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떨칠 진(振) 바뀔 화(譁) : 어부지리(1)
진화가 황태자를 찾아간 날.
“평소 쓰는 향초를 권한 사람은 누구지?”
진화의 물음에 황태자는 이미 흔들렸고 진화는 확신했다.
어미를 잃고 불안해하는 어린 황태자에게 향초를 권할 사람.
그건 어린 황태자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혈육밖에 없었다.
폐서인 표서은의 핏줄이라는 말에 모두가 황태자를 생각했다.
하지만 폐서인의 혈육은 정확히 두 사람이 남아 있었다.
황태자 한유강과 표기대장군 표서량.
조정에서는 진화에게 황태자 한유강에게 혈성이 이어졌는지 알아보길 원했지만, 진화와 정의맹의 목표는 혈성 그 자체였다.
그래서 관문에 온 첫날,
“괜한 곳에 힘을 빼려 하는군. 어차피 이 명령서가 있는 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황태자의 손에 명령서를 쥐여 주며, 진화는 황태자의 손을 잡았다.
무인이었다면 절대로 누구에게든 함부로 손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황태자는 진화에게 순순히 손을 내주었을 뿐 아니라 진화가 기운을 흘리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당연히 몸에는 손톱만 한 단전도 없었다.
‘단전도 없는 혈성이라니. 그게 가능한가?’
그때부터 황태자에 대한 의심이 표서량으로 향했다.
“아, 아니야. 그럴 리 없다!”
황태자는 무척 혼란스러운 듯 진화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진화가 콕 집어서 ‘표서량’이라 말하지 않았음에도 황태자가 부정한다는 것부터, 그가 표서량을 의심한다는 증거였다.
“표기군의 단독 전투, 네 배짱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누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지? 매번 네게 선을 넘길 종용하는 자는?”
진화의 말에 황태자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내일 또 공격이 올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면 됩니다.”
전날, 표서량이 한 말이었다.
질투심과 열등감에 미쳐 날뛰는 황태자에게 달콤하게 던져 놓던 말.
지금 와서 생각하니, 황태자는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조종하기에 쉬운 상태였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자신은 매 순간 그랬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지독한 악몽과 불안에 시달렸고, 그런 불안정한 자신의 곁에는 표서량이 있었다.
위로와 조언.
황태자는 표서량이 불안정하고 우유부단한 자신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있다고 믿어 왔다.
“적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표서량은 널 구하러 오지 않았지. 이상하지 않아? 적장과 그 부장들이 뛰어넘어 왔는데, 혈랑신창이라는 대장군 표서량이 고작 병사들 사이를 빠져나오지 못하다니.”
성벽을 넘어온 장수들, 하물며 황태자가 위험한 상황에서 표서량은 황태자를 ‘귀찮아’하고 있었다.
위기의 황태자를 향해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리던 모습.
적호단주와 진화가 보았던 것이었다.
사람은 생존 본능에 몰려 흥분한 상태로 싸우다 보면 저도 모르게 바닥이 드러날 때가 있다.
적호단주와 진화는 그것이 표서량의 바닥에 있는 황태자를 향한 진심이라 판단했다.
황태자를 향한 의심이 완전히 표서량을 향했다.
진화가 황태자의 막사를 찾은 것은 그가 깨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서량의 행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니야! 사람이,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정신 차려!”
진화가 소리쳤다.
황태자는 머리로 이미 표서량의 배신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뿐이었다.
진화는 황태자가 상황을 받아들이길 기다려 줄 마음이 없었다.
“너뿐 아니라 이 제국, 중원 전체가 연결된 일이다.”
“…….”
진화의 냉정한 말에 황태자가 멍한 얼굴로 진화를 보았다.
“다시 묻지. 표서량이, 우리가 폐서인 표씨의 핏줄에서 혈성을 찾으러 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나?”
“……하아.”
진화의 물음에 황태자가 한숨을 터뜨렸다.
그리고 슬쩍 웃기까지 했다.
“너는 정말로 부황을 닮았군.”
“뭐?”
황태자의 엉뚱한 소리에 진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순간까지 목적, 의무, 대의, 제국!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구나.”
황태자의 눈이 진화를 향했다.
곧 울음을 터뜨릴 듯 위태로운 눈빛을 보며, 진화는 갑자기 이전 생의 제 모습이 떠올랐다.
소중한 사람이 모두 죽임을 당한 후, 뿌리를 잃은 풀처럼 어떤 의지도 없이 어떤 미래도 꿈꾸지 않으며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복수에 몸을 맡겼던 그때의 저가.
하지만 황태자의 말은 틀렸다.
진화에게 의무, 대의, 제국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남궁세가 그리고 제 소중한 사람들.
그래서 그들을 위협하는 귀천성을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것뿐이었다.
진화는 위태로운 황태자를 향해 한숨을 쉬듯 말을 전했다.
진화에겐 황태자가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이 아니었지만, 황제는 달랐으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널 조사하라 하신 적이 없다.”
“……뭐?”
“황제 폐하의 명은, 황태자의 안에 있는 혈성을 조사하라는 것이 아닌 폐서인 표씨의 핏줄 중에 혈성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
진화의 말에 황태자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내 허탈한 웃음으로 모든 것을 날려 버렸다.
“하! 이제 와서 무슨…….”
누구를 비웃는 것인지 황태자가 비틀린 웃음을 흘렸다.
“…….”
진화는 애초에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진화가 황태자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은 여기까지였다.
‘어쩔 수 없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포기는 빨랐다.
“그래서 놈은, 모든 걸 알고 있나? 이제 대답해라.”
“알고 있다. 애초에 나에 관해 모르는 게 없으니까.”
황태자의 말에 진화의 얼굴이 구겨졌다.
예상을 하긴 했지만…….
“지금부터 협조 잘하는 게 좋을 거다. 일이 잘못되면 네게도 책임을 물을 거니까.”
위로가 통하지 않았으니, 진화는 제가 잘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역모죄에는 황태자의 자리가 아무 소용없을 거다. 일이 잘못되면 황도에 남아 있는 네 알량한 세력들까지 모조리 죽일 거다!”
협박은 언제나 빠르고 효과적이었다.
진화는 결정적인 증거를 얻기 위해 함정을 마련하기로 했고, 황태자는 표서량의 생포를 전제로 협조하기로 했다.
* * *
표기대장군 혈랑신창(血狼神槍) 표서량.
여동생을 왕후 자리까지 올렸지만 그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며 일순간에 집안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가문에 죄를 묻는 것까지는 피했지만, 가주였던 아버지가 충격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표서량은 왕비의 오라비로서 창창하던 미래를 잃었다.
위기의 순간, 표서량이 향한 곳은 북방이었다.
그는 표씨 가문의 모든 사병을 끌어모아 표기군을 만들었고, 황제는 그런 표서량의 성의와 장자인 한유강을 위해 그를 지원했다.
표서량은 그 한 번의 기회를 살려 북방 전선에서 죽지 않고 오히려 맹활약을 이어 갔다.
그리고 이민족들의 공포로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한유강을 황태자로 만들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가문을 대장군부로 만들어 낸 사내.
그리고 어쩌면 다음 황제의 유일한 인척이 되어 지금보다 더한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귀영화가 보장된 미래를 가졌을지도 모르는 사내.
하지만 그 사내는 지금 그 모든 자리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
“문을 열어라! 어서-!”
“예!”
표기군 사마 위기린이 순식간에 달려가 관문을 막고 있던 병사를 죽이고 사슬을 풀었다.
스르르르릉---!
문이 잡고 있던 사슬이 풀리기 시작하고.
“막아라!”
북회군 사마 원자기의 외침에 북회군 병사들이 일제히 문 앞을 가로막고, 다른 이들이 사슬을 붙잡았다.
그사이, 약속이라도 한 듯 표기군 비장 중 하나가 표기군의 말을 끌고 오고.
“가자-!”
표서량의 외침과 함께 표기군이 말을 향했다.
일제히 표서량을 따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상황이 혼란스러운 듯 우왕좌왕하는 표기군도 있었다.
“역적이 되고 싶지 않은 자는 배신자들을 쳐라!”
황태자의 말에 표기군 중 비장 우효근과 정지영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병사들이 옆으로 창을 겨누었다.
방금 전까지 생사를 함께하는 동료라 믿었던 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비켜라-!”
본래 표서량을 따르는 이들과 최근 황명에 따라 표기군에 소속된 이들이 나뉘었다.
쉐에에엑!
표서량을 따르는 비장이 거침없이 병사들을 베고, 놀란 비장 우효근이 그자의 앞을 막았다.
“대체 무슨 짓이야!”
“이런 짓--!”
쉐에에! 챙! 챙!
본격적으로 말에 오르려는 이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표기군이 부딪혔다.
수하들의 보호 속에 표서량이 말에 올랐다.
그때.
“어딜 감히-!”
휘이이익-!
표서량을 향해 날아드는 거한.
적호단주의 앞으로 비장 하나가 몸을 날렸다.
퍼어억!
“크아아악!”
적호단주의 파갑추에 맞은 비장이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땅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힐끗 눈만 돌려 본 표서량이 망설임 없이 말을 움직였다.
“이럇! 가자-!”
히이이잉--!
표서량의 외침과 함께 말에 오른 표기군이 앞에 있는 북회군을 밟고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딜! 막아라!”
적호단주의 명에 그와 함께 성벽에 남아 있던 적호단원들이 표기군의 향해 달려들었다.
“비켜라!”
표서량이 말 위에서 거대한 창을 휘둘렀다.
쉐에에엑-!
챙! 챙챙--!
처음 보는 용력과 처음 보는 기운.
말이 달려 나가는 기세와 더불어 예상치 못한 표서량의 무위에 적호단원들이 성벽으로 튕겨 나갔다.
쉐에에에엑--!
표기군 사마 위기린이 문을 고정한 사슬을 끊어 버리고, 표서량과 표기군이 힘없이 열리는 문을 뚫고 그대로 질주했다.
“외숙-!”
“비켜! 젠장!”
발을 박차고 뛰어나가려는 적호단주의 앞으로 황태자가 끼어들었다.
적호단주가 그대로 황태자의 목덜미를 집어 뒤로 던졌다.
“으아아아악!”
“저, 전하!”
북회군 사마 원자기와 병사들이 경악하며 날아오는 황태자를 떠받치고, 적호단주와 남은 적호단은 성 밖으로 나간 표기군의 뒤를 따랐다.
“빌어먹을 새끼! 반드시 척추를 접어 버린다!”
적호단주가 황태자를 향해 이를 갈았다.
그 순간, 적호단주와 적호단의 앞에 푸른빛이 번쩍이는 것이 보였다.
파파파파팟---!
“크아아악!”
히이이이잉-!
“으아악!”
푸른 번개가 표기군을 쫓듯 그들의 뒤를 내리치자, 뒤를 따라가던 병사들과 말이 그 자리에 꺼꾸러졌다.
적호단주가 빠르게 고개를 돌려 번개의 주인을 찾았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었다.
검을 든 진화가 표기군의 옆으로 달려들고 그 뒤를 남궁진혜와 적호단이 따르고 있었다.
신 제국 진영도 남아 있던 군이 움직이고 그들 사이로 전신을 붉게 물들인 여인이 날아올랐다.
* * *
관문을 열고 달려 나오는 표서량을 보자마자 진화가 검을 빼 들었다.
쉐에에에에엑---!
천뢰제왕검법 필거심뢰-!
검에서 뽑혀 나가듯 쏘아진 번개가 빠르게 달려가는 표기군의 뒤를 쫓았다.
파파파파팟--!
거칠게 번지는 빛의 줄기가 표기군 병사들의 등을 때렸다.
하지만 표서량과 그의 비장들은 뒤에서 십수 명이 쓰러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내달렸다.
전장을 벗어나 곧장 달려간다면 신 제국군의 진영이었다.
“전부 죽인다!”
“충!”
진화가 검을 빼 들어 달리고, 적호단 십 조원들과 더불어 남궁진혜와 다른 이들이 뒤를 따랐다.
진화와 적호단이 전장을 벗어나 빠르게 경공을 내달려 표기군을 쫓았다.
이대로 내달린다면 표기군의 옆을 칠 수 있을 듯했다.
“우, 우린 어,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진화의 기세에 휘말리듯 무릎을 꿇었던 신 제국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신 제국 진영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있어야 할지.
그때, 신 제국 진영에서 달려온 부장들이 사납게 소리쳤다.
“이 새끼들! 뭐 하는 거야! 반역죄는 죽음이다! 고향에 있는 식구들까지 전부 죽일 셈이냐!”
그의 외침에 다수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바닥에 놓았던 무기를 다시 들었다.
뒤늦게 북회군도 밖으로 나왔다.
“폐하는 선량한 백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역도의 무리가 아닌 진짜 황제 폐하를 따를 자는 무기를 놓고 관문 안으로 가라!”
북회군 사마 원자기의 말에 몇몇 이들은 각오를 한 얼굴로 관문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그 수는 처음 진화에게 굴복했던 이들의 반의반도 안 되는 수였다.
“네 이놈들--!”
타다다다닥-탁!
신 제국 부장이 소리를 지르며 관문으로 도망치는 병사들의 뒤를 노리려는 그때, 북회군의 화살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거기서 꼼짝이라도 한다면, 지옥을 보여 주마!”
북회군 사마 원자기가 신 제국 부장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양측이 살얼음으로 된 외나무다리 위에 있는 듯 긴장된 시선을 부딪쳤다.
‘젠장.’
‘기회를 틈타야…….’
어찌 된 일인지 전장에서 만난 두 군대가 곧장 전투를 시작하지 못했다.
신 제국 부장은 지휘관인 독부에게서 어떤 지시도 받지 못했고, 북회군 사마 원자기는 지금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관문이 신경 쓰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군사들의 사기는 북회군이 앞섰지만, 전투에서 승리를 탐하다가 관문을 빼앗길 순 없었다.
북회군 사마 원자기는 북회군의 임무가 많은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닌 관문을 지키는 것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서로 눈치를 보는 중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곳이 있었으니.
퍼-----엉!
커다란 굉음에 신 제국 부장과 북회군사마 원자기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진화가 뿌린 천뢰제왕검법 무수전뢰가 땅을 뚫고 신 제국 진영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표기군의 앞에서 솟구쳐 오르는 소리였다.
휘이잉-퍼--엉!
공중에서 전신을 붉게 물들인 여인이 날아들자 적호단 쪽에서도 한 여인이 거대한 기둥을 휘둘렀다.
이때다 싶었던 신제국 부장이 소리쳤다.
“후, 후퇴하라!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는다!”
“우리도 관문으로 돌아간다!”
신 제국군이 뒤로 물러나고, 북회군 사마 원자기도 그들을 쫓지 않고 전향한 병사들을 데리고 관문으로 돌아갔다.
퍼-----엉!
진화의 무수천뢰가 솟구쳐 오르면서 표서량이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피했다.
말에서 휘청거리는 표서량을 발견한 진화의 눈빛이 검게 번득였다.
쉐에에에엑---!
검은 창이 꽂히듯, 표기군을 뚫고 날아간 번개가 표서량의 등을 뚫고 사라졌다.
“크어억!”
표서량이 말에서 떨어질 듯 쓰러지자, 옆에서 달리던 표기군 사마 위기린이 표서량을 잡아챘다.
그리고 그때 신 제국 진영에서 독부 은요가 날아들었다.
“저 쌍년이-!”
휘이잉-!
퍼-엉! 퍽! 퍽!
“누님!”
진화가 저도 모르게 남궁진혜를 부르며 놀란 눈으로 독부와 부딪히는 남궁진혜를 보았다.
독마제 독부 은요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독을 쓰는 여인이기 이전에 독공으로 경지에 오른 무인이었다.
진화는 남궁진혜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남궁진혜도 강하지만 독공을 상대해 본 경험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걸.
남궁진휘에게 너무 무식해서 부끄러울 정도라는 혹평을 받은 남궁진혜의 거대한 검강은 훌륭한 방패가 되어 독부가 뿌리는 독이 남궁진혜에게 직접 닿는 것을 막아 내고 있었다.
“하, 하!”
진화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크아아앗!”
팽가 형제가 신 제국군 진영으로 들어가던 표기군의 중간을 끊고, 남은 적호단원들이 뒤처진 이들을 매섭게 죽여 나갔다.
아무리 정예병들이라 하나 지휘관이 없는 군인들은 적호단원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제 이대로 독부만 죽인다면…… 그때.
사아아악-!
피가 식어 내리는 듯 불길한 예감이 진화의 뒷골부터 전신을 스쳐 지났다.
“누님!”
진화의 눈에 당혜군과 나하연이 바닥으로 튕겨 나가고 남궁진혜가 공중에서 휘청이다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누님-!”
진화 안의 검은 우주가 요동치는 가운데 진화가 남궁진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파파파파팟-! 콰광! 쾅!
“꺄아아아악--!”
검은 번개가 독부를 때리고, 진화가 남궁진혜를 안아 들었다.
진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궁진혜를 데리고 관문으로 돌아갔다.
“외, 외숙은!”
“죽었어.”
섬뜩할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
황태자의 물음에 진화가 그를 보지도 않고 스쳐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