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마제
두려워할 진(震) 불행 화(禍) : 배신(2)
“반란이다--!”
누군가 크게 외쳤다.
그 목소리가 대전 밖에까지 전해지고, 대전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 놀라서 뛰어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왔을 때엔 이미 늦었다.
푹! 푸-욱!
“컥! 크윽…….”
금군 대장이 경악에 찬 눈으로 옆을 보았다.
대전 문 옆에는 언제 들어와 있었는지 모를 표기군이 그와 수하들의 몸에 검을 박아 넣고 있었다.
쉐에엑-!
“커헉!”
날카로운 바람이 지나며 금군 대장의 목을 베었다.
피가 작은 폭포처럼 목을 타고 흐르고, 금군 대장은 순식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쓰러졌다.
‘내가 죽는 건가…….’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는 금군대장의 머리 위로 누군가의 싸늘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집 지키는 개새끼가 아무에게나 함부로 문을 열어 주니 이렇게 되는 거다.”
표기군 사마 위기린이 쓰러진 금군 대장의 시체를 발로 차고, 병사들을 이끌고 대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표기군과 함께 대전으로 검으로 들고 달려오는 금군들을 베기 시작했다.
* * *
쿵!
표서량이 죽은 황제의 시체를 발로 차 용좌에서 떨어뜨렸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쉐에에에엑-!
소리도 없는 바람이 지나가며, 표서량에게 손가락질을 하던 신하의 목을 갈랐다.
파-팟!
통. 통통통……!
“으아아악!”
아직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육신의 목에서 대전 천장까지 닿을 정도 피가 치솟았다.
옆에 있던 신료들이 혼비백산 흩어졌다.
동시에 대전 곳곳에서 바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쉐에에엑-!
사아아아아----!
통. 통. 통통통……!
불길한 바람 소리와 목이 떨어지는 소리.
온몸을 흠뻑 적시는 뜨거운 피의 촉감과 냄새.
“으아아아악--!”
“아아아악!”
이성을 잃어버린 신료들의 비명과 고함이 대전에 가득했다.
“이런, 시끄럽군. 저놈들을 다 닥치게 할 수 없나?”
“안 돼. 저런 자들이라도 있어야 제국의 행정이 돌아가니까.”
광마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혼현마제가 사방으로 뻗어 있던 현홍사를 거두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마제들의 무력이 아무리 강한들, 제국을 무력만으로 통제할 순 없었다.
하여 한쪽에서 비명도 없이 경악에 찬 눈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대사마 복건주를 비롯해서 몇몇 이들을 살려 놓은 것이었다.
잠시 후.
조용해진 대전으로 역천마제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숨을 죽이고 몸을 벌벌 떨고 있던 신하들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복건주가 참담한 심경을 숨기듯 눈을 감았다.
복건주와 신료들이 귀천성 무리를 그토록 경계했던 것도 어쩌면 이 끔찍한 결말을 예상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역천마제 파륜.
어리석은 황제는 몰랐겠지만, 용상에서 떨어져 있던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용좌에 앉아 있는 황제보다 더한 존재감, 더 무거운 위엄, 더 압도적인 기세를 뿜고 있던 역천마제의 모습을.
황제의 밑에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은, 아니 그 누구의 밑도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황제보다 더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던 이.
역천마제가 걸어감에 따라 신료들과 대전에 있던 표기군이 허리를 굽히고, 광마제와 혼현마제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표서량이 역천마제에게 용상을 내놓았다.
역천마제가 자연스럽게 용상에 올랐다.
“등극을 경하드리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등극을 경하드리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표서량이 선창을 하고, 대전에 남아 있는 신료들이 눈치껏 그에 복종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혼현마제가 앞으로 나서 새롭게 준비한 관을 역천마제에게 바쳤다.
역천마제는 스스로 황관을 머리에 쓰고, 좌중을 향해 자애롭게 웃어 보였다.
“마침내, 본 좌가 제대로 된 자리를 찾았구나. 신(新) 제국이라는 명칭은 마음에 드니 앞으로도 계속 쓰도록 하겠다. 하나 앞으로 본 좌가 다스리는 신 제국은 한 제국과 중원 무림, 사패천을 모두 정복하고 진정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제국이 될 것이다!”
역천마제의 목소리가 대전은 물론이고 신 제국 황궁 전체에 울려 퍼졌다.
평온하면서 위엄 넘치는 목소리에 대전 밖에서 들리던 소란도 멈췄다.
하늘에서 들리는 듯한 역천마제의 목소리에, 반란을 제압하려 나섰던 금군들이 검을 든 손을 멈췄던 것이다.
그때다 싶었던 표기군 사마 위기린이 소리쳤다.
“폐주는 죽었다! 새로운 황제께서 등극하셨다! 우리는 반란군이 아니다! 금군들은 새로운 황제를 맞아라-!”
위기린의 말에 금군들이 혼란에 빠졌다.
때를 맞춰 역천마제의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역천, 아니 이제는 본 좌가 하늘이다! 앞으로 중원은 진실 된 천제가 다스리는 제국을 맞으리라!”
“천제의 뜻대로 하소서, 천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역천마제가 스스로를 하늘이라 칭하며 제국의 주인 자리에 앉았다.
역천마제의 선언이 황궁 전체를 뒤덮었다.
그에 신 제국 대전의 신료들은 물론, 전 황제를 위해 검을 들었던 금군들마저 소리 높여 부복하며 새로운 황제를 받아들였다.
“곧 의식을 시작하지.”
“예, 폐하.”
역천마제의 말에 혼현마제가 부복하고, 옆에서 표서량이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신 제국에도 황태자를 비롯해서 많은 황자와 공주가 있었다.
죽은 황제는 워낙 주색을 밝히기로 유명했던지라, 정비와 후궁 또한 셀 수 없이 많았다.
쉐에에엑!
“커헉! 이, 이, 더러운 반역자들…….”
퍼억-!
죽어 가며 저주를 뱉으려던 신 제국의 태자가 결국 끝까지 말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흐으으으. 사, 살려 줘! 살려 줘!”
태자의 뒤에 숨어 있던 다른 황자들이 겁에 질려 도망쳤다.
쉐에에에엑---!
“커헉!”
“윽!”
단말마와 함께 남아 있는 황자들도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심장이 꿰뚫려 죽으면서, 그들의 얼굴은 황태자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검마제는 대전에서 일이 시작되기 전부터 향락에 빠져 있던 황자와 공주를 모두 죽였고, 방금 뒤늦게 몸을 피하려던 황태자와 남은 황자들까지 모두 정리했다.
이로써 신 제국의 황족은 모두 죽은 것이다.
황후와 남은 후궁전의 여인들도.
“까아아아악-!”
쉐에엑!
뒤에서 날아든 뾰족한 손톱이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던 여인의 목을 꿰뚫었다.
“꺼어. 끄어…….”
파사사삭-!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여인의 목이 시커멓게 물들더니, 이내 다 타 버린 장작처럼 바사삭 부서졌다.
도망친 태자비를 잡으러 왔던 독마제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털었다.
“아, 정말, 귀찮아 죽겠어. 그냥 다른 사람 죽을 때 같이 죽으면 좋잖아.”
독마제 은요가 재가 되어 흩어지는 태자비의 주검을 짓밟으며 들어왔다.
검마제가 그런 은요의 잔인한 행동을 무심하게 보아 넘기며 물었다.
“다 끝났나?”
“아아. 이년 빼고는 모두 후궁전에서 독연을 마시고 죽었어. 연기가 빠지고 나면, 치울 시체도 없을 거야. 후후후.”
어느새 재가 되어 사라진 태자비의 시체를 보며, 검마제가 은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궁들을 우리가 하나씩 가지면 되는 건가?”
“천제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우리 역천마제께서 이제 진짜 천제가 되셨네? 출세하셨어. 후후후후!”
은요가 궁을 돌아보며 하는 말에 검마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그냥 듣기엔 화려한 황궁 어딘가를 혼자 독차지할 수 있다는 것에 들떠서 한 말 같았지만, 무언가가 검마제의 신경을 거슬렀다.
‘뭘까.’
검마제의 눈이 날카롭게 궁 곳곳을 둘러보는 은요의 행동을 살폈다.
“등극식은 과거 충실했던 귀천성 수하들까지 모두를 모아 놓고 하겠지? 바야흐로 귀천성의 부활이네! 정파 놈들이 화들짝 놀라겠어. 호호호호호!”
이상했다.
당연한 말인데, 자꾸 머릿속을 맴돌며 신경을 자극했다.
검마제는 은요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검마제의 시선이 집요할 정도로 오래 은요에게 머물렀다.
* * *
월하객잔.
십이좌회의 일원들과 홍랑대부 초산하까지, 한창 바빴던 이들이 오랜만에 객잔의 옥상에서 다도와 화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직 귀천성 때문에 만나는 관계였지만, 전쟁을 통해 풍파를 거치면서 그들의 관계도 점차 친우와 동료 그 사이의 어디쯤 자리하고 있었다.
“허어, 우리 며느리가 황태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큰일이네.”
“큰일이지, 니 새끼 입이. 한 번만 더 내 손주한테 며느리 어쩌고 하면 아가리를 터뜨린다고 했지?”
“요즘 세상에 그만한 미모와 재력이면 나이, 성별, 집안 다 상관이 없다니까!”
“너 혼자 다른 세상에 사냐, 이 미친놈아!”
“그 전에, 혼인은 나이와 성별이 제일 중요하지! 이 무식한 놈들아!”
“뭐야?”
“흥! 세상 사는 법은 내 천(川) 자도 모르는 놈이.”
“이런 빌어먹을! 손주 새끼들이 그 모양 그 꼴이 된 건, 다 제갈성진 놈 탓이지 그게 왜 내 탓이야!”
사패천주와 제왕검이 아웅다웅하고 거기에 제갈길현이 끼어들어 아수라장을 만드는.
지극히 십이좌회다운 담소였다.
그때, 조용히 차를 마시던 현학문주가 새파란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문이 혼란하네.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은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
현학문주의 말에 화기충천(火氣衝天)하던 일행이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누가 뭐래도 현학문주 운송이라면, 하늘을 읽는 학사들의 스승이 아니던가.
제갈길현과 홍랑대부도 놀라서 하늘을 살폈다.
특히 ‘길을 가야 하는 사람들’인 제왕검과 사패천주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개소리 작작하고 알아들을 수 있게 있게 말해 보게.”
“저 새끼는 맨날 저만 알아듣는 말만 한다니까.”
제왕검과 사패천주가 합심하여 현학문주를 타박했다.
정파 제일 가문의 가주였던 놈이나 사파의 하늘이라는 놈이나.
현학문주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제왕검과 사패천주를 보았다.
“역천성이 번뜩였다는 말일세!”
“아, 난 또 뭐라고.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잖아!”
“역천성의 주변으로 남은 칠현성이 죄다 모여들고 있으니 하는 말이야.”
“응? 그건 이상하네. 벌써 몇 놈은 죽지 않았어?”
사패천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천문이 말하는 건 늘 애매해. 그게 목숨이 될 수도 있지만 운명이 될 수도 있지.”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늘이 혼란하면, 빛을 다해 떨어져야 할 별에 새로운 숨이 붙거나 활발하게 빛을 발하던 별이 갑자기 떨어지기도 하니까. 죽은 별들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네. 운명이 완성되지 않았거나 아직 진행 중이라는 거겠지.”
현학문주의 눈이 제왕검과 사패천주를 향했다.
“누가 아는가, 저러다 죽었다고 생각한 별이 갑자기 빛을 찾을지. 조심들 하게.”
현학문주가 두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경고를 보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현학문주이기에 쉬이 흘려들을 수 없었다.
“나야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이고, 제왕검은 자식, 손주들이 전부 남해에 모인다고 했지? 흐흐, 남궁세가야말로 조심해야겠구먼!”
“흐음. 황궁으로 전갈을 보내야 하나.”
사패천주가 자신에 대한 걱정을 접어 두라며 호기롭게 말했다.
반면 제왕검 남궁강은 자식과 손주들의 일이라 사패천주와 같은 호기조차 부리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현학문주의 시선이 사패천주를 향했다.
“방심하지 말게. 하늘의 경고가 누구에게 닿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네.”
“글쎄, 난 아니라니까. 새파란 애송이도 아니고 나 한구혈이라고!”
사패천주가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현학문주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제갈길현이 사패천주를 향해 혀를 찼다.
“쯧쯧쯧, 내가 늘 혼자 설레발치지 말라 그랬지, 이놈아. 딸랑 사파 촌구석 하나 정리해 놓고 오만 떨지 말고 새겨들어!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고.”
“뭐야? 영감탱이, 말 다 했어?”
제갈길현까지 말을 보태자 사패천주가 대번에 발끈했다.
거기에 제갈길현도 지지 않고 사패천주를 타박했다.
“뭐, 내 말 틀렸나? 이 생각 없는 놈아! 다 늙어서 계집질 하느라 전 무림에 쪽이란 쪽은 다 팔려 놓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요.”
“나는 아직 팔팔해서 그래! 거기도 다 쪼그라든 영감탱이랑 달리!”
“뭐야! 네가 봤어?”
결국 제갈길현과 사패천주의 말다툼이 이어지고, 현학문주의 경고는 뒤편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현학문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갈길현과 사패천주를 보았다.
그때.
툭.
홍랑대부 초산하가 현학문주를 슬쩍 건드렸다.
“후후후, 헤어지는 마당에 무겁게 헤어지기 싫어서 그런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홍랑대부 초산하가 쑥스러움이 많은 주군의 진의를 전하며 현학문주의 기분을 풀어 주려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이었다.
현학문주야말로 홍랑대부보다 사패천주를 오래 보았다.
“……자네는 자네 주군을 과대평가하는군. 저놈은 본래 저렇게 생각 없고 오만한 놈일세. 그러니 부디 잘 모시게.”
“흠흠. 유념하겠습니다. 후후후후.”
가차 없는 현학문주의 말에 홍랑대주 초산하가 웃음으로 상황을 회피했다.
* * *
다음 날.
사패천주와 홍랑대부가 사패천으로 떠났다.
그리고 황궁에서도 진화와 일행이 남해로 떠날 차비를 마쳤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다치지 말고…….”
언제 해도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 이별이라더니.
황후는 다른 말을 찾지 못하고 또 눈물을 글썽이며 진화의 얼굴만 쓰다듬었다.
진화는 어색한 얼굴로 그 손길을 가만히 받고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황제가 진화의 등을 떠밀었다.
“먼 길이다. 어서 가 보거라.”
“예, 폐하. 그동안 강녕하십시오.”
황제에게 덤덤하게 인사하고 진화가 등을 돌렸다.
그때, 진화의 뒤로 황제의 투덜거림이 들렸다.
“봤소, 황후? 저 정나미 없는 놈. 누굴 닮았는지. 제 어미한테는 가만히 얼굴도 내주더니.”
“폐하께오서 먼저 정 없이 아들 등을 떠미셨잖습니까.”
“아니, 황후, 지금 누구 편이오?”
“……말씀 올리지 않겠습니다.”
“허어! 참…… 섭섭하오.”
“……저도요.”
황후에게 하는 말처럼 전해지는 황제의 진심과 황후의 말.
그것을 지나치지 못한 진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황제와 황후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진화는 그들을 향해 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거봐요. 돌아보셨지요?”
“쉿!”
“동 태감은 조용히 하라.”
고수의 청각을 무시하지 말라 그리 일렀거늘.
진화는 귀에 들리는 속삭임을 모르는 척하며 미소를 지었다.
무겁던 발걸음이 다시 빨라지는 것은, 남해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