서 곳곳이 무너질 때마다 표기군 비장들이 바빠졌다.

“너희들도 어서 가! 가서 막아!”

황태자가 다급하게 저를 호위하고 있던 비장들에게 소리쳤다.

“전투가 더 중요하다! 절반만 있으면 된다! 어서, 명령이다!”

황태자를 호위하기 위해 남은 비장이 여섯 명이나 되었기에, 황태자의 명령에 눈치를 보던 세 명의 비장이 전투 속으로 뛰어들었다.

챙-! 챙챙--!

“막아라! 단 한 놈도 놓쳐선 안 된다!”

“죽여라! 끝장을 보자!”

성벽을 사수하려는 이들.

그리고 어떻게든 성벽을 뚫으려는 이들.

팽팽한 전투 속에서 신 제국의 장수들이 사다리에 있던 아군을 밟고 성벽으로 뛰어올랐다.

“죽어 보자-!”

“추-웅!”

신 제국 장수들이 기세등등하게 표기군 비장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채----앵!

파팟-! 퍼-억!

검을 부딪치고 필요하면 박치기도 불사했다.

코에서 터진 피가 이 사이로 흘렀지만, 죽기를 각오한 마당에 조금 찝찝하고 조금 비릿한 것이 뭐 그리 대수랴.

퍼---억!

쉐에에엑!

얼굴을 맞아 눈을 감은 사이, 섬뜩한 감각이 갑주를 뚫고 지났다.

뭔가 속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에 놀라 눈을 뜨자 갑주 사이로 흥건하게 흐르는 피와 내장이 눈에 들었다.

“크윽……!”

표기군 비장이 하나, 둘 쓰러졌다.

신 제국 장수 하나에 표기군 비장 둘, 셋이 붙던 것에서 순식간에 일대일로 균형이 맞춰졌다.

성벽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수하들을 돕는 신 제국 상장군 이현수의 활약 덕분이었다.

상장군의 시야에 비장들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누군가가 들어왔다.

“네놈이 황태자렷다-!”

“전하를 보호한다!”

“막아라-!”

표기대장군 표서량은 병사들 틈에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했고, 본래 호위를 서던 비장들은 한창 싸우는 중이었다.

황태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셋 남은 호위 비장들이 상장군 이현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챙! 챙챙!

황태자가 위험했다.

후열에서 나서지 말라는 엄명을 받고 대기 중이던 북회군과 적호단도 그 광경을 보았다.

“황자님!”

원자기가 다급하게 진화를 불렀다.

정치적으로야 삼황자와 인척 관계라 황태자와 적대적인 위치에 있다지만, 적의 손에 제국의 황태자를 상하게 둘 수는 없었다.

“잠시만.”

진화가 냉랭한 얼굴로 황태자 쪽을 보며 원자기를 말렸다.

“황자니임!”

원자기가 진화를 재촉했다.

진화는 여전히 냉랭한 얼굴로 손을 들어 원자기를 말렸다.

그 와중에도 진화의 시선은 황태자가 있는 곳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황태자를 보던 진화의 눈빛이 번뜩였다.

“황자님-! 더는 안 됩니다!”

마침 신 제국 상장군이 비장 둘을 쓰러뜨렸다.

상장군의 검이 황태자를 향하고, 황태자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그와 동시에 원자기가 당장이라도 검을 빼고 달려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파지지지직—파팟!

황태자를 향해 날아가는 신 제국 상장군의 검으로 푸른 번개가 꽂혔다.

“전부 사로잡도록 하죠.”

“추-웅!”

진화의 몸이 순식간에 성벽을 오르고, 뒤에 있던 적호단도 순식간에 성벽으로 올랐다.

온몸이 저린 생경한 고통까지도 이를 악물고 이겨 낸 상장군이 황태자를 데리고 도망하려는 비장의 앞에 검을 내리쳤다.

채—앵!

“어딜! 목을 내놓고 가라--!”

목숨.

수백, 수천 병사들의 목숨을 살리고 싶은 마음으로 황태자를 향해 든 검이었다.

저자를 인질로 잡는다면 혹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다시 검을 드는 순간, 시퍼런 칼날이 상장군 이현수의 목에 와 닿았다.

파지지직.

그의 검과 온몸을 관통했던 푸른 번개가 검 끝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이쯤에서 항복해라.”

서늘한 목소리가 상장군 이현수의 정신을 깨웠다.

덤덤한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보자, 자신을 따라왔던 부장들이 적호단원들에게 잡혀 있었다.

“아아……!”

수하들이 잡혔다는 절망보다 아직 수하들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챙그랑.

상장군 이현수가 손에서 검을 놓았다.

그의 수하들도 그를 따라 검을 놓고, 순순히 적호단원들의 손에 잡혔다.

그때, 표서량의 고함이 끼어들었다.

“이때다! 놈들을 죽여라-!”

표서량의 말에 표기군 병사들이 잔인하게 성벽을 오른 병사들을 죽였다.

“크아아악!”

“아악!”

상장군이 잡힌 광경을 보고 넋을 놓고 있던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임을 당했다.

“아!”

상장군 이현수가 그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뭔가에 짓눌려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놀란 상장군이 고개를 들자,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듯한 인물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쉐에에에엑---!

퍼-엉!

진화의 검기가 표서량이 있는 발밑에 닿았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미 적장을 제압했다. 그대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화가 나서 돌아보았던 표서량은 진화의 뒤로 비장의 부축을 받고 선 황태자를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표서량이 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냉랭하게 저를 내려다보는 진화와 주변 적호단원들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야 했다.

진화의 눈이 신 제국 병사들에게 향했다.

“장수가 잡혔다. 물러서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명과 같은 지엄함에, 신 제국 병사들이 주춤주춤 검을 내렸다.

그때 마침 후퇴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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