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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마제 (314)화 (314/425)

남궁마제

두려워할 진(震) 불행 화(禍) : 배신(4)

파아아아- 철썩! 파아아아-철썩!

남해 검문 남쪽 높은 성벽에 서자, 발밑으로 성벽을 때리고 있는 바다가 보였다.

남궁세가가 가진 평온한 바다와 달리 남해의 바다는 사투를 벌이는 무림인들처럼 치열했다.

성벽 아래 파도는 지금도 성벽을 부술 기세로 달려와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진화가 성벽 아래를 보았다.

다만 진화의 시선이 머문 곳은 성벽을 때리고 부서지는 파도가 아니라, 거칠게 밀려드는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성벽이었다.

“…….”

진화의 머릿속에 떠나오기 전 황제의 말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과 욕망을 구분하지 마라. 네가 가진 무력도 힘이지만, 내가 가진 권력과 금력, 군사력도 모두 힘이다. 욕심 없이 유유자적 산다면 다 필요 없지 않냐는 건 전부 개소리다. 검을 든 것들도 적이고, 가난과 불행도 적이다. 네 사람들을 지키고 싶거든 기억하거라. 힘은 많을수록 좋다! 무력이든 금력이든 권력이든, 쥘 수 있다면 전부 쥐는 거다!”

파도를 맞는 성벽은 다른 곳과 달리 녹색 이끼가 피고 물기가 마를 날 없었지만, 남해 검문이 존재하는 수백 년간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다.

진화의 시선이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 * *

남해 검문은 중원의 명문 대파에 비해 역사와 전통에서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

남해 검문은 왜에서 오는 해적들을 막기 위해 남해 어민들이 자경단을 결성한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점차 중원과 관, 왜의 검술을 이리저리 섞어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전해졌다.

해적들의 침략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와 처절했던 생존기.

혹자들은 그것이야말로 남해 검문이 귀천성 소속 세력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문파 중 하나인 희멸문(喜蔑門)을 상대로 오래도록 버틴 비결이라 말했다.

“희멸문주 여포선이 문제인 건가?”

“아니. 희멸문주는 죽었다.”

“요수 여포선이 죽었어?”

청룡단주 남궁현의 말에 적호단주 팽치가 깜작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청룡단주가 한숨을 푹 쉬었다.

“……세 번째 전투에서 제왕무적단주께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다가 양손이 부러지고 머리가 깨졌다.”

“그러니까 남궁경에게 입 함부로 놀리다가, 손모가지 날아가고 대가리가 터졌다는 말이네? 언행일치 한번 죽이는구먼.”

남궁경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툭하면 대가리를 터뜨리니 어쩌니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정말로 지킬 줄 몰랐을 뿐이지.

남궁경의 화끈한 언행일치에 적호단주가 크게 감탄했다.

“희멸문주가 죽었다면 끝난 것 아닌가?”

“그게 이상하다. 문주가 죽었는데도 두문불출이다.”

“복수하러 올 생각도 없고, 도망도 안 치고?”

“그렇다.”

“그건 좀 이상하네.”

청룡단주의 말에 적호단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벽 건너편을 보았다.

검정 바탕에 하얀 꽃이 그려진 희멸문의 깃발이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제왕무적단주 남궁경이 직접 창궁무애단을 이끌고 왔다지 않았어?”

“제왕무적단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남궁세가를 벗어나지 않으니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희멸문이 아무리 세력이 강성하다고 해도 창천일검(蒼天一劍) 남궁경과 청룡단주 남궁현의 상대는 아니지. 희멸문이 귀천성 다른 문파의 도움 없이 창궁무애단과 청룡단을 상대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고. 실제로 희멸문주까지 죽였다며? 그런데…….”

적호단주가 천천히 청룡단주를 돌아보았다.

“왜 놈들을 완전히 밀어버리지 않았지?”

웃음기 하나 없이 굳은 얼굴과 강렬한 눈빛.

언제나 뜨거운 불같은 친우가 냉정하게 그를 추궁하고 있었다.

적호단주는 전장에서 목숨을 맡길 정도로 청룡단주를 신뢰하면서도 죄(罪) 앞에서는 누구든 예외를 두지 않았다.

청룡단주는 적호단주의 강직함을 전혀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남해 검문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창궁무애단과 청룡단은 현재 귀천성을 멸하는 것이 아닌 남해 검문을 돕기 위해 와 있다. 그러니 남해 검문에서 성문을 열고 나가길 원치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 없다.”

청룡단주의 말에 적호단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눈앞에 증오하는 적을 전멸시킬 기회가 있는데도 임무를 우선하는 친우의 고지식함 때문이 아니었다.

“남해 검문이 희멸문을 전멸시키려고 하지 않는다고? ……배신인가?”

“뭐? 그건 아니다. 남해 검문은 희멸문만이 아니라 해적들도 상대해야 한다. 중원이 전쟁 중이라고 해적들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희멸문을 무너뜨리는 데에 전력을 손상시키면, 지금의 해적들과 희멸문이 상대하던 해적들까지 남해 검문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장문인의 판단이다. 제왕무적단주와 나는 그런 남해 검문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고.”

청룡단주의 설명에 적호단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청룡단주는 그와 남궁경처럼 적호단주가 남해 검문의 입장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장문인이 영 정의맹에 신뢰에 없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남해 검문이 수작 부리는 낌새는 없고?”

“……어떻게?”

적호단주의 물음에 청룡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남해 검문이 무슨 수로 청룡단과 창궁무애단 전체를 속인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호단주에겐 그쪽이 남해 검문을 이해하는 것보다 쉬웠다.

“남해 검문과 남해 전체가 너희들을 속이는 걸 수도 있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왜 말이 안 돼? 종남에서는 장문인 빼고 전부 첩자였는데.”

적호단주의 말에 청룡단주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게 가능했다니.

“어떻게 그렇게 되었지?”

“오랜 전쟁으로 이기심이 극에 달하면.”

청룡단주의 물음에 적호단주가 씁쓸하게 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다 죽였다. 장안 인간들 반을 날렸는데, 종남파 인간들쯤이야, 뭐.”

“……대체 어떤 아수라장을 건너온 거냐?”

청룡단주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적호단주가 코웃음을 쳤다.

“넌 뭐 다를 줄 알고? 저놈들이랑 엮이면 뭐든 더러워져.”

적호단주의 시선이 다시 건너편을 향했다.

“일단 여길 정리하려면, 남해 검문 장문인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한 건가?”

“그들의 협조 없이 우리끼리 희멸문을 없앨 수는 없으니까.”

적호단주와 청룡단주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조용히 희멸문의 깃발을 노려보았다.

그 시간, 진화는 은밀하게 남해 검문 장문인을 만나고 있었다.

“역천비록을 달라?”

진화의 말에 남해 검문 장문인 해천검 계용백이 코웃음을 쳤다.

그 모습만으로도 진화는 그가 정의맹의 요구에 비협조적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진화는 남해 검문 장문인의 반응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자신의 할 말만 전했다.

“정확히는 반쪽짜리입니다. 현재 정의맹에서 해석 중이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허! 정의맹에서 웬일로 우리를 돕나 했더니 꿍꿍이가 있었군.”

남해검문 장문인이 대놓고 불쾌감을 표했다.

하지만 그가 불편해하든, 불쾌해하든 그건 진화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진화는 광마제의 역천비록의 나머지 부분을 얻을 수 있다면, 그가 어떤 반응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내가 안 주겠다면 어찌하겠나?”

남해검문 장문인인 해천검 계용백이 입꼬리를 비틀며 진화를 도발하듯 눈을 마주쳤다.

진화도 계용백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무슨 어린놈의 눈빛이 이래?’

계용백은 제 눈을 피하지 않는 진화의 모습에 당황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검은 눈동자처럼 진화의 속이 가늠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진화가 그런 계용백을 보다가 사르륵 입꼬리를 말았다.

“안 주시겠다면 빼앗을 겁니다.”

“뭐?”

“남해 검문이 희멸문과 합심하여 시간만 끌고 있었다……고 정의맹에 보고할 겁니다. 그리하면 청룡단과 창궁무애단은 즉시 남해 검문에서 철수할 것이고, 적호단은 남해 검문이 희멸문과 내통한 것은 아닌지 샅샅이 뒤지게 되겠죠.”

탕-!

“이봐, 말이면 단 줄 알아?”

해천검 계용백이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진화를 보는 눈에 살기마저 맴돌았다.

하지만 앞서 그러했듯, 진화에게 계용백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의맹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의맹에 귀천성의 역천비록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뭐지?”

“애송이,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벌써 추궁하듯 묻는 진화에게 해천검 계용백이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그에 진화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애송이가 아니라 저하. 동해왕 저하다. 역천비록을 내놓지 않으면, 역모의 죄도 함께 물어 주지.”

진화는 ‘힘은 무력만이 아니라 금력, 재력, 권력까지 수만 가지.’라는 황제의 충고를 가슴 깊이 새겼다.

그래서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무력이 아닌 힘까지 아낌없이 사용하기로 했다.

“……빌어먹을! 역천비록을 내놓고 나면? 너희들이 또 우리를 나 몰라라 하지 않을 거라 어떻게 믿지?”

남해 검문 장문인 계용백이 역천비록을 주는 데에 삐딱선을 탄 이유였다.

그동안 남해 검문은 틈만 나면 약탈과 학살을 일삼는 해적을 상대하랴, 귀천성과 전쟁을 치르랴 어려움이 많았지만, 정의맹의 지원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계용백은 그것이 중원과 멀리 떨어진 위치 때문도 있지만 정의맹에서 남해 검문의 특수성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여 지금은 역천비록을 얻기 위해 남해 검문을 돕고 있지만, 역천비록을 내주고 나면 또 자신들을 외면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진화는 그런 계용백의 불신을 이해했다.

“믿을 필요 없다.”

“뭐?”

“나는 당신에게 믿어 달라고 한 적 없는데. 역천비록을 내놔라. 이건 회유가 아니라 협박이다.”

회유는 귀찮고 설득은 어렵다.

그래서 협박은 언제나 빠르고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진화는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한 힘으로 계용백을 압박했다.

“크읏!”

진화가 양기를 날리고 음기로 계용백을 누르자, 계용백의 수염과 머리칼에 순식간에 얼음이 얼며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마침내 계용백의 입술에도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자, 계용백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크으…… 희멸문을 없애는 데 앞장서 주시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더라도 역천비록을 내놓지 않겠소!”

해천검 계용백이 비장한 얼굴로 이를 악물고 말하자, 진화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답했다.

“좋습니다.”

“……뭐?”

“간단하군요.”

“……허어!”

자신은 죽을 각오로 어렵게 꺼낸 말이었건만.

계용백은 순식간에 그를 압박하던 기운을 거두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존대를 하는 진화의 뻔뻔한 모습에 허탈감마저 들었다.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는 웃음을 보자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 * *

신 제국과 한 제국의 전쟁에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두 제국뿐 아니라 정의맹도 마찬가지였다.

파군은 신 제국과 한 제국의 경계이기도 했지만 백제성을 기준으로 박가장과 한중권문에 이르기까지 정의맹과 귀천성 사이의 경계이기도 해서, 귀천성에 호의적인 신 제국에 파군을 빼앗기게 되면 박가장과 한중권문도 위태로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계속해서 움직이던 백매단과 그들이 주는 정보를 취합하고 무사들을 움직여야 하는 군사부는 이제야 겨우 한숨을 돌린 터였다.

하지만 군사부 수장인 제갈가주는 여전히 손에서 전서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무슨 일 있습니까?”

남궁진휘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러자 제갈가주가 남궁진휘에게 보고 있던 전서를 건네주었다.

남궁진휘가 전서를 확인했다.

[신 제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음. 귀천성 소속 문파들이 신 제국 황도로 모여듦.]

내용을 확인한 남궁진휘가 여전히 의아한 듯 제갈가주를 보았다.

전서의 내용이야 몹시 중요한 것이었지만, 신 제국이 역천마제와 다른 마제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정의맹에서도 확인한 일이 아니던가.

그런 와중에 귀천성 소속 문파들이 역천마제가 있는 황도로 모여든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가주의 생각은 달랐다.

“전서의 날짜를 보게.”

“날짜요? 이주일 전이군요.”

“그게 마지막이네. 개방의 정보책들이 신 제국에서 밀려나거나 조용히 소식이 끊기고 있어.”

제갈가주의 말에 남궁진휘가 놀란 눈을 떴다.

“신 제국에서 대놓고 정파를 색출하는 중이라는 겁니까?”

남궁진휘가 다급하게 물었다.

신 제국에 들어간 정보책들 역시 정의맹의 사람이라, 그들의 안위는 정의맹 군사부에도 중요한 일이었다.

남궁진휘는 위험한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그들에게 철수를 명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에 관해선 제갈가주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갈가주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월하회에서 온 전갈 보았는가?”

“신 제국이 상인들의 통제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까?”

“귀천성 무인들도 아니고 신 제국 군사들이 나서서 관문마다 인원을 제한하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네. 특히 황도에서는 나가는 사람을 막고 있는 듯하다더군.”

“……신 제국 조정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이례적인 일이야. 한 제국과 우리가 필요 이상 손을 잡는 것을 경계하겠다고 신 제국에서도 귀천성과 대놓고 협조하는 일은 없었어. 그런데 이번만큼은 그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군. 꽉 막혀 있는 황도로 귀천성의 수하들이 모여드는 것도 그렇고.”

제갈가주의 말에 남궁진휘의 얼굴도 덩달아 매서워졌다.

“신 제국과 귀천성이 틀어져서 신제국이 마제들을 볼모로 잡았을 경우와, 귀천성이 신 제국 조정을 장악하고 군사들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된 경우…… 어느 쪽이든 위험하겠군요.”

“월하회에서 조사를 하는 동안 개방 사람들과 백매단을 철수시키는 게 좋겠네.”

제갈가주의 말에 남궁진휘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철수까지요? 그보다는 신 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남궁진휘가 제갈갈주의 말에 우려를 표했다.

겨우 침투해 있는 정보원들을 철수시키는 건, 신 제국 내에 퍼뜨려 놓은 정보력을 버린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 제국에서 받을 수 있는 정보가 없네. 지금으로선 그들이 섣불리 움직이다 발각되는 것이 더 낭패일세. 발각된 후엔 구출이고 뭐고 늦어 버리니까.”

“음…….”

“백매단과 개방도는 모두 철수시키고, 대신 정보책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인들을 늘리도록 하지. 관문을 막아 놓는 바람에 대기 중인 상인들이 무척 많으니, 그 속에 몇을 더 포함시킨다고 해도 상관없을 테니까.”

“예, 군사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그렇게 실행하겠습니다.”

어떤 정보보다 정의맹 무사들 목숨을 우선한다.

정의맹 총군사로서 제갈가주가 가진 신념과 같은 원칙이라, 남궁진휘 또한 효율성을 떠나 제갈가주의 뜻에 따랐다.

“부군사, 상인들 중에 특히 신 제국 황도의 신료들과 접점이 있는 자를 찾아보게. 분명 신 제국 조정에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으니.”

“예, 그리하겠습니다.”

일정 이상의 통찰력은 때때로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에 예감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했던가.

남궁진휘는 뭔가 불길함을 느낀 듯 신 제국 조정에 날을 세우는 제갈가주의 모습에 군말 없이 그의 명을 따랐다.

* * *

“천주님이 돌아오셨다-! 문을 열어라-!”

우렁찬 목소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사패천 성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사파 무인들이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곧 흑마 여덟 마리가 이끄는 거대하고 화려한 마차가 안으로 들어왔다.

“으하하하하! 다들 잘 있었나?”

“천주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사파 하늘의 귀환에 사패천 성내에 있던 무인들이 모두 부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수십, 수백의 사내들이 우렁차게 외치는 목소리에, 사패천주 한구혈이 들뜬 기분을 숨기지 못했다.

“나의 귀환을 맞이하여 사랑탑대전을 열겠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날뛰어 보자고!”

“우아아아아아아----!”

사패천주의 갑작스러운 선언과 함께 사패천이 떠나가라 함성이 울렸다.

당황하는 사람은 오로지 사랑탑주인 전각사 마모섬뿐이었다.

“갑자기 사랑탑대전이라뇨!”

“흐흐흐, 십이좌회에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시작할 모양이야. 그 전에 우리도 잘 싸울 놈들을 가려 봐야지.”

성내 사내들이 모두 소리를 지르고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패천주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축제 분위기의 사패천을 바라보는 천주의 눈에는 환호하는 이들 못지않게 뜨거운 열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에휴, 내 팔자야.”

사랑탑주 마모섬은 늘 이렇게 뜬금없이 일을 벌이는 주군을 보며 조용히 구시렁거렸다.

그를 말리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포기한 일이었다.

사패천주도 마모섬이 아니면 부려먹을 사람이 없으니, 그의 불평을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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