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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11)화 (311/425)

남궁마제

두려워할 진(震) 불행 화(禍) : 배신(1)

황태자가 던진 폐서인론은 가뜩이나 언제 그걸 터뜨리나 눈치만 보고 있던 조정 신료들에게 물꼬를 터 주었다.

“폐하, 비록 황태자 전하의 잘못은 아니나, 다음 대 황제가 될 지존의 혈육이 제국을 배신하고 역적 무리에 가담한 일은 앞으로 큰 흠이 될 것입니다.”

“그렇사옵니다. 게다가 그자가 황태자 전하의 유년기부터 전하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들었사옵니다. 일전에 벌어진 중대한 판단 착오는 그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황태자 전하의 실책만은 아니오나, 만백성의 본보기가 될 지존이라면 무릇 완전무결함이 필수인지라. 폐하, 혈루를 머금는 심정으로 간하나이다. 황태자 전하의 요청을 윤허하소서!”

“황태자 전하의 요청을 윤허하소서!”

신료들은 평화를 택했다.

황태자를 물어뜯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황태자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하는데, 구태여 황제의 심기를 상하게 하면서 그럴 필요까진 없다 판단한 것이다.

“흐음…….”

황제가 고심을 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뭔가 성에 차지 않는 듯한 황제의 모습에 신료들의 목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그때.

“폐하, 신, 태사 조위례 아뢰옵니다.”

“태사가?”

황제가 의외라는 듯 조위례를 보았다.

황제의 얼굴이 사뭇 냉담하게 얼어붙었다.

삼황자가 탈락한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이황자였다.

그런 시점에서 이황자의 외조부인 태사가 나서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때는 중앙 조정을 한 손에 놓고 휘둘렀을 정도로 노련한 정치가였던 조위례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말해 보라.”

“예, 폐하. 소신 작금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조위례의 첫마디에 황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노골적으로 ‘이황자를 다음 자리에 앉히는 것이 맞다.’라고 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상황을 인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황제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다음 이어지는 조위례의 말은 황제와 대소 신료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오나 폐하, 가장 중요한 것은 황태자 전하의 강건함입니다.”

“으음.”

“황제 폐하께서 아직 젊고 건강하시니 제국의 미래는 지금도 창창합니다. 다음 지존의 자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하나, 폐하의 아드님의 건강보다 중하진 않습니다. 부디, 황태자 전하의 옥체부터 살펴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시옵소서.”

조위례가 단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일순 대전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황제마저 숙연해진 가운데 잠깐 침묵이 맴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황제가 조금 붉어진 눈으로 조위례를 보았다.

“그대는 정녕, 평생 나의 스승이라 할 만한 이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아니, 진실로 그래. 내 제국의 황제인 동시에 한 아들의 아비인 것을 잠시 잊었다. 그대의 말이 옳다. 가장 우선할 것은 황태자의 무사 회복이다.”

황제가 드디어 결론을 내린 듯 대소 신료들을 아울렀다.

“신료들은 들으라. 짐은 황태자 한유강이 스스로 폐서인해 달라 올린 주청을 윤허하겠다.”

“폐, 폐하!”

예상과 다른 황제의 결정에 신료들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황제는 더 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나! 이것은 한유강이 올린 상소대로 황태자가 죄를 지었거나 자격이 모자라서가 아님을 분명히 하겠다!”

황제의 말에 신료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은 그제야 황제의 뜻을 알아차렸다.

“황태자를 폐서인하는 것은, 중하고 막대한 차기 지존의 책임을 다하기에 황태자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니. 황태자를 과중한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내린 결정이니라. 하여 한유강을 폐헌왕에 봉하고자 한다. 신료들은 그리 알고 짐의 뜻을 헤아리라.”

“폐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역적 표서량의 죄가 황태자에게 흠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황제의 경고였다.

대소 신료들은 어떤 반대도 없이 황제의 뜻을 받아들였다.

조정회의가 끝이 나고.

대전 뒤 황제의 집무실에 황제와 조위례, 두 사람만 남았다.

“이것으로 되겠소?”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 기색이었다.

반면 조위례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얼굴이었다.

“허허허, 너무 급하게 접근하면 놀라서 달아나기 마련입니다.”

“아, 그러니까 하는 말이오. 정말로 무림으로 달아나기 전에 황태자 칙서를 내려 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소? 이러다 영영 안 돌아오면?”

“허허허허.”

조위례는 초조한 기색마저 보이는 황제의 모습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황태자 칙서가 내려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아마도 그분께선 즉시 궐 담을 뛰어넘으실 겁니다.”

“허어, 빌어먹을! 세상이 다 가지고 싶어 하는 황제 자리인데, 담까지 넘어 도망을 간다고?”

확신에 찬 조위례의 말에 황제가 거칠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기가 막혀 했다.

그러자 조위례가 씨-익 짓궂게 웃으며 황제를 보았다.

“기억 안 나십니까? 이전에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셨는데…… 곱디고운 남의 딸자식까지 꼬셔서 말입니다.”

“…….”

조위례의 말에 황제가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묻어 둔 부끄러운 과거 어딘가, 자신이 그러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양심은 남아 있으셔서 다행입니다.”

“커, 흠!”

황제가 조위례의 눈을 피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작아진 황제의 모습에 조위례가 고소를 삼켰다.

“조정에서 내린 결론대로, 황태자, 아니 일황자 저하의 마음도 좀 살펴 두십시오.”

조위례의 나지막한 충고.

하지만 황제는 순식간에 얼굴을 굳히고 코웃음을 쳤다.

“누가 진짜 저가 예뻐서 그리한 줄 알고? 빌어먹을 새끼! 황태자라는 놈이 평생 제 외숙에게 휘둘리더니, 끝까지 이 사달을 만들어? 그 일만 생각하면, 그놈은 사약을 받지 않을 걸 감사해야 할 것이오!”

“흐음. 친모도 없이, 의지할 곳이 표서량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 점을 표서량이 교묘하게 이용한 것일 테고요.”

“그러니! 모든 인간들이 외롭다고 약해지는 것은 아니오. 외롭다고 기댈 곳을 찾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폐하처럼 강하진 못합니다.”

“그래, 천번만번 양보해서 누군가는 약해지겠지, 기댈 곳을 찾을 수도 있소! 하지만 그놈은 황태자였소! 그놈이 정녕 제국을 향한 생각이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그 자리에 앉기 전에 생각이란 걸 해 봤어야지! 진즉 표서량의 손아귀에서 기어 나왔어야지!”

조정에서와 달리 황제는 싸늘한 얼굴로 분노를 뿜어냈다.

조위례의 조언조차 통하지 않았다.

“그놈이 세상에 태어나 한 것이라곤 내 자식으로 태어난 것밖에 없소. 이십 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제 욕심대로만 산 놈이 그놈이란 말이오! 그런데 뭐? 외로워? 기댈 곳이 없어? 허어! 그것이 못 견딜 정도로 힘들었다면, 내 백성들과 내 군사들을 죽이기 전에 그 자리에서 내려왔었어야지! 지금은 한참 늦었고!”

황제는 진실로 황태자를 경멸하는 듯 보였다.

조위례는 그런 황제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황제가 비정해 보일 수 있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제는 아버지인 동시에 제국의 황제였다.

그 둘은 다르게 분리될 수 없었고, 그가 자식들을 보는 시선 또한 그러했다.

황제에게 자식들은 자신의 자식인 동시에 제국의 황자와 공주라, 그에 걸맞은 능력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조위례 또한 그러한 황제의 생각에 동의했다.

아니, 오히려 이 화려한 황궁에서, 세상 모든 귀한 것들을 휘감고, 백성들의 목숨을 발판 삼아 군림하는 이들이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이 제국이 왜 무너졌었는지 기억한다면 말이다.

씩씩대는 황제는 보며 조위례는 더 이상 황태자를 변호할 말을 찾지 못했다.

* * *

놀란 진화가 동궁전을 찾았다.

동궁전 내관이 진화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이내 단단히 각오를 마친 얼굴로 진화의 앞을 막아섰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비켜라.”

휘이이익.

“어엇!”

이번에는 진짜 완력을 사용한 진화였다.

진화의 손짓 한 번에 내관의 몸이 벽 끝까지 밀려갔다.

그사이 진화는 황태자의 침소 안으로 들어갔다.

“자, 잠깐 황자 저하……!”

내관이 뒤늦게 진화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 전에 남궁교명과 남궁구에게 어깨를 잡혔다.

“소용없는 짓이오.”

“어허, 너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도련님이 설마 황태자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눈을 찡긋거리는 남궁구의 모습에 내관의 눈동자가 불안한 듯 떨렸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사실 동궁전 내관도 내심 이황자가 한 번 더 방문해 주길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황자가 다녀간 후로 황태자가 칩거를 깨고 술도 더는 찾지 않았다.

황태자가 폐서인을 자처했다는 건 동궁전 궁인들에게도 죄의 낙인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였지만, 그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불안한 동궁 생활이 지옥 같기는 궁인들도 마찬가지라, 그들은 한결같이 황태자가 지금보다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그런 내관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남궁구와 남궁교명이 눈을 마주치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진화가 안으로 들어가자 황태자는 침전에 잠들어 있었다.

“흐음…….”

황태자가 신음을 흘렸다.

이전처럼 소리를 지르고 잠꼬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편해 보이진 않았다.

“…….”

놀라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황태자를 찾은 진화는 그 모습을 보며 침착함을 찾았다.

그리고 조용히 탁자에 가서 황태자가 깨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일다경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인기척과 함께 황태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번에도 그러는 것 같더니. 보통 사람이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고 있으면 지켜보는 게 아니라 깨워 주지 않나?”

진화를 보는 황태자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술독이 완전히 빠지지 않은 듯 혈색이 창백했지만, 확실히 전보다는 편안하고 차분한 얼굴이었다.

“폐서인을 자처했다니, 무슨 짓이지?”

“그것 때문에 온 건가?”

“…….”

진화의 물음에 황태자가 침상에서 나와 탁자의 물을 마시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진화는 황태자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관찰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갈증이 난 듯 물을 들이켜는 것 외에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물을 마시고 난 황태자는 시원해 보이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내게 맞지 않은 자리였던 거지. 황제 폐하가 바라는 강인한 군주가 될 자신도 없었고, 외숙이 시키는 대로 잔인한 폭군이 될 자신도 없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이리저리 도망치려고 망가질 구실만 찾던 것일 수도 있고. 후우, 전부 관두고 진짜로 도망쳐 버리면 이렇게 편해지는 것을. 후후.”

황태자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황태자는 한결 편안해진 눈빛으로 진화를 보았다.

“널 보고 있자니, 내 꼴이 얼마나 우스운지 비교가 되더라고. 기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망가질 수 있는 권리 같은 게 아닌데. 게다가 네 말…… 그래, 내 곁에는 아주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더군, 호양 고모님같이.”

호양공주를 떠올린 황태자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자조적이거나 비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떠올린 미소였다.

“원귀빈의 겁박은 진짜였어. 끈이 떨어진 황족만큼 비참한 운명도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다 집어치우고 날 구해 주셨다지? 날 위해 널 찾아가시고. 게다가 네 앞을 막겠다고 나선 정소와 궁인들까지. 네 말대로 그들을 위해 더는 망가질 수 없더군. 그래서 도망친 거다. 망가지지 않으려고, 내 주제에 맞지 않은 너무 무거웠던 짐을 던져 버린 거지.”

황태자가 물을 마신 후보다 훨씬 시원한 표정으로 진화를 보았다.

그리고 살짝 짓궂게 코를 찡긋거렸다.

“감사를 할지, 복수를 할지 정하라고 했지? 그래서 둘 다 하기로 했다. 내게 너무 무거운 짐은 네게 던진 거지. 하하하!”

“…….”

진화가 말없이 황태자를 보았다.

저 혼자 실컷 자다가 일어나서, 혼자 주절주절 뭔가 결론을 내리더니, 저 혼자 후련해 보였다.

“……그러니까 결국은 내게 황태자 위를 던져서 복수를 했다 이건가?”

“……뭐?”

잘못 들었나.

황태자가 놀란 눈으로 진화를 보았다.

하지만 완전 진심이었는지, 진화가 서늘한 눈빛으로 황태자를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놀람, 두 번째는 의심, 마지막으로 황태자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걸 진짜 그렇게 받아들인다고?”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세상 누가 황태자 위를 주겠다는데 저렇게 나온단 말인가.

황태자는 점점 스산해지는 진화의 눈빛에 진짜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진화의 손끝에 뇌전이 번뜩였지만 황태자는 알아채지 못했다.

“허어! 허! 하하하하하하!”

그저 농담처럼 한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로 복수가 되었을 줄이야!

급기야 황태자는 배까지 접고 크게 웃었다.

세상 천지에 황태자 위를 준 것이 복수가 되는 사람이 있다니, 그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사고방식이었다.

“하하하하하! 하! 하늘이 무너진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우물이 무너졌던 거로군. 하하하하!”

황태자가 쉬이 웃음을 그치지 못하자, 서늘하게 가라앉았던 진화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설마, 미친 거였나?’

진화는 황태자의 곁에서 한 걸음 떨어졌다.

그런 동시에 손끝에 모였던 뇌전이 없어졌다.

그때까지도 황태자는 웃음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

진화는 그런 황태자의 모습에 ‘역시 미친 거군.’ 하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미친놈은 답이 없으니까.’

진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때.

뒤늦게 황태자의 진지한 목소리가 진화를 멈춰 세웠다.

“진심이다. 나는 고모님과 궁인들이 있는데도 망가졌는데, 넌 그……런 상황에서도 망가지지 않았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진화가 황태자를 돌아보았다.

황태자는 진지한 얼굴로 진화를 보고 있었다.

“부황이 바랐던 ‘강인함’이 바로 그런 것이라면, 마땅히 네가 황태자 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혀 아니야.”

황태자의 말에 짧게 답한 진화가 그대로 몸을 돌려 황태자의 침소를 나갔다.

황태자의 침소를 나오는 진화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황태자는 진화가 황태자 위가 싫어서 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진화는 진심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망가지지 않는 ‘강인함’을 바라는 것이라면, 자신은 아니었다.

‘나는 망가졌었다, 광마제에게 모두를 잃고.’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야 했다.

남해로 떠나기 전, 진화는 불안하게 뛰는 심장을 꾹 누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른 데에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진화는 불끈한 마음에 동궁전을 찾았던 것을 잊고, 남해로 가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대로 당장 황태자 위에 올라 황궁에 발목이 잡히는 것도 아니니까.’

진화는 당장 황궁을 탈출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황제와 조위례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 * *

신 제국, 황궁.

“허허허허허! 한 제국의 표기군이라고?”

신 제국 황제는 기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웃음을 터뜨렸다.

왜 안 그렇겠는가.

한 제국이 자랑하는 중앙 오군 중 하나인 표기군이 통째로 망명을 해 왔는데!

파군의 전투에서 형편없이 패하면서 귀천성 일행에 대한 신뢰가 조금 무너졌던 차였다.

그런데 전쟁에 패한 것이 아니라 한 제국의 군대를 가져온 것이라니.

물론 그 과정에서 신 제국군의 피해가 컸고 표기군의 전력 손실도 많았지만, 뭐 어떤가.

신 제국 황제는 그저 한 제국에서 무언가를 빼앗아 왔다는 사실 자체를 기뻐하고 있었다.

“하하하하하하! 표서량이라고? 한 제국의 젊은 대장군, 혈랑신창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환영하네! 그대로 대장군의 직위를 내리지. 표기군을 정비하고, 짐을 위해 열심히 싸워 주게.”

신 제국 황제의 명에 따라 신하 중 하나가 칙서를 가져왔다.

그 순간.

쉐에에엑-!

“커헉!”

사방으로 피가 튀고, 칙서를 들고 있던 신하의 목이 날아갔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순식간에 대전에 고함과 비명이 난무했다.

아수라장이 된 대전.

그 틈에 표서량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신 제국 황제의 목을 잡았다.

“너, 너……!”

경악에 가득 찬 얼굴과 불신으로 떨리는 눈빛.

신 제국 황제와 얼굴을 마주한 표서량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우두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신 제국 황제의 목이 그대로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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